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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도쿄 예술 산책

ARTNOW

일본을 대표하는 아트 페어 ‘도쿄 겐다이’가 여름에서 가을로 일정을 옮기며 새로운 시즌을 맞이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도쿄 아트 신도 자신만의 색을 분명히 한 채 아트 러버들을 맞이할 준비로 한창이다. 올가을 도쿄를 방문할 이들을 위한 아트 루트를 제안한다.

Yuken Teruya, You-I, You-I, 2002. Photo by Kioku Keizo. Courtesy of Mori Art Museum. © Yuken Teruya.

모리 미술관에서 열린 후지모토 소우 전시 전경. Photo by Tetsuya Yashiro. Courtesy of Mori Art Museum.

모리 미술관에서 열린 후지모토 소우 전시 전경. Photo by Tetsuya Yashiro. Courtesy of Mori Art Museum.

올해 3회째를 맞이하는 아트 페어 ‘도쿄 겐다이(Tokyo Gendai)’는 7월에서 9월로 일정을 옮기고, 11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12일부터 14일까지 본행사를 진행한다. 공동 설립자 매그너스 렌프루(Magnus Renfrew)는 “도쿄의 극심한 여름 더위를 피해 방문객과 갤러리에 모두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바뀐 일정에 맞춰 프로그램 역시 새롭게 단장했다. 매회 새로운 주제로 작가를 소개해온 ‘쓰보미(꽃봉오리)’ 섹션은 올해 전통 공예 기법을 활용하는 일본 여성 작가를 조명한다. 나카이 나미카(Namika Nakai)의 도자, 미시마 리쓰에(Ritsue Mishima)의 유리 조형을 통해 현대미술에서 장인적 관행의 미학적 의미를 되짚는다. 이 외에도 다양한 국적의 큐레이터가 함께하는 첫 심포지엄이 열릴 예정이며, 신진 작가를 소개하는 ‘하나(꽃)’ 부스에서는 어워드 수상 작가에게 상금을 수여하는 시상식도 진행한다.

오른쪽 Noboru Tsubaki, Esthetic Pollution, 1990. Photo by Taku Saiki. Courtesy of 2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Art. © Noboru Tsubaki.
왼쪽 다양한 미술 재료를 아우르는 피그먼트 도쿄 내부.

올가을 아트 페어를 위해 일본을 찾는다면 요코하마에서 도쿄까지 여정을 이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일지 모른다. 아트 러버라면 가장 먼저 향하게 될 곳은 아마도 롯폰기일 것이다. 모리 미술관, 국립 신미술관, 산토리 미술관과 대형 갤러리들이 삼각형을 이루듯 밀집한 이 일대는 ‘도쿄 아트 트라이앵글’로 불리며 일본 현대미술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이 시기 국립 신미술관에서는 홍콩 M+와 공동 기획한 전시 〈Prism of the Real〉이 열린다. 5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이 전시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일본의 문화 예술이 세계에 미친 영향을 세 가지 주제로 조명한다. 전쟁의 기억, 일본 사회의 젠더와 위계질서 해체, 공동체와 인간관계에 대한 탐구까지 다층적 시선을 담아 일본 근대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짚어볼 수 있다. 한편 하늘과 가장 가까운 미술관이라는 별칭을 가진 모리 미술관에서는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Sou Fujimoto)의 전시가 열린다. 최근 오사카 엑스포의 중심 구조물 ‘그랜드 링’을 디자인한 그는 프리츠커상을 가장 많이 배출한 일본 건축가의 계보를 이을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이 전시는 그의 25년 작업 여정을 8개 섹션으로 구성, 스케치와 모형은 물론 실물 크기에 가까운 구조물까지 아우르며 실제 공간에 들어선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모리 미술관을 나선 뒤엔 ‘갤러리 빌딩’으로 불리는 피라미데와 콤플렉스 665가 예술 여정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이곳에는 페로탕 도쿄, 도미오 고야마 갤러리, 다카 이시이 갤러리, 슈고아츠 등 일본을 대표하는 갤러리가 입점해 있어 일본 미술 시장의 흐름을 가늠해보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롯폰기에서 예술의 진폭을 충분히 느꼈다면, 이제 조금 더 여유로운 호흡으로 도쿄의 또 다른 예술 지형을 만나보자. 도쿄 중심부와 요코하마 사이, 운하를 따라 이어지는 덴노즈는 과거 물류의 중심지였지만 오늘날에는 아트 스페이스의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70년 전통의 기업 데라다 창고가 있다.

갤러리 고사쿠 가네치카 덴노즈의 전경.
아래 데라다 아트 콤플렉스 외관.

1950년대에 곡물 창고업을 시작한 이 기업은 단순한 보관 산업의 틀을 넘어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확산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고가 미술품, 와인, 보석 등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동시에 지역 전체를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재편하며 예술 생태계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 첫 번째 공간이 바로 ‘데라다 아트 콤플렉스(Terrada Art Complex)’. 2개 동으로 구성된 이곳에는 아노말리, 고타로 누카가, 고사쿠 가네치카 등 차세대 감각을 대표하는 갤러리가 모여 있다. 롯폰기와는 또 다른 분위기로 젊고 실험적인 예술의 맥이 이곳에서 뻗어나간다. 두 번째 공간은 갤러리를 나서서 도보로 7분 거리, 미술인의 성지라 불리는 피그먼트 도쿄다. 4000여 개의 안료가 벽을 가득 메운 이곳에서는 건축가 구마 겐고의 손길이 닿은 대나무 천장 아래에서 종이와 붓, 희귀 재료를 만날 수 있다. 마지막 주자는 데라다 창고에서 직접 운영하는 미술관 ‘왓 뮤지엄’이다. 과거 창고였던 공간을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킨 대표적 사례로, 건축 모형부터 설치, 사진, 영상, 문학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단순한 전시를 넘어 보관과 교류 그리고 그 사이의 흐름까지 하나로 엮어내는 이곳은 덴노즈라는 장소 자체가 품고 있는 예술적 가능성을 응축해 보여준다.
이처럼 도쿄 아트 신의 다층적 풍경은 여전히 새롭게 짜이고 있다. 도쿄 겐다이가 계절을 달리해 선보이는 새로운 시도는 아직 그 성과를 예측하긴 이르지만, 그 변화가 도시 전체의 예술적 흐름에 작은 파동을 일으킨 것만은 확실하다. 이 시기에 도쿄를 걷는 것은 그 변화의 방향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에디터 조인정(ijcho@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