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아름다움
지난 4월 경주에 문을 연 오아르미술관. 역사를 품은 도시에 단비와도 같은 현대미술 공간이라니! 그 계획을 세우고 끝내 결실을 맺은 김문호 관장, 아름다운 건축으로 그 꿈을 실현해준 유현준 건축가가 예술과 건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주는 무척 독특한 도시다. 신라 천년 고도로 다른 어떤 곳보다도 고대 유적지와 유물을 풍부하게 간직한 도시다.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제법 도전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경주예술의전당, 솔거미술관 등이 있고, 경주 봉황대뮤직스퀘어 등 실험적인 퍼포먼스나 사운드 아트 등을 전개하며 유휴 문화재를 활용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보려고 시도했음에도 현재나 미래보다는 언제나 ‘과거’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 터전을 잡고 ‘현대미술’의 요람을 만들려는 이가 있다는 소식은 미술계에서 꽤 큰 이슈였다. 그 주인공이 바로 김문호 관장. 600여 점의 소장품을 기반으로 많은 이가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지닌 그는 유현준 건축가와 함께 마침내 과거와 현재, 미래가 조우하는 공간을 완성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먼저 김문호 관장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많습니다. 미술 컬렉션을 2005년부터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컬렉션에 입문하셨는지, 또 어떤 작품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문호 처음에는 도자기에 관심이 있었어요. 특히 조선시대 도자기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그러다 일본 작가 로카쿠 아야코(Ayako Rokkaku)의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큰 매력을 느꼈어요.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같았지만, 그 순수함에 끌렸어요. 보면 볼수록 더 좋아졌죠. ‘현대미술이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번에 이해하고 사랑에 빠지기보다는 볼수록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알아갈수록 빠져들게 되죠. 그렇게 한 점 한 점 모으다 보니 어느새 600여 점까지 늘어나게 됐네요. 세계적인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경주에 미술관을 짓겠다고 결심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문호 컬렉팅을 시작하고 한 10년쯤 지나고 나서 미술관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걸 같이 보고 싶었거든요. 제 고향이 경주예요. 그리고 영화를 공부했어요.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솔직히 예술을 접할 기회가 수도권에 있는 이들보단 많지 않잖아요. 경주에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문화시설이 많지만, 현대미술에 대한 접근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후배들을 위해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유현준 건축가님과는 어떻게 손을 잡게 되셨나요? 처음부터 두 분의 호흡이 잘 맞았는지도 궁금해요.
김문호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젊은 미술관’을 만드는 거였어요. 그래서 젊은 감각과 실력을 갖춘 분을 찾았죠. 하지만 그 지점이 좀 어려웠어요. 젊은 감각을 유지하면서 연륜이 있어야 저희 같은 아마추어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래 찾은 끝에 유현준 건축가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 4년 전쯤 연락했나요?
유현준 맞습니다. 4년 전쯤 개인 미술관을 하나 짓고 싶다며 사무실에 찾아오신 것으로 기억해요. 거제도에 우리 건축사사무소에서 만든 ‘머그학동’이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을 언급하며 미니멀하면서 주변 환경을 잘 반영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관장님의 소장품을 살펴봤는데, 정말 놀랐어요. 이런 귀중한 작품이 공간과 환경, 또 도시와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아르미술관의 환경적 맥락은 독특합니다. 신라 고분을 마주 보고 있어요. 이러한 역사적 · 환경적 요소를 살려 아우르는 일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유현준 말씀하신 것처럼 오아르미술관은 정말 특별한 배경을 갖고 있어요. 원래 이곳은 모텔이었는데, 그때는 여기서 이런 뷰가 나올지 상상만 할 수 있었죠. 우리는 흔히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사실 저는 신라 왕릉이 그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왕릉을 자연의 일부로 만들었으니까요. 피라미드는 누가 봐도 ‘건축물’, 즉 인공적인 면모가 강하지만 능은 굉장히 자연스럽죠. 저는 오아르미술관의 이런 배경이 가진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의 조건이거든요. 그러면서 동시에 그 에너지가, 능을 보는 경험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죠.
그런 생각이 김문호 관장님의 의견과도 맞아떨어졌나요?
김문호 사실 저는 하고 싶은 게 더 많았어요. 저는 아마추어라고 했잖습니까. 제 꿈을 펼칠 자리이니 당연히 욕심이 있었죠. 하지만 유현준 건축가님이 좋은 길로 안내해주셨어요. 말씀을 듣고 보니 이 능이 새삼 귀중한 ‘작품’처럼 보였죠. 이번에 함께하면서 실력 있는 건축가란 좋은 디자인, 멋진 건축물을 보여주는 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잘 설득할 수 있는 건축가가 진정한 능력자 아닐까요.
오아르미술관의 건축 특징에 관해 좀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유현준 미술관은 예술 작품을 만나러 오는 곳입니다. 네모난 공간에서 시작한다고 하면 능을 보기 위해 한쪽을 완전히 투명하게 만들기로 과감히 결정했어요. 나머지 3면을 기본으로 그림을 더 걸기 위해 중간에 벽을 세울 수 있도록 유동적인 공간을 만들었죠. 관람객 입장에서는 우선, 능이 있는 풍경을 등지고 예술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완전히 그림에 몰두할 수 있게 되죠. 그러다가 왼쪽과 오른쪽으로 돌면 시야에 능이 그림과 함께 잡힙니다. 미술관 큐레이터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전시를 구상하면 더욱 풍부한 작품 감상의 경험을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건축가가 고민한 ‘감상의 경험’이 실제로 공간에서 이뤄지는 것을 보고 계시잖아요.
김문호 유일무이한 경험이 아닐까요? 시야에 살짝 걸리는 것이 아니라 탁 트인 통창을 통해 작품과 능을 함께 감상하는 방식은 지금껏 우리나라에 없었어요. 처음부터 젊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실제로 4월 8일 개관 이후 많은 젊은이가 찾아와 새로운 경험을 하고 갑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연령대가 높은 관람객도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에요. 전시장에서 차분히 작품을 감상하고 가시는 걸 보면 경주에 이런 공간이 꼭 필요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새삼 뿌듯함을 느낍니다.
오아르미술관이 지향하는 전시 기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개관전은 에가미 에쓰와 문경원 & 전준호, 이사라 작가의 전시로 꾸리셨죠. 팝아트, 스트리트 아트, 영상, 회화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듯합니다.
김문호 오아르미술관은 ‘오늘 만나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을 품고 있어요. 예술은 늘 다가가기 어려운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잖아요. 예술은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죠. 또 현대적인 것도 있고, 고전적인 것도 있듯이 다양한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수집하며 체감할 수 있었어요. 제가 미술을 접하며 느낀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어서 만든 곳이에요.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자 합니다. 컬렉션을 기반으로 만들었지만, 연간 기획 전시를 3~4회 정도 계획 중이고, 이에 맞춰 층별로 유현준 건축가와 공간에 대해 함께 고민했어요.
유현준프로그램은 무척 중요하니까요. 1층은 컬렉션 위주로 전시하는 퍼블릭 오픈 공간으로 조성했습니다. 카페도 만들어 운영하며 좀 더 많은 사람이 능과 예술, 커피를 즐길 수 있게 했죠. 2층부터는 유료 전시를 선보입니다. 따라서 2층과 3층은 사립 미술관 운영을 고려한, 어느 정도 프라이빗하고 조용한 공간이죠. 건축은 한번 지으면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하지만 내부 공간은 운영 프로그램에 맞춰 유연성을 갖춰야 하죠. 이런 것을 모두 고려해 공간을 완성했습니다.
경주 지역과의 연결성을 고려한 전시나 프로그램도 계획하셨나요?
김문호 저는 미술관이 단순히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남길 바라지 않아요. 일종의 플랫폼이 되어 지역에서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발판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그런 게 없었거든요. 주변에 예술을 하는 사람도 없었고요. 하지만 돌아보니 경주에서 작업하는 이들도 많더라고요. 그들이 좌절하지 않고 그 꿈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미술과 맞닿지 않은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오아르미술관이 어떻게 이 자리를 지키고 또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시나요?
유현준 건축가로서 미술관이 오래도록 유연함을 유지하며 그 에너지를 지켜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대체로 당면한 문제, 해결해야 할 것을 풀어냈을 때 나온 형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오아르미술관은 바로 앞에 자리한 능이 저에게 주어진 문제였는데, 이를 최대한 잘 반영하기 위해 애썼죠. 앞으로 미술관을 방문하는 이들도 이곳에서 그 모든 아름다움의 총체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김문호 우리는 이제 막 시작한 미술관입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점차 보완하며 성장해나갈 겁니다. 작품은 계속 보다 보면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원래 도자기를 사랑했지만, 현대미술까지 저변을 넓힐 수도 있죠. 저처럼 많은 이들이 경주의 미술관에서 현대미술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오아르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