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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완성은 해석

ARTNOW

지난 7월 초, 파리에서 자동차로 30분가량 걸리는 ‘루이 비통 아니에르 갤러리’에서 열린 <아니에르 123(Asnieres 123)>전의 기획자 주디스 클라크와의 만남.

아니에르 갤러리 전시 기획을 맡은 큐레이터 주디스 클라크 / ⓒ Louis Vuitton / Benjamin Decoin

1858년, 루이 비통이라는 파리의 한 청년이 러기지, 즉 트렁크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은 오브제를 창조했다. 1997년 주디스 클라크(Judith Clark)는 런던에 최초의 독립 패션 갤러리를 오픈하며 패션도 미술사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루이 비통과 주디스 클라크의 이번 협업이 남다른 이유다.

아니에르 갤러리는 과거 루이 비통의 저택이었다. / ⓒ J.Oppenheim

아니에르 갤러리 전시 기획을 맡은 큐레이터 주디스 클라크 / ⓒ Louis Vuitton / Benjamin Decoin

갤러리 1층 전시장에는 파테키에서 영감을 받은 구조물들이 좌대 역할을 대신하며 루이 비통 헤리티지의 의미를 더한다. / ⓒ Gregoire Vieille

2층 전시장에는 루이 비통의 아이덴티티가 드러난 패션 아이템이 가득하다./ ⓒ Gregoire Vieille

당신은 현재 패션과 박물관학 교수, 패션 큐레이션 리서치 센터 디렉터, 런던 예술대학 패션 큐레이션 강좌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입에 올리는 건 1997년 런던에 오픈한 클라크 코스튬 갤러리죠. 큰 규모로 오픈한 최초의 독립 패션 갤러리인데 당시 런던의 반응은 어땠나요? 우선 이 질문을 해주셔서 매우 기쁩니다. 사실 저에겐 굉장히 소중한 프로젝트였거든요.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실험적 공간이었죠. 당시 저는 한 미술관에서 꽤 오랜 기간 준비한 의상 전시를 봤는데, 그 긴 준비 기간 때문인지 전시가 패션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투영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이 순간의 미술을 반영하는 미술 전시와는 달리 말이죠. 그러한 맥락에서 시작한 실험이었습니다.

주변 갤러리나 미술 관계자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막상 오픈을 하고 나니 사람들이 뭐라고 불러야 할 모르더군요. 어떤 사람은 매장(shop)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제가 아니라고 했죠. 숍이 많은 노팅힐에 문을 열었으니 그렇게 오해할 만도 했어요. 사람들이 이곳의 정체성을 인식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행히 개념 있는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전시를 하고 싶다며 제게 메일을 보내거나 찾아오기 시작했죠. 그때가 거의 20년 전인데, 그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1997년과 달리 ‘패션 갤러리’라는 것에 그리 놀라지 않게 되었죠.

당시에 브랜드와 함께 패션 아이템을 제작하기도 했나요? 아니요. 컬래버레이션 작업은 하지 않았습니다. 패션을 실험하기 위해선 우선 패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야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독립적 시선(independent eye)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죠. 그런 고집 덕분에 이번에 루이 비통의 초대를 받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현재 런던 예술대학에서 패션 큐레이션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일반적 현대미술 전시와 달리 패션 전시를 기획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예전엔 패션 전시를 기획할 때 ‘보존’에 초점을 맞췄어요. 상대적으로 ‘해석’엔 소홀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제 학생들에게는 보존과 해석에 모두 신경 쓰라고 가르칩니다. 직물이라는 것이 매우 섬세하기 때문에 보존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할 필요가 있다는 걸 강조하는 편이에요.

현대미술 전시도 자주 관람하시나요? 물론입니다. 어떤 ‘느낌’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갤러리가 공간이나 환경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갤러리 안에 어떻게 전시를 연출했는지 등을 실제로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012년에는 서울의 ‘백 뮤지엄’ 큐레이팅을 맡으셨죠? 백 뮤지엄을 만들던 그때의 기억과 감회가 궁금합니다. 의뢰인은 여행을 하면서 가방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자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매우 도전적인 프로젝트였고, 한 번에 많은 가방을 모아야 했기 때문에 흥미롭고 야심찬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 뮤지엄에 2개의 루이 비통 가방을 전시했는데, 하나는 윈저 공작부인의 화장품 가방이고 다른 하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협업한 가방이었습니다.

루이 비통의 아카이브 전시를 위해 이번에 처음 아니에르를 방문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장소 자체는 물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적 작업이 매우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압도적인 건 부재의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그곳에 비통 패밀리는 거주하지 않지만 예전의 장면, 예를 들면 작업장과 저택 사이를 오가는 가족, 정원을 지나다니는 직원, 근처에 있는 센 강과 기차역의 분위기 등 예전에는 이랬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다양한 요소를 하나의 특별한 경험으로 다시 불러온다는 의미에서 전시명도 ‘아니에르 123(Asnieres 123)’이라고 정했죠.

워낙 작품 수도 많고 아이템이 다양해 방마다 전시의 컨셉을 정하고 디스플레이하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네. 수많은 스케치와 편지, 드레스와 백 등 그렇게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할지 고민이었죠. 그래서 모티브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는데, 파테키(pateki) 퍼즐에서 영감을 받은 모티브가 그 해답이었죠.

파테키에서 얻은 모티브로 그 수많은 아이템을 어떻게 체계화했나요? 하나의 퍼즐이라고 생각하면서 구성했습니다. 수평과 수직을 잘 맞춰 퍼즐을 완성하는 거죠. 1층은 역사의 벽을 세우고 기록을 담아낸 일종의 게임 같은 공간으로 연출했고, 2층은 패션이 숨 쉬고 성장하는 플랫폼으로 만들어 이 두 공간 사이에 일종의 지속성을 유지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루이 비통의 아카이브를 연구하면서 놀란 점은 뭔가요? 방대한 양의 컬렉션에 놀랐고, 비통 가문이 그토록 많은 역사를 수집하고 기록했다는 데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그렇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현대적 사고방식이죠. 루이 비통은 초기부터 자기 작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아니에르 갤러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주의 깊게 봤으면 하는 전시 섹션이 있나요? 아카이브는 여러 언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다른 부분에 매혹될 것 같아요. 작품이 다양하기 때문에 해석 또한 자유로울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를 큐레이팅하며 당신이 발견한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전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리드하는 루이 비통의 힘’은 무엇인가요?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인 것 같습니다. 기록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단순히 과거의 향수에 젖게 한다기보다 어떤 역동성을 느꼈어요. 루이 비통 디자이너들은 세월이 흘러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브랜드를 끊임없이 재해석해나가고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부분이죠.

전 세계적으로 미술 시장의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미술엔 없는 패션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패션은 매일같이 이루어지는 필수적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미술엔 없는 패션의 힘이죠.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제공 루이 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