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자화상
<아트나우>가 이번 호부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국내외 작가의 대표작을 감상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로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화가 천경자의 작품 3점을 감상하며 그녀의 슬픈 내면과 꿈, 여행, 사랑과 환상의 세계를 살펴봅니다.
천경자(1924~2015년)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여성 예술가로 독자적 채색화 양식을 구축했다. 전라남도 고흥에서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전남여고의 전신인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수학했다. 1955년 대한미협전에 ‘정(靜)’을 출품해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1954년부터 1970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남태평양, 아프리카, 인도, 유럽, 남미 등을 여행하며 그린 수많은 스케치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으로 화가이자 문필가로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1940~1990년대에 그린 작품 90여 점을 1998년 서울시에 기증했으며 이 가운데 일부 작품과 유품을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실에 상설 전시하고 있다.
사랑과 환상이 담긴 작품
‘생태’
생태, 종이에 채색, 51.5×87cm, 1951,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가 27세에 그린 ‘생태’는 당시 화단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한국화지만 화려한 색채를 사용했고, 뱀을 관찰해 자세히 표현했죠. 이는 습작 시절의 일본화풍에서 작가만의 몽환적인 화풍을 만들어가는 과도기에 그린 작품입니다. 뱀은 ‘생태’ 이후에도 간혹 작품의 모티브로 등장합니다 . 그런데 왜 하필 뱀이었을까요? 천경자에게 뱀은 향기로운 찔레꽃 아래를 지나가는 환상적인 모습으로 비쳤고, 어린 시절 친구를 죽게 한 위험한 동물이기도 했습니다. 작품 속 뱀은 큰 구렁이나 백사와 같은 영물이 아니라, 초록빛 바탕에 붉고 노란 점이 마치 꽃무늬처럼 아로새겨진 매혹적인 존재죠. 뱀에 매료되어 그리기를 반복할 즈음, 그녀의 여동생이 죽었고 아버지 역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생활고 속에서 천경자는 더욱 뱀을 그리는 데 몰두했습니다 . 어느덧 서른세 마리의 뱀이 화폭에서 꿈틀거렸지만, 그녀가 환상의 연인으로 설정한 뱀띠 남자의 나이가 35세였기 때문에 사랑을 나누는 두 마리의 뱀을 더 그려 넣었습니다. 이렇게 ‘생태’는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환상과 현실이 뒤섞여 탄생했습니다. 그녀는 처음에 화려하고 치명적인 독을 품은 뱀을 그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을 관찰하다 보니, 둥근 눈이 마치 개구리의 알처럼 동글동글하고 사랑스럽게 보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생태’ 속 뱀들은 독을 품은 위험한 존재도, 신성한 대상도, 징그러운 파충류도 아닙니다. 그저 한 여인의 욕망과 사랑이 뒤엉킨 대상입니다.
작품 속으로
‘생태’로 젊은 여성 작가는 화단에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 작품은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한국적 예술을 찾고자 한 당시 미술계에서 매우 예외적 존재였습니다. 당시에는 수묵화에 강한 채색을 쓰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동의사항 이었습니다. 누구도 화려한 색을 사용한 일본화를 연상시키길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경자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녀가 그리고자 한 화사한 뱀은 수묵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초록빛과 붉은 점, 그리고 배에 감도는 노란빛 색채는 꿈틀거리는 몸짓 , 날름거리는 혀와 더불어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꼭 필요했습니다. 작품 속 뱀의 비늘은 짙은 유화물감이나 반짝거리는 아크릴물감이 아니지만 그 어떤 재료보다도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생태’는 먹의 농담과 준법으로 표현하던 수묵화의 전통을 넘어, 먹이 동양화의 기본이라 생각하던 문인화식 회화와는 다른 세계를 제시하며 화단의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뜨렸습니다. 천경자는 그렇게 한국화에 채색을 더해 환상을 그린 독보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작가의 몽환적 공간
동서양의 회화를 막론하고 뱀만 화폭에 담아낸 예는 거의 없습니다. 뱀은 일반적 통념으로도 혐오스럽고, 신화적으로도 그리 복된 동물은 아니죠. 하지만 천경자는 화폭 가득히 뱀을 담았습니다. 화폭의 뱀들에게는 욕구가 꿈틀거립니다. 이런 생동감은 윤곽선과 비늘의 형태를 이루는 농담, 운필이 느껴지는 선, 살갗의 색채에서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 정지되어 있음에도 우리 눈앞에서 실제로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고 ‘쉭쉭 ’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그녀가 이 그림에 ‘생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자연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뱀의 생명력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강렬함에 매혹되기 시작하면 천경자가 그러했듯 우리도 현실을 잊게 됩니다. 이 그림을 마주하고 선 장소나 그전까지 느낀 기쁨 혹은 슬픔의 감정을 잊은 채 뱀의 꿈틀거림을 바라보게 됩니다. 현실과 꿈이 뒤섞여 모든 감정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초현실적인 공간이 바로 그녀가 창조한 몽환적 세계입니다. 그 움직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작가의 정서에 공감해보기 바랍니다.
글. 허나영(미술평론가)
거울과도 같은 그림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종이에 채색, 43.5×36cm, 1977, 서울시립미술관
한 여인을 마주한 채 한참 서 있었습니다. 창백한 얼굴의 그녀는 말없이 정면을 향하고 있었죠. 똬리를 튼 뱀을 네 마리나 머리에 이고 빛바랜 장미꽃을 든 모습이었습니다. 목은 유난히 길었고, 가냘픈 어깨는 숱이 많은 긴 머리카락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더군요. 눈동자의 빛깔은 머리색과 같았습니다.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눈이었죠. 흔들림 없이 앞을 똑바로 응시하는 시선 탓이었을까요. 꽤 오랜 침묵이 흐르는 사이, 그녀에게서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제가 대면한 그녀는 바로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의 여인입니다. 50대 화가 천경자가 자신의 22세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자화상이죠. 이 작품에서 그녀는 연약해 보이지만 현실의 고통을 견뎌내고자 하는 자아를 이미지로 구현해냅니다. 천경자의 그림에는 자전적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에게 그림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거울 경(鏡)’이란 화가의 이름자처럼 말이죠.
작품 속으로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에서 화가는 30여 년 전 자신의 모습을 정교하고 세밀한 붓 터치로 묘사합니다. 그림 한 점을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화가의 꼼꼼한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우선 천경자 작품 세계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색채에 주목해볼까요. 화가는 아교와 안료를 혼합해 여러 겹 붓질을 올렸고, 석채(石彩) 물감을 사용해서인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짝거리는 부분도 있습니다. 짙푸른 청색을 배경으로 그린 여인은 옅은 하늘색 상의를 걸치고 있습니다. 여인의 얼굴, 옷, 배경의 푸른색이 화폭을 지배하며 서늘한 슬픔의 감정을 전합니다. 이런 차가운 느낌의 색상과 대조를 이루는 것은 뱀과 여인의 입술, 장미의 붉은 색조입니다. 청색과 주홍색의 두드러진 대비가 화면 전체에 생동감을 부여하죠. 특히 이 자화상은 천경자가 즐겨 그린 뱀, 꽃, 여인이 모두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뱀은 천경자의 녹록하지 않은 삶과 그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그녀를 지키는 수호신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꽃잎부터 꽃받침, 줄기까지 온통 연한 핑크빛인 장미는 퇴색한 사랑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나타냅니다.
슬픔이 지닌 아름다움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라는 제목은 천경자가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그린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1976년)의 제목과 연관됩니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화가가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1년 동안 매달린 그림입니다. 두 그림은 자화상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하나는 비교적 소규모의 단독 인물상인 반면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의 자연풍경, 동물, 여인으로 구성된 130×162cm 크기의 대작입니다. 글쓰기에도 조예가 깊은 천경자는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라는 수필집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녀는 ‘내 슬픈 전설’이라는 표현이 왠지 맘에 들었다고 합니다. 22세의 천경자는 불행한 결혼 생활과 출산, 가난 등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젊은 날의 고통에 대한 회상을 이 그림으로 형상화한 거죠. 어찌 보면 인간에게 글을 쓰게 하고, 붓을 들게 하는 감정은 슬픔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슬픔을 통해 우리는 내면에 집중하고 인생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얼마 전 작고한 신영복 선생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썼듯, ‘기쁨보다는 슬픔이, 즐거움보다는 아픔이 우리들로 하여금 형식을 깨뜨리고 본질에 도달하게 하며 환상을 제거하고 진실을 바라보게’ 합니다. 화가 천경자에게도 슬픔은 소중한 감정이었습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은 슬픔 앞에서 무너지기보다 그림을 통해 극복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슬픔은 눈물이 아니라 내부로 응축하는 힘, 딛고 일어설 대지와 같은 것이었죠. 천경자는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에서 고독과 우수, 애상의 정조를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킵니다. 우리는 슬픔 안에서 별처럼 은은한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을 봅니다.
글. 김보라(미술평론가)
여행을 통해 얻은 감성
‘이탈리아 기행’
이탈리아 기행, 종이에 채색, 90.5×72.5cm, 1973, 서울시립미술관
요즘은 해외여행이라는 것이 대수롭지 않지만,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1969년 45세의 나이에 세계 여행을 시작한 천경자는 70세가 될 때까지 열세 차례나 긴 해외여행을 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여행’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화두입니다. 천경자는 거의 실시간으로 여행의 일화를 신문에 연재했고, 또 여러 차례 자전적 수필집을 통해 여행의 후일담을 공개했습니다. 가부장적 시대를 산 한국의 여성 작가에게 해외여행의 의미는 매우 각별했습니다. 나혜석, 박래현 등도 세계 여행을 통해 가치관을 재정립하며 새로운 작품을 시도했죠. 특히 천경자는 홀로 여행하는 걸 선호했고, 계획보다는 감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일정을 변경했다고 합니다.
작품 속으로
천경자의 여행 그림 중에는 이국의 풍물을 마치 사진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기행’은 그림 속 또 다른 그림을 통해 여행지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중앙에는 보티첼리 화집의 표지가 자리 잡았고, 오른편에는 성화 이미지를 인쇄한 엽서, 왼편에는 스케치북에서 뜯어낸 성당 그림이 있죠.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파편처럼 그림 안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여행 직후가 아니라 3~4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린 작품입니다. 여행의 경험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돌아보게 되는 시기죠. 천경자는 묘사력이 좋고 색채를 풍부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동양 화가라는 점을 간과하곤 합니다. 특히 ‘이탈리아 기행’이란 소재는 이젤에 캔버스를 세워놓고 그려야 어울릴 것 같죠. 하지만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 복원돼 있는 화가의 작업실을 보면, 그녀는 바닥에 종이를 깔고 전통적 동양화 재료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재나 화면 구성 방식에서 서구 미술의 영향이 역력하지만 명암이나 필치에서는 동양화의 기법이 엿보입니다. 지금은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이 뭐 그리 중요한가 싶지만, 당시만 해도 전통적 동양화는 수묵을 중심으로 한 추상화가 대세였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르네상스 작품을 접한 그녀는 자신감을 갖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 후 그녀는 보티첼리의 작품 속 아름다운 플로라처럼 환상적인 그림을 계속 그리겠다고 다짐합니다.
은밀한 추억을 상상하며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주조색은 살짝 빛이 바랜 분홍입니다. 왼편으로 몽환적인 하늘색 꽃다발을 배치해 더욱 꿈결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죠. 그리고 스카프와 은회색 액세서리가 화면을 잔잔하게 가로지릅니다. 여행지의 낭만에 잔뜩 취해 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기분 좋게 하나씩 풀어 무심히 벗어 던져놓은 것처럼 말이죠. 자그마한 술병 하나, 연두색으로 바탕을 칠한 트럼프 카드 등 비밀스러운 사연을 간직한 것 같은 개인적인 사물도 자리잡았습니다. 봄기운이 샘솟는 보티첼리의 그림 옆에 트럼프 카드 한 장 그려 넣는다면 당연히 다이아도, 클로버도 아닌 하트가 합당할 것 같습니다 . 아름다운 이탈리아 여행이 그녀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여신 비너스를 깨웠는지도 모릅니다. 노란 장갑 밑에서 살포시 웃는 입술은 그리 수다스럽지 않게, 소곤소곤 욕망을 속삭입니다. 노란 장갑에서 조금 시선을 돌리면 손톱을 새빨갛게 칠한 발가벗은 손 하나가 있습니다. 만약 장갑이 없었다면 ‘발가벗은 손’이라는 표현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겠죠. 이탈리아 여행을 회상하는 몽환적인 그림 한 점이 은밀한 사연을 누설하는 것 같습니다 . 천경자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예전 작품들을 다시 보며, 그녀의 멋진 여행이 저세상에서도 계속되기를 기원합니다.
글. 신혜성(미술평론가)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