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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뒤 샬라르의 비밀스러운 공간

CULTURE

보드프로방스. 이름만으로도 햇살에 그을린 석회암 절벽과 올리브 숲, 라벤더 향이 떠오르는 이 고요한 언덕에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17세기 석조 주택이 있다. 갤러리스트 아멜리 뒤 샬라르의 별장이자 레지던스로 기능하는 이곳은 예술과 삶, 고요와 창작이 만나는 드문 공간이다.

위쪽 올리브나무를 심은 정원과 17세기 석조 주택.
아래왼쪽 현관문은 17세기에 만든 그대로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아래오른쪽 작가들이 제작한 세라믹 접시와 화병,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커틀러리를 주로 사용한다. 

파리 생제르맹데프레 지역에서 미술 애호가들의 필수 방문지로 꼽히는, 본인 이름의 갤러리를 운영하는 아멜리 뒤 샬라르(Amelie du Chalard)는 최근 남프랑스의 대자연 속에서 또 하나의 예술적 실험을 펼치고 있다. 과거 올리브 농장에 있던 돌집을 개조한 그녀의 별장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닌, 1년에 두 번 현대미술 작가들을 위한 창작 공간으로 변모한다. “이곳에서는 프로방스 특유의 고요함과 빛을 느낄 수 있어요. 지역 특유의 정서가 작가들에게 창작 영감을 불어넣을 거라고 생각했죠.”
별장은 수 세기 전 농가 건축을 토대로 지역 전통 석재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절제된 현대적 요소를 더해 완성됐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개입 없이 아멜리가 스스로 결정해 외형은 거의 건드리지 않는 레노베이션을 진행했는데, 전체적으로 미니멀하면서 물성과 텍스처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노출된 돌벽, 거친 석재 바닥, 손으로 마감된 석회 벽은 집 전체에 시간의 층위를 더한다. 이런 텍스처 덕분에 공간에서 인위적이지 않은 깊이가 배어나고, 실내는 외부의 자연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내부를 채운 가구와 소품은 리넨, 세라믹, 옻칠한 나무 등 재료의 질감을 극대화한 것으로, 갤러리 오너다운 미감으로 큐레이션한 아트 피스와 조화를 이룬다. 작품은 대부분 그녀가 파리와 뉴욕 갤러리에서 소개한 작가의 작품으로 오브제 하나, 조명 하나도 고요함과 편안함을 유지하는 무드를 고려해 선택했다. 몇백 년 전부터 자리를 지킨 거친 돌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벽난로가 놓인 거실, 공간과의 관계를 고려해 각 방에 비치한 작품, 그리고 창을 통해 만나는 대지의 기운까지 집의 역사, 예술 작품, 자연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구성이 인상적이다.

정원 앞 테라스에서 포즈를 취한 아멜리 뒤 샬라르.

아멜리는 매년 두 차례, 이 별장에 작가들을 초대해 일명 ‘비공식 레지던시’를 연다. 초대받은 작가들은 최소 2주에서 최대 2개월간 이곳에 머무르며 작업이나 구상 등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다. 레지던시 기간 아멜리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경청하며, 때로는 프로방스라는 지역과 장소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설치·조각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단지 머무는 공간을 넘어 큐레이터와 작가가 함께 ‘살아보는’ 실험의 장인 셈이다. 최근에는 한국계 미국 작가 유나 허(Yoona Hur)가 한 달간 거주하며 회화 작업을 진행한 뒤 그 결과물을 파리 갤러리에 소개하기도 했다.
아멜리 뒤 샬라르 갤러리는 전통적 화이트 큐브가 아닌 거실과 주방이 있는 아파트식 갤러리로, 예술 작품을 실제 생활 공간에 배치해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안한다. ‘작품은 벽에 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공기와 시간 속에 있어야 한다’는 아멜리의 철학은 파리를 시작으로 2024년 뉴욕 소호에까지 확장됐다. 파리의 감성을 뉴욕에 옮겨 파리지앵 특유의 미감과 유럽의 젊은 예술가들을 소개하며 미국적 도시 리듬 사이에서 새로운 접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뉴욕 지점 역시 파리와 마찬가지로 디자인과 예술, 인테리어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전면에 내세우며 컬렉터들이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하나의 미학적 경험을 통해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방문객은 벨을 누르고 들어와 응접실처럼 꾸민 공간을 거쳐 전시장으로 들어서는데, 이는 아멜리가 별장에서 작가들과 공유하는 사적이고 깊이 있는 관계를 도시 한복판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기인한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우리에겐 꼭 가야 할 목적지였어요. 개인적 취향이 확고한 파리와 달리 미국 컬렉터들은 종종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아트 어드바이저와 함께 방문하고 매우 적극적으로 예술을 소비하죠. 마치 옷을 사듯 작품을 구매해요. 처음에는 미국 시장의 스타일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 역시 우리가 해온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파리 콘셉트 그대로 뉴욕 갤러리 운영을 시작했고,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에요. 이런 콘셉트의 갤러리는 우리가 거의 유일하거든요.”

위쪽 앤티크 가구와 클레망스 벨루아의 세라믹 벽등, 벽난로 위에는 장-피에르 슈네데르의 유화 두 점을 매치했다.
아래왼쪽 기하학적 형태가 인상적인 소파는 아멜리의 갤러리에서 전시한 적이 있다. 벽에 걸린 콜라주 작품은 나딘 드 가람.
아래오른쪽 과거 마구간이었던 공간을 다이닝 룸으로 사용 중이다. 

아멜리는 최근 아트 월드의 흐름이 전반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이런 시도가 진지하지 않은 일탈 정도로 치부됐지만, 요즘은 대형 갤러리조차 공간과 관람 방식을 바꾸고 있어요. 하우저 앤 워스 같은 갤러리도 레스토랑과 호텔을 함께 운영하며 새로운 문법을 실험하는 것처럼요.” 미술 시장에서 성공한 갤러리스트지만 이런 아멜리의 철학은 다분히 반시장적이고 반기능적이다. 판매나 전시를 넘어 그저 조용히 함께 숨 쉬고 존재하는 방식으로 머무는 예술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예술을 삶에 덧붙이는 장식이 아닌, 삶 그 자체를 조율하는 리듬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무엇을 사고, 놓고, 살아가는가?’라는 질문 안에 이미 예술이 있죠. 더 이상 벽에 걸린 작품만이 아닌 우리가 밟는 바닥과 앉는 소파, 마시는 와인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어요.” 보드프로방스의 오래된 석조 집은 바로 그런 예술의 시간을 수집하는 장소로 작용한다. 아멜리는 이 별장을 통해 예술은 조용해야 하며, 오래된 것을 고요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만이 진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녀의 갤러리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면, 이곳 프로방스의 집은 예술가들을 향해 조용히 문을 연다. 그리고 그 안에서 태어나는 것은 작품이 되어 파리와 뉴욕의 갤러리에서 차분하고 우아한 또 하나의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한다.

원색을 강조한 추상화는 클라우디아 발셀스 작품, 세라믹 벽등과 항아리, 나무 의자는 모두 앤티크 제품.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사진 임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