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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새로 쓰다

ARTNOW

당신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리 시대 최고의 여성 작가 5인이 있다. 언젠가 미술사의 거장으로 한 페이지를 장식할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Dana Schutz

페츨 갤러리에서 열린 < Fight in an Elevator >전 전경. Shaking out the Bed, 캔버스에 유화물감, 289.6×542.9cm, 2015(왼쪽),
Fight in an Elevator, 캔버스에 유화물감, 243.8×228.6cm, 2015(오른쪽)

데이나 슈츠(1976년생)는 2002년 뉴욕의 LFL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 < Frank from Observation >에 출품한 12점의 작품으로 뉴욕 미술계의 신데렐라가 됐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리고 싶었던 그녀는 ‘지구의 유일한 생존자 프랭크’라는 가상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그를 작품의 주제이자 대상으로 삼았다. 또 다른 생존자는 화가인 그녀 자신. 이 시리즈는 ‘멸망한 세상에서 과연 예술(회화)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과감한 표현주의적 붓 터치와 이글거리는 색채로 회화의 존재 가치에 관한 물음을 유쾌하게 풀어낸 그녀의 작품은 ‘남성=화가, 창조자’ vs ‘여성=모델, 피조물’이라는 미술사의 낡은 역할 모델을 뒤집는 시도이기도 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팔과 다리, 얼굴을 뜯어먹고 재생하는 카니발리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인물 시리즈로 메타 회화적 탐구를 이어가며 작가로서 입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회화의 역사를 그 붓질만큼이나 힘차게 써내려가는 그녀는 작품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내 그림은 다중적 이야기에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작품은 회화 장르의 안팎을 부유한다. 정물은 의인화하고, 초상은 이벤트가 되고, 풍경은 구조가 된다. 나는 구성과 분해, 유형과 무형, 무생물과 살아 있는 대상의 영역을 아우른다.” 추상이면서도 구상이고, 구상이면서도 추상인, 사실상 회화의 전 영역을 아우른다는 선전포고로 손색없겠다. 올해 플라토에서 열린 < 그림/그림자 >전에 그녀의 작품 3점을 출품해 그 에너지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지난가을, 뉴욕의 페츨(Petzel)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 Fight in an Elevator >에서는 큐비즘의 유산을 재해석한 듯 캔버스의 물리적 경계와 힘겨루기를 하는 분열된 인물이 등장하는 신작을 대거 선보였다. 현재 몬트리올 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Geumhyung Jeong

기계적 문제, 퍼포먼스, 2010
ⓒ Geumhyung Jeong

7가지 방법, 퍼포먼스, 75분, 2008
ⓒ Geumhyung Jeong

피트니스 가이드, 퍼포먼스, 50분, 2011
Photo by Youngkyo Choi
ⓒ Geumhyung Jeong

정금형(1980년생)은 한국 동시대 아트 신에서 그 어떤 여성 작가도 시도한 적 없는 육체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11월 8일 막을 내린 <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 >전(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피트니스 가이드’는 각종 기계장치와 사물을 ‘상대역’ 삼아 일련의 유사 성애 몸동작을 구사하는 그녀의 작품 세계가 잘 드러나 있다. 헬스장의 운동기구를 포함해 진공청소기, 자위용 풍선 인형, 비디오카메라, 굴착기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왔다. 작가 잭슨 홍이 디자인한 오브제와 듀엣으로 공연한 ‘기계적 문제’는 평범한 사물에서 성적 에너지를 부여할 만한 빈틈을 포착하고, 이를 일정한 몸짓으로 구현해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뽑아내는 그녀의 남다른 재능이 극대화된 작품 중 하나다. 분명 SM에 기반을 둔 (게다가 상대가 기계인) 포르노그래피적 행위임에도 무대 위 그녀의 담담한 표정과 서두름이 전혀 없는 느리고 정확하며 관능적인 몸짓을 보고 있으면, 한 편의 연애 스토리가 눈앞에 펼쳐지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올해 에르메스 미술상 수상자로 지목된 그녀의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단은 “신체와 성, 권력과 억압 등의 이슈를 전례 없이 창의적인 보디 퍼포먼스로 표현한다. (중략)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아나키스트적이어서,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고취시키고 강력한 매혹을 불러일으킨다”라고 평가했다.

Taryn Simon

Chapter XI, A Living Man Declared Dead and Other Chapters I–XVIII, 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213.4×301.6cm, 2011
ⓒ 2012 Taryn Simon

White Tiger(Kenny), Selective Inbreeding Turpentine Creek Wildlife Refuge and Foundation Eureka Springs, Arkansas,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94.6×113cm, 2007
ⓒ 2007 Taryn Simon

A.31 Bibi Dahl(Lynn-Holly Johnson), 1981, 알루미늄 프레임과 포장한 매트에 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39.8×26.5cm, 2013
ⓒ 2013 Taryn Simon

테린 사이먼(1975년생)은 방대한 리서치 작업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그녀는 TED 강연에서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연작 ‘An American Index of the Hidden and Unfamiliar’를 이렇게 소개했다. “내 사진 작업의 90%는 사진 찍는 일이 아니다. 편지 쓰기 캠페인, 연구 조사, 전화 걸기 등이 포함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녀가 던지는 메시지는 아주 명쾌하다. 작가나 관람자의 의도, 제시한 문맥에 따라 사진에서 다른 진실을 볼 수 있다는 것. 제목처럼 미국의 숨겨진 낯선 풍경을 사진과 텍스트로 목록화한 이 작품은 2008년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소개했다. 대단히 남성적이고 건조한 사진 미학을 대표하는 독일의 ‘유형학적 사진’에 뿌리를 둔 방법론은 이후 발표한 연작에서도 이어진다. 그녀는 20세기 추상미술의 아이콘인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과 같은 크기의 사물을 모으고 다큐먼트화하거나, 한 집안의 가계를 추적해 전통 초상 사진의 문법으로 재구성하고, 미국에 반입 금지된 1075개의 물품을 기록했으며, 뉴욕 공립 도서관의 이미지 아카이브를 활용해 인간의 아카이브 욕망을 파헤쳤다. 또한 미국의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가 카리브 해 지역에서 발견한 새를 분류하기 위해 적용한 방법을 여성·무기·자동차로 확장하고, 루이 비통 재단의 지난 역사를 추적해왔다. 그녀가 범주화와 분류법의 시스템에 따라 완성한 작품은 각종 이미지를 종합해 서구 문명의 정신과 문화를 추적하려 한 아비 바르부르크의 원대한 프로젝트 ‘므네모시네’의 현대판 (여성 작가) 버전이라 할 만하다.

Hito Steyerl

How not to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MOV File, 싱글 스크린 1080p MOV 파일, 14분, 2013.
스틸 컷 속 인물이 작가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Wilfried Lentz Rotterdam

Factory of the Sun, 1채널 비디오, HD 비디오 Pro Rez.MOV 파일, 23분, 2015
Photo by Manuel Reinartz ⓒ Hito Steyerl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미국 뉴욕의 아티스츠 스페이스(Artists Space)에서 열린 히토 슈타이에를 개인전 전경. 2004년 이후 현재까지 제작한 주요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히토 슈타이에를(1966년생)은 포스트-인터넷 시대에 이미지가 지닌 위계, 진실성과 허구성, 유동성과 이변성 등의 문제를 탐구한다. ‘하나의 이미지가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고, 전환되고, 재생산되고, 유포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작품의 주제로 삼고 미술과 자본주의·정치·군국주의, 가상과 현실의 관계를 폭로한다. 모션 캡처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촬영한 작품은 일견 아마추어적이고 조악해 보이지만, 그 자체로 디지털 시대에 기술적 전치 과정을 거쳐 ‘저질’ 상태로 무한 부유하는 이미지의 삶을 은유한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참여해 발표한 비디오 설치 작품 ‘Factory of the Sun’은 컴퓨터 게임의 형식을 차용해 대중매체를 통한 사회적·문화적·경제적 왜곡, 디지털 상태에서 정보의 흐름 등을 다뤘다. 관람객은 가상현실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어둠의 전시장에 마련한 비치 의자에 누워 작품 속 댄스 배틀을 즐겼다. 베를린의 예술대학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는 교수인 그녀는 관련 분야의 이론가로서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 e-flux > 저널에 발표해온 에세이는 동시대 작가와 큐레이터에게 중요한 읽을거리로 꼽힌다. 그녀는 < 아트리뷰 >가 전 세계 아트 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Power 100’에서 올해 18위(작년은 47위)를 차지했다. 전체 순위에서 작가로는 아이웨이웨이(2위), 마리나 아브라모비츠(8위), 볼프강 틸만스(11위), 제프 쿤스(14위) 다음으로 높은 순위다.

Tauba Auerbach

The New Ambidextrous Universe II, 폴리우드, 121.9×243.8cm, 재구성, 2013
ⓒ Tauba Auerbach, Courtesy of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토바 아워백(1981년생)이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살펴보면 작가가 아니라 수학자나 과학자 같다. 자신은 “2차원과 3차원의 경계적 상태”를 다룬다면서 그 주제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넘어 존재하는 새로운 차원의 스펙트럼과 다차원적 풍성함”이라고 설명한다. 회화, 사진, 책 디자인, 조각, 설치, 악기 등의 매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녀는 추상미술의 전통에 수학과 과학에서 받은 영감을 혼합해 시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결, 주름, 점무늬, 로 비트 그래픽스, 소음, TV 화면 잡음 등이 그녀가 재료로 다루는 시각적 기호.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시각 미술을 공부한 작가는 활자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초기에는 기표와 기의, 색과 형태의 관계, 시스템으로서 기호와 물질로서의 언어를 탐구한 그래픽 사인 작품을 발표했다. 2009년부터 제작한 대표 연작 ‘Fold’는 미술사의 눈속임 기법(trompe l’oeil)을 활용한 회화 작품이다. 캔버스를 접고 비틀어 주름을 만든 다음 다시 편평하게 펴 산업용 분무기로 페인트칠을 한 표면에는 3차원의 입체적 환영이 나타난다. 이 연작은 ‘지각의 현상학’을 실험한 옵아트와 미니멀리즘의 유산을 확장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빛의 삼원색인 적·녹·청을 혼합해 나타나는 모든 컬러 모델을 인쇄 매체로 변형한 큐빅 형태의 책 조각 ‘RGB Colorspace Atlas’, 수학·과학 저술가 마틴 가드너가 쓴 동명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 대칭과 비대칭의 관계를 탐구한 조각 ‘The New Ambidextrous Universe’ 연작을 발표했다.

Untitled(Fold),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나무 스트레처, 182.9×137.2cm, 2013
ⓒ Tauba Auerbach, Courtesy of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The Whole Alphabet, From the Center Out, Digital, V, 나무 패널에 고정한 종이에 과슈와 연필, 76.2×55.9cm, 2006
ⓒ Tauba Auerbach, Courtesy of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