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의 여름 풍경
햇살이 깊어지는 계절, 분재가 전하는 고요한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 서촌의 분재 숍 ‘오이타’를 찾았다.

분재 숍 ‘오이타’ 한쪽에 놓인 동남천.
무더운 계절이 시작되면 푸른 숲이나 시원한 그늘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바삐 살아가는 이에게 자연은 점점 멀어지는 풍경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그런 일상에서 단 한 뼘의 자연을 곁에 들이는 방법으로 분재가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단정한 화분 위에 조용히 뿌리내린 작은 나무. 분재는 식물이자 조형물이며, 무엇보다 시간을 함께하는 존재다. 서촌의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분재 숍 ‘오이타(Oita)’는 이러한 소중한 가치를 전하는 공간이다. 다양한 품종을 다루는 최문정 대표는 분재를 ‘함께 걸어가는 식물’이라 표현한다. 낮은 화분의 얕은 흙 속에서 천천히, 밀도 있게 자라는 나무와 풀. 그 안에는 계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분재를 돌보는 일은 곧 계절과 절기, 시간을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여름은 분재가 가장 활발히 자라는 성장의 계절이다. 햇볕과 수분, 영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지만 동시에 소모가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식물 역시 과한 자극에 쉽게 지치므로 햇빛과 바람, 물과 그늘의 균형을 세심하게 조율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특히 꽃을 피우는 분재는 이 시기에 이미 내년을 위한 꽃눈을 준비하는 만큼 무조건 강한 햇빛을 피하기보다는 적절한 자극과 회복이 오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여름에는 분재의 컨디션을 자주 살피며 그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는 섬세한 태도가 필요하다. 초보자라면 비교적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는 분재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 대표는 여름에 키우기 좋은 분재 세 가지를 추천했다. 첫째는 ‘고려담쟁이’. 덩굴성 식물로 습도와 더위, 병해에 강한 편이다. 넓고 풍성하게 자라는 잎은 시각적으로 싱그러운 인상을 주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은 여름철의 활력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둘째는 ‘꼭지윤노리’. 곧게 뻗은 수형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기운은 무더운 날에도 묘한 위안을 준다. 초여름에는 단정한 흰 꽃이 피고 늦여름엔 붉은 열매가 맺혀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관리하기 쉬워 분재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도 부담이 적은 수종이다. 마지막으로, 소나뭇과에 속하는 ‘해송’. 사철 푸른 잎을 유지하지만, 여름에 그 진가가 드러난다. 강한 햇빛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수형과 기세는 공간 전체에 안정감을 부여하며, 곁에 둘수록 오랜 시간 깊은 존재감을 선사한다.
이처럼 공원이나 숲에 가지 않아도 분재 하나면 계절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 창가, 책상 위, 현관 앞 그늘진 자리처럼 익숙한 공간에 놓인 초록빛 한 그루는 묵묵히 시간의 결을 품고 자란다. 요즘은 정형화된 분재보다 각자 감각과 해석이 담긴 자유로운 형태의 분재를 키우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나무의 흐름을 존중하며 기르는 이에겐 수형보다는 그 곁에 머무는 시간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최 대표는 분재를 돌보는 일은 단지 식물을 가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매일 물을 주고 햇살의 방향을 살피며, 잎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는 순간이 쌓이면서 하나의 루틴이 돼요.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 나만의 속도를 회복하며 여유를 찾을 수 있죠.” 결국 분재를 곁에 둔다는 것은 그 식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사계절 변화에 눈 맞추고 느긋한 감각을 회복하는 일, 그 안에서 비로소 작지만 깊은 자연과 연결된 삶을 발견하게 된다.
분주한 여름날, 단정한 가지 하나가 머무는 공간에서 잠시 멈춰보자. 바람을 닮은 잎사귀의 떨림과 고요한 자연의 숨결이 하루를 조금 더 부드럽게 감싸줄 것이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여름철 키우기 좋은 덩굴식물, 담쟁이.
죽엽석곡 사이에 피어난 노란 꽃.
야생화를 담은 이끼볼.
곧게 뻗은 속새와 선명한 잎이 인상적인 수호초.
에디터 조인정(ijcho@noblesse.com)
사진 김잔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