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아랍의 문화 수도를 밟다

ARTNOW

아랍 및 중동의 국공립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개최한 한국 전시를 <노블레스>와 <아트나우>가 후원했다. 전시 오픈 당일 직접 방문해 아랍과 한국 현대미술의 뜻깊은 첫만남, 그 순간을 함께했다.

정효진의 ‘붉은 색의 흰장미’(2015)

전가영의 벽화 설치 작품 ‘가영.드로잉’(2015)

스테피 바우가 홍영인과 협업한 ‘평행의 목소리’(2015)를 걸프 투데이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옷칠 장인 손대현과 협업한 가하다 다의 ‘오리엔트’(2015)

‘아나(ana)’, 나를 찾는 교감
샤르자가 중동의 문화 예술 중심지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것은 이 토후국을 통치하는 알 카시미 집안의 예술 사랑 덕분이다. 아랍 최초의 한국 현대미술 전시를 개최한 마라야 아트 센터(Maraya Art Centre) 역시 정부 건물에 위치하며 보두르 빈트 술탄 알 카시미 공주(Sheikha Bodour bint Sultan Al Qasimi)가 회장을 맡고 있는 비영리 미술 기관.
‘아나: 잠시만 눈을 감아보세요’란 제목의 이번 전시는 아랍어로 ‘나’를 뜻하는 ‘아나’가 주제.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하며 존재를 탐구한 작업을 모았다. 한국 작가 12명과 아랍 작가 1명, 그리고 협업을 통해 참여한 한국의 무형문화재 장인 등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관람객 개개인과 만나 스스로의 자아를 들여다보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전시가 개막한 10월 21일, 오프닝 행사에는 알 카시미 집안의 파힘 빈 술탄 빈 칼리드 알 카시미 왕자(Sheikh Fahim bin Sultan bin Khalid Al Qasimi)를 비롯한 로열패밀리와 컬렉터, 미술 관계자들이 참석해 전시 오픈을 축하했고 매 작품을 진중하게 감상하며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였다.
미술관에 들어서서 처음 마주한 작품은 차학경의 영상 작품 ‘입에서 입으로’(1975년). 뉴욕에 살았던 그가 이방인일 수밖에 없던 자아를 노이즈로 가득한 화면과 무언가를 뱉어내려는 입술의 형상을 통해 전한다. 여기에 김인근 작가의 사운드 작품 ‘몰림 행동 II’(2015년)이 소리를 더한다. 밴드 피터팬 컴플렉스를 통해 음악 활동도 하고 있는 김인근은 자신의 콘서트 현장에서 담은 관객의 함성으로 차학경의 관념적인 외침을 전복시켰다. 다음 전시 공간으로 이동하니 또 하나의 영상 작품, 이수경 작가의 ‘쌍둥이 춤’(2012년)이 눈에 들어온다. 여인의 춤사위로 정체성에 대한 고찰을 담은 작품. 이 작품 외에도 그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나의 아시안 모던 마스터스’(2015년)를 제작했다. 아랍 근대 회화의 어머니인 파흐렐니사 자이드의 1981년 작 ‘신의 가호’를 모사함으로써 당시의 모더니즘을 경험하는 수행적 작업을 한 것. 또 다른 수행적 작업을 한 작가로 전가영이 있다. 그녀는 전시장의 15m에 이르는 벽면 전체를 17만 6956개의 작은 큐빅으로 나눈 뒤 색을 채운 ‘가영.드로잉’(2015년)을 그렸다. 자신이 구축한 질서 내에서 색감과 조형적 요소를 결합하고 그 안에 세계를 담은 것이다. 이 작품의 맞은편에 걸린 거대한 회화는 홍순명 작가의 ‘사소한 기념비’(2015년). 그는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팽목항을 찾아 그곳에 버려진 수많은 잡동사니를 가져왔고 그것을 조각 작품으로 만든 뒤 다시 거대한 정물화로 탄생시켰다. 작가의 시대정신이 창작 활동과 만난 숭고한 결과물이다. 전시장 가운데에 자리한 김주연 작가의 ‘이숙’은 자연의 생명성과 우주의 법칙을 느끼게 하는 설치 작품. 여러 개의 산업용 나무 팔레트와 7000장의 걸프 투데이(Gulf Today) 일간지로 만든 조형적 구조물에서 수천만 개의 씨앗이 발아하고 시간이 지나며 소멸한다. 세상 일체의 사물은 항상 변화한다는 불교 철학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그 밖에도 정효진 작가가 아랍에미리트를 배경으로 제작한 퍼포먼스 비디오 연작과 홍영인 작가의 자수 작품을 바탕으로 두바이에서 활동하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스테피 바우(Steffi Bow)가 완성한 ‘평행의 목소리’(2015년)도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작품으로 시선을 끌었다. 또 사우디 출신 작가 가하다 다(Ghada Da)는 지난봄 한국에 머물며 옻칠 장인 손대현과 협업한 작품을 공개했다. 전시는 별도의 공간에서 진행하는 ‘시크릿 시네마’로 이어진다. 김인근 작가가 이끄는 아티스트 그룹 레드카펫정신의 ‘내 앞’(2015년), 전소정 작가의 ‘마지막 기쁨’(2012년), ‘12개의 방’(2014년), ‘보물섬’(2014년), 김아영 작가의 ‘PH 익스프레스’(2011년),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셸 3’(2015년), 유현미 작가의 ‘그림이 된 남자’(2009년) 등을 전시 기간 동안 일주일에 2회 상영한다. 불 꺼진 공간에서 영상과 마주하며 ‘아나’에 대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 또한 특별한 교감의 순간이다.
전시가 오픈하고 며칠 뒤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영국 킹스 대학의 인문학 축제인 킹스 문화 축제(King’s Arts and Humanities Festival)에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영상 작품을 상영했고, 이 전시를 기획한 구정원(JW Stella) 큐레이터가 ‘문화의 생산과 정체성의 큐레이팅(Fabricating Culture and Curating Identity)’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에 참석해 전시에 대한 발표와 토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것. 샤르자에서 개최한 한국 전시를 유럽에 소개하면서 소통의 장이 더욱 확장되고 있다. 역사와 세계 속의 ‘나’를 바라보게 하는 명상적이고 아름다운 전시는 1월 2일까지 계속된다.

이수경 작가의 ‘나의 아시안 모던 마스터스 – 파흐렐니사 자이드’(2015)

생동감 넘치는 샤르자의 아트 신
인구 100만 명에 서울 면적의 4배인 샤르자는 아랍의 문화 수도답게 규모도, 주제도 다양한 미술관을 찾을 수 있다. 마라야 아트 센터 외에도 20개에 가까운 문화 예술 공간이 도시 곳곳에 자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흥미로운 전시는 계속되고 있다. 작열하는 중동의 태양 아래 무기력한 도시의 분위기를 상상했다면 오해다. 미술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펼쳐지는 예술 세계는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신선하고 다채롭기 때문이다.
< 아나: 잠시만 눈을 감아보세요 >전이 개막한 날, 마라야 아트 센터의 또 다른 공간에서는 바르질 아트 파운데이션(Barjeel Art Foundation)의 < Walls and Margins >전이 오픈했다. 물질적이거나 이념적인 장벽을 미술을 통해 드러낸 전시로, 바르질 아트 파운데이션이 중동에서 가장 광범위한 아랍 현대미술 컬렉션을 갖춘만큼 다채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내년 2월 1일까지 이어진다. 또 근처에 있는 ‘1971 디자인 스페이스’에서 12월 26일까지 열리는 < De.Fash.Struction >전은 패션을 중심으로 아랍의 문화를 조명하는 전시. 규모는 작지만 독특한 의상 작품이 패션과 디자인에 관심 있는 이들의 발길을 이끈다. 언제 들러도 좋은 ‘샤르자 아트 뮤지엄(Sharjah Art Museum)’도 빼놓을 수 없다. 중동 작가들의 작품과 아랍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유럽 작가의 작품을 전시해 아랍의 문화적 정취를 느끼기에 적격이다.

전시 오프닝에 참석한 샤르자의 왕자와 작품을 설명하는 김주연 작가

‘쌍둥이 춤’ 앞에 선 이수경 작가와 마라야 아트 센터의 디렉터 쥐세페 모스카텔로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