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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자에 꽃피는 한국 현대미술

ARTNOW

중동의 문화 예술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샤르자에서 올가을 아랍 문화와 한국 문화의 뜻깊은 소통이 시작된다. <아나: 잠시만 눈을 감아보세요>는 아랍 및 중동의 국공립 미술 기관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는 한국 현대미술 전시다.

샤르자에서 처음으로 한국 현대미술 전시가 열리는 마라야 아트 센터

샤르자 라이트 페스티벌 개최 기간에 촬영한 샤르자의 야경

아랍에미리트에서 세 번째로 큰 토후국 샤르자는 유네스코에서 ‘아랍의 문화 수도’로 지정한 세계적 문화도시로, 천연자원을 근간으로 한 산업 외에 새로운 분야로 현대미술을 주목한 지 오래다. 샤르자를 다스리는 알 카시미(Al Qasimi) 가문이 문화 예술 분야에 애정을 쏟은 덕분에 총 19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문을 열었으며, 1993년부터는 샤르자 비엔날레를 통해 동시대 현대미술에 대한 후원을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샤르자에서 처음으로 한국 현대미술 전시를 개최한다. 전시 장소는 알 카시미 공주(Sheikha Bodour bint Sultan al Qasimi)가 회장을 맡고 있는 마라야 아트 센터(Maraya Art Centre). 2010년 개관한 비영리 현대미술 기관인 이곳은 아랍에미리트와 걸프 지역 작가를 후원하고 국제적인 큐레이터와 함께 창의적 실험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국제 협업에 앞장서고 있는 현대미술의 장이다. 중동 지역에서 선구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마라야 아트 센터가 한국 미술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들을 초청했다는 점에서 한국 미술이 현지 문화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지도 기대를 모은다.
10월 21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개최하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아나: 잠시만 눈을 감아보세요’. ‘아나( )’는 ‘나’를 뜻하는 아랍어다. 마라야 아트 센터는 관람객에게 잠시 눈을 감고 ‘나’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볼 것을 제안한다. 나에 대한 개념을 강조한 이 전시는 작가들이 모여 거대 담론을 형성하기보다 작가 한 명 한 명의 사고가 관람객 한 명 한 명과 만나 그들의 자아를 일깨우는 것을 지향한다.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소통’을 위한 실질적 방법을 제시하고 관람객이 전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

홍순명 작가의 회화·조각 설치 작품 ‘일상의 기념비’의 일부

이수경 작가의 2012년 영상 작품 ‘Twin Dance’의 한 장면

전가영 작가의 벽화 설치 작품 ‘Gayoung. drawing’을 위한 드로잉

전시는 크게 본전시와 ‘시크릿 시네마(Secret Cinema)’ 필름 상영으로 나뉘며, 별도로 ‘팝업 라이브러리’를 마련해 참여 작가들의 도록과 서적 등 자료를 구비하고 한국 작가들에 대해 알린다. 마라야 아트 센터 3개 층 전관에서 작품을 전시하는데, 대부분의 참여 작가가 이 전시를 위해 신작을 제작해 처음 공개한다는 점이 특히 기대되는 부분.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수경 작가는 최근 장기 프로젝트로 시작한 ‘아시아 근대미술 작가 연구(Study of Asian Modern Masters)’의 연장선상에서 아랍 근대미술의 어머니이자 이라크의 왕세자비였던 파흐렐니사 제이드(Fahrelnissa Zeid)의 1981년 작 ‘Divine Protection’을 연구한다. 아랍 근·현대미술 아카이브의 보고로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요르단의 압둘 하미드 쇼만 파운데이션(Abdul Hameed Shoman Foundation)은 이수경의 프로젝트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또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정효진 작가는 지난 몇 년간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매개로 독일과 핀란드에서 진행해온 퍼포먼스 비디오 연작을 한국과 아랍에미리트를 배경으로 새롭게 제작한다. 사회질서 속 힘의 역학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해온 전가영 작가는 내면의 교감을 다룬 수행적 벽화 작품을 14m 벽 전체에 설치한다. 홍순명 작가 또한 ‘일상의 기념비’라는 이름으로 100여 개의 작은 조각 작품을 모은 거대한 회화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그리고 홍영인 작가는 중동의 그라피티 아티스트와 협업해 그래픽 설치 작업을 진행한다. 한국 작가와 함께 아랍 작가도 참여하는데, 사우디 출신으로 아랍에미리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아티스트 가하다 다(Ghada Da)는 신작을 제작하기 위해 지난봄 두 달간 한국에 머물며 한국 문화와 역사의 흔적을 조사했다. 자개와 옻칠공예에 매료된 그녀는 공예 브랜드 채율의 후원을 받아 한국의 장인과 협업해 작품을 만든다. 그 밖에도 본전시에는 김주연, 김인근, 이수진, 차학경 등이 참여한다.
시크릿 시네마 필름 상영 섹션에서도 국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아나’라는 주제에 맞게 한 개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재현한 영상 작품을 소개하며, 현재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있는 김아영 작가와 제14회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한 전소정 작가의 영상을 비롯해 제3회 일우미술상을 받은 유현미 작가의 몽환적인 작품을 상영한다. 그리고 공동 영화 제작을 위한 창작 집단 ‘레드카펫정신’을 이끌고 있는 김인근 작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제작한 신작 ‘내 앞’을 소개하는 등 모든 상영작을 중동 및 아랍 지역에서 초연한다. 시크릿 시네마는 마라야 아트 센터 내 상영관에서 전시기간 동안 일주일에 2회 상영하며, 오는 11월 개최하는 아트 페어 아부다비 아트(Abu Dhabi Art) 기간에 아부다비의 문화지구 마나랏 알 사디얏(Manarat al Saadiyat)과 두바이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알세르칼 거리(Alserkal Avenue) 예술지구에서도 상영해 더 많은 관람객을 만난다. 샤르자에서 열리는 의미 있는 한국 현대미술 전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동시에 영국까지 확장된다. 매년 10월 런던의 인문학 명문 킹스 칼리지(King’s Collage)에서 펼치는 킹스 문화 축제(Kings Cultural Festival) 2015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심포지엄 ‘문화적 큐레이팅’에 이 전시의 구정원(JW Stella) 큐레이터가 초청되었으며 시크릿 시네마를 비롯한 본전시의 비디오 작품을 영국의 관람객 앞에서 상영한다.
아랍과 한국 현대미술. 아직은 서로에 대한 이미지가 낯선 만큼 <아나: 잠시만 눈을 감아보세요>는 소통에 중점을 두고 적극적인 교감을 시도하는 전시다. 그동안 미디어로 접해온 고정관념과 그로 인한 간극을 현대미술이라는 창구를 통해 진솔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함께 호흡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는 현대미술의 요충지, 샤르자에서 펼치는 이번 전시는 아랍과 한국 현대미술이 교류하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자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소중한 초석이 될 것이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