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ufacture Manual
사람의 눈과 손을 이용해 꼼꼼하게 마무리하는 시계, 그 제작 현장은 사뭇 진지하다. 각기 다른 강점을 지닌 매뉴팩처를 통해 살펴보는 시계 제작 과정.
1 파르미지아니의 복원실에서는 유서깊은 시계나 오브제를 복원하고 있다.
2 보석, 에나멜 등을 사용해 정교하게 작업하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다이얼
3 예거 르쿨트르는 앵커에 스톤을 부착하는 섬세한 작업도 손으로 하고 있는 대표적인 매뉴팩처다.
4 제조하는 모든 무브먼트가 제네바 인증을 거치는 로저드뷔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어야 한 과거와 달리 도구와 기계의 진화로 현재는 로봇에 의한 초정밀 무인 생산까지 가능해졌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여전히 사람의 눈과 손의 힘이 필요한 곳이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시계. 고급화할수록 그 의존도는 높아진다. 그런 까닭에 대체로 시계를 만드는 곳은 공장(factory)보다 공방(atelier), 혹은 라틴어로 손(manus)을 뜻하는 매뉴팩처(manufacture)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단순히 옛날 모습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시설은 오히려 첨단을 달린다. 초현대적 공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옛날 방식 그대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
시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은 무브먼트다. 적게는 100여 개, 많게는 1000개가 넘는 부품을 조립하는데 헤어스프링, 이스케이프먼트 휠 등 핵심 부품부터 나사, 축 같은 소품까지 모두 직접 제작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원래 무브먼트 제조사로 출발해 파텍필립, 까르띠에 등 여러 브랜드에 무브먼트를 공급해왔고 현재도 랄프 로렌 등의 브랜드에 무브먼트를 공급하는 예거 르쿨트르 등 몇몇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전문 제조사에서 공급받아 조립한다.
고급 무브먼트로 갈수록 기술적 또는 미적 마무리에 유난히 신경을 쓴다. 시간 표시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예거 르쿨트르는 1000시간 테스트, 몽블랑은 500시간 테스트, 파텍필립은 독자적 인증을 수행하는가 하면, 롤렉스와 브라이틀링처럼 공식 크로노미터 인증 기관(COSC)의 검수를 거치는 곳도 있다. 한편 바쉐론 콘스탄틴, 로저드뷔 등은 제네바 인증에 치중한다. 이것은 자체 평가가 아닌 제네바 지역 시계장인연합이 부여하는 것으로, 무브먼트와 부품(루비 주얼, 와이어 스프링, 스크루)의 장식 그리고 피니싱에 관한 12개 항목의 엄격한 테스트를 거친 무브먼트만 받을 수 있는 하나의 훈장이다. 극소수 시계 브랜드만 보유하고 있어 ‘제네바 홀마크=높은 품질’을 의미하며 실제로 일반 작업에 비해 30%이상의 노동력이 더 들어간다. 방수, 파워 리저브 측정 부문까지 보강한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하고 제네바에 공장을 둔 회사만 가능한 인증인 만큼 받기도 까다로워 까르띠에, 쇼파드 등은 시계 일부분의 인증을 받기 위해 제네바에 지사를 두기까지 했다.
1 자체 인그레이버를 두고 있는 블랑팡. 유니크 피스나 스페셜 오더 제품에는 특별한 조각을 넣는다. 앞모습은 단순해도 백케이스에 경이로운 조각을 생긴 블랑팡 빌레레 그랜드 데커레이션 시계
2 블랑팡의 인그레이빙 과정
3 섬세한 작업이 요구되는 피아제 브레이슬릿
4 가죽 공예의 노하루를 그대로 스트랩에 재현하는 라몽트르 에르메스
무브먼트를 담는 케이스나 다이얼의 경우도 전문 제조사가 있지만 대부분의 브랜드에서 자체 제작하는 편이다. 브랜드의 개성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얼굴이기 때문. 비교적 제작하기 쉬워 보여도 최근 세라믹과 카본, 무광과 유광 등 이중 마감이나 복합 소재의 결합으로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이엔드 브랜드에서는 케이스에 인그레이빙을 더한다. 백케이스에 이니셜을 새기거나 더 나아가 도시나 문양 등을 부조 형태로 조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조각가의 손길이 필요한 공예 수준으로 올라간다.
다이얼도 단순 도색 수준이 아니라 옥이나 라피스라줄리 등의 유색석과 자개, 보석 세공이 들어간다. 안료를 바른 후 굽는 에나멜 처리는 고온에 여러 번 구워내는 그랑푀, 바늘로 긁어내는 그리자유, 금속으로 틀을 만든 후 그 안을 채우는 샹르베 등 다양한 기법을 만날 수 있다.
시계를 지지하면서 편안한 착용감을 선사하는 스트랩과 브레이슬릿 역시 중요하다. 가죽 스트랩은 소가죽부터 악어가죽까지 잘 견디도록 심을 넣고 바느질은 수공으로 마무리하는 꼼꼼한 과정을 거치는데, 가죽 공예에 관한 노하우가 풍부한 라몽트르 에르메스의 경우 스트랩을 직접 만들면서 파르미지아니 등에 공급하기도 한다. 메탈 브레이슬릿도 브랜드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피아제는 골드와 보석을 세팅한 시계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브레이슬릿 연구 부서를 따로 두고 직접 다양한 브레이슬릿을 제작하고 있다.
기계식 시계는 관리만 잘하면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역사적 브랜드의 경우 사후 서비스까지 미리 대비를 해둔다. 바쉐론 콘스탄틴에서는 한 명의 장인이 조립한 시계를 그 장인이 그만둘 때까지 책임지며, 심지어 수리를 위한 자료 보관실도 따로 두고 있다. 파르미지아니도 역사는 짧지만 복원실을 따로 두고 있다. 창립자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저명한 시계 복원가라 파르미지아니 시계뿐 아니라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기계식 시계도 함께 고칠 수 있게 한 것. 한 세대가 아닌 여러 세대를 거쳐 물려줄 수 있는 기계식 시계의 매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야말로 옛것에 생명을 불어넣어 예술로 승화시키는 손의 힘이 매뉴팩처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에디터 | 이서연 (janicelee@noblesse.com)
글 | 정희경 (워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