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Lover’s Summer Destinations
예술을 사랑하는 여행자에게 여름은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계절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만나는 다채로운 예술의 순간. 자연과 건축, 경험과 사유가 교차하는 예술 공간 여섯 곳을 소개한다.
포고아일랜드 인, 캐나다 포고아일랜드
포고아일랜드(Fogo Island)는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주 외곽에 자리한 조용한 섬이다. 주변 어장의 어획량이 급감하며 활력을 잃어가던 이곳에 세계적 IT 기업 경영진으로 일하던 지타 코브(Zita Cobb)가 고향의 자연과 공동체를 되살리기 위해 돌아와 숙박 시설 포고아일랜드 인(Fogo Island Inn)의 문을 연 것이 지난 2013년. 포고아일랜드 인은 숙소의 개념을 넘어 섬의 정체성과 지역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삶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객실 내부의 모든 가구와 집기가 지역 주민의 손끝에서 탄생했고, 그 과정에서 포고아일랜드의 전통 공예와 현대적 디자인이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수익의 절반 이상이 지역공동체 주민에게 환원되는 포고아일랜드 인은 미쉐린 가이드가 2024년부터 새롭게 진행하는 호텔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미쉐린 3키(key)를 받은 전 세계 24개 숙박업소 중 하나다.
지타 코브의 이상이 구현된 또 하나의 공간이 포고아일랜드 인 내부에 자리한 갤러리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초청한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포고아일랜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한 결과물을 전시하는 공간. 올해 5월 10일부터 10월 31일까지는 미국 미디어 아티스트 샤론 록하트(Sharon Lockhart)의 영상 설치 신작 ‘Windward’를 전시한다. 2022년부터 이 섬에 거주하며 지역공동체와 깊이 교류해온 작가는 영상 작업을 통해 지리적으로 고립된 포고아일랜드의 독특한 환경이 공동체의 정체성과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포고아일랜드에서 예술은 관광객을 위한 특별한 것이 아니라 섬 생활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빌라 카르미냐크 외관. 실내에는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한다. © Fondation Carmignac. Photo by Luc Boegly.
빌라 카르미냐크, 프랑스 일드포르크롤
프랑스 남부 지중해, 뤼베롱 국립공원 남단의 일드포르크롤(Île de Porquerolles)은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와 울창한 솔숲이 조화를 이룬 작은 섬이다. 근해와 섬 전체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차량 통행이 제한되고 광고판도 없는 이곳에 마치 풍경의 일부처럼 빌라 카르미냐크(Villa Carmignac)가 자리한다. 지난 2018년 개관한 빌라 카르미냐크는 현대미술과 자연환경을 아우른 전시 공간으로, 약 15헥타르에 달하는 야외 조각 공원과 2000m² 규모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 전시장에는 반드시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한다. 맨발로 느끼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은 섬의 자연환경과 전시된 작품을 보다 섬세하게 느끼도록 돕는 장치다.
올여름 빌라 카르미냐크에선 마티유 푸아리에(Matthieu Poirier)가 큐레이팅한 전시 〈Vertigo〉가 11월 2일까지 열린다. 올라푸르 엘리아손과 제임스 터렐, 안 베로니카 얀선스,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세계적인 동시대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물과 빛, 공간과 중력 등 다양한 자연현상을 추상적으로 탐구한 작품을 선보인다. 제목처럼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관람객의 시각적 혼란과 현기증을 유발하며, 자신이 보고 있는 풍경과 현실에 대한 지각을 재구성하도록 돕는다. 전시장 밖 조각 공원은 ‘살아 있는 정원’이라는 개념 아래 포도밭과 숲이 있던 지형의 흐름을 최대한 보존하며 마치 나무를 심듯 작품을 배치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나무와 언덕 위, 암석 사이 무심한 듯 자연스레 배치한 작품들이 예술과 자연의 경계를 흐리며 계절과 햇빛, 그림자의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뇨칭 인스티튜트 내, 브라질 아티스트 아드리아나 바레장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아 아드리아나 바레장. Photo by William Gomes.
이뇨칭 인스티튜트, 브라질 브루마지뉴
브라질 남동부 미나스제라이스주의 작은 마을 브루마지뉴(Brumadinho)에 위치한 이뇨칭 인스티튜트(Inhotim Institute)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야외 미술 공간 겸 식물원으로, 약 140헥타르의 거대한 면적에 펼쳐진 조각 공원이다. 현대미술과 조경, 생태학, 교육이 긴밀하게 연결된 이곳을 산책하듯 거닐며 자연과 예술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브라질의 겨울에 해당하는 6월부터 8월 사이는 이뇨칭을 방문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기온은 평균 20℃ 안팎으로 쾌적하며 강수량이 적어 산책과 작품 관람에 최적이다. 울창한 열대림과 세하두 커피나무가 공존하는 고지대 생태계에서 예술 작품은 자연스럽게 환경과 어우러진다. 430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는 숲과 연못 사이에 배치한 리처드 세라, 아드리아나 바레장, 쿠사마 야요이 등의 대형 설치 작품은 각별한 감흥을 선사할 것이다.
이뇨칭 인스티튜트의 대표 전시 공간 중 하나인 클라우지아 안두자르 갤러리에선 4월 25일부터 기획전 〈Maxita Yano〉가 열린다. 브라질 원주민 야노마미 공동체와 50여 년간 함께하며 원주민 공동체의 역사를 기록해온 스위스 출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클라우지아 안두자르(Claudia Andujar)의 작품과 더불어 원주민 예술가 20여 명의 설치와 사진, 영상 작품을 ‘공동체, 생존, 기억’이라는 주제로 선보이는 전시. 원주민의 삶과 자연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예술적으로 풀어낸 이 전시는 예술이 공동체의 목소리가 되고 생태적 연대를 이루는 과정 자체를 보여준다. ‘예술은 그 자체로 생태계의 일부’라는 전시 주제처럼 이뇨칭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성장하고 지속되는 ‘토양’이 되는 장소다.
하우저 앤 워스 메노르카, 스페인 메노르카
발레아레스제도에 속한 메노르카(Menorca)는 스페인의 대표 휴양지 마요르카나 이비사에 비해 조용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 깃든 섬이다. 메노르카 동쪽 마온 항구 근처에 자리한 이슬라델레이(Isla del Rey)는 과거 해군 병원이 있던 작은 섬으로,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가 2021년 글로벌 메가 갤러리 하우저 앤 워스에 의해 현대미술과 자연, 지역 문화가 어우러진 복합 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온 항구에서 여객선을 타고 짧은 뱃길을 지나 도착한 이슬라델레이는 소박한 자연과 절제된 미술 공간이 어우러져 지중해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우저 앤 워스 메노르카(Hauser & Wirth Menorca)는 과거 병원 건물의 원형 구조를 최대한 보존한 채 건축가 루이스 라플라스(Luis Laplace)에 의해 빛과 돌, 시간의 흔적을 담은 건축물로 재해석되었다. 지중해의 햇살을 고스란히 품은 전시 공간은 벽돌과 석재, 곡선 구조를 통해 섬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전한다. 갤러리 주변에 자리한 조각 작품과 텃밭, 레스토랑과 서점, 수변 정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마치 작은 마을을 거닐듯 자연스레 예술을 만날 수 있다.
2025년 여름, 하우저 앤 워스 메노르카에서는 거장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개인전 〈The Women〉이 열린다. 1970년대부터 여성성과 정체성, 이미지의 사회적 소비에 대해 꾸준히 탐구해온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 시리즈까지 아울러 고유한 시각언어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 과거 군 시설이던 공간과 여성의 시선이 충돌하며 독특한 긴장감을 형성하고, 정적인 풍경과 강렬한 이미지가 교차하는 전시는 이슬라델레이 특유의 고요한 리듬과 함께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티펫 라이즈 아트 센터, 미국 몬태나
미국 몬태나주, 베어투스산맥의 장대한 풍경 아래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계곡 사이에 자리한 티펫 라이즈 아트 센터(Tippet Rise Art Center)는 약 5000헥타르 규모의 목장과 초원을 중심으로 조성한 야외 공연장이자 조각 공원이다. 티펫 라이즈 아트 센터를 방문한 사람들은 20km 넘게 이어지는 투어 코스를 하이킹과 자전거 트레일, 밴 등을 통해 자유롭게 탐험하며 예술과 마주할 수 있다. 알렉산더 콜더와 마크 디 수베로 등 현대 조각 거장의 대형 설치 작품이 초원의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이곳에 올여름 폴란드계 미국 작가 우르줄라 폰 뤼딩스파르트의 신작 ‘Bronze Bowl with Lace’가 새롭게 설치되어 관람객을 맞이한다. 삼나무 조각을 기반으로 청동으로 주조한 6m 높이의 작품은 중력을 거스르는 형태와 레이스 표면의 조화로 대지에 서정적 긴장감을 드리운다.
티펫 라이즈 아트 센터의 또 다른 매력은 매년 여름, 8월 중순부터 약 5주간 주말마다 펼치는 음악 공연 시즌이다. 목장 한가운데에 들어선 아름다운 목조 공연장 올리비에 뮤직 반(Olivier Music Barn)을 비롯해 자연의 소리와 울림을 고려해 지은 야외 구조물 도모(The Domo)와 지오드(The Geode) 등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주자들이 다양한 실내악 공연을 선보인다. 올해의 하이라이트는 작곡가 존 루서 애덤스(John Luther Adams)의 신작 초연 무대. 바람과 온도, 지형의 굴곡에 따라 악보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는 인간과 자연의 소통을 탐구하며, ‘풍경을 듣는’ 전례 없는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할 것이다.
푼타 델라 도가나, 이탈리아 베니스
이탈리아 북부 수상 도시 베니스는 매년 여름 예술과 건축, 역사가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의 장이 된다. 인파로 붐비는 산마르코 광장과 리알토 다리를 피해 보다 내밀하게 도시와 예술을 즐기고 싶다면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를 추천한다. 푼타 델라 도가나는 베네치아 대운하와 주데카 운하가 만나는 삼각형의 꼭짓점에 자리한다. 17세기부터 세관 창고로 쓰인 유서 깊은 건물이 2009년 피노 컬렉션(Pinault Collection)이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의뢰한 레노베이션에 의해 과거의 석벽과 현대적 콘크리트, 어둠과 빛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미술관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곳에선 주변의 운하에 반사된 빛이 창문을 통해 전시 공간으로 스며들어 시간의 흐름과 빛의 움직임이 전시의 성격과 맞물려 다채롭게 변주된다. 오래된 석벽과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그 위에 설치한 현대미술 작품은 도시의 오랜 역사를 배경으로 새로운 대화를 이끌어낸다. 올여름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열리는 전시는 독일 조각가 토마스 쉬테(Thomas Schütte)의 대규모 회고전 〈Genealogies〉다. 1970년대부터 활동한 작가는 인간을 본뜬 조형과 건축적 구조, 드로잉과 설치를 오가며 정체성과 권력, 실존적 불안 등의 주제를 탐색해왔다. 11월 2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는 고전적 조각의 형식을 빌려 구성한 풍자적이면서 연극적인 인물상을 위주로 물성과 조형, 시선과 구조가 맞물리는 작가 특유의 복합적 서사를 선보인다. 단순한 시각예술 감상이 아니라, 공간과 시대적 맥락을 함께 사유하는 공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정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