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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지 않는 건축

LIFESTYLE

낡은 집을 부수고 아파트나 고층 빌딩을 세워 올리는 도시 개발 방식이 전환기를 맞았다. 도시 재생이 도시계획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다.

100여 년 전, 요코하마항의 세관 창고 건물로 쓰인 아카렌가는 현재 대표적 관광지가 되었다.

지난 7월, 새 정부가 핵심 정책 중 하나로 ‘도시 재생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공공 기관 주도로 5년간 50조 원을 들여 전국 500여 곳(올해 말부터 1년에 100여 곳씩 선정)의 구도심과 달동네를 서민이 살만한 주거지로 바꾸고, 일자리 39만 개를 창출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와 관련해 많은 매체가 그간 다양한 기사를 쏟아냈다. “5년짜리 반쪽 정책이 아닌, 중·장기 계획 필요”부터 “도시 재생 뉴딜 정책 관련 수혜 기대감”, “정권이 바뀌면 4대강 사업 같은 비난을 받을 것”까지. ‘우려’와 ‘설렘’, ‘비난’이 뒤섞인 뉴스 대항전. 한데 이는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황에서도 두 달 가까이 현재 진행중이다.
사실 이 지루하고 지난한 설전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길 원한다면 ‘도시 재생’의 의미부터 파악해야 한다. 흔히 도시 재생이라 하면 오래 되어 낡은 기존 시가지를 부수고 그 위에 새 도시를 짓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지식이다. 본래 도시 재생이란 도시의 특정지역이나 시설이 쇠퇴해 기능을 잃었을 때 그것을 회복시키거나 다른 기능으로 대체해 다시 활성화하는 걸 말한다. 낡은 집을 철거해 아파트를 세우는 게 아니라, 기존 모습을 유지하며 낙후된 환경을 개선해 거기 사는 이들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
글로벌 대도시 중 ‘낡은’ 이미지가 강한 서울시는 이러한 정부의 도시 재생 뉴딜 정책을 두 팔 벌려 반긴다. 그간 대규모 재개발 외엔 가로주택정비사업(블록 단위의 주택 정비)이나 자율주택정비사업 등 소규모 도시 재생 모델에만 힘써온 이들은 앞으론 제법 큰 규모의 도시 재생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도시 재생 활성화를 핵심으로 한 정비안을 줄줄이 통과시켰다. 지난 5월 세운상가 복원 계획을 내놓은 데 이어, 6월엔 중구 회현동 일대 50만㎡를 ‘북촌’처럼 명소화하고자 내년까지 총 158억 원을 투입하는 ‘남촌 재생 플랜’까지 발표했다.
한데 사실 이런 도시 재생 플랜 자체는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선 1970년대부터 실행한 구도심 개발 방식이다. 그간 낡은 도시를 싹 밀고 뉴타운을 건설하거나 철거 후 재개발 방식을 통해 높은 건물만 세워온 한국에선 다소 낯선 얘기겠지만 말이다. 일례로 일본 요코하마의 ‘미나토미라이21(미래항구21) 프로젝트’는 요코하마를 국제적 항구도시로 만들기 위한 계획으로 1988년에 시작, 지금까지도 청사진을 완성해가는 장기 도시 재생 플랜이다. 요코하마항 주변 매립지를 대부분 아우르는 이 플랜은 정부와 민간이 주도해 옛 건물은 개·보수하고 새로 올리는 건물엔 스카이라인까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관리, 그 이름처럼 지금은 ‘21세기 미래 항구도시’가 된 케이스다. 그중에서도 미나토미라이 한쪽 면에 위치한 옛 세관 창고 건물 ‘아카렌가(붉은 벽돌)’가 흥미롭다. 지난 1910년에 지어 1990년에 요코하마시가 매입할 때까지 흉물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이곳은 도시 재생 플랜에 포함돼 내부를 보기 좋게 보수, 지금은 각종 갤러리와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한 쇼핑몰로 변신한 상태다. 100여 년 전 창고 모습을 여전히 볼 수 있는 데다, 현대적 세련미까지 더해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이곳은 지금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도시개발 관련 공무원들의 필수 연수 코스가 되었다.

‘포스트-인더스트리얼 파크’의 효시로 통하는 노르트 랜드스케이프파크.

1950년대에 독일에서 가장 잘나가던 공업도시 중 하나인 뒤스부르크의 ‘노르트 랜드스케이프파크(Landschaftspark Duisburg-Nord)’는 10여 년에 걸친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천지개벽을 이룬 경우다. 이들은 1985년 지역의 철강 기업 티센이 다른 도시로 이전하며 폐공장 지대로 전락, 수년간 우울한 시절을 보냈지만 1989년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재기, 지금은 매년 7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부자 도시가 됐다. 이들은 과거 제철소가 있던 곳에 ‘조금 다른 공원’을 덧씌우는 방식을 택했다. 석탄을 나르고 철을 운반하던 동선과 용광로가 쉼없이 검붉은 쇳물을 토해내던 거대한 건물을 고스란히 남기고, 부분적인 곳만 손봐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재생 공사를 진행했다. 말하자면 목가적 풍경이 지배적이던 과거 공원과 완전히 구분되는 ‘포스트-인더스트리얼 파크’의 새 막을 연 것. 공원 개장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의 많은 도시 개발 연구 자료에 소개되고 있는 이곳은 도시 재생 플랜의 대표적 성공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산업혁명의 본고장 영국에도 눈에 띄는 도시 재생 사례가 있다. 런던 동쪽 템스강변에 위치한 도크랜즈다. 1880년대 항구 개발을 통해 성장하며 전성기를 누린 이들은 1970년대 산업구조 개편으로 몰락, 큰 시름에 잠겼다. 하지만 문제를 파악한 영국 정부가 1976년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착수, 기존의 수변 공간을 활용해 옛 건물과 새 건물이 조화를 이룬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지금은 국제금융센터 등이 자리한 금융업계의 아지트가 되었다. 한데 이곳에서 재미있는 건 도시 재생보다 경전철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도시 재생 플랜을 가동한 이곳은 애초에 런던 지하철이 다니지 않아 경전철을 운행하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 해에만 7000만 명이 이용할 정도로 이용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런던의 반대쪽 끝인 빅토리아까지 연장하는 계획안이 나온 상태라고. 한국으로치면 성북구 우이동과 동대문구 신설동을 잇는 우이경전철을 현재의 신설동에서 김포까지 연장하는 경우라고 할까. 어쨌든 1970년대에 이미 도시 재생 플랜의 서막을 연 이들은 세계의 여러 난개발 도시가 가장 본받고 싶어 하는 상위 도시임이 틀림없다.

옛 건물과 새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런던의 도크랜즈.

하지만 이처럼 도시 재생 플랜의 모범 사례가 아무리 차고 넘친다 해도 신경 써야 할 건 있다.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서울 홍익대학교 앞이나 삼청동, 경리단길, 해방촌, 서촌 등을 통해 기존 원주민이 쫓겨나고 대형 프랜차이즈가 그 자리를 메워 거리가 개성도, 볼거리도 없는 곳으로 전락하는 걸 목격해왔다. 단, 이것 하나만은 알아둬야 한다. 올바른 도시 재생은 절대 주민을 쫓지 않는다는 것. 도시 재생의 목적은 누구의 거주 환경인지는 묻지도 않고 건물을 올리는 재개발과 다르다. 그곳에 사는 주민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 잡지 <중외건축>의 편집장이자 베이징대학교 교수인 장디페이는 저서 <도시를 생각하다>에서 여느 때처럼 오래된 도심은 도시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보존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도시는 역사의 흔적을 축적하면서 변화의 가능성도 찾는다. 따라서 도시의 발전은 오래된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구의 결합으로 가능하다. 그러면서 도시는 공동체의 기억을 보존하는 인간 중심 공간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도시의 지속 가능성이 나온다”라고.
우리나라의 도시는 긴 역사에 비해 발전은 짧은 기간에 빠르게 이루어졌다. 국토 전체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면적에 90% 이상의 사람이 살고 그에 따른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서둘러 만들고 다시 서둘러 부수는 재개발이 기형적 주거 형태를 만들었고, 재개발과 재건축이 안된 지역은 노후화되며 또 다른 도시문제를 낳았다. 그런데 언제까지 늘 부수기만 해야 할까? 왜 이 나라엔 한국전쟁 이후 새롭게 지은 ‘젊은(하지만 낡은)’ 건축물만 있어야 할까? 어쩌면 ‘절대적 시간’이 부족해 시간이 만들어내는 유서 깊은 도시는 불가능한 게 아닐까? 늦은감이 있지만, 도시 재생 뉴딜 정책을 통해 올해 말부터 1년에 100여 곳씩 계획, 조성될 신구 도시의 조합을 통해 한국에도 균형 잡힌 무언가가 탄생했으면 좋겠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