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주얼리와 기하학적 설치 작품의 만남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창조해 현대 조각 흐름에 기여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재해석했다. 그들의 작품 세계를 모티브 삼아 구현한 3D 공간에, 물리적 조화를 이루는 이번 시즌 하이 주얼리 작품들을 매치했다. 건축적 조각과 정밀함으로 빚어낸 하이 주얼리, 의외의 요소들이 만나 색다른 리듬을 만들어낸다.

Louis Vuitton
루이 비통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버츄어시티(Virtuosity)’는 ‘거장의 세계(The World of Mastery)’와 ‘창의성의 세계(The World of Creativity)’라는 두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거장의 세계 테마 마지막 작품이 바로 ‘로프’에서 영감을 받은 ‘커넥션(Connection)’이다. 파베 다이아몬드 2000개와 100개 이상의 클로즈드 세팅 다이아몬드로 완성한 밧줄 모티브 사이사이로 114개의 진주가 은은하게 빛난다. 목을 부드럽게 감싸는 유연한 형태도 인상적이다. 네크리스 중앙에는 강렬한 존재감을 발하는 피전 블러드 컬러 루비 6.04캐럿을 세팅했다. 점만 선보인다.
Richard Serra
리처드 세라의 작품은 압도적이다. 먼저 건축물처럼 거대한 크기에 놀라고, 재질이 철판이라는 점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공간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다 여행처럼 낯선 경험을 마주하기도 한다. 작가의 작품은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공간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리처드 세라는 장소에 따른 땅의 지형과 관람객의 인식까지 고려해 하나의 풍경을 탄생시킨다. 작품의 형태 역시 철저한 계산을 통해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생성하도록 만들었다. 대표작으로 ‘Torqued Ellipses’ 등이 있다.

Cartier
까르띠에의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 ‘앙 에킬리브르(En Équilibre)’는 간결함과 순수함,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과하지 않은 요소들을 정밀하게 융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컬렉션 무대 역시 미니멀리즘과 창의성이 공존하는 스웨덴 스톡홀름을 택했다. 대표작 중 하나인 ‘트라포라토(Traforato)’는 기하학적 메시 구조가 돋보이는 네크리스. 콜롬비아산 팔각형 에메랄드 3개가 중심축을 이룬다. 반복적 형태를 통해 입체감과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Carl Andre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미국 조각가로, 초기에는 콩스탕탱 브랑쿠시에게 영감을 받은 추상적 목조각을 주로 선보였으나 동료 조각가 프랭크 스텔라와 교류하며 공간과 형태에 대한 고유의 관점을 확립했다. 1960년대 초 철도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과 열차 운행의 질서 역시 그의 예술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칼 앤드리는 간결한 형태를 모듈식으로 구현하고, 이를 수평 공간에 배치해 관람객에게 색다른 몰입 경험을 제공한다. 고정되거나 연결되지 않은 각각의 요소는 오직 중력에 의해 기하학적 형태를 이룬다.

Boucheron
부쉐론의 까르뜨 블랑슈 하이 주얼리 컬렉션 ‘임퍼머넌스(Impermanence)’는 “덧없는 것을 영원하게 만들고자 한” 지난 2018년 ‘이터널 플라워(Fleurs Éternelles)’ 컬렉션의 창조적 여정과 맞닿아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은 이번 컬렉션을 통해 “자연의 질을 포착하고 그 아름다움을 더 깊이 바라보며 보호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컬렉션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정지시킨 듯한 식물 조형물 6개로 이루어졌다. 무채색 컬러를 통해, 빛에서 어둠으로 변하고 소멸해가는 자연의 흐름도 반영했다. 혁신적 소재와 형태, 기술을 접목해 주얼리의 경계를 확장한 컬렉션이다.
Carl Andre
193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에바 헤세는 1960년대 포스트미니멀 운동을 이끈 미술계의 아이콘 중 한 명이다. 라텍스와 유리섬유, 플라스틱 등 당시엔 파격적이던 재료를 선구적으로 활용했고, 형태에 얽매이지 않는 다채로운 방식으로 불완전함과 수수께끼를 탐구했다. 작품을 통해 종종 재료를 물리적으로 조작하면서 그 재료가 전달하는 의미를 완전히 변형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단순성과 복잡성이 많은 이를 매료시켰다. 유기적인 자연의 윤곽에 주목하고 이를 실험한 최초의 예술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Piaget
피아제는 ‘엑스트라레간자(Extraleganza)’라는 이름으로 1960~1970년대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되돌아보고, 그 창조적 근간을 탐구하는 행보를 이어간다. 이번 ‘셰이프 오브 엑스트라레간자(Shape of Extraleganza)’ 컬렉션은 특별히 피아제와 예술가들의 인연을 조명한다. 살바도르 달리, 앤디 워홀 등과 함께한 흥미로운 협업을 기념하고, 팝아트와 옵아트를 비롯해 당대에 유행한 여러 미술 사조와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생동감 넘치는 구성과 과감하면서도 정밀한 표현을 통해 ‘형태의 유희’를 추구하는 피아제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Tony Smith
토니 스미스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설계 회사에서 근무하는 촉망받는 건축가였다. 하지만 건축이 설계자의 의도와 달리 개조될 수 있다는 점에 좌절을 느끼고, 44세의 나이에 조각가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주로 입방체와 사면체의 단순한 형태를 띠는 그의 작품은 언뜻 보기엔 미니멀리즘 조각의 전형이다. 하지만 여느 예술가와 달리 직관적 작업 방식을 통해 작품에 유기적이고 서술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한편, 물성을 부각해 관람자의 체험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내 작품은 계산적 산물이 아니라 수수께끼와 무의식의 격정에서 유발된 것이며, 내 모든 조각은 꿈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다”라는 그의 말에서 작업 철학을 엿볼 수 있다.

Bvlgari
불가리는 하이 주얼리 컬렉션 ‘폴리크로마(Polychroma)’를 통해 ‘아름다움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컬렉션 이름 폴리크로마는 다수를 뜻하는 ‘폴리(poly)’와 색을 의미하는 ‘크로미아(chromia)’를 결합한 것. 모든 각도에서 빛을 받아 다채로운 색을 드러내는 프리즘처럼, 진귀한 젬스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며 무한한 색조를 펼쳐낸다. 브랜드 특유의 건축적 조형미와 대담한 색채 감각, 정교한 세공 기술도 엿볼 수 있다. “모든 작품이 우리의 다채롭고 활기찬 DNA를 표현하는 증거다”라고 불가리 CEO 장 크리스토프 바뱅은 자부심을 표했다.
Rachel Whiteread
“위대한 예술 작품은 관람객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킨다.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시대를 반영하며, 그런 의미에서 생각과 존재 방식을 바꿀 수도 있다”라고 레이철 화이트리드는 말한다.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일상의 가정용품을 주조한 작품을 선보였고, 1990년대에는 가구 안팎의 공간에 눈을 돌려 건축물에 가까운 대규모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선과 형태에 중점을 두고, 과거의 색채와 오랜 세월의 흔적을 살리는 것이 특징. 1993년 터너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작가다.

Chaumet
쇼메는 245년의 오랜 역사를 이어오며 꾸준히 자연에 대한 헌사를 표현했다. 하이 주얼리 컬렉션 ‘주얼스 바이 네이처(Jewels by Nature)’ 역시 동식물에 깃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이번 시즌에는 특히 와일드 로즈, 클로버, 고사리, 오트, 필드스타 등 길들지 않은 야생식물에 주목했다. 그중 트랜스포머블 스위트슈럽 브로치는 섬세한 꽃잎이 44.23캐럿의 쿠션 컷 스피넬을 감싸고 있는 매혹적인 주얼리다. 꽃잎에는 두 가지 톤의 스피넬과 세 가지 톤의 사파이어를 파베 세팅해 자연스러운 그러데이션 효과를 연출했다.
Louise Bourgeois
루이즈 부르주아는 프랑스 출신 미국 작가다. 구상과 추상을 오가며 분노와 두려움, 외로움, 질투 같은 내면의 감정을 탐구했다. 대표작은 그 자신조차 “가장 성공적인 소재”라고 표현한 소위 ‘거미’ 시리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1947년에 처음으로 잉크와 목탄을 사용해 거미를 그렸는데, 1990년대 후반 강철과 청동으로 이를 형상화했다. 거미는 포식자이자 보호자로, 어머니를 상징한다. 작가가 선보인 거미 조각품 중 가장 큰 규모의 ‘Maman’은 높이 9m가 넘으며 서울 리움미술관을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다.
에디터 윤정은(프리랜서)
사진 박지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