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새로운 막이 올랐다
도시의 흐름과 보폭을 맞춘 예술의 움직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5년여의 준비 과정을 거쳐 파리 팔레 루아얄 광장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예술 공간이 사유의 장소로 확장되는 재개관 현장을 직접 찾았다.

위 파리 팔레 루아얄 광장 2번지에 자리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외관 전경.© Jean Nouvel 파리, ADAGP, 2025 © Martin Argyroglo
아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내부 전경.
1984년에 설립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은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깊이 성찰해왔다. 과학, 건축, 생태, 기술 등 다양한 분야와 예술을 연결하는 다학제적 전시를 통해 ‘질문하는 공간’으로서 미술관 개념을 지속적으로 실험하며 작가와의 장기적 협업, 지역사회와의 지속 가능한 관계, 그리고 예술적 사유의 공공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오늘날 동시대 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그러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30여 년간 머무른 라스파이 대로를 떠나 파리 중심부 팔레 루아얄 광장 2번지로 거처를 옮겼다. 1887년부터 루브르 백화점으로 사용되던 역사적 건축물로,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내부를 설계해 ‘살아 있는 전시 플랫폼’으로 재탄생했다. 기존 건축의 골격은 보존하되, 내부를 철저히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특히 이동식 플랫폼 구조를 도입해 벽이나 통로 없이 유기적이고 유동적인 공간을 만들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전시는 더 이상 고정된 장소에 머물지 않으며, 관람자에게 ‘움직임’ 자체를 하나의 전시 경험으로 전환한다. 나아가 유리 파사드는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지 않고, 도시와 예술이 하나의 풍경처럼 연결되도록 돕는다.
지난 10월 21일에 열린 개관 프리뷰 현장에서 처음 마주한 공간은 낯설지만 놀라울 만큼 직관적이었다. 입구를 지나자 고정되지 않은 흐름이 펼쳐졌다. 빛과 여백, 관람자의 시선이 작품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도록 설계한 것. 개관전 <상설 전시(Exposition Ge´ne´rale)> 디자인을 맡은 포르마판타스마(Formafantasma) 스튜디오는 ‘방향 없는 이동’을 전시 디자인의 핵심 키워드로 삼았고, 동선은 선형적이기보다 별자리처럼 흩어져 있었다. 덕분에 관람자는 하나의 정해진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대신 스스로의 리듬에 따라 작품과 관계를 맺는 주체가 된다. 전시 제목 ‘상설 전시’의 ‘상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와 관계의 생성을 뜻하는 은유로 읽혔다. 전시는 ‘임시 건축 연구소’, ‘생태계 보존에 대한 고찰’, ‘물질과 기술을 위한 실험 공간’, ‘미래지향적 이야기의 탐구’ 등 총 4개의 주요 섹션으로 구분되지만, 실제 관람 경험은 매우 유동적이었다. 총 4500여 점의 재단 소장품 중 작가 100여 명의 작품 600점이 전시되었는데, 양보다 인상적인 건 전시 공간에 흐르는 공기와 리듬, 여백, 그리고 사유의 간격이었다.
가장 먼저 마주한 ‘임시 건축 연구소’ 섹션에서는 조각가 바디스 이섹 킹겔레즈(Bodys Isek Kingelez)의 상상 도시 프로젝트가 강한 인상을 남겼다. 버려진 재료로 구축한 그의 미니어처 도시들은 도시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실제 도시와 상상 도시, 예술과 설계 사이의 경계를 무색하게 했다. ‘생태계 보존에 대한 고찰’ 섹션에서는 사운드 생태 음향 학자 버니 크라우스(Bernie Krause)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Soundwalk Collective)의 협업 작업이 돋보였다. 멸종 위기 생물의 울음소리를 채집한 이 사운드 설치 작품은 시각 중심의 전시 문법에 균열을 내며, 감각의 확장과 생태적 사유를 동시에 요구한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윤리적 거리, 그리고 생존과 멸종을 환기하는 이 작품은 공간 그 자체를 하나의 몰입감 넘치는 음향의 숲으로 변모시켰다. 한편, ‘물질과 기술을 위한 실험 공간’ 섹션에서는 이세이 미야케, 안드레아 브란치, 구스타보 페레스, 올가 데 아마랄 등의 작업이 등장했다. 이들의 작품은 시대와 지역, 매체를 가로지르며 하나의 연대기나 위계 없이 느슨한 연관성을 갖고 배치되었다. 이는 기존 ‘백과사전형 미술관’의 철학에서 새롭게 나아가고자 하는 철학과 맞닿아 있다. 즉 분류 체계가 아닌 감각과 연결, 그리고 열림의 방식으로 관념을 재구성하는 시도다. 마지막으로 ‘미래지향적 이야기의 탐구’ 섹션에서는 사라 제와 차이 구어 치앙, 파나마렌코, 뫼비우스 등의 작품이 과학적 상상력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의 지식과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전시는 실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건물 외벽을 따라 조성된 팔레 루아얄 광장, 생토노레 가, 리볼리 가를 향해 열린 커다란 창을 통해 과거 루브르 백화점이 도시와 맺었던 친밀한 관계를 되살린다. 백화점 쇼윈도가 연상되는 구조를 활용해 바깥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작품과 마주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거리에서 우연히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예술이 도시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이 유연한 개입 방식은 재단이 추구하는 ‘공공성과 개방성’을 잘 드러낸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해온 전시 동선, 큐레이션, 감상 개념을 섬세하게 비튼 이번 <상설 전시>는 2026년 8월 23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전시 외에도 출판, 교육, 레지던시, 국제 협력, 디지털 프로젝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 생태계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재단이 예술을 사회적 상상력을 이끄는 동력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공동 큐레이터이자 재단의 전략 및 국제 프로그램 디렉터 베아트리스 그르니에(Be´atrice Grenier)는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화이트 큐브’ 안의 전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재단이 지향하는 방향을 “도시와 자연, 인간과 기술이 함께 상상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 정의하고, 예술이 다시 질문하는 존재로 기능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번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재개관은 물리적 이전을 넘어 문화 기관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현답을 제시한다. 나아가 질문을 유도하는 건축, 규칙 없는 동선, 열린 내러티브, 도시와의 자연스러운 유대를 통해 ‘사유하고 질문하는 플랫폼’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자처한다. 그리고 이 조용하고 명징한 움직임은 오늘날 우리가 예술에 부여해야 할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photo@Thibaut-Voisin
INTERVIEW with Béatrice Grenie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Projects Director at the Fondation cartier
새롭게 문을 연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첫 전시 〈상설 전시(Exposition Ge’ne’rale)〉의 네 가지 핵심 주제는 어떻게 정하게 되었나요? 이를 통해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궁금합니다. 저희가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지난 40년간 동시대 예술가들과 함께 축적해온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초상’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였습니다. 그동안 재단의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일관되게 등장한 관심사와 실천을 정리하고, 이것이 전통적 미술관에서는 잘 다루지 않던 분야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왔는지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죠. 새 건물로의 이전은 도시 한가운데 새롭게 자리 잡는 문화 기관으로서 스스로의 방향성을 다시 새기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재단의 소장품과 기록을 면밀히 분석하며 ‘필 루즈(fil rouge)’, 즉 재단 프로그램 전반을 관통해온 강한 축들을 찾아냈고, 그것이 지금의 동시대 문화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그중 특히 중요한 축이 두 번째 챕터 ‘생태계 보존에 대한 고찰’입니다. 인간 문화 속 자연의 위치를 되짚고, 생태와 지속가능성을 예술적 실천의 중심에 둔 작가들과의 협업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장 누벨이 과감하게 재설계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내부는 도시성, 개방성, 모듈성 등 여러 층위의 개념을 품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주제나 내러티브를 구성할 때 이 건축적 접근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경계를 허무는 개방성입니다. 전시는 네 챕터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시작과 끝이 모호한 ‘다공성 구조(투과성이 높은 열린 구조)’에 가깝습니다.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챕터를 넘나들며 작품 사이의 관계를 스스로 발견하게 되죠. 건축이 도시와 맺는 물리적·시각적 연결성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돌출형 창문과 투명한 파사드 덕분에 관람객은 전시를 보는 내내 팔레 루아얄 광장과 그 너머 루브르를 동시에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선의 축을 따라 작품을 배치했습니다. 이시가미 준야의 아치형 작품은 리볼리 가 방향으로, 맞은편에는 장 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이 팔레 루아얄-루브르 지하철역 앞에 놓인 또 다른 그의 작품과 마주하도록 설치했습니다. 이런 구성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전시는 건물 안에서뿐 아니라 거리에서부터 이미 시작됩니다. 결국 건축이 도시와의 매개 역할을 하고, 전시 경험은 하나의 열린 대화로 확장되는 거죠. 관람객은 동시대성, 그리고 도시의 역동성을 건축과 전시가 만들어내는 에너지 속에서 체험하게 됩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전시뿐 아니라 레지던시, 출판, 교육, 국제 협력 등 다양한 다학제적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런 통합적 접근 뒤에 있는 전략적 의도는 무엇인가요? 핵심은 ‘미술관’이라는 정의 자체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재단이 스스로를 ‘미술관’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큰 자유를 제공합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미술관은 물론 공공기관, 디지털 플랫폼, 심지어 상하이 지하철 같은 파트너와도 협업하며 ‘미술관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탐구할 수 있습니다. 전략의 또 다른 축은 접근성입니다. 파리에 오지 못하는 사람을 포함해 더 넓은 관람객층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순회전, 공공 프로그램, 디지털 영상, 온라인 콘텐츠 등 다양한 포맷을 통해 재단이 관람객에게 먼저 다가가는 거죠. 그래서 재단은 한편으로는 수준 높은 소장, 전시, 교육, 시민적 책임이라는 전통적 미술관의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사람들의 기대를 확장하고, 다른 기관과의 협업 방식도 실험합니다. 재단을 단순히 ‘미술관’이라기보다는 훨씬 넓게 열린 ‘문화 기관이자 플랫폼’으로 인식하는 이유입니다.
국제 전략 차원에서 현재 재단이 특히 주목하는 지역이나 담론, 그리고 앞으로 주요 프로젝트 방향을 소개해주세요. 국제 전략은 크게 두 방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형식의 확장입니다. 파리에서는 전시가 중심이지만, 국제 협업에서는 퍼포먼스, 영화, 공공 미술뿐 아니라 콘퍼런스, 심포지엄, 공공 프로그램 등 담론적 형식까지 아우르며 문화 기관으로서 역할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지리적 확장입니다. 다양한 기관과의 공동 기획을 통해 한 기관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전문성과 시야를 공유하는 거죠. 이는 동시대 문화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어떤 기관도 더 이상 모든 지식과 전문성을 독점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창의적 작업은 반드시 전시라는 형식에만 머물 필요가 없어요. 이것이 재단이 국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이유입니다.
재단을 단순한 미술관이 아닌 보다 넓은 개념의 문화 기관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앞으로 한국과도 좋은 프로젝트를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데요, 한국과의 협업에 대한 계획이 있을까요? 저 역시 같은 마음입니다. 현재 한국과 관련한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고, 가까운 시일 안에 다시 한국에서 좋은 협업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곧 오기를 바랍니다.
에디터 유은정(ejyoo@noblesse.com)
사진 까르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