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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한 여정

ARTNOW

꿈과 현실 그리고 기억의 경계에서 잊힌 감각을 일깨우는 박용재 작가. 꿈처럼 느리지만 선명하게 다가오는 그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박용재 1982년생. 순수 회화를 전공한 후, 평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입체 조형 작업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다양한 입체 조형과 색채 작업을 총괄하며 아트 디렉터로서 커리어를 쌓은 작가는 그 정점에 다다른 뒤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순수 미술에 대한 갈증을 회화와 조형 작업으로 새롭게 풀어내고 있다. 작품 앞 박용재 작가.

5월 14일부터 6월 11일까지 노블레스 컬렉션과 드롭닷이 공동 개최한 박용재 작가의 개인전 〈Ungrown Memories〉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정을 풀어내며, 감각하는 생명을 향한 갈증과 이를 해소하는 꿈속 세계의 서사를 전개한다. 조형 작업을 하는 카피바라 레이의 모습을 그린 회화와 영화 시나리오 쓰듯 신(scene)과 시퀀스를 바탕으로 완성한 에스키스, 그리고 풍성한 버드나무 가지와 수련이 어우러진 호수를 배경으로 여유로운 한때를 담은 시그너처 신작까지. 많은 관심을 받은 작년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 전시 이후 한층 깊어진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박용재 작가를 만났다.

‘Atelier’ 작품의 에스키스 작업.

Floating Dreams, Oil on Canvas, 90.9×72.7cm, 2025.

원화 작품의 에스키스 작업.

하이퍼리얼리즘 피겨 작품에 이어 순수 회화 작품까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아트나우〉 독자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평면 회화와 하이퍼리얼리즘 조각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작가 박용재입니다. 〈아트나우〉를 통해 인사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기쁩니다.
실제 인물과 싱크로율이 높은 피겨 작품으로 독보적 입지를 구축한 후 회화 작업으로 방향을 전환한 이유가 궁금합니다.하이퍼리얼리즘 조각이 형태에 대한 집착을 풀어놓는 작업이라면, 회화는 감정을 해방시키는 작업에 가까워요. 회화로 회귀하는 건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큰 해방감을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풀어나가야 할, 제 인생에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몽환적이고 평안한 분위기의 풍경이 인상적이에요. 작품 속 풍경은 평소 무심히 지나친 일상이나 꿈에서 본 장면을 모티브로 합니다. 도심과 자연의 다양한 공간은 제 잠재의식에서 재정립되어 화면에 담기죠. 특히 꿈의 형체는 뚜렷하지 않더라도 그 감정선만큼은 선명하게 남아서 반복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풍경과 함께 시선을 마주하게 되는 캐릭터들이 눈길을 사로잡아요. 의인화한 동물로 카피바라(Ray), 롭이어(Eden), 나무늘보(Moly)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그들은 모두 일상 속 무해한 존재죠. 순하고 느릿하고 위협적이지 않은 그들의 태도가 좋습니다. 빠르고 복잡하고 날 선 혐오의 시대에, 저 역시 그들처럼 존재하고 싶은 마음을 녹여 작업이라는 틀에 투영하고 있습니다.
그 캐릭터들의 머리글자를 따면 REM(렘수면)이라는 단어가 되는 섬세한 디테일은 처음부터 계획하신 걸까요?처음 작업을 진행할 때 ‘자각몽‘이라는 주제가 잡혔고, 깨어 있을 때보다 뇌 활동이 활발하고 눈동자는 쉼 없이 격렬하게 움직이며 꿈을 관장하는 렘수면이라는 세계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 작업도 기억과 현실 사이를 쉴 틈 없이 오가야 했고, 그 의식의 흐름을 따라 여행하는 주체와 서사가 정해지면서 그들의 머리글자로 이름을 만드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레이(Ray), 이든(Eden), 몰리(Moly)가 탄생하게 되었어요.
작품 속 그들과 눈을 마주치면, 감정이입이 되면서 마치 꿈과 현실 세계를 오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곁눈질로 보는 화면 구성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곁눈질은 관람객과 작품의 경계인 ‘제4의 벽’을 깨고 소통할 수 있는 장치예요. 연극과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인데, 자연스럽게 관람객이 발을 들이고 스스로 작품에 동화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 곁눈질이라는 제스처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로, 동화된 대상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면서 남을 의식하고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숙명을 상징합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하나로 엮는 큰 세계관이 있다고 하셨죠. 그 세계관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제 작품 세계는 ‘꿈과 일상 그리고 그 경계’에 머무는 공간을 기반으로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심히 지나치는 순간, 잊힌 감정, 그리고 꿈의 파편이 뒤섞여 하나의 세계를 이룹니다. 먹먹하게 들려오는 윗집의 어설픈 피아노 소리, 도시의 불빛 아래 잠긴 골목, 안개 낀 숲길, 멈춰 선 시간 같은 풍경,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그 세계를 레이, 이든, 몰리는 자신만의 속도와 보폭으로 유영하죠. 그 세계는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가 느슨하게 교차하는 ‘느린 차원의 세계’로, 관람객도 그 느린 세계를 함께 떠돌며 자신만의 잊힌 기억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2024년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 〈Dropdot〉 전시 전경.

2024년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 〈Dropdot〉 전시 전경.

현실, 꿈 그리고 추억이라는 3개의 층위에서 생에 대한 감각이 순환하는 것 같기도 해요. 작업의 모티브가 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요?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거예요. 어릴 적 흐릿한 기억인데, 이게 실제 있었던 일인지, 어린 나의 상상이었는지, 아니면 꿈이었는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뭉게구름 같은 기억의 저편에 있는 그것. 저는 어릴 적 초여름 낮의 한때가 기억납니다. 어린 나는 거실에 혼자 누워 낮잠을 청하고 있고, 창밖으로 푸른 하늘과 구름이 보이고, 그 틈으로 해맑은 햇살과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또래인 윗집 어린 소녀의 어설픈 바이엘 피아노 연주 소리에 스르르 잠이 들던 기억. 구체적 사건은 없었지만, 그 순간의 공기, 색감, 온도, 소리, 심지어 냄새까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실재한 것인지, 내가 만들어낸 것인지 알 수 없죠. 이러한 무명의 감정은 제 작품 세계를 이끄는 원천이 됩니다.
꿈과 현실 그리고 기억을 오가는 경계에 존재한다는 것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경계는 역설적이게도 자유를 의미해요. 현실과 이상,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주변인으로 살아가며, 어느 곳에도 안착하지 않고 계속 변화할 수 있는 제2의 삶. 얽매인 채 살아가는 실제 삶과 달리, 작품 속 나는 무척이나 자유롭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열리는 개인전 〈Ungrown Memories〉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출품작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전시에선 어른이 된 지금,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감정과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꿈의 파편을 담은 회화, 조각, 피겨, 드로잉 작품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게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전시를 찾은 분들이 잠시나마 우두커니 머무르며, 자신의 풋풋하고 어리숙한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에디터 정희윤(heeyoon114@noblesse.com)
사진 박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