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이미지
미카엘 보레만스의 작품은 단 몇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다. 작품을 ‘읽는’ 행위를 무력화하는 그의 강렬한 작품은 그림을 보는 경험의 놀라운 감각을 되살린다. 그로테스크한 포즈나 설정, 극도로 클로즈업한 신체, 무겁고 진지한 색과 신비로운 분위기가 관람객을 압도한다.
Photo by Tim Dirven

Black Mould / Pogo, 나무에 유채, 29.8×22.9cm, 2015 / Courtesy of David Zwirner, New York/London, Zeno X Gallery Antwerp ⓒ Michael Borremans

The Angel, 캔버스에 유채, 300×200cm, 2013 / Courtesy of Zeno X Gallery Antwerp, Photo by Dirk Pauwels ⓒ Michael Borremans
벨기에 출신 작가 미카엘 보레만스는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오라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여름에는 미국 댈러스 미술관(Dallas Museum of Art)에서 회고전 와 영국 런던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서 개인전 <블랙 몰드(Black Mould)>가 비슷한 시기에 열려 화제를 모았다. 전은 2014년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있는 팔레 데 보자르(The Palais des Beaux-Arts)를 시작으로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미술관(Tel Aviv Museum of Art), 일본 도쿄의 하라 컨템퍼러리 미술관(Hara Museum of Contemporary Art)을 순회한 전시로, 브뤼셀에서는 미술관 역사상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은 전시로 기록됐다.
2001년 아트 바젤에서 미카엘을 만나 오랫동안 협업해온 댈러스 미술관의 큐레이터 제프리 그로브(Jeffery Grove)는 그의 작품을 처음 본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스터리한 감정과 그 복잡함의 깊이, 수많은 질문.” 이번 회고전도 함께 준비한 그는 미카엘 작품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특정 미디엄에 속해 있지 않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회화, 조각, 영상, 사진 등을 넘나들며 작업한다는 것. 미카엘은 때로 평범한 캔버스도 사용하지 않는다. 영감이 떠오르거나 소재가 될 만한 모델의 포즈를 찾았을 때 손에 잡히는 주변의 모든 사물이 캔버스가 된다.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 출품한 몇몇 작품은 빈티지 책의 표지에 그렸다. 이런 작업 방식은 그의 작품에 독특한 오라를 부여한다. 둘째, 어시스턴트를 고용하지 않고 모든 작품을 작가가 직접 만든다. 흥미롭게도 그는 작업할 때도 정장을 벗지 않는다고 한다. 셋째, 그의 작품은 예술사와 아주 깊숙이 연관돼 있다. 벨라스케스, 고야, 마네, 드가 같은 서구 미술사의 대가가 미카엘 작품의 테크닉과 주제의식을 설명할 때 주로 등장한다.
한편 지난 6월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블랙 몰드>는 런던 아트 신에 아주 오랜만에 ‘진지함’이라는 단어를 선사한 전시였다. 갤러리에 들어온 관람객은 이곳이 늘 벽면을 하얗게 칠해놓는 갤러리가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했다.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깊고 짙은 파란색으로 마감한 내부는 어두운 무대 뒤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작품만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조명은 관람객이 미카엘의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연출했다.
전시 제목 ‘블랙 몰드’는 미국의 록 밴드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Jon Spencer Blues Explosion)의 곡에서 차용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 제목은 다중적 의미를 지닌다. 몰드는 곰팡이를 뜻하는 동시에 조각을 만들 때 모양을 뜨는 틀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검은 옷을 입은 알 수 없는 존재들이 기묘한 포즈를 취한 작품이 갤러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1층에 전시한 16개의 작품은 그들이 춤을 추는 것 같은 동작을 담았다. 그가 작업하는 동안 틀어놓았다는 ‘블랙 몰드’ 곡이 저 멀리서 배경음악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개별 작품에서 거리를 두고 전시장을 둘러보면 16점의 캔버스 프레임은 연속 동작을 표현한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2층에는 아래층과 같은 복장을 입은 모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기묘한 의식을 치르거나 원시 주술을 행하는 집회 같다. 작품 속 인물들의 의상은 미국의 악명 높은 집단 KKK를 연상시키지만, 사실 일본 전통 인형극에서 사용하는 복장이라고 한다. 미카엘은 일본 여행 중 우연히 관람한 전통 인형극의 무대 뒤편에서 영감을 받았다. 어둠 속에서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연기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배우들의 모습에서 그는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느꼈다고 한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인간은 예술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존재한 적 없는, 그리고 존재할 수 없는 어떤 것에 강렬하게 감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카엘 보레만스의 작품은 롤랑 바르트의 예술에 관한 정의를 가장 잘 표현한다. 우습지만 결코 웃을 수 없고, 한없이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으며, 아름답지만 기묘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 전엔 절대 알 수 없던 감정이 내면 깊숙한 곳에서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예술의 상업화, 장르 간 경계의 파괴, 지나친 가벼움 등 온갖 ‘개념’만 판치는 동시대 아트 신에서 미카엘 보레만스의 작품은 다시 한 번 그림을 보는 즐거움과 예술의 진지함을 환기해준다.
Sleeper, 캔버스에 유채, 40×50cm, 2008 / Courtesy of Zeno X Gallery Antwerp, Photo by Peter Cox ⓒ Michael Borremans

Red Hand, Green Hand, 캔버스에 유채, 40×60cm, 2010 / Courtesy of Zeno X Gallery Antwerp, Photo by Peter Cox ⓒ Michael Borremans

The BodiesⅠ, 캔버스에 유채, 60×80cm, 2005 / Courtesy of Zeno X Gallery Antwerp, Photo by Peter Cox ⓒ Michael Borremans

The Devil’s Dress, 캔버스에 유채, 200×300cm, 2011 / Courtesy of Zeno X Gallery Antwerp, Photo by Peter Cox ⓒ Michael Borremans
런던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것을 축하합니다. 이번 전시에선 어떤 점에 주력했는지 설명해주세요.
이번 전시에서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집중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전시 주제뿐 아니라 전시장의 모든 조건을 어둡게 했습니다.
‘어두운 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몇몇 작품에선 피식 웃음을 자아내는 포즈와 장면도 보입니다.
인간의 어두운 면이 때로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잖아요.
작품에 주로 어떤 인물을 재현해왔습니다. 전통적 의미의 초상화와는 다르지만 그들은 마치 옆집에 사는 이웃처럼 사실적으로 보이죠. 그 반대편의 맥락에선 유령처럼 괴기해 보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캔버스에 포착한 수많은 인물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만약 그들이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라면 작품을 제작하면서 어떤 미지의 존재를 상상했나요?
맞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나는 보통 전문 모델을 대상으로 작품을 제작해요. 아주 가끔은 일반인에게 모델을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지만요.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나만의 기준에 따라 모델을 선택하지만 그들도 대개 평범한 느낌입니다. 저는 절대 사람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특별한 존재를 상상하며 그리지도 않아요. 모델을 캔버스에 옮겨 그리기 전부터 내 의도에 따라 어떤 이미지를 상상할 뿐이죠.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음, 이 사람에겐 마스크를 씌워야겠어.’ 그런 다음 그 모델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작품은 고야, 벨라스케스, 마네, 드가 등 서구 미술의 대가들 작품과 관련지어 설명되곤 합니다. 최근 많은 작가가 새로운 것을 찾아 과거로 점프하곤 하는데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요? 당신이 제작한 오늘의 작품이 과거의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링크되는 것에 거부감은 없나요?
저는 거장의 작품에서 그림 그리는 테크닉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벨라스케스는 ‘스승’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큰 영향을 받았죠. 고야는 제가 예술 공부를 시작한 시기에 탐구한 작가입니다. 그가 예술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늘 영감을 얻었어요. 여전히 그들의 테크닉에서 배우는 것이 많지만 내 작품은 온전히 내 것으로 남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하나의 원형처럼 남아 있는 작가의 작품이 있나요?
대답하기 무척 어렵지만, 만약 단 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면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화가 샤르댕(Jean Baptiste Simeon Chardin)을 선택하겠어요. 그의 정물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형언할 수 없는 신비한 분위기가 담겨 있어요. 분명 과거의 작품이지만 제게는 매우 모던하게 다가옵니다. 작품의 영적인 부분이 느껴집니다.
사진이나 조각, 영상을 활용해 회화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영상 작품도 발표했죠. 과거 발표한 작품을 보면 캔버스에 그린 클로즈업한 장면이나 형상이 관람객에게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하게 해요. 작품을 보면서 작가에게 어떤 대상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어요. 그것은 인간의 눈인가요, 아니면 카메라 렌즈를 통한 것인가요?
말씀하신 것처럼 카메라를 의식하게 하는 방식은 과거 작품에 주로 사용했죠. 아직도 작품 활동에 카메라를 많이 사용하지만, 작품에 관한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2년 전부터 카메라를 의식하게 하는 방식은 지양하고 있어요. 이제는 그런 시선을 사용하지 않는 셈이죠.
제프리 그로브의 설명대로 당신은 미디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스스로를 ‘조각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 작품은 조각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여전히 그런 요소를 사용하고 있고요. 사실 지금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조각 작품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곧 대중에게 선보일 예정이에요. 아주 거대한 작품입니다. 막대한 자금이 이 프로젝트에 들어가고 있고, 작가로서 제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어요.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요.(웃음)
작품을 보면서 아주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어요. 전에는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던 감정을 작품을 보고 나서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그렇게 느꼈다니, 내 작품을 설명하기에 좋은 표현인 것 같네요. 누군가 내 작품을 보고 그런 감정을 느끼도록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고 복잡한 감정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당신의 감상과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순수할 순 없잖아요. 역사를 돌아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권력을 쥔 누군가가 만들고 조작해놓은 것이죠. 기술이 지닌 힘을 보세요. 이제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종교처럼 믿고 따릅니다. 그 반대편에 아프리카가 있어요. 아프리카를 여행하면 그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처참한지 놀라게 됩니다. 물론 내가 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예술가로서 세상을 보고 내 방식대로 그것을 표현하는 건 아주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정의하는 예술은 무엇인가요?
예술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반영해 그동안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창조해왔습니다. 잘 그린 그림은 더 나은 ‘소통’을 가져다준다고 믿습니다.
Weight, LCD 스크린, 35.5×27.5×4cm, 9분 44초, 2006 / Courtesy of Zeno X Gallery Antwerp, David Zwirner New York/London, Gallery Koyanagi Tokyo

Drawing, 카드보드에 연필, 수채물감, 흰색 잉크, 16×10.5cm, 2002 / Courtesy of Zeno X Gallery Antwerp, Photo by Peter Cox ⓒ Michael Borremans

AutomatⅠ, 캔버스에 유채, 80×60cm, 2008 / Courtesy of Zeno X Gallery Antwerp, Photo by Peter Cox ⓒ Michael Borremans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글 양혜숙(기호리서처) 사진 제공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댈러스 아트 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