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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10인의 아름다운 물건

ARTNOW

창작의 최전방에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크리에이터 10인에게 물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몸과 춤이 만나는 순간을 담은 아트프로젝트보라의 작품 〈유령들〉. 사진 제공 아트프로젝트보라.

김보라 Photo by Narang Choi.

 흔들림 속 연대 
김보라는 무용과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여성의 신체에서 비롯한 서사와 사회적 관계상을 탐구하는 안무가다. 현대무용단 ‘아트프로젝트보라’를 이끌고 있으며, 대표작 〈소무(Somoo)〉를 위시한 여러 작품으로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등 국내외 무대와 페스티벌, 협업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내게 아름다움은 다듬어진 형태나 정제된 질서와는 거리가 멀다. 삐걱거리거나 덜 마무리된 것,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한 상태에서 문득 드러나는 감정 속에 진짜 아름다움이 있다. 그런 순간은 언제나 낯설고 위태롭지만, 오히려 그 낯섦이 나를 계속 춤추게 한다. 아름다움은 통제할 수 없는 감각의 언어이자, 감히 다가가지만 끝내 붙잡을 수 없는 어떤 존재와의 조우다. 안무가로서 춤을 만들지만 그 안에는 움직임 이상의 것이 있다.
‘서로 다른 몸이 어떻게 함께 존재할 수 있는가?’, ‘어떻게 시간을 나누는가?’ 등 끊임없는 질문을 안고 작업한다. 완성도와 정교함을 보기 전에 서로의 속도와 리듬을 존중하고, 솔직한 몸짓이 환대받길 꿈꾼다. 누군가는 멈추고, 누군가는 춤추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기다리는 그 순간에 자신의 존재 방식이 그대로 춤이 되며 진정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고 믿는다. 비로소 움직임이 흐려지고 몸이 이루어낸 순간들이 사라져갈 때 서로를 지탱하던 취약한 몸들의 연대가 떠오른다. 동작을 멈추고 무너져내린 한 무용수에게 조용히 다가가 손끝을 맞댄 다른 무용수. 서로의 취약함을 감각으로 포갠 연대의 순간은 우리를 깊이 연결하며 존재의 이유를 잇는다. 나에게 아름다움은 바로 그 흔들림 속에서 시작된다.

류가연이 ‘루시류’에서 전개하는 해파리를 모티브로 한 작품.

류가연

 빛의 유영 
프랑스 보자르와 예술대학, 주얼리 아틀리에에서 미술과 주얼리 디자인, 그리고 이 둘을 잇는 이론과 미학을 탐구했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 디자인, 유기와 무기, 생과 사, 돌연변이 등 상반되는 성질의 하이브리드에 주목한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말 그대로 개인적 감각이다. 나에게 ‘예쁘다’가 즉각적 반응이라면, ‘아름답다’는 사물이나 공간에서 더 깊고 큰 감동을 느낄 때 나오는 말에 가깝다. 그 감정은 종종 자연에서 떠오른다. 물이 흐르는 계곡, 풀, 맑은 하늘, 그리고 귀에 스며드는 매미 소리까지. 주얼리 디자이너이자 창작자로서 주얼리를 단순한 장신구가 아닌, 작은 오브제 안에 다양한 아름다움이 담긴 결과물로 본다. 형태, 보석, 피니싱 같은 시각적 요소를 세심하게 고민하지만, 그보다 깊은 아름다움은 제작 과정에서 스며드는 정성과 즐거움에 있다. 주얼리는 수많은 손길을 거쳐 완성되고, 그 안에는 만드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눈에 보이는 형태뿐 아니라 만든 이의 진심이 담긴 결과물이야말로 이것이 지닌 특별한 아름다움이다.
‘바다’는 내게 종종 아름다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존재다. 깊고 조용하면서도 무한한 생명력을 품은 세계이기 때문. 그중에서도 해파리는 온전히 아름다움을 품은 존재다. 형태가 불분명하고 투명하기 때문에 빛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주고, 유영하는 모습은 고요하면서도 자유롭다.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순간은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준다. 주얼리 역시 ‘빛’이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해파리와 주얼리는 서로 닮았다. 그래서 이를 모티브로 한 시리즈를 만들고, 그 작업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다. 형상을 가진 모든 것, 찰나의 감정, 스쳐가는 빛이 나에게 영감을 주고, 이를 주얼리로 풀어내는 것이 내가 아름다움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바다 위에 놓인 문승지의 업사이클링 작품 ‘Plastic Dinner’. Photo by Kiwoong Hong.

문승지 © Teamvirals.

 균형과 명쾌함의 희열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팀바이럴스(Teamvirals)’의 공동 대표이자 아트 디렉터로 활동해왔다. 김해김 쇼룸과 블루보틀 제주 · 연남 등 다양한 공간과 가구를 브랜딩하고 삼성 비스포크와 협업 및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구 브랜드 ‘하바구든(Havagooden)’을 이끌고 있다.
아름다움은 편안함에서 비롯된다. 그 편안함은 단순한 안락함이 아니라, 모든 요소가 제자리를 찾아 균형을 이루는 순간에 온다. 편안함과 긴장감이 공존하고, 다양한 일의 포지션과 디자인 역시 밸런스를 잡는 게 중요한 것처럼. 그 때문에 하바구든의 가구는 곧게 뻗은 다리 대신 비스듬히 기울어 상판을 지탱하는 삼각 구조로 안정감을 만든다. 이러한 구조처럼 흩어져 있던 것들이 하나로 모이고, 머릿속을 떠다니던 단어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되는 명쾌한 순간, 나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일 역시 흩어진 것을 모아 해답으로 다듬는 과정의 반복이다. 디자인이든 브랜드 론칭이든 수많은 키워드를 던지고 다듬으며 명쾌한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곧 희열이고, 점을 모아 선을, 선으로 면을 만드는 게 나의 방식이다. 모든 것은 흩뿌려진 기본적 요소에서 시작하며, 그 근본을 이해할 때 비로소 전체를 만들 수 있다. 마치 낮은 곳으로 흐르며 세상을 품는 물처럼. 물은 색과 모양이 없지만 낮은 곳으로 흐르며 세상을 잠식할 수 있는 힘을 지녔고, 그 힘을 숨긴 채 겸손하게 세상을 지탱한다. 창의성과 겸손이라는 디자인의 덕목이 그 속성 안에 있으며, 가장 작은 단위를 이해해야 전체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물이 내게 가르쳐준 아름다움이다.

삶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달콤한 한 조각.

양정욱 Courtesy of Gallery Hyundai.

 변화하는 것 
양정욱은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해 지나치는 순간들을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이를 소리, 빛, 움직임을 동반한 조형 설치로 구현한다. OCI미술관, 케르게네크 미술관, 갤러리현대 등에서 개인전을 열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성곡미술관 등 그룹전에 참여했다.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4’ 최종 수상자로 선정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아름다움은 늘 변한다. 매일 마주하던 아침이 문득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고, 컵에 물을 따르는 소리가 마음을 건드릴 때도 있다. 그것은 마음이 느끼는 것이고, 마음은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아름답던 것이 한순간 그렇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고, 무심하던 것이 경이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젊을 때 즐겨 듣던 록 음악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따분하다고 여기던 자연이 지금은 경외감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세상에는 각자의 자리에 저마다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내가 하는 일에도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 좋은 것에는 대체로 아름다움이 깃들지만, 그 기준은 상황과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 이야기일 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나 체계일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무언가를 해보려는 마음이고, 그 속에는 사랑과 정성이 있다. 나는 그 마음을 이야기로 만들고 묘사하는 일을 한다. 떠오르는 아름다운 장면은 유아 식탁에 떨어진 작은 복숭아 조각을 잡으려 애쓰는 한 살 된 나의 아이 모습이다. 잘 익어 달콤한 복숭아를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 입에 넣고 웃더니 삼키기도 전에 다음 조각을 향해 손을 뻗는다. 애써 얻은 성취와 달콤함이 그 행동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삶도 그렇다. 우리는 모양과 시간이 다를 뿐 늘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고, 때로는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나아간다.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도 복숭아 한 조각 같은 순간이 떠올랐으면 한다.

‘60’s Cardin’ 노래가 담긴 글렌체크의 첫 정규 앨범 〈Haute Couture〉.

노두용

 스며드는 순간의 기억 
노두용은 서울 관악구와 용산구에 위치한 전시 공간 ‘실린더’의 디렉터로 회화,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 등 장르를 넘나드는 전시를 기획한다. 국내외 신진 작가의 실험적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프리즈 서울에서 ‘포커스 아시아 스탠드상’을 수상, 동시대 미술의 확장과 예술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
아름다움은 또렷하게 규정되는 것보다, 시간과 여러 조건 속에서 파생된 다양한 형태가 모여 만드는 흐릿한 모자이크에 가깝다. 지나간 날을 떠올리며 스며드는 온도와 빛, 그리고 그에 얽힌 추억에 잠겨 아련하면서 아릿한 감정이 들 때, 마음은 동요한다.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인 10년 전 5월, 오랜 친구의 집 앞 벤치에 누워 등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과 바람을 느낀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서늘함 속에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음을 훗날 깨달았다. 갤러리 일을 하며 느끼는 아름다움도 과정 속에 있다. 혼자 운영하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챕터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단정한 끝맺음과 거칠지만 순수한 순간이 각기 다른 빛을 담아 아름다웠다. 그리고 내게 가장 오래된 아름다운 추억은 글렌체크의 ‘60’s Cardin’이다. 군 복무 시절 우연히 들은 이 곡은 남은 시간을 버틸 힘을 주었고, 전역 후에도 계속 나를 따라왔다. 코러스 직전의 한 문장 “Can I feel it another time?”은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압축해 되새기게 했다. 특정 순간과 감정을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힘, 그리고 그리움을 증폭시키는 힘이 이 노래와 그에 얽힌 시간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다.

키스 재럿의 앨범 〈The Köln Concert〉.

백종환

 결핍︑여백의 미학 
백종환은 건축가이자 공간 디자이너로 가구, 조명, 오브제 등 공간을 비롯한 모든 것을 디자인한다.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WGNB의 대표로 준지 도산 플래그십 스토어, 푸투라 서울, 무신사 편집숍 등 다수의 아이코닉 공간을 디자인했다. 독일 디자인위원회의 아이코닉 어워드 ‘올해의 스튜디오’ 선정, FRAME 어워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등 세계 유수의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아름다움은 완벽히 갖춰진 순간보다 오히려 결핍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비어 있는 자리, 다 채워지지 않은 형태가 만들어내는 여백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그 여백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각자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채워진다. 공간을 비롯한 사물, 패션, 음악 등 모든 영역에서 결핍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며, 그로 인해 아름다움은 유연하고 지속 가능한 감각으로 남는다. 공간 디자인 역시 완벽한 조건에서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낮은 천장, 창 없는 벽, 방해되는 구조물이나 기둥 같은 제약을 수용하고 결핍을 기획의 일부로 삼는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여백에서 경험을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내가 공간에 담고 싶은 아름다움이다. 결핍은 한계를 만드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힘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사랑하는 한 장의 음반이 있다. 키스 재럿의 〈The Köln Concert〉. 1975년 비 내리던 쾰른, 상태가 좋지 않은 업라이트 피아노와 최악의 컨디션에 공연은 취소 직전이었지만, 17세의 젊은 기획자 베라 브란데스가 끝내 그를 설득해 무대에 올렸다. 준비된 연주는 불가능했고, 재럿은 즉흥연주를 시작했다. 그렇게 제약과 결핍 속에서 탄생한 연주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피아노 솔로 앨범이 되었다. 완벽함이 아닌 결핍이, 그리고 그것을 멋지게 돌파한 순간이야말로 내가 믿는 아름다움이다.

성립 작가가 선으로 그린 드로잉을 조형으로 확장한 작품.

성립

 감각이 남긴 자리 
드로잉 아티스트 성립은 검은 펜 하나로 반복적이고 간결한 선을 그려 인물의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한다. 드로잉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서사적 깊이를 더하고, 최근에는 설치, 영상, 애니메이션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BMW와 프라다, 골든구스, 디즈니, 조 말론 런던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동안은 아름다움을 단순히 시각적 완벽함에서 찾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 경계를 넘어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더 아름답다고 느낀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이나 먹먹함, 순간적 감동은 꼭 완벽한 시각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변치 않는 풍경, 손끝에 남은 익숙한 감촉, 계절의 냄새 같은 것이 오히려 더 깊이 마음에 스며든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형태를 넘어 오래된 기억과 감정을 깨우고, 그 순간의 온도와 공기까지 되살린다. 그래서 작업할 때도 내가 느낀 감정을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향수를 일으키는 장면을 오래 들여다보고, 마음속 깊이 담아두는 과정을 거치면 그 감정은 의도하지 않아도 작품 속에 스며든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은 나에게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온전히 녹아든 순간이 된다.
그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긴 대상으로는 지난해에 개인전에서 선보인 입체 작품이 떠오른다. 갤러리 미디어 라이브러리에 마치 그 자리를 위해 준비한 듯한 공간이 있어 설치했는데, 작품이 그 안에서 마치 새로운 숨을 쉬는 듯 살아났다.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만든 당시의 생각과 기분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나에게 아름다움이란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마음을 흔드는 기억과 감각을 품고, 그 속에서 계속 살아 숨 쉬는 존재다.

Sun & Sea, 루길레 바르즈주카이테, 바이바 그라이니테, 리나 라펠리테가 만든 오페라 퍼포먼스가 탬버린즈 ‘블루 히노키’ 팝업 오픈 행사에 펼쳐졌다.

서원호

 낯섦 속 울림 
프랑스 보자르에서 제품 디자인과 공간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현재 젠틀몬스터 공간팀 팀장으로 공간 기획을 맡고 있다.
나에게 아름다움은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완벽한 것보다는 조금 불완전하고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대상에 더 마음이 끌린다. 처음엔 잘 느끼지 못하다가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매력을 드러내는 것. 예를 들어 철 구조물에 남은 용접 자국을 볼 때 그런 감정을 느낀다. 깔끔히 마감되지 않은 채 거칠고 불규칙하게 이어진 표면은 오히려 의도보다 솔직한 인상을 준다.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는 재료 고유의 낯선 매력에서 진짜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한다. 내가 만드는 공간은 결국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완성된다. 아무리 구조와 디테일이 뛰어나더라도 그 안에 사람이 들어와 제품을, 오브제를 보는 순간이 오기 전에는 의미를 갖기 어렵다.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 자체가 나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최근에 본 작업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탬버린즈가 초청한 선앤시 오페라의 ‘SUN & SEA’ 프로젝트였다. 한낮의 태양 아래 펼쳐진 모래와 파도, 그 사이에 놓인 구조물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만든 풍경은 단순한 브랜드 프로모션을 넘어 감정의 울림을 전했다. 특히 이 작업이 관객들로 하여금 “여기서 무엇을 느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는 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아미산쑥티 장인의 세월이 깃든 손. ⓒ Artisan.

강민구

 손에 담긴 정성 
현재 한국 유일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밍글스’의 오너 셰프다. 미국, 스페인, 프랑스, 바하마 등 세계 각지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바하마의 노부에서 총괄 셰프로 활약한 뒤 2014년 밍글스를 열어 전통 한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한국 미식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아름다움은 누군가가 소중한 것을 만들어가는 순간에 깃든다.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무언가를 완성하는 모습, 특히 농부가 계절 따라 식재료를 기르고 수확하는 장면을 바라볼 때 그 마음과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손길에는 땅과 하늘, 계절과 시간이 함께 녹아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운다.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며 느끼는 한결같이 따뜻한 애정도 같은 결을 지닌다. 내가 하는 일에도 그런 아름다움이 살아 숨 쉰다. 소중하게 기른 식재료와 그 계절의 감각을 한 접시 요리에 담아 손님에게 전하는 일, 그리고 우리 팀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히며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 남을 한 끼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도 있다. 때로는 한 접시를 완성하기 위해 수없이 맛보고, 손끝으로 미묘한 질감을 확인하며 그 계절의 향을 가장 잘 담아낼 방법을 찾는다. 지금 떠오르는 가장 아름다운 하나는 오랜 세월의 경험과 정성이 켜켜이 배어 있는 손이다. 올해 출간한 책 〈장〉을 준비하며 아미산쑥티 장인을 만났을 때 그 손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세월이 남긴 주름과 굳은살, 그리고 그 속에 스며든 온기는 부드러움과 단단함을 함께 품고 있었다. 손등의 색과 결, 미묘한 움직임에 담긴 시간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기록이었고, 그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도는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말해주었다. 나에겐 그것이야말로 세월이 만든 가장 진실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정다혜 작가의 고향집 근처에 뿌리내린 오래된 나무.

정다혜

 오래된 질서와 시간 
정다혜는 갓, 탕건, 망건 등 전통 생활 공예품에 쓰이던 말의 꼬리털 ‘말총’을 전통 기법으로 정교하게 엮어 현대적 조형으로 풀어내는 공예 작가다. 잊혀가던 말총공예의 맥을 이으며 2021년 청주국제공예공모전 대상, 2022년 세계적 공예 작가들이 참여하는 로에베 재단 공예상 대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며 한국 공예의 세계화를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아름다움은 어떤 순간을 새삼스럽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것이 문득 낯설고 특별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흐르는 구름이나 붉게 물든 노을, 해가 스며드는 찰나 같은 풍경이 그렇다. 늘 마주하던 일상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래서 내게 아름다움이란 결국 감동의 다른 이름이다. 내 작업 속 아름다움은 질서가 쌓여가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말총을 한 올 한 올 손으로 엮어 형태를 만드는 일은 처음엔 아무 모양도 없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구조를 갖춰간다. 손과 바늘 그리고 말총. 단순한 도구와 재료가 서로 힘의 균형을 맞추며 가지런한 매듭을 만들어간다. 무수히 반복되는 엮기 행위가 눈앞에서 질서 있는 형태로 완성되어갈 때 그 과정을 바라보는 것이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떠올리는 아름다운 하나도 오래된 질서와 시간이 만든 존재다. 제주 고향집 근처의 큰 나무를 어릴 때부터 이유도 모른 채 좋아했는데, 언젠가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계절과 환경의 변화를 묵묵히 견디며 수십 년을 버텨야 커지고 단단해질 수 있는 나무. 그 나무를 볼 때마다 마음이 놓인 건 그 안에 평화롭고 안전한 시간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에서 느낀 그 안심은 어쩌면 내가 말총을 엮으며 느끼는 질서의 아름다움과도 닮은 듯하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정희윤(heeyoon114@noblesse.com),조인정(ijcho@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