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거리에서 예술가를 만나는 법
지난 20여 년간 기자와 갤러리스트, 큐레이터, 기획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국내외 예술가를 만나온 직업인이자 예술 애호가가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아티스트와의 대화법’.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가와의 대화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지만, 자칫 흠모해온 아티스트에게 나쁜 인상을 주거나 실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예술가와 만나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대화의 기본인 경청과 배려, 존중과 더불어 예술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내 보여주고 쌓아가는 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아티스트는 대부분 견고하고 경이로워 보이는 한편으로 무척 섬세하고 순수한 존재라는 것 역시.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특별한 개막식이나 오프닝 행사가 없더라도 전시 개막일에는 전시 공간에 작가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날은 작가가 가장 바쁜 날이기도 하니 충분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을 수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는 전시 작가가 참여하는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는 자리다. 문화재단과 미술관 등이 운영하는 레지던시에 입주한 작가의 작업실을 공개하는 오픈 스튜디오 기간에도 작가들이 결과물이나 리서치 등 창작 과정을 전시하고, 방문객과 대화를 나눈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도 간접적으로나마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작가의 근황과 작업에 대해 가장 생생한 정보를 생산하는 곳이고, 전시를 직접 보지 못하더라도 전시 장면 사진이나 영상, 후기 등을 보고 작가에게 DM이나 이메일을 보낼 수도 있다. 전시를 본 뒤 SNS에 작가의 계정을 태그할 수도 있다. 다만 온라인은 오프라인보다 공과 사의 구분이 불분명하므로 작가와 소통할 때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작업실은 작품과 그 제작 과정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귀한 곳인 동시에 개인의 공간이다. 작업실은 개인적 교류 외에는 전시를 기획하는 미술관과 갤러리 관계자, 작업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비평가나 기자 등 업무 목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관례다. 충분한 관계를 쌓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실 방문을 청하면 서로 불편해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작업실은 작가의 삶과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인 만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소개한 오픈 스튜디오와 같이 최근엔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갤러리나 기관이 늘고 있으니 그런 기회를 찾아보자.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가?
작가와 대화할 때 최고의 주제는 단연 그 작가의 작업에 대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내고, 이를 전시를 통해 관람객 앞에 펼쳐 보이는 직업이다. 일면식도 없는 이와 작품에 대해 깊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신의 작업에 대해 궁금해하는 관람객을 작가가 마다할 리 없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이자 달변가는 바로 그 작가다. 젊은 작가들도 학창 시절부터 리서치 방식과 크리틱, 글쓰기, 기획안 작성, 발표, 토론 등을 훈련해왔기에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데 대부분 능숙한 편이다.
작가를 만나기에 앞서 충분한 조사를 하거나 질문할 내용을 메모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과거 기자로서 인터뷰할 때는 물론, 지금도 작가론을 쓰거나 도록 및 영상 제작 과정에서 작가와의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기에 질문과 진행 준비에 심혈을 기울인다.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는 단계에 이르는 경험은 작가를 중심에 두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반대로 우연히 작가를 만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대화하고 후회한 적도 있다. 물론 열심히 준비했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지나친 부담은 내려놓자.
특정 작가와 그의 작업에 관심이 있고, 궁금한 점이 있다면, 작가와의 대화에서 국적이나 세대, 언어, 성별 같은 정체성은 장벽이 되지 않는다. 충분한 관심에서 비롯한 궁금증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작가와 소통할 방법을 찾아보자. 멀리 떨어진 작가와 온라인으로 소통할 수도 있다. 작업의 주제뿐 아니라 작가의 관심 분야와 이슈, 취향도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초면인 작가에게 작품 가격을 직접 묻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으니 전시 출품작의 구매 정보는 전시 공간에 문의하자. 미술관 전시의 경우에는 소속 갤러리의 연락처를 알려줄 것이다. 소속 갤러리가 없는 경우에는 작가에게 문의하면 된다.
작품 구매를 결정하는 단계가 되었다면, 작가와 대화를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왜 이 작품이 좋은지, 구매를 결정한 이유와 작품을 두고 볼 장소, 이를 공유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작품 구매 의향을 밝힌 컬렉터와 작가가 나누는 대화는 생각보다 훨씬 친밀하고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말 걸기를 주저하는 당신에게
작가가 전시에 작품을 걸고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혼자 작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을 공개하고 관람객의 반응과 질문에 스스로 문을 연 상태라는 의미다. 작가에게 작품에 대해 묻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무례한 질문이 아니고, 선을 지킨다면 그걸 거부할 작가는 거의 없다. 물론 방어적으로 반응하거나 답을 거부하는 작가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태도 문제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작품이 아닌 말로 표현하는 데 매우 서툰 경우도 꽤 많다. 그럴 때는 우리에게 질문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작가에게도 답을 거부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작가론이나 전시 관련 글을 미리 숙지하지 못했다면 일단 천천히 작품을 살펴보자. 작품 한 점에는 그 작가의 생애와 우주가 깃들어 있다. 작품을 완성해 공개하기까지 작가의 인생이 담긴 결과물이므로 그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작품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떠오르는 질문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작품에 대한 진심 어린 질문 하나가 작가에게는 새로운 영감이 되고, 당신에게는 더 깊고 풍부한 예술로 향하는 문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글 이경민(미팅룸 미술시장연구팀 디렉터)
에디터 정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