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소리의 문을 열고

CULTURE

젊은 국악인의 행보를 조명하는 트래디션 시리즈. 그 세 번째 주인공은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판소리의 오늘을 만들어가는 소리꾼 이봉근이다.

국악계 크로스오버 1세대 개척자, 영화 <소리꾼> 주연배우, 대중가요와 판소리를 결합한 실험가, 그리고 사라진 ‘성웅 충무공 이순신가’를 복원한 창작자. 소리꾼 이봉근에게는 그야말로 여러 수식이 뒤따른다. 전통 장르의 틀을 지키되, 경계를 넘고 시대와 호흡하며 판소리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려는 노력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 이유다. 그가 대중적으로 주목받은 계기는 방송 무대였다.
KBS2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 MBN <로또싱어> 등에서 BTS의 ‘봄날’, 이하이의 ‘Rose’, 서태지의 ‘하여가’ 같은 익숙한 곡을 판소리와 엮어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했다. ‘판소리의 본질은 정서’라는 신념으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노래에 담긴 감정과 판소리 고유의 서사가 충분히 어우러질 수 있다는 생각에 감행한 시도였다. 대표적 사례는 <로또싱어>에서 선보인 ‘봄날+심청가’ 무대다. “심봉사가 심청이를 그리워하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서로 다른 곡이지만, 감정선은 같았죠. 위로를 전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제가 위로받았어요.”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계기는 영화 <소리꾼>(2020)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가로서 태도에 근본적 전환을 겪었다고 말한다. “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중심에 뒀다면, 영화는 함께 호흡하며 조율하는 예술이더라고요. 타인의 호흡을 수용하는 법을 배운 거죠.” 영화 속 ‘소리꾼’이라는 인물은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존재였고, 그는 그 안에서 국악인으로서 정체성과 마주했다.
장르를 횡단하는 실험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다. 2000년대 초부터 이어온 ‘시나위 앙상블’ 활동은 그중에서도 가장 대담한 시도였다. 북과 소리만으로 구성된 전통 판소리 형식에 비해 앙상블은 다중 악기, 뮤지션과의 호흡을 전제로 한다. “어릴 때부터 클래식 앙상블이나 밴드의 합주가 부러웠어요. 북 치는 고수 외에도 다양한 악기와 소리로 대화하고 싶었죠.” 그 욕구는 구음과 스캣을 통해 연주자와의 즉흥성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 실험은 초기에 “전통을 벗어난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지금은 당시 회의적이던 이마저 “네 무대가 재밌다”고 평가해준다고 그는 덧붙였다. 나아가 무대 경험 역시 한층 폭을 넓혔다. 창작 뮤지컬 <이상과 슈만>에 출연해 전통 창법을 극음악에 조율하는 경험을 했고, 2025년 상반기 정동극장에서 열린 판소리 콘서트 <광대>에서는 오직 소리와 이야기만으로 무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확장의 반복 속에서 이봉근은 점차 판소리의 뿌리와 전통을 되짚어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은 결국 하나였어요. 전통 방식으로 그 본질에 다시 닿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유실된 판소리 ‘성웅 충무공 이순신가’의 복원이다. 가족과 여수 여행을 하던 중 거북선을 본 것이 계기였고, “왜 이순신 판소리는 없을까?”라는 단순한 물음은 전통을 지키고 계승해야 한다는 소리꾼으로서 책임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료가 대거 훼손된 탓에 그는 유일하게 남아 있던 고(故) 박동진 명창의 3시간 분량 음원을 반복 청취하며 6개월간 사설을 꾸준히 받아 적었다. 그렇게 복원의 기틀을 마련한 ‘성웅 충무공 이순신가’는 마침내 지난해 충남 아산에서 열린 이순신축제에서 일부가 공개됐다. 이봉근은 “콘텐츠 제작이라기보다 내가 왜 소리를 시작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 의식 같은 시간이었어요”라고 덧붙였다.
전통의 동시대성과 역사성을 고민하는 소리꾼이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젊은 시절 만난 스승의 영향이 컸다. 김일구·안숙선·전인삼·정회석 명창까지 여러 스승을 사사하며 소리꾼의 기틀을 닦아온 그지만, 특히 고 성창순 명창의 가르침은 지금도 그에게 지침이 되고 있다. “선생님은 ‘소리는 천장을 뚫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절제와 여백이 있어야 진짜 소리가 된다는 뜻이었죠.” 그는 소리꾼으로서 기교나 겉치레보다 마음가짐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고, 지금도 소리를 이어가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다만, 한때 소리를 내려놓을 위기를 겪기도 했다. 공연 기회가 줄고 생계가 막막하던 20대 중반, 그는 컴퓨터 학원에 다니며 진로를 모색했다. 그 무렵 양로원 봉사 공연 제안이 들어왔고 고민을 거듭하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 달간 준비 끝에 열 명 남짓한 관객이 자리한 무대에 올랐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울었어요. 나는 결국 소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죠.” 혹자에게는 보잘것없는 무대일지 몰라도 그에겐 다시 소리를 시작할 수 있게 해준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2020년 KBS 국악대상 대상 등 국악인으로서 영광을 거머쥘 수 있었던 건 그 당시를 거쳐왔기에 가능했다.
만능 소리꾼이라는 별칭이 무색할 만큼 활동 범주를 확장한 그는 또 다른 여정을 준비 중이다. 시티팝과 모던 록을 베이스로 한 밴드를 구성하는 동시에 확장현실(XR) 기술을 활용한 공연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으며, 판소리 완창을 향한 장기 프로젝트를 위한 첫 삽도 떴다. 갈래는 달라도 그는 말한다. “결국 하나로 가는 길일 뿐입니다. 마지막 목표는 제대로 된 소리를 남기는 것입니다. 북 하나 놓고 돗자리 깔고 소리하는 사람, 그게 제 마지막 모습이었으면 해요.” 수많은 모습으로, 수많은 방법으로 켜켜이 쌓아 올린 이봉근의 소리는 그를 더 유연하게, 동시에 더 깊게 만든다. 그는 오늘도 새로운 경계를 넘지만, 그 발끝은 언제나 단단한 판소리라는 대지 위에 서 있다.

 

에디터 이호준(hojun@noblesse.com)
사진 박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