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와 아티스트의 대화
반짝이는 눈빛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컬렉터 진상미와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펼치는 아일랜드 작가 크리스찬 히다카가 만나 작품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는 현재를 지나 그림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컬렉터 진상미와 작가 크리스찬 히다카.
진상미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의 제목이 ‘하늘이 극장이 되고, 극장이 하늘에 있으니’입니다. 상당히 시적이면서 연극적으로 느껴지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어떤 전시인지 궁금해요.
히다카 르네상스 시대 영국 역사가 프랜시스 예이츠(Frances Yates)의 책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셰익스피어 시대까지 거슬러 생각해보면 극장 천장에 하늘을 묘사하는 전통이 있었죠. 단순히 하늘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별자리같이 읽을거리도 함께 담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극장에서 천상의 개념을 찾아볼 수 있고, 그곳이 지상으로 이어지는 장소라는 것을 엿볼 수 있죠. 저는 이번 전시에서 이런 극장의 전통적 의미 일부를 차용했어요.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도 제가 사용하는 갤러리5는 꽤 독특한 공간입니다. 지상에서 한 층 내려간 곳이죠. 플라톤의 동굴을 연상시키기도 해요. 그래서 전시장 전체를 무대로 상정하고, 그 안의 그림들을 작은 무대로 볼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동굴 같은 공간을 연출하는 것을 중점에 두고 작업했어요. 그 무대 주변을 장식한 모티브들이 전체적으로 ‘천상’과 연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별자리와 별, 패턴 등은 이탈리아 베로나의 카스텔베키오 박물관 바닥과 지붕 패턴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종합해보면 이번 전시는 르네상스 시대, 연극과 무대, 극장을 키워드로 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보이지 않는 역사, 아이디어를 가시화하는 힘을 가진 회화라는 매체가 흥미로운 것 같아요. 특히 르네상스 시대 회화를 살펴보면 도상에 아이디어나 사상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어요. 어떤 이야기인지 완벽히 알 순 없지만, 우리의 흥미를 유발하고 관심을 끄는 힘이 회화에서 증폭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상미 르네상스 시대에서 동굴로 거슬러 간다고 하니 미술사를 되짚는 듯합니다. 작품에 그러한 역사의 단면이 담겼죠. 아시아의 문화나 이야기도 읽어낼 수 있어요. 감상 포인트가 매우 많습니다. 작가님의 시각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요.
히다카 우리는 트랜스컬처(transculture), 즉 모든 문화가 어느 정도 화합하고 융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를 떠올려보면 옛날에도 그런 융합의 시도가 있었어요. 요즘은 인터넷과 기술의 발전으로 그 속도가 정말 빠르고, 모두가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을 뿐이죠. 저 역시 변화를 수용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가로서 준비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이러한 유연성이 결국 잠재력을 확장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작품에서 보이는 관점은 결국 세상을 보는 시각이에요. 그것에 대한 제약을 좀 풀고 시점을 자유롭게 바꿔 이쪽저쪽을 보고 싶어요.
진상미 그렇군요. 감상자 입장에선 그림 속 도상, 알레고리에서 이야기를 추측하며 그림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달라지니 즐거워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중 ‘Stage Serpientiae’가 그런 도상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잘 품은 작품인 것 같아요. 왼쪽의 손목에 뱀을 감은 여인은 지혜를, 오른쪽의 피리 부는 남성은 오르페우스를, 알은 데미안을 떠올리게 하면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상상하게 했죠.
히다카 의도적으로 작품에 알레고리를 사용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추측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어떤 문화권, 혹은 시대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모두가 합의하는 의미 있는 요소가 있잖아요. 일부러 그런 상징을 활용하죠. 그런데 어떤 통상적 개념 외에도 그 대상의 잠재적 의미가 있다면 작품으로 좀 더 발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예를 들어 불사조는 동서양 문화권에서 사람들에게 상징하는 바가 뚜렷해요. 하지만 저는 ‘인간이 부여한 제약’에서 해방된 불사조를 그리면서, 이 상징물이 인간 사이에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생명력을 제시하고 싶기도 합니다.
진상미 심오하네요. 그러니까 작품에서 그들은 도상, 알레고리로서 의미가 있지만, 과거의 사회적 · 문화적 의미를 뛰어넘는다는 얘기군요. 그렇다면 그들을 배치한 구도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 앞서 언급한 작품 ‘Stage Serpientiae’에서 보이지 않는 삼각형 구도가 눈에 들어왔거든요. 이러한 기하학적 배치를 어떻게 활용하시나요?
히다카 삼각 구도는 어떤 면에서 우리 현실, 혹은 의식 구조를 반영한다고 생각해 종종 작품에 사용하고 있어요. 좀 더 풀어보면, 제가 ‘믿음이 형성되는 구조’라고 부르는 게 있어요.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고, 내부에서 이를 컨펌했을 때 신뢰와 믿음이 생기는 흐름을 말하죠. 이처럼 삼각 구도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기하학적 구조입니다. 실제로 왜 그렇게 보이는지 고민해보는 지점이에요. 우리가 3D 세상에 살고 있어서 그런 걸까요?
진상미 그렇다면 그걸 작품에는 어떻게 접목하나요? 또 색은 어떻게 쓰는지 등 디테일한 부분을 여쭤보고 싶어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직접 조색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전히 그렇게 작업하시나요?
히다카 로열 아카데미에 다닐 때 라파엘 자르카(Raphaël Zarka)라는 친구를 만났어요. 함께 로마를 여행하며 건축물을 탐구했죠. 거기에 담긴 여러 기하학적 형태에 매료됐어요. 그때부터 작품에 그걸 적극적으로 차용해왔어요. 색에 관해 이야기해보면, 인물화에는 네 가지 근본적 색을 사용하고 있어요. 우리 식습관에 비유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을 구성하는 대표적 영양소인 단백질, 탄수화물, 식이섬유 같은 것이 있어야 건강하잖아요. 그처럼 네 가지 색은 균형을 위해 사용하는 거예요. 너무 밝고 예쁜 색만 좇을 수는 없어요. 그림은 구조의 균형감만큼 색의 분포에서도 안정감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건강한 그림을 구축할 수 있죠.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에는 매일 안료를 섞어 물감을 만들어야 했어요. 제가 주로 쓰는 매체가 템페라거든요. 요즘은 재료의 질이 좋아져서 조금은 오래 보관할 수 있답니다.
진상미 다행이네요. 덕분에 그림 그리는 데 좀 더 시간을 쓰실 수 있게 되었나요?
히다카 글쎄요. 그동안 직접 물감을 만든 데에는 철학적 이유도 있었어요. 작가로서 빈 화면을 보고 있을 때 느껴지는 일종의 공포감과 긴장감이 있거든요. 그 화면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매일 물감을 만드는 것 같은 생산적인 일을 하며 스튜디오 내 작가의 활동이 전반적으로 이렇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되짚어보는 의미도 있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작업을 시작하기 위한 ‘루틴’인 셈이죠.
진상미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네 가지 근본적 색은 정확히 무엇을 말하나요?
히다카 흰색,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입니다. 5만~6만 년 전에 불탄 아프리카의 나무나 흙에서 염료를 추출해 이 네 가지 색을 활용했어요. 어떻게 보면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데이터베이스를 가진 색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후 이집트로 넘어오면 네 가지 색에 더해 파란색과 초록색을 활용하기 시작했고, 시대를 거듭하며 화학적인 색이 나오며 다채로운 화면 구성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인상파 이후 큐비즘에 도달하면, 4차원적 생각을 하던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이 다시 이 네 가지 근원적 색으로 돌아가는 듯한 경향을 보여요. 흥미롭지 않나요? 저는 그림을 그리며 또 다른 역사 속 그림, 예술에서 그동안 누구도 밝히지 않은 서사를 읽어내는 것이 ‘이미지의 혁신’을 이루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진상미 눈여겨본 적 없는데 한번 자세히 봐야겠군요.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는 2026년 5월 10일까지 열립니다. 한국의 관람객과 전시가 어떻게 소통했으면 하나요?
히다카 요즘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온갖 이미지가 빠르게 지나가잖아요. 사람들이 충분히 생각할 만한 시간을 갖기 어려운 시대인 것 같아요. 일종의 문화니까 어쩔 수 없음에도 안타까워요. 반면 미술 전시는 천천히 향유할 수 있어요. 빠르게 휘발되지 않죠. 그림 하나하나 어떤 이야기와 가치를 담고 있어요. 그렇게 하고자 노력했거든요. 이 그림들이, 벽화가 이곳에 있을 때 차분히 그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나눈 대화가 연결 고리가 되어 전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갤러리바톤, 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