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에 문화를 집약하다
손끝 1cm 남짓한 작은 세계. 패션과 뷰티, 음악을 잇는 새로운 아트 코드로 떠오른 ‘K-네일’, 그 신드롬의 중심에 선 아티스트를 만났다.

네일 아티스트 박은경.
BEYOND BLACK 박은경
한국 네일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터준 인물로 박은경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네일을 단순히 ‘바르는 것’이 아니라 옷을 입듯, 반지를 착용하듯 즐기는 패션 액세서리로 정의한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2014년 ‘유니스텔라(UNISTELLA)’를 오픈한 후 지드래곤, 블랙핑크 등 수많은 아티스트, 브랜드와 협업해 K-네일 아트의 지형을 다시 썼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글래스 네일’, ‘와이어 네일’은 곧 새로운 키워드가 되어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자신과 네일을 컬러로 정의한다면요? 그 색의 의미도 궁금해요. 단연 블랙이죠. 어떤 색이든 블랙 위에 올리면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컬러도 매력이 살아나요. 다른 색의 힘을 끌어올리면서도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죠. 그게 저와 닮았다고 생각해요. 네일 스타일로는 ‘프리즘’. 하나로 특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색에서 매력을 느껴요. 사실 ‘글래스 네일’도 표현할 수 없는 색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됐어요.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을 어떻게 옮길까 고민하다 사탕 껍질에서 힌트를 얻었죠. 그 반짝임을 손톱에 옮겼을 때의 짜릿함은 아직도 생생해요. 정리해보면, 블랙이 제 기반이고 프리즘은 제 작업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일 주얼리’라는 새로운 액세서리 영역을 개척했잖아요. 네일 팁을 더욱 다양하게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처럼 손톱이 짧은 사람도 길거나 화려한 디자인을 시도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때 ‘반지처럼 네일을 착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네일 주얼리가 탄생했죠.
많은 셀럽이나 브랜드와 협업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혹은 아쉬운 순간이 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미완성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글로벌 브랜드 나이키와 진행하던 반지 프로젝트였는데, 무산되고 말았죠. 아쉽긴 하지만, 제 마음으로는 여전히 베스트 3위 안에 들어요. 비록 세상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그 경험이 1년 뒤 글로벌 조던과의 협업으로 이어졌으니까요.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성덕이 되는 순간이 온다는 걸 배웠어요.
늘 트렌디한 감각을 유지하는데, 이번 시즌 네일 트렌드는 무엇일까요? 솔직히 ‘트렌드가 없는 게 트렌드’라고 생각해요. 자신만의 취향과 색을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열 손가락을 다 채우지 않아도 돼요. 엄지만 해도, 두 손가락에만 포인트를 줘도 충분히 멋있거든요.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행이라는 틀에 가둘 필요도 없어요. 네일은 자기 방식대로 즐길 때 가장 매력적이니까요.
네일 아티스트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은 없다’, ‘일을 사랑해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불가능하다고 하면 오히려 더 끌렸고, 그 도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현실을 알게 되면서 타협도 배우긴 했지만, 새로운 시도만큼은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매일 많은 네일 제품을 다루잖아요. 늘 곁에 두는 네일 아이템이 있다면요? 샤넬의 ‘르 베르니 #590 민트’와 ‘보이 드 샤넬 르 베르니’, 그리고 파라 스파(PARA SPA)의 핸드 오일. 제 작업의 기본이에요. 컬러와 케어의 조합은 빼놓을 수 없죠.

네일 아티스트 오소진.
SURREAL TOUCH 오소진
중학교 3학년 때 ‘한국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꿈을 품고 처음 낯선 땅에 발을 내디뎠다. 아메리칸어패럴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LA 본사 마케팅팀, 그리고 카녜이 웨스트의 전화를 받아 합류한 ‘이지(YEEZY)’ 크리에이티브팀까지. 늘 불가능해 보이는 경계를 뛰어넘은 오소진은 스쿠버다이빙으로 마주한 바다 생명체에서 영감받아 초현실적 조형미를 네일에 담아낸다. 작은 방에서 시작된 작업은 이제 글로벌 셀럽, 아티스트와 함께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다.
잘 모르는 분을 위해 자신의 네일 스타일을 한 단어로 정의해주세요. ‘Surreal’,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경계를 손톱 위에 옮겨놓고 싶습니다. 조각처럼 입체적으로 형상을 쌓아올리는 ‘Sculpture 3D 네일’, 바다와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유기적인 패턴을 담아낸 디자인, 그리고 손톱에 창을 뚫은 듯한 ‘윈도 팁’ 같은 새로운 포맷은 제 시그너처라고 할 수 있죠. 처음에는 저만을 위한 실험적 아트였지만, 이제는 글로벌 뷰티 인더스트리를 흔드는 디자인으로 성장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디자인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요? 이미 존재하는 디자인은 반복하지 않으려 해요. 오리지널 아트를 만들기 위해 여행을 다니며 자연 속에서 촬영한 사진과 오브제를 작업에 활용하죠. 제 영감은 늘 자연에서 시작되거든요. 바닷속 생물의 형상과 움직임, 여행지에서 마주친 색감, 다큐멘터리 속 장면까지.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패턴 속에서 진짜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합니다.
최근 가장 도전적인 작업은 무엇인가요? 로살리아와 빌리 아일리시의 뮤직비디오를 위해 유리 네일을 제작했어요. 유리는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동시에 투명함 속에 숨겨진 솔직한 아름다움을 드러내죠. 아마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네일이었을 텐데 두 팝스타는 금세 적응했고, 무대 위에서 더욱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습니다. 로살리아가 제게 “넌 곧 뮤지엄에서 보게 될 거야”라고 말했을 때는 정말 기쁘고 뿌듯했어요.
수많은 협업 중 스스로 ‘천재 같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아르카(ARCA) × 로에베(LOEWE)’를 촬영하기 위해 멕시코에 갔을 때였어요. 원래 빨간 매니큐어로 진행하기로 했는데, 제 작업물을 본 아르카가 즉흥적으로 스컬프처 네일로 바꾸자고 제안하더군요. 촬영 시작까지 20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바닷가를 뛰어다니며 생선 머리, 조개껍데기, 해초를 주웠고, 꽤 멋진 디자인이 완성됐어요. 즉흥적으로 만든 네일을 본 그녀의 감격스러운 반응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미국과 한국 두 곳을 오가며 본 K-뷰티의 가능성은요? 미국은 화려하면서 독창적 디자인을 주목하는 반면, 한국은 깔끔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K-네일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만의 섬세한 감각과 손재주는 단순한 연습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운 부분이니까요.
다가올 네일 트렌드를 예측해 본다면요? 올가을 시도할 만한 네일도 추천해주세요. 앞으로는 3D 디자인이 더욱 성장할 거라 봐요. 셀프 키트가 출시된다면 집에서도 손쉽게 즐길 수 있어 더 큰 유행이 될 것 같고요. 이번 가을엔 심플하면서도 특별한 매력을 가진 저의 오리지널 디자인, ‘윈도 팁’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에디터 김다빈(dabi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