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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교향곡

CULTURE

3년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최전선에서 악단을 이끌어온 예술 감독 다비트 라일란트가 9월 5일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공연을 끝으로 그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통해 되짚어본 음악인으로서 발자취, 그리고 한국 음악계의 가능성에 대하여.

벨기에 출신 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David Reiland)는 유럽과 아시아 무대를 넘나들며 고유의 음악 세계를 확고히 다져온 음악가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과 뮌헨 국립음악대학에서 수학하며 폭넓은 음악적 기반을 다진 것은 물론, 파리 심포니에타 오케스트라와 뮌헨 방송 오케스트라 등 유수의 악단과 함께 다채로운 무대 경험을 쌓았다. 섬세한 악보 해석과 유려한 호흡, 그리고 장르를 아우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기반으로 관객에게 자신의 음악이 ‘정밀함과 서정성의 결합’된 순간으로 기억되도록 힘써왔다.
2018년부터 룩셈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객원 지휘자를 역임한 그는 2020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KNSO) 제7대 예술감독으로 부임했다. 창립 이래 한 번도 외국인 예술감독을 선임하지 않았기에, 그의 부임은 악단이 쏘아 올린 거대한 변화의 신호탄이 됐다. 예술감독으로서 다비트 라일란트는 단원들의 기량과 앙상블 감각을 한층 끌어올리기 위해 치밀한 리허설과 세밀한 해석 작업을 이어갔다. 특히 윤이상 작품이 수록된 음반 녹음, 유럽 투어, 모차르트 오페라 시리즈 같은 굵직한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국제적 입지를 강화했다. 프랑스 레퍼토리의 확장은 그의 지휘 철학이 반영된 성과로, 매 공연 쏟아진 객석의 열렬한 반응은 그 변화가 관객과 깊게 호응했음을 보여준다. 라일란트는 교향악 무대와 오페라·발레 피트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유연성을 “희귀하고도 귀중한 자산”이라 말하며, 단원들의 성실함과 악보에 대한 세밀한 접근 방식을 높이 평가해왔다. 또 한국 관객의 뛰어난 감수성과 음악적 감응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9월 5일, 다비트 라일란트가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공연을 끝으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직을 내려놓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와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는 이제 새로운 무대로 향할 예정이다. 재임 기간 그가 이끌어온 음악적 변화와 한국 무대에서 느낀 깊은 소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7대 감독으로 부임한 해에 악단은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지휘자를 예술감독으로 임명했고, ‘코리안심포니’에서 ‘국립심포니’로 명칭을 변경했죠. 최초의 유럽 출신 예술감독으로 임명될 당시, 그 영예와 책임의 무게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제게 특권이자 도전이었고, 오케스트라의 예술적 진화에 유의미한 기여를 하겠다는 확고한 목표 의식을 갖게 했죠. 오케스트라가 ‘국립’이라는 명칭을 달게 된 것은 그간 악단이 구축해온 예술적 활력과 향후 비전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라 생각했습니다. 과거 메츠 국립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제게는 그 단어가 더 와닿았고요. 관객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예술 철학을 지닌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국립’이라는 지위는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국내외적으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오케스트라는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집단인 만큼 모두를 음악에 헌신하게 이끄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전 인터뷰에서 ‘소통’과 ‘인내심’을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인가요? 지금도 저는 ‘소통’이 지휘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습니다. 말과 몸짓, 음악적 언어를 통해 하나의 비전을 공유하고, 개별적 연주자들을 하나의 음악적 이미지로 결속하는 힘이니까요. 인내심은 짧은 리허설 기간에도 발휘되어야 할 자질이고요. 여기에 ‘존중’이라는 가치를 꼭 덧붙이고 싶습니다. 건강하고 진정성 있는 협업은 존중에서 비롯됩니다.
젊은 지휘자 양성에도 힘써왔습니다. 국제 아카데미나 워크숍 등을 운영했는데, 어떤 의도였고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지휘와 작곡은 전통음악 교육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영역인데, 지휘자의 악기 역할이 되어주는 오케스트라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비교적 한정적이고 그 규모가 하나의 악기를 다루는 뮤지션과도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다만, 국립 오케스트라로서 젊은 세대를 위한 교육적 전승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이러한 프로그램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힘을 갖게 되리라 확신했습니다. 발전을 위한 작은 날갯짓이 결국 거대한 바람을 만들어내니까요. 실제 프랑스나 스위스에서도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변화가 있었고, 저는 그 흐름을 한국에서도 이끌고자 했던 것입니다. 지휘자뿐 아니라 작곡가를 위한 ‘Composer’s Atelier’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작곡가 다니엘 오베르와 뱅자맹 고다르의 작품을 음반으로 남기기도 했는데요. 그들의 음악에 주목한 이유가 있다면요? 감독으로서 제 자신을 움직이게 만든 동력은 강한 호기심과 중심 레퍼토리를 벗어나고자 한 탐구욕이었습니다. 오베르나 고다르 같은 작곡가는 당대 유명 인물에게 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작품은 분명 뛰어난 기술적 완성도와 매력,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프랑스 낭만주의 음악을 재조명하는 플랫폼인 팔라체토 브루 자네(Palazzetto Bru Zane)와의 협업이 이 여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요. 덕분에 더 많은 이에게 이 음악을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전통적 레퍼토리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작품과 만날 기회를 관객에게 제공하는 일은 제게 늘 보람 있는 과업입니다.
이번 정기 연주회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무소륵스키의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은 교향악 레퍼토리의 대표작 중 하나로, 특히 라벨의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널리 사랑받는 작품입니다. 작곡가 무소륵스키가 친구이자 화가인 빅토르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에서 영감받아 완성한 곡으로, 강렬한 상상력과 깊은 정서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죠.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각 악장이 하나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청중을 시각적이면서 영화적인 음악 여정으로 이끈다는 점입니다. ‘키예프의 대문’의 웅장함부터 ‘노움’의 기묘한 분위기까지, 각 장면마다 독립적 성격과 색채를 지녀 매우 다채롭습니다. 오케스트라에도 이 작품은 기술적, 표현적으로 큰 도전입니다. 라벨의 탁월한 오케스트레이션은 다채로운 음색과 역동적 표현을 가능케 하며, 오케스트라 각 파트가 주체적으로 빛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니까요. 오케스트라 전체가 하나의 협주곡처럼 작동하는 셈이죠.

이번 공연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으로서 종장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준비하셨나요? 늘 그래왔듯, 이번 공연도 철저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했습니다. 다만 하나의 챕터를 끝마치는 시점에서 이 무대가 그간의 여정을 되돌아보고 오케스트라의 성장과 변화를 축복하는 헌사가 되고, 과장된 의식이 아닌 진심 어린 음악 축제로 남기를 바랍니다. 음악을 통해 저와 단원들, 그리고 관객 모두가 함께 쌓아온 시간의 깊이를 느꼈으면 합니다.
제7대 예술감독으로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짧지만 매우 밀도 높은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이 오케스트라와 만난 것은 국립오페라단과 함께한 <코지 판 투테> 공연이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여정은 더없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단원들의 성실함과 진지한 태도, 악보의 세세한 부분까지 깊이 파고드는 탐구력은 언제나 인상적이었고, 이는 제가 존경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관객들은 제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예술을 향한 열정과 수준 높은 감수성, 감응 능력을 지니면서도 따뜻하고 너그러우니까요. 그들의 반응과 에너지가 언제나 큰 동기이자 영감의 원천이 됐습니다.
지난 3년을 돌아볼 때, 한국 오케스트라와 한국 클래식 음악계가 지닌 가장 큰 가능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뛰어난 기량, 강한 열망, 그리고 문화적 개방성. 한국 음악인은 수준 높은 기술력과 함께 보기 드문 근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양한 레퍼토리를 받아들이는 호기심과 자신만의 음악적 목소리를 찾아가는 자신감까지 갖췄죠. 지금 한국은 단순히 ‘연주력의 강국’을 넘어 고유한 문화 서사를 세계 무대에 펼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음악을 해왔습니다. 음악이 지겨운 순간은 없었나요? 음악 자체에 싫증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음악은 언제나 제게 피난처이자 보호막, 그리고 진실과 아름다움의 성소니까요. 물론 피로감이나 회의감이 든 순간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음악이 아니라 사람, 제도, 시스템, 그리고 때때로 부딪치는 자아 때문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음악의 본질로 돌아가면 언제나 중심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음악은 한 번도 저를 배신한 적이 없어요.
늘 대중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하셨죠. 클래식 음악을 어렵게 느끼는 대중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싶었던 걸까요? 제게 절대적 우선순위는 음악의 완성도입니다. 그리고 이는 관객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고요. 클래식은 비입문자에겐 다소 신비롭게 느껴지지만, 음악이 전달하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당연히 모두가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클래식 음악의 매력, 그리고 사람들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클래식 음악의 진정한 묘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감정의 언어라는 데 있습니다. 특정 시대나 배경을 몰라도, 음악은 듣는 이의 내면 깊숙한 감정을 건드리고 울림을 남기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보편적 감정을 한국적 정서와 함께 풀어낸다는 데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 서양과 한국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선사하죠. 관객은 단순한 ‘연주’를 넘어 하나의 여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클래식 음악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공연의 지속 가능한 매력이죠.

 

에디터 이호준(hojun@noblesse.com)
사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