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가까이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나누는 연인의 키스. 각기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명화 속 남녀의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연인들 Ⅱ’
르네 마그리트 (1898~1967년)
1898년 벨기에 에노 주(州) 레신에서 태어났다. 브뤼셀의 미술학교에서 수학한 후 벽지와 포스터, 직물, 광고 디자인에 종사하다 1926년 라 상토르 갤러리(Galerie la Centaure)와 전속 계약을 맺으며 전업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때 파리로 이주해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 폴 엘뤼아르(Paul Eluard)와 교유했고 초현실주의 운동에 가담했다. 1930년 귀국 후에는 주로 브뤼셀에 머물면서 그만의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언어와 이미지에 관한 철학적 사고에 바탕을 둔 그의 그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광고와 디자인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등에 영향을 미쳤다.
Rene Magritte, The Lovers Ⅱ, Oil on canvas, 1928, New York, The Museum of Modern Art
ⓒ Rene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15
이미지를 통한 사유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앨범 재킷 디자인이나 광고 이미지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울 시내 모 백화점 외벽에서 마그리트의 그림을 볼 수 있었죠. 그의 작품은 명확한 묘사로 재현한 대상을 비현실적으로 조합하거나 낯선 상황 속에 제시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보긴 쉽지만 그 의미를 한눈에 파악할 수는 없다는 역설이 존재하죠. 마그리트는 “나는 회화를 통해 사유를 가시화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림 앞에서 질문하고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의 작품이 지닌 매력입니다. ‘연인들 Ⅱ’ 역시 사랑이라는 감정을 둘러싼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입니다. 마그리트의 다른 작품처럼 한번 보면 잊기 힘들 만큼 강한 인상을 주죠. 얼마 전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감독의 영화 <위로공단>을 보면서도 이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정작 감독은 마그리트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더군요. 하지만 하얀 천으로 머리를 감싼 두 여인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서 마그리트의 그림을 생각한 사람이 저만은 아닐 겁니다. 그만큼 마그리트의 작품이 우리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는 뜻이겠지요.
감상 포인트
‘연인들 Ⅱ’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전체적으로 매우 단순한 구성입니다. 배경은 정면에 넓게 배치한 진청색 벽과 오른편의 붉은색 벽이 대비를 이루고, 위쪽에 천장과 벽을 나누는 하얀색 몰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몰딩이 뒤쪽 청색 벽면까지 이어지지 않아 두 벽이 분리된 느낌을 줍니다. 이처럼 실내라는 것을 암시하는 상황에서 머리에 천을 쓴 남녀가 키스하고 있습니다. 남성은 넥타이를 맨 검은 양복 차림이고 여성은 민소매의 붉은 옷을 입고 있네요. 화면 오른쪽 하단에는 검은색으로 ‘Magritte’라는 서명이 쓰여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입맞춤으로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남녀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마그리트는 이 강렬한 몰입의 순간에 빠진 연인에게 회색빛이 도는 흰색 천을 씌워놓았습니다. 그 천은 두 사람의 얼굴과 목을 완전히 덮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 화가는 무엇을 전하려 했을까요? 맹목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는 허위와 가식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결코 서로에게 도달할 수 없는 한계를 전하려 한 걸까요? 그림 그리는 철학자 마그리트는 결코 명쾌한 답을 주는 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천이 무언가 연인 사이에 놓인 장애물을 상징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마그리트는 1928년부터 1930년까지 이처럼 천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의 모습을 수차례 그렸습니다. 그가 파리에 머문 1927년과 1928년에 그린 ‘연인들’ 시리즈는 총 4점인데, 그중 베일을 쓴 남녀를 그린 것은 ‘연인들Ⅰ’과 ‘연인들 Ⅱ’ 2가지 버전이 존재하죠. 한때 브뤼셀의 마그리트 집에서 몇 개월간 함께 생활했고 그에 대한 대표적 연구서를 출간한 미술사학자 수지 개블릭(Suzi Gablik)에 따르면, 머리를 천으로 덮은 이 설정에 대해 2가지 출처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영화의 스틸 이미지고, 다른 하나는 마그리트가 어린 시절에 겪은 어머니의 자살입니다. 마그리트가 한때 열광한 영화 <팡토마(Fantomas)>에서 스타킹이나 헝겊을 쓰고 도망치는 완전범죄자의 이미지, 또는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겁니다. 당시 13세인 마그리트는 강물에서 건져 올린 어머니의 시신을 직접 봤다고 합니다. 그때 얼굴은 옷자락으로 덮여 있었다고 하죠. 그 이미지에 대한 기억이 소년 마그리트의 뇌리에 얼마나 강렬하게 남아 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가 자신은 그 연관성을 부정했다고 하네요. 문화사학자 스티븐 컨(Stephen Kern)은 저서 <사랑의 문화사(The Culture of Love: Victorians to Moderns)>에서 입맞춤의 불완전함을 매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연인들 Ⅱ’에 주목합니다. 또한 이 그림이 시야를 가로막음으로써 오히려 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작품이라고도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은 분을 만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 후에야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는지 느꼈다고 하더군요. 눈을 뜨고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죠. 여러분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잘 보고 있나요?
글. 김보라(미술평론가)
‘키스’
로이 릭턴스타인 (1923~1997년)
미국 팝아트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는 만화의 간결한 선과 절제된 색채의 표현력에 주목해 추상회화의 견고한 조형 요소로 끌어들였다. 그의 유화는 검은 윤곽선과 형태를 메우는 기계적 망점, 환등기를 이용한 빛바랜 색감이 특징이다. 또한 팝 문화에 나타난 전형적인 기호에 대해 냉정하면서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1960년대 초 만화, 영화, 드라마, 광고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을 그렸으며 1965년부터 1966년까지는 넓은 붓 자국을 만화 스타일로 표현한 대규모 연작을 제작했다. 이후 세잔, 마티스, 피카소, 몬드리안 등 유럽 거장의 작품과 아르데코 디자인, 고대 그리스의 신전 건축과 정물화 등으로 관심과 표현 방식을 확장했다.
Roy Lichtenstein, The Kiss, Oil on canvas, 1961, Roy Lichtenstein Foundation
ⓒ Estate of Roy Lichtenstein / SACK KOREA 2015
응답하라, 키스
작품 속 연인이 애절하게 포옹을 합니다. 한껏 말아 손질한 금발 머리와 붉은 드레스, 옷 컬러에 맞춘 붉은 입술과 손톱, 그리고 하얗게 반짝이는 귀고리에서 단장한 여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반듯한 관모와 제복 차림에 위풍당당하게 노란 배지를 단 남자를 향한 강렬한 애정입니다. 그런 여인의 마음에 대한 화답인 양, 남자는 그녀를 꽉 움켜쥔 주먹으로 품에 끌어안습니다. 눈을 감은 연인은 숨조차 멎은 듯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도 좋을 순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네요. 두 사람이 재회한 장면인지, 이별하는 장면인지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화면 저 멀리 보이는 헬리콥터와 함께 관람객인 우리는 내심 연인을 향해 재촉합니다. 응답하라, 키스.
감상 포인트
남녀의 사랑과 애정 행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과 예술의 가장 일반적이면서 진부한 소재입니다. 그럼에도 연인의 입맞춤은 여전히 우리를 숨죽여 기다리게 하는 순간입니다. 드라마, 영화, 광고 등 덧없이 흘러가는 미디어의 이미지 홍수 속에서 반짝임의 시선을 던질 만한 한 컷이자 우리를 화면 앞으로 바짝 끌어당기는 인기 장면이죠. 화가는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진 연인에게 밀착해 전면 가득 그들의 모습을 담아냅니다. ‘행복한 눈물’로 잘 알려진 작가 로이 릭턴스타인의 ‘키스’입니다. 그런데 연인의 배후에 실루엣으로 처리한 헬리콥터가 그림자처럼 묘한 긴장감을 드리우며 포옹한 연인을 둘러싼 적막을 깨뜨리는 훼방꾼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포옹으로 멈춘 순간을 바라보며 강렬한 키스로 이어질 다음 장면을 기다리죠. 으스러질 듯 부둥켜안은 남자의 주먹과 흘러내리듯 매달린 여인의 붉은 입술이 절절함을 더합니다. 로이 릭턴스타인의 ‘키스’는 입맞춤을 간결한 선묘와 빨강과 노랑, 탈색된 푸른 색조로 무심한 듯 묘사한 그림입니다. 그러면서도 화면의 형상과 배경, 제목과 그림의 상황, 관람자의 관계를 단순하고도 긴밀한 대비로 연출합니다. 키스라는 새로울 것 없는 소재를 통해 섬세한 심리적 교감과 운동감,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입니다.
여운을 남기는 순간
로이 릭턴스타인의 ‘키스’는 1961년부터 시작한 연작의 첫 작품입니다. 1961년은 로이 릭턴스타인이 아들에게 그려준 그림 한 점으로 팝아트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는 앞서 10여 년간 추상표현주의자들과 동지 의식을 나누며 열정적인 활동을 펼쳤지만 1951년 첫 개인전에서 ‘쓸데없는 작가’라는 혹평을 받은, 그저 그런 추상화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1940~1950년대 당시 뉴욕 화단을 휩쓴 추상표현주의는 이미 진부해졌지만, 뉴욕 맨해튼 출신인 그는 화가로서의 야망과 유일한 성공 열쇠로 추상표현주의를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1960년 “아빠는 이런 그림 못 그리지?”라며 아들이 내민 만화 주인공 미키 마우스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로이 릭턴스타인은 추상표현주의라는 세련된 미인을 향해 맹목적인 열정을 쏟기보다는 천진난만한 미키 마우스를 사이에 두고 아들과 눈빛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61년 ‘이것 좀 봐, 미키(Look Mickey)’는 그를 새로운 현대미술의 중심에 올려놓습니다. 릭턴스타인은 같은 해에 ‘키스’ 연작을 그리며 우리에게 묻습니다. 대중매체가 쏟아내는 이미지의 아우성 가운데 지금 우리의 마음은 무엇과 어떤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 이 작품을 통해 진정으로 서로의 기쁨과 행복을 바라는 키스를 꿈꿔봅니다.
글. 조성지(미술평론가)
‘키스’
에드바르 뭉크(1863~1944년)
대표작 ‘절규’로 널리 알려진 에드바르 뭉크는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다. 그는 엄격한 청교도 집안에서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을 겪으며 암울하게 자랐다. 죽음이나 질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는데, 당시의 보수적 평단은 이를 지나치게 과격하고 도발적인 작품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병든 아이’, ‘마돈나’ 등 죽음이나 성 같은 근원적 주제를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은 이후 독일 표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말년에 자신의 작품을 오슬로 미술관에 기증했고, 현재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국민 화가로 알려졌다.
Edvard Munch, The Kiss, Oil on canvas, 1897, The Munch Museum
키스, 시각보다는 촉각
입맞춤을 주제로 한 여러 작품 중 추운 겨울날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 뭉크의 ‘키스’입니다. 파란 커튼을 드리운 창가에서 남녀가 부둥켜안고 있죠. 창밖에는 해가 밝지만 기온이 낮고 바람도 매서운 청명하고 추운 날씨로 보이네요. 실내가 그리 따뜻하지 않은 듯 키스하는 남녀도 옷을 두껍게 껴입었습니다. 창밖의 밝음과 실내의 어둠이 대조를 이루고, 배경의 푸른빛과 두 인물의 붉은 색조도 대비됩니다. 거칠게 뭉개진 붓 자국 사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남녀의 얼굴 윤곽을 알아볼 수 없을뿐더러 각자의 팔이 어떤 각도로 서로를 붙들고 있는지조차 애매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뭉뚱그려 그렸기 때문에 서로에게 완전히 녹아들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강렬히 전달됩니다. 보이는 게 많다면 우리는 오히려 어느 남녀의 키스 장면을 바라보는 관객이 될 겁니다. 하지만 뭉크의 그림 속 남녀는 감상자가 인물들에게 몰입하도록 합니다. 감정의 동요 없이 냉철한 시각으로 본다면 투박한 묘사가 마치 단점처럼 거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뭉크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움직인 손의 흔적을 촉각에 의지해 따라가보면 그의 의도와 감정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열정적인 키스를 할 때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것보다 눈을 감고 촉감에 집중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겠죠.
감상 포인트
뭉크는 자신의 여러 작품을 모아 ‘생의 프리즈(Frieze of Life)’라는 연작을 만들었습니다. 전시장에 작품을 걸 때도 연관성을 고려해 작품이 서로 연결되는 흐름에 신경 썼다고 하죠. 1918년 이 연작 전시에서 화가가 가장 먼저 언급한 작품이 ‘키스’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연작의 다른 작품과 아울러 뭉크 작품 전반의 공통된 주제에 접근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뭉크가 그린 여성상은 주로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이거나 남자를 유혹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팜파탈의 모습입니다. 뭉크의 작품 속 여성이 왜 이런 이미지인가에 대해서는 그의 일대기와 연계해 해석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나가 병으로 사망하자, 애정을 나눌 여성을 잃은 그는 크나큰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청년이 된 후에는 유부녀와 관계를 갖기도 했고, 좋아하던 여자와 자신의 친구가 결혼해 사는 걸 보며 괴로워하기도 했죠. 뭉크는 일생 중 오랜 시간 동안 여자를 향한 욕망에 두려워했고, 여자를 곁에 붙들어둘 수 없는 좌절감에 괴로워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여자 때문에 느끼는 과도한 불안감이나 극단적인 욕망, 강렬한 질투, 왜곡된 집착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키스’는 두 남녀가 포옹하고 있는 장면을 그리면서도 연애의 설렘이나 기쁨이 아니라 위태로운 불안 속 묵직한 격정을 보여줍니다.
로맨스의 양가성
뭉크의 ‘키스’에 등장하는 남녀 주위에는 정적이 흐르고, 시간마저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두 사람밖에 없는 듯 서로에게 몰입해 있죠. 사랑할 누군가를 만난 충만한 감정이 흘러나와요.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강렬한 욕망으로, 영원히 이렇게 붙어 있자는 약속처럼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하지만 절대적 관계는 충만감만큼이나 불안감을 자극합니다.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견고한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신이라는 존재를 잃을 수 있는 위험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겁니다. 두려움과 불안감이 밀려오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죠. 그림 속 여자는 남자 쪽으로 몸을 기댔는데, 남자의 하체 역시 여자 쪽으로 밀착되어 두 사람은 사선 형태로 서 있습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안정감을 주진 못하네요. 그렇지만 한 걸음 물러설 생각도 없이 더욱 가까이 밀착되기 위해 서로에게 파고드는 키스에 집중하고 싶은가 봅니다. 뭉크는 특정 모티브를 유화, 판화 등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하곤 했는데 ‘키스’ 역시 그렇습니다. 판화 작품에서는 배경을 생략하고 오직 두 사람의 단순한 실루엣만 남겨뒀습니다. 그 간결한 형상 속에 응축된 뭉크의 마음을 상상해봅니다.
글. 신혜성(미술평론가)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