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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로 말하는 이유

CULTURE

오랜 기억과 감정을 품는 소재인 섬유를 통해 존재와 관계,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세 작가의 시선.

우한나, ‘Flame Thrower’, 2025. Courtesy of G Gallery

 우한나 
특정 주체가 아닌 존재를 주인공으로 자신만의 판타지적 세계관을 패브릭 설치 작업으로 펼쳐내는 우한나. 그녀는 전통적이고 오가닉한 섬유 대신 광택이 도드라지는 합성 소재와 색감이 강렬한 원단을 즐겨 사용한다. 섬유는 작가에게 자유롭고 유연하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매개로, 어린 시절 안정감을 주던 촉감 때문에 시작됐지만 점차 사회문제로 시선을 확장하며 여성의 신체가 놓인 위태로운 조건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몸의 움직임에 주목하며 시들어가는 꽃잎 같은 형상을 통해 소멸과 발현이 교차하는 긴장 속에 숨어 있는 저항을 표현한다. 완벽함과 균형을 좇기보다는 현실 속 흔들림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가는 불완전함 속에서 다시 중심을 찾아가는 힘을 이야기하며, 무너지고 일어서는 순간 비로소 존재의 본질과 생명력이 드러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슬기, ‘U: 부엉이 살림’, 2018.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이슬기 
인간의 삶과 맞닿은 사물과 언어, 자연을 주제로 조형적 조각과 설치 작업을 펼쳐는 이슬기.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불 프로젝트: U’는 오방색의 기하학 문양으로 누빈 이불을 제작하는 작업이다. 그 출발점은 1990년대 지인에게 선물받은 한국의 전통 누비이불이었다. 누비이불에 매료된 작가는 외국인 친구에게도 선물하고 싶었으나 누비이불을 제작하는 이조차 드물어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결국 작가는 장인을 찾아 나섰고, 통영의 누비이불 장인과 인연을 맺으면서 2014년부터 프로젝트를 이어왔다. 작가에게 이불은 천으로 몸을 보호하고 추위를 막는 기능을 넘어 개인의 삶과 기억이 스민 친밀한 생활용품이자 사적인 세계를 품은 매개체다. 여기에 속담 같은 공동체의 지혜와 유산을 녹여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존재하며 동시에 꿈에 영향을 미치는 주술적 조각으로 기능한다. 이는 곧 일상과 예술, 기능과 상징을 가로지르는 작업으로 관객이 작품을 마주할 때 개인적 경험과 집단적 기억이 겹쳐지며 또 다른 의미가 생성되는 지점을 마련한다.

정다운, ‘Fabric Drawing #166’, 2024.

 정다운 
정다운의 작업은 현대사회가 제시하는 틀과 기준 속에서 우리 스스로 방향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시간의 흔적을 간직하면서도 자유롭고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천을 재료로 작업하며, 이를 ‘패브릭 드로잉’ 즉 천으로 그리는 회화라 부른다. 천을 자르고, 겹치고, 엮어 만든 레이어는 단순한 중첩을 넘어 새로운 화면을 형성한다. 겹쳐질수록 색과 질감이 더해져 예상치 못한 조화를 드러내고, 직접 섞을 수 있는 물감과 달리 겹겹이 천이 쌓이면서 오히려 더 깊은 색의 변주를 만들어낸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색의 조합이 새로운 균형을 이루는 모습은 서로 다른 요소가 만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 삶과 닮았다.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시각적 실험을 넘어 공존과 조화를 모색하는 인간 삶의 은유로 확장된다.

 

에디터 조인정(ijcho@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