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味感
미술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몇몇 작가에게 음식은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들의 그림 속 주인공이 된 음식은 사실적이고 단순하면서도 깊은 은유를 품고 있다. 풍성하고 평화로우며, 유쾌하거나 혹은 외로운 그 명화 속에서 ‘맛’이라는 직관적 감각을 찾았다.

Food Inspiration
폴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를 모티브로 연출한 화면. 전통적인 안정된 구도에서 벗어난 구성 속에서 정물의 형태와 색감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표현한 작품이다. 과일을 담은 스탠드 형 볼과 볼 형태의 플레이트 Pishon, 꽃 그림이 들어간 저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SACK, 2015
Painting Story
서양에서 부활절에 주고받는 것으로 새로 태어난 삶을 의미하는 달걀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2개의 달걀 프라이가 놓인 접시 위로 달걀 프라이 하나가 실에 묶여 매달려 있는 이 작품은 달리의 ‘접시 없는 접시 위의 달걀들’. 이 수수께끼 같은 작품에서 그는 엄마의 뱃속에서 고요히 잠들어 있다 깬 혼란과 불안감을 표현한 듯 보인다.
Food Inspiration
달리가 표현한 상상의 세계 속에 의미심장한 매개체로 등장한 달걀은 가장 평범하면서도 완벽한 식자재다. 삶고 튀기고 굽고 찌는 조리 방법에 따라 그 자체만으로 수없이 많은 요리가 탄생한다. 희고 노랗게 부풀어 올라 곧 터질 것 같은 느낌을 주다가도 흘러내릴 듯 연약하며, 단단하게 익은 표면 속에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숨기고 있다. 식탁에 놓인 메뉴는 이탈리아식 달걀찜인 프리타타. 쉽고 간단한 요리지만 그만큼 요리사의 상상력을 더할 수 있다. 어떤 재료를 더하느냐에 따라 풍미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기 때문. 이 프리타타에는 큼직하게 썬 표고버섯과 브로콜리를 더했다.

Painting Story
열정적인 색채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1889년경 작품 ‘수확하는 농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농촌의 대지는 신성하면서도 생생하게 빛나는 세상의 모습을 투영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밀밭에서 수확하는 농부의 묘사에 죽음의 이미지를 드리운 점. 대낮의 흐드러진 햇빛, 창백한 노란색과 순수한 금빛을 물결치듯 강렬하게 표현해낸 밀밭 풍경이 묘한 울림을 준다.
Food Inspiration
곧 맞이할 죽음을 예견한 듯, 평소 즐겨 그리던 들판 위 농부의 모습을 통해 내면의 빛을 담담하게 표현한 고흐. 하지만 두 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 이 그림을 보며 역설적이게도 강렬하게 흐르는 황금빛 밀밭에서 수확한 건강하고 풍성한 음식을 떠올렸다. 고구마를 곁들인 키노아 렌틸콩 샐러드와 구운 통감자, 큼직한 호밀 브레드로 채운 가을날의 테이블을 선사한다.

Painting Story
로마 태생인 화가 카라바조가 1597년경 그린 작품 ‘젊은 바쿠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바쿠스는 포도주와 가을을 상징하는 신이다. 서양화에 풍성하게 차려놓은 음식 앞에서 술에 취해 춤추는 추종자들을 거느린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머리에 포도나무 가지로 만든 관을 쓰고 발그레한 얼굴로 와인잔을 건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Food Inspiration
살짝 취한 모습으로 와인잔을 건네는 바쿠스의 그림을 보니 강렬한 타닌을 품은 붉은 포도주가 목젖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그 풍미를 고조시키기 위해 레드 와인에 재운 로스트비프와 카망베르 치즈, 달콤한 무화과를 더해 풍성한 테이블을 연출했다.

Painting Story
누군가를 보며 느끼는 감정을 맛과 향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릴리 마틴 스펜서가 그린 ‘키스해줘요, 그러면 달콤한 걸 맛보게 돼요’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뺨이 발그레한 복숭앗빛으로 물든 여인이 웃으며 귀여운 유혹의 말을 건네는 듯하다. 그녀의 표정에서 그 옆에 잼을 만들기 위해 쌓아놓은 산딸기와 체리 등의 과일이 품은 달콤함과 향긋함이 느껴진다.
Food Inspiration
진한 크림치즈와 바나나, 새빨간 라즈베리, 레드 커런트가 만난 타르트. 그리고 상대방을 위해 채우고 싶은 샴페인잔. 불긋한 색감만으로도 매혹적인 타르트와 가볍고 달달한 샴페인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느끼는 달콤짜릿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Painting Story
클로드 모네의 ‘정원에서의 점심식사’(1873년경). 인생의 부침을 이겨내고 평생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데 몰두한 모네는 섬세한 미각을 갖춘 미식가이기도 했다. 지베르니 정원에서 여유로운 점심식사를 즐기는 풍경. 모네가 지베르니에서 가족의 일상을 재현한 그림을 보면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일렁이는 듯한 햇빛, 무성한 꽃밭, 누군가 잊고 간 듯 나뭇가지에 매달린 모자, 시원한 그늘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 그리고 아직 치우지 않은 점심 테이블. 평온하고 따스하며 풍성한 향연의 풍경이다.
Food Inspiration
신선한 허브와 그릴에 구운 각종 채소, 바다 내음을 그대로 머금은 듯한 토마토 해산물 스튜…. 화사한 기운과 건강한 내음을 물씬 풍기는 남프랑스의 지중해 빛깔을 담은 식탁이 떠올랐다. 맛있는 음식과 그 음식의 맛을 느끼는 미각은 삶의 남다른 기쁨일지 모른다. 모네처럼, 마음껏 먹고 마시며 삶을 만끽하는 기쁨. 토마토와 그릴에 구운 가지 요리를 담은 플레이트, 티포트, 유리 보틀 모두 Pishon.

Painting Story
종교적 힘을 상징한 과일과 기껏해야 배경 정도로 그친 음식이 그림의 주제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17세기. 특히 네덜란드 작가들의 음식 정물화는 서양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피터르 클라스(Pieter Claesz)의 ‘게와 바닷가재가 있는 정물’(1643년)은 그 흐름의 중심에 있는 작품이다. 무심하게 걸쳐놓은 하얀 식탁보와 쌓아놓은 음식, 술잔 등이 막 식사가 끝난 듯 흐트러진 모습으로 놓여 있다.
Food Inspiration
갖은 채소를 넣어 끓인 맑은 랍스터 수프. 레몬즙을 뿌려 시큼하면서 짭조름한 국물을 입안에 흘려 넣은 후 바닷가재의 단단한 껍데기를 어렵게 벗겨내면 탱글한 속살이 드러난다. 그러나 미처 다 먹지 못한 음식. 피터르 클라스의 정물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음식의 맛뿐 아니라 인생의 무상함이 느껴지는 풍경을 의도적으로 연출했다.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이정주 (jjlee@noblesse.com)
사진 박우진 코디네이션 임윤주 푸드 스타일링 박용일 배경 페인팅 TA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