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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치 그림으로 우주를 만드는 곳

ARTNOW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대표적 한국 작가 강익중. 그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뉴욕 차이나타운의 작업실은 소박한 듯 화려하고,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멋이 있다. 그와 그의 작품을 닮은 조화로운 공간이다.

큰 작품을 제작하거나 건조시키는 9층 작업실 뒷마당. 뉴욕 시청과 법원,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콘도 건물이 보인다.

Happy World, 나무 위에 혼합 재료, 2008~2015

강익중이 522개의 3인치 작품을 이어 붙여 만든 테이블, 윤정원의 플라스틱 샹들리에와 백남준의 작품이 놓인 거실

뉴욕 퀸스 뮤지엄 외관에 설치할 작품 ‘My favorite books’의 모형, 2017년 봄 완성 목표

많은 작가가 부러워할 만한 아틀리에네요. 이곳에서 작업한 건 언제부턴가요?
6년 정도 됐어요. 그 전에는 첼시, 바워리, 차이나타운 세 곳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여기로 옮겨오면서 다른 곳은 다 정리했죠. 그땐 바워리에서 목공 작업을 하고, 차이나타운에선 그림을 그리고, 첼시는 완성품을 가져와 보관하는 장소로 썼어요. 첼시 작업실은 전망도 참 좋았죠.
세 작업실을 하나로 합친 만큼 공간이 훨씬 넓어졌겠어요.
지금까지 쓰던 작업실 중 가장 크죠. 바워리 작업실엔 합판 한 장을 온전히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 잘라서 들였는데 지금은 트럭이 주차장으로 바로 들어오니 그때와 비교하면 아주 훌륭한 조건이에요. 한곳에서 모든 작업을 할 수 있으니 편하기도 하고.
1984년 프랫 인스티튜트로 유학을 떠난 뒤 정착했으니 뉴욕 생활도 벌써 30년이 넘었어요. 맨 처음 마련한 작업실은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처음 뉴욕에 개인 작업실을 마련한 건 학교를 졸업한 뒤 1987년이었어요. 차이나타운에 있었고 두세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는데 12년 동안 거기서 생활했죠. 그 뒤에 브루클린의 덤보로 옮겼다가 다시 차이나타운으로 돌아왔어요.
지금도 작업실이 차이나타운에 있는데, 이 동네를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첫 작업실에서 작업할 당시 동양인 작가들이 모이는 화요일 런치 클럽이 있었어요. 중국 작가가 대부분이었는데, 제가 브루클린으로 옮기면서 모임에 나가지 못하니 많이 아쉽더라고요. 그게 돌아온 가장 큰 이유고, 또 제가 이 동네를 좋아하기도 해요. 일단 맛있는 게 많죠.(웃음) 얼마 전엔 <타임아웃 뉴욕>에서 뉴욕의 젊은이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동네 1위로 차이나타운이 꼽혔더군요. 이젠 유럽인도 이 동네에 많이 들어와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대부분 중국인이지만 실제 거주자는 백인이 많아요.

조선시대 문인 석상(왼쪽)과 2009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전시한 24개의 달항아리(오른쪽). 거실에서 작업실 앞마당이 보인다.

각각 다섯 살과 9개월인 진돗개

그때의 화요일 런치 클럽은 계속 이어지고 있나요?
같이 만나던 중국 작가들이 너무 유명해져서 잘 모이지 못해요. 물론 여전히 자주 만나는 친구도 있지만요.
집이나 작업실이나 모두 사람과 인연이 있잖아요. 6년 전 이 작업실로 이사할 때는 어떤 인연으로 오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이곳이 원래 1930년대에 지은 은행 건물인데, 아내가 운영하는 부동산 개발회사에서 구입했어요. 맨 위 2개 층만 우리가 사용하고, 아래층은 모두 사무실이죠. 8층 남서쪽 코너가 제 작업실이고 9층에도 집과 함께 작업실이 있어요. 지하에는 별도로 작품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있는데, 거기가 원래는 은행의 금고였어요. 두꺼운 쇠문을 열어야 들어갈 수 있죠.
작업하면서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곳이 8층인가요?
맞아요. 위층에서는 주로 완성품을 촬영하거나 보관하고, 나무를 자르고 붙이는 등 먼지가 나는 작업은 8층에서 해요. 백남준 선생님께서 작업을 가내수공업에 비유하셨는데, 저도 가내수공업을 하듯 일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동안 이 건물에 살면서 작업해보니 어떤 면이 마음에 들던가요?
제가 하는 작업이 규모가 크니 작업실과 잘 어울리긴 해요. 또 생활 패턴과도 잘 맞아요. 하지만 여우는 여우굴에 살고 토끼는 토끼굴에 사는데 제가 이렇게 큰 곳에 살아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하곤 해요. 작업실 옆에 야외 정원이 있고 그곳에서 각종 채소를 길러요. 집에선 진돗개도 두 마리 키우죠. 늘 아침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정원에 나가 물을 주는 걸로 하루를 시작해요. 작업실은 아주 프라이빗한 공간이니 사람들에게 잘 보여주진 않고, 대신 손님이 오면 보통 정원에서 같이 식사를 하죠.

전시장으로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기록하는 9층 작업실

작업하다 쉴 때는 주로 뭘 하시죠?
보통 오후 3시 30분 정도엔 밖에 나가 커피를 마셔요. 또 걷는 걸 좋아해서 1~2시간 동안 수십 블록을 걷곤 해요. 최근에는 철봉을 하나 구해서 작업실에 세웠어요. 한 75세 할아버지가 철봉 턱걸이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는 걸 보고 저도 운동 삼아 시작해봐야겠다 싶었죠. 새로운 취미가 하나 생겼네요.
얼마 전 한국에 잠시 다녀가셨죠. 서울시립미술관의 <북한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최근작 ‘금수강산’은 3인치 그림이 모여 병풍처럼 두른 작품 아래 달항아리들이 강물 위로 떠다니더군요. 어떻게 구상하신 건가요?
강물은 임진강이고, 달항아리들이 모이고 흩어지길 반복하며 남북을 잇는 큰 동그라미를 이루는 연결성을 그렸어요. 작가는 언제나 비전을 던지는 사람이고, 전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학자는 낚시하듯 끌어올리고, 경제인은 도마 위에서 조리하고, 정치인은 그걸 나눠주는 거죠. 제가 남북 문제와 통일에 관한 작업을 처음 하기 시작한 게 1997년이에요. 당시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는데, 내가 분단 국가에서 왔고 남북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지더군요. 문화가 모든 것의 열쇠가 될 수 있는데 통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Place of Dream(upcoming project), Newark Museum, NJ, 2016

작업실 위의 다락방. 창밖으로 소호의 몬드리안 호텔이 보인다.

현재 작업실에서 진행 중인 작품은 어떤 건가요?
뉴왁 뮤지엄의 설치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광화문에 설치했던 ‘광화문에 뜬 달’처럼 뮤지엄 건물 전체를 작품으로 덮는 건데, 이번에는 영구 설치 작품이죠. 제목은 ‘Place of Dream’이고 내년 9월에 공개할 예정이에요. 뉴왁 시의 노숙자부터 시장까지 자신의 꿈에 대해 쓴 글을 순천의 ‘꿈의 다리’처럼 유리 타일에 새겨 구조물로 만드는 거죠. 또 내년엔 런던 템스 강에 작품을 설치하는 템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2017년 초에는 뉴욕 퀸스 뮤지엄에서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작가로서 기쁨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완성작을 공개할 때보다 작업 과정 중 언제 그런 순간이 오는지 궁금해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놀라는데, 그림을 진짜 좋아하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았어요. 그 전에는 의무적으로 그리곤 했죠. 3~4년 전부터 작업 자체가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붓을 놓느냐인 것 같아요. 붓을 오래 잡고 있다가 망치는 경우가 많죠. 오후 3~4시쯤 환희가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언제 붓을 놓아야 할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30년 정도 그림을 그린 뒤 드디어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 우주의 질서에 감사해요. 작품을 만든다는 게 곧 그런 질서를 깨닫는 일인 것 같네요.
그렇게 깨달은 질서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대중과 보이지 않는 소통을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제가 가장 중시하는 게 그렇게 사람들과 소통하는 커뮤니티예요. 판매할 수 있는 작품보다 공공 미술이 중요하죠. 예전에 세네갈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대륙별로 작업실을 하나씩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막상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공공 미술 작업을 위해 현지 작가들과 함께하면서 그 지역 커뮤니티와 소통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대륙에 하나씩은 아니더라도 다른 대륙에 하나 정도 더 두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래요. 지구를 작게 보고 작업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책임이니까, 내년에 아이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생각해봐야죠. 아, 하지만 제가 대륙을 넘나들면 우리 진돗개들이 걱정이긴 하네요.(웃음)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사진 민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