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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감각을 입은 빌라 메디치

ARTNOW

1803년부터 로마의 프랑스 아카데미 거점이자 예술가들의 레지던스로 기능해온 빌라 메디치가 올여름 뜻밖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름부터 매혹적인 ‘빌라 메디치의 재마법화’ 프로젝트가 그 주인공이다.

르코르뷔지에와 브랑쿠시의 파리 원룸 아파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방. 스튜디오 사부랭 코스트(Studio Sabourin Costes)의 작품이다.

콩스탕스 기세는 편안함과 기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프레스코 장인과 협업해 벽화를 재해석한 인테리어를 선보인 GGSV의 공간.

로마의 유서 깊은 피네토 언덕에 자리한 빌라 메디치는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미와 프랑스의 문화적 야망이 만난 상징적 장소다.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Ferdinando de Medici)가 1576년 메디치 가문의 여름 별장으로 지은 이 빌라는 1803년 나폴레옹의 결정으로 프랑스 아카데미의 공식 본거지가 되었고, 그 후 수세기 동안 젊은 예술가들이 로마에 머무르며 고대 유산을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레지던스로 기능해왔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원과 벽화가 남아 있는 이 공간이 올해 6월, ‘재마법화’라는 다소 시적인 타이틀의 프로젝트와 함께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빌라 내 7개의 게스트 룸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한 것. ‘빌라 메디치의 재마법화’는 ‘컬러의 여왕’이라 불리는 프랑스 출신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인디아 마다비(India Mahdavi)가 기획을 맡은 프로젝트로, 그는 유럽 전역에서 활동 중인 감각적인 디자이너와 장인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목표는 단순했다. 예술가들이 실제로 머물게 될 방을 단순한 숙소를 넘어 영감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바꾸자는 것. 그 결과 7개의 게스트 룸은 디자이너 각자의 개성과 소재의 다양성을 찾아볼 수 있는 실험적이면서 실용적인 공간으로 거듭났다. 예를 들어 파리 기반의 듀오 디자이너 GGSV(Gaëlle Gabillet & Stéphane Villard)는 프레스코 장인 마티외 르마리에(Mathieu Lemarié)와 협력해 파스텔 톤 벽화를 제작하고 기하학적 구조의 가구를 배치했다. 그렇게 완성한 공간은 마치 너비가 확장되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며 벽과 천장의 경계를 흐릿하게 해 침대에 앉아 방을 바라보면 현실과 상상이 뒤섞이는 듯한 몽환적 무드를 연출한다.

1576년에 지은 빌라 메디치 건축물과 프랑스식 정원.

로마 거리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스튜디오 차넬라토/보르토토(Studio Zanellato/Bortotto)의 방. 소나무의 초록색과 하늘의 푸른색을 사용했다.

디자이너 엘리안 르 루(Eliane le Roux), 미차 무차렐리(Miza Mucciarelli)는 몇 점의 가구를 제외하고 모든 공간을 단색 처리했다.

한편 프랑스 디자이너 콩스탕스 기세(Constance Guisset)가 디자인한 방은 정반대의 리듬을 보여주는데 바람, 곡선, 부드러움을 주제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 하이엔드 가구 공방 필리프 위렐(Philippe Hurel)에서 제작한 유려한 곡선의 가구를 들이고 나무 창틀과 동일한 색의 커튼을 달아 공간을 마치 동굴 안처럼 포근하게 연결했다. 과하지 않고 조용하며 무엇보다 감각적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 듯한 무드가 인상적이다. 나머지 방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빌라 메디치를 재해석했는데 블랙 & 화이트 모노크롬 스타일로 모던하게 꾸민 방, 소나무 컬러의 테라코타 타일과 로마의 하늘색을 매치해 대지의 기운을 불어넣은 공간도 있다. 강렬한 옐로 톤 나무로 제작한 가구와 그린 컬러 페인트로 공간 전체를 채워 색의 대비를 실험한 사례도 흥미롭다. 그렇게 7개의 방은 서로 다른 분위기에 공통적으로 ‘예술적 거주’라는 개념을 담아냈다. 이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건 아름다움을 뽐내는 인테리어 쇼케이스가 아니라 실제로 예술가들이 일정 기간 머물며 작업하고 생활할 공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일상의 일부로, 예술이 벽에 걸린 오브제가 아니라 실제로 쓰고 머무는 경험으로 존재하는 것.
심지어 일부 객실은 일반인 숙박도 가능하다고 하니 이 감각적인 방에서 하루쯤 살아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또한 객실의 디자인 요소 중 일부는 디자이너와 협업 갤러리를 통해 주문 제작도 가능하다. “빌라 메디치 레지던스에 초대받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은 게스트 룸에 머무는 동안 공간 자체가 그들의 작업 일부가 되길 바랍니다. 공간은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이번 프로젝트엔 공간이 전하는 아름답고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인디아 마다비가 전한 결과물에 대한 소감이다. 거주라는 행위를 하나의 예술로 이끈 이 사례는 고대의 벽을 따라 흐르는 빛, 장인의 손끝에서 완성된 가구의 곡선,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천장의 그림자가 서로 어우러지는 벽화가 있는 공간에서 여러 시대의 다양한 예술을 경험하게 한다. 지금 빌라 메디치의 7개 방은 각각 하나의 풍경, 하나의 감정,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7세기의 유산이 현재와 만나고, 오늘의 공간은 미래의 기억이 될 것이다. 빌라 메디치의 재마법화는 그렇게 오래된 빌라에 다시 마법을 걸었다.

 

양윤정(아트 칼럼니스트)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사진 다니엘레 몰라욜리(Daniele Molajo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