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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낸 보테가 베네타의 여름

FASHION

장인정신의 본질과 현대적 감각을 직조한 보테가 베네타의 2026 여름 컬렉션.

2026 S/S 패션 위크 시즌, 여러 패션 하우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교체하는 가운데 밀라노에서 열린 루이스 트로터의 보테가 베네타 데뷔 쇼는 단연 인상적이었다. 조셉, 라코스테, 까르벵 등에서 경력을 쌓은 루이스 트로터는 디자이너이자 리더로서 능력을 입증해왔다. 절제되면서 구조적 감각을 지닌 보테가 베네타와 그녀의 만남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을까. 며칠째 비가 내리던 밀라노의 하늘이 맑게 갠 오후, 따사로운 햇살이 파브리카 오로비아(Fabbrica Orobia)를 비추었다. 과거 공장이었던 이곳은 보테가 베네타의 공예적 미학에 따라 새롭게 단장했다. 천장에는 인트레치아토가 연상되는 이광호 작가의 설치 작품이 걸렸고, 객석을 채운 무라노 글라스 큐브는 햇빛을 받아 다채로운 색채를 발산했다. 사운드트랙 역시 쇼 분위기를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영화감독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과 협업해 각각 1966년과 1976년에 녹음한 니나 시몬과 데이비드 보위의 ‘와일드 이즈 더 윈드(Wild is the Wind)’를 교차 편집해 서로 다른 시대의 감성을 엮어 청각적 인트레치아토를 구현했다. 그 선율과 함께 루이스 트로터의 첫 보테가 베네타 쇼가 시작되었다.
이번 컬렉션은 베네치아의 화려함, 뉴욕의 에너지, 밀라노의 본질주의라는 세 도시의 감성을 조합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결과물이었다. 이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하우스를 이끈 라우라 브라기온의 철학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이어가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보테가 베네타의 2026 여름 컬렉션은 하우스의 상징인 인트레치아토를 중심에 두고 전개되었다. 루이스 트로터는 장인정신을 존중하면서도 이를 유연하고 실용적인 형태로 재해석했다. 9mm와 12mm 크기의 위빙 패턴은 코트, 드레스, 재킷의 구조 속으로 확장돼 직조 개념이 가죽공예를 넘어 하나의 디자인 언어로 자리 잡았다.

오프닝을 장식한 놋 디테일의 인트레치아토 칼라 코트는 이번 시즌의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했다. 이어서 등장한 레더 트렌치코트, 어깨선을 강조한 니트웨어, 회오리처럼 몸을 감싸는 드레스는 구조와 움직임의 대비 속에서 특유의 우아함을 표현했다. 이번 시즌 가장 돋보인 요소는 소재의 실험이었다. 수천 가닥의 재활용 유리섬유로 직조한 톱과 스커트는 빛을 머금은 듯 몽환적 실루엣을 그려냈고, 깃털 프린지와 태슬, 러플, 플러피 텍스처가 정교한 틀 위에 더해져 풍성한 질감을 완성했다. 한편 다채로운 여름 소재는 정밀한 내부 구성과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했다. 남성복의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하되 여성적 감각으로 풀어낸 태도는 보테가 베네타가 지켜온 ‘소프트 펑셔널리티(Soft Functionality)’를 동시대적으로 해석한 결과였다. 컬러 팔레트는 화이트·브라운·네이비·다크 그레이를 중심으로 버건디·옐로·오렌지 컬러가 리듬감 있게 배치되었다. 쇼 후반부로 갈수록 전체 분위기는 보다 자유로운 흐름을 띠었고, 섬세한 질감과 실루엣이 어우러져 전통과 실험이 하나의 장면으로 조화롭게 녹아들었다. 백 라인은 하우스의 유산을 기리며 이번 시즌의 서사를 완성했다. 1980년대 전설적 로렌 백이 새로운 비율로 돌아왔고 놋 백은 한층 유연한 구조를, 까바 백은 컷아웃을 통해 클러치로 다시 태어났다. 까바의 삼각형 셰이프는 룩의 숄더 라인에도 반영되어 컬렉션 전반의 조형적 일관성을 강화했다. 이 외에도 바바라와 베네타 백이 라인업에 새롭게 합류했다. 특히 베네타 백은 아카이브를 모던하게 풀어낸 호보 스타일로, 미학과 장인정신이 깃든 디자인을 통해 시대 흐름 속에서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브랜드의 철학을 드러낸다. 액세서리와 슈즈 디테일 역시 눈길을 끌었다. 투명한 레진 주얼리는 빛을 받아 룩의 구조감을 부드럽게 중화했고, 글로시한 레더 키튼 힐은 뒤꿈치의 매듭 장식으로 시그너처 놋을 세련되게 재해석했다. 앞코가 길게 변형된 클로그 슈즈는 전통적 형태에 현대적 감각을 입혀 룩의 완성도를 높였다.
루이스 트로터는 보테가 베네타의 언어를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써 내려갔다. 그녀가 말하는 럭셔리는 조용하지만 강한 존재감으로 시대의 중심에 섰고,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시대는 그렇게 단단하게 직조된 아름다움 위에서 새롭게 시작되었다.

 

에디터 김소정(sjkim@noblesse.com)
사진 보테가 베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