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도용 사이
현재 뉴욕에선 전유 예술로 유명한 리처드 프린스의 새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대체 무슨 일일까?
모델 커뮤니티 사이트 ‘Suicide Girls’에 올라온 작품 판매 광고

프리즈 아트 페어에 전시한 리처드 프린스의 ‘새로운 얼굴들’ / ⓒ Marco Scozzaro 2015
논쟁이 시작된 것은 지난 5월 뉴욕에서 열린 프리즈 아트 페어. 가고시안 갤러리는 부스 전체를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의 작품 ‘새로운 얼굴들(New Portraits)’을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이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중 작가가 선택한 이미지를 캔버스에 확대해 프린트한 작품이다. 원본과의 차이는 작가가 사진 아래 덧붙인 짤막한 코멘트뿐. 원본의 주인에게 사용에 대한 허락은 구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이미 2014년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소개했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올해 프리즈 아트 페어를 통해서다. 무엇보다 작품이 9만 달러에 팔렸다는 사실이 보도되며 원본의 주인들에게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유명 작가에게 선택된 것을 기뻐하기도 하고, 허락 없이 사진을 사용한 것에 분노하는가 하면, 프린스의 전유 방식을 그대로 이용해 반격을 가하는 이도 나타났다. 리처드 프린스가 이용한 사진 중 상당수의 출처는 일종의 모델 커뮤니티 사이트인 ‘Suicide Girls’. 이 사실을 안 사이트의 운영자 셀레나 무니(Selena Mooney)는 리처드 프린스가 9만 달러에 판매한 이미지를 똑같이 제작해 단돈 90달러에 팔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리처드 프린스는 ‘매우 똑똑하다’는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물론 그가 저작권 소송을 걸 리는 없다.
사실 어느 누구도 ‘전유’가 이슈가 될 이 문제로 법적 분쟁을 제기할 것 같지는 않다. 결과를 예상하기 힘든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유란 기존의 이미지나 오브제를 복사, 변형하는 예술적 표현 방식. 뒤샹부터 앤디 워홀과 셰리 러빈에 이르기까지 예술과 비예술, 고급예술과 하위예술, 원본과 복제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전략으로 이용해왔다. 법정에서 무단 도용이 아닌 전유로 인정받으려면 원작의 이미지나 맥락을 변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정당한 사용(fair use)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한 사용’이라는 것은 매우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다. 가령 리처드 프린스의 또 다른 작품 ‘운하 지대(Canal Zone)’는 프랑스 사진가 파트리크 카리우(Patrick Cariou)의 사진을 무단 도용한 혐의로 법적 분쟁에 휘말렸는데, 1심에서는 리처드 프린스가 패소했지만 항소심에서 다시 승리했다. 리처드 프린스가 이미지에 가한 미적 변형이 전유의 조건을 충족한다는 판결이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역과 법정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처럼 저작권법은 오늘날 디지털 세상에서 예술가가 처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일관되거나 신속한 규준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 프린스의 ‘새로운 얼굴들’이 이미지의 새로운 유통 방식을 통찰한 시대를 앞선 프로젝트인가, 혹은 타인의 것을 이용해 손쉽게 이윤을 취하려는 일종의 도둑질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 엇갈리는 이유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글 황진영(큐레이터, 아트 어드바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