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레비 & 캐런 레비
‘DSL 컬렉션’은 프랑스인 부부 실뱅 레비 (Sylvain Levy)와 도미니크 레비(Dominique Levy)의 약자를 따 지은 중국 현대미술 전문 컬렉션이다. 현재는 이들의 딸 캐런 레비(Karen Levy)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예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기치 아래 중국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작가들의 작품과 그것의 가시성(visibility)을 개인 컬렉션 최초로 인터넷 미술관 형태로 공개하는 이들의 노력과 성실함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도미니크 레비와 그녀의 딸 캐런 레비
유럽과 서양 미술계에서 중국 현대미술 컬렉션으로 중요한 컬렉션을 꼽으라면 많은 이가 DSL 컬렉션을 떠올릴 것이다. 30여 년 전 여러 현대미술품으로 컬렉션을 시작한 레비 부부는 2005년 상하이 방문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중국 현대미술 컬렉션을 꾸려왔다. 이들은 쩡판즈(Zeng Fanzhi), 장환(Zhang Huan), 왕관이(Wang Guanyi), 아이웨이웨이(Ai weiwei), 딩이(Ding Yi), 양푸둥(Yang Fudong), 차오페이(Cao Fei) 등의 중견 작가부터 이제 막 부상하는 작가까지 모두 그들의 컬렉션 테두리에 넣고 ‘소장’이란 행위를 통해 한 사회의 역사를 따라가고 있다.
현재 이들 부부는 프랑스와 중국을 오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과 작가를 만나고 있다. DSL 컬렉션을 통해 미술계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만들며 바쁜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좋은 미술품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신념을 현재 딸 캐런 레비와도 공유하고 있다. 파리를 거점으로 중국과 서양 미술계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는 도미니크 레비와 그녀의 딸 캐런 레비를 파리의 명품 거리 몽테뉴에 위치해 에펠탑을 마주 볼 수 있는 그들의 아름다운 아파트에서 만났다.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온 그날 도미니크와 캐런 레비는 산뜻한 원피스 차림에 환한 미소로 인터뷰에 응했다.
정갈하게 꾸민 다이닝룸. 뒤편으로 보이는 인자오양(Yin Zhaoyang)의 회화 작품이 인상적이다.
DSL 컬렉션이 다른 개인 컬렉션과 가장 차별화되는 건 무엇인가요?
도미니크 레비(이하 DL) 지난 30여 년간 예술품을 수집하며, 우리가 좋아하는 예술을 많은 이와 공유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는 걸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좀 더 광범위하게 관람객을 만날 방법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죠. 바로 인터넷입니다. 일례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1년에 실제 관람객이 600만 명입니다. 하지만 인터넷 방문자는 2000만 명이 넘죠. 심지어 미술관 페이스북 방문자는 9000만 명에 달하고요. 개인 컬렉터로서 600만 명의 관람객을 감당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하면 그 범위가 훨씬 확장되죠. 2007년 이를 DSL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실천에 옮긴 것(www.g1expo.com)이 우리가 여느 컬렉터의 컬렉션과 다른 점입니다.
인터넷이란 공간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2007년부터 현재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DL 물론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2007년 당시만 해도 인터넷상에 우리 같은 가상 미술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중국의 인터넷 서비스는 너무 느려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그 때문에 중국의 웹으로 미술가에 관한 정보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우린 많은 작가를 DSL 컬렉션을 통해 소개했습니다. 초기엔 우리 컬렉션도 단순한 웹사이트로 출발했지만, 찾는 이가 점점 많아지면서 디자인과 관람객의 미술품 관람 방법 또한 업그레이드했고요. 그래서 지금은 웹을 통해 20여 분간 전시 관람이 가능합니다. DSL 컬렉션 감상은 큐레이터 마티나 코펠 양(Martina Koppel Yang)의 안내로 이루어지는데, 주로 설치와 비디오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두 달에 한 번 4만 명에게 뉴스레터를 보내는데 그중 40%가 열어보고 있습니다.
캐런의 경우, 중국 체류를 계기로 DSL 컬렉션과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캐런 레비(이하 KL) 중국에 가기 전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제 길이 아니라는 걸 알고 그만뒀죠. 그러다 중국의 샹아트 갤러리(Shanghart Gallery)에서 인턴십을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시 오너 로렌츠 헬블링(Lorenz Helbling)과 현지의 중국 작가들을 만나러 다녔는데, 그 일이 제게 잘 맞는다고 느꼈고요. 그러면서 서서히 미술 분야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현대미술 컬렉션도 점점 커지고 있던 시기여서 사실 제가 이 길을 택한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 참여했고, 대규모 전시에 직접 관여하면서 작가들과의 네트워크도 더욱 넓어지고 탄탄해졌습니다.
법학을 공부하다 미술계로 넘어온 건 역시 미술품과 함께해온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KL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미술을 택한 건 결국 제 의지였습니다. 전 중국에 약 4년간 머물며 현대미술계의 여러 분야에서 고루 경험을 쌓았습니다. 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화이트큐브를 비롯해 필립스 드 퓨리와 소더비 등에서 일했죠. 주로 미술 시장과 경영 분야에 집중했습니다.
DL 캐런은 2010년 상하이에서 4년, 런던에서 2년을 합쳐 총 6년간 미술계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얼마 전 열린 아트 페어 마스터피스 런던(Masterpiece London)의 좌담 프로그램에 초대될 정도니 이젠 당당히 ‘미술인’이라 해도 좋겠죠. 실제로 우린 캐런 덕분에 중국과 유럽을 오가며 미술계의 여러 전문가를 만날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지금은 캐런이 런던에 살고 있어 자주 보진 못하지만, 정기적으로 함께 상하이에 가기 때문에 그리 걱정하진 않아요.
캐런은 런던에서 무슨 일을 하나요?
KL 기업을 상대로 미술 관련 이벤트를 기획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의 컬렉터, 아티스트, 큐레이터, 평론가 등을 연결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요. 지금은 유명 호텔과 주로 일합니다. 예로 파리와 상하이의 하얏트 호텔에서 열리는, 미술계 전문가와 함께하는 칵테일파티 같은 거죠. 최근엔 일반 기업도 이런 행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속한 ‘시대의 예술(The Art of This Century)’이라는 회사 이름에 걸맞게, 미술관과 연계해 우리 시대에 필요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예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철학이 DSL 컬렉션의 배경이라고 했는데, 이에 대해 좀 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KL 제가 언젠가 과거를 돌이키다 깨달은 건, 예술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는 거였습니다. 10여 년 전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우린 중국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당시 느낀 충격도 아주 컸죠. 그즈음 중국 작가들은 중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습니다. 비디오와 사진, 회화, 설치, 퍼포먼스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이 보고 느낀 걸 표현했죠. 당시 그런 것에 매료됐고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우리가 현재 중국에서 느끼는 건 새로운 에너지와 ‘발견’에 대한 강한 갈증입니다. 현재 중국 작가들은 전 세계의 많은 작가와 같은 고민을 합니다. 환경문제와 현대인의 스트레스 그리고 사랑과 증오 같은 주제 말이죠. 그걸 자신만의 비전이나 시각을 담아 표현합니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중국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니까요. 지금의 중국 젊은 작가는 대개 퍼포먼스와 멀티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게 특징입니다. 상대적으로 조각을 하는 이는 매우 드물죠. (손가락으로 거실을 가리키며) 저쪽에 보이는 여자아이 흉상은 리웨이(Li Wei)라는 젊은 여성 작가의 작품인데, 저렇게 여성이 조각하는 경우도 아주 드뭅니다. 어쨌든 우린 젊은 작가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10년에 한 번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유럽과 달리 중국에선 5년에 한 번으로 그 주기가 짧죠.
그간 중국 출신 작가들은 중국 사회의 음지나 부조리함을 비판하는 작품 활동을 주로 해왔습니다. 현재의 중국 사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DL 이전 중국 작가들은 자국의 정치를 직접 비판하는 작품을 주로 내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중국 사회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에 눈을 돌립니다. 환경문제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이는 중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문제죠. 현재의 중국 작가는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의식이 세계적 문제이며, ‘중국 예술가’를 넘어 ‘세계의 예술가’라고 스스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작가들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나 청년 실업 문제, 열악한 근무 환경, 한 사회의 파산이나 자본주의사회의 폐단 등에 눈을 돌리고 이를 작품화하는데, 이는 중국 사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시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명의 예술가는 결국 그가 살아가는 그 순간, 그리고 그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니까요.
젊은 여성 조각가 리웨이의 ‘Truth’. 그녀의 작업실에 직접 방문해 구입한 작품이다.

론 아라드의 브론즈 체어와 유리 창문에 걸린 폴린 구에리에의 조각 작품 그리고 각종 디자인 제품이 조화롭게 놓인 거실

론 아라드의 브론즈 체어와 유리 창문에 걸린 폴린 구에리에의 조각 작품 그리고 각종 디자인 제품이 조화롭게 놓인 거실
중국 작가의 작품으로 소장품을 제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냥 외국의 다른 훌륭한 작품을 컬렉션하기 시작하면 되는 일 아닌가요?
DL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특정 시대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가시성과 한 나라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한 우리 컬렉션의 애초 목표에 차질이 생깁니다. 만약 우리가 모든 나라의 작품을 컬렉션한다면 한 사회의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긴 어렵겠죠. 그래서 우린 한 분야에 집중하기로 했고, 웹을 통해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해나가는 게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전 예전에 2개의 오트 쿠튀르 브랜드를 운영했고, 남편도 패션 회사를 경영했습니다. 우린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홍보하는 게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컬렉션 이름도 우리 이름을 내세우기보다 ‘DSL’이라 지어 컬렉터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게 했습니다. 컬렉터의 이름보다 작가들의 창작 세계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이기도 했고요.
캐런은 앞으로 부모님께서 정립하신 DSL 컬렉션의 본질이나 철학을 계속 이어갈 의향이 있나요? 현재 젊은 세대 작가들과 네트워크를 쌓고 있는데, 자신만의 컬렉션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KL 전 부모님이 오랫동안 지켜온 컬렉션의 근본 취지와 성격은 그대로 이어가되, 그 안에 나날이 발전하는 인터넷과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결합해 컬렉션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컬렉션에 포함할 새 작가에 대해 많은 이와 함께 상의해나가면서요. 오늘날 중국의 젊은 작가는 새로운 이념과 이전에 없던 매체에 관심이 많습니다. 전 특히 멀티미디어를 이용하는 작가에게 관심이 많고요. DL 캐런의 말에 공감합니다. 새 기술의 탄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그것이 하나의 컬렉션과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효과적인 방법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겁니다. 30년 전엔 영상 작업을 하는 작가의 작품을 도록으로 소개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장소에서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죠. 아주 혁신적인 변화입니다. 일례로 기업에서 직원 면접 시 가장 먼저 묻는 건 “이 회사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습니까?”일 겁니다. 컬렉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술관, 재단, 큐레이터, 평론가, 아티스트 등은 각각 자신의 분야에서 미술계에 기여합니다. 여기에 컬렉터의 역할은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작가에게 메세나 역할을 하는 것, 그들이 미술계의 공공 기관이나 평론가에게 인정받게 하는 것, 또 그들의 작품이 한 나라의 예술적 자산으로 남을 수 있게 하는 것일 겁니다. 결국 미술계라는 하나의 시스템에 자신의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보태는 것이겠죠.
하나의 컬렉션을 유지하는 걸 넘어, 중국 현대미술 작가를 위해 많은 사회적 기여를 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DL 우린 작가들과 그간 맺어온 인연을 아주 소중히 여깁니다. 그들의 작품 세계를 발견하는 건 정말 흥미롭죠. 아, 그리고 캐런이 만다린어를 할 수 있는 건 우리에게 정말 큰 혜택입니다. 통역가를 통해 작가와 소통하는 것엔 한계가 있으니까요. 작가와의 직접적 소통은 우리에게 확신을 주고, 특정 작품의 주문 제작을 의뢰할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중국 현대미술로 컬렉션의 범위를 제한하는 만큼 우리만을 위한 작품을 주문하기도 합니다. 물론 나중에 그 작품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때문에 누구나 좋은 작품으로 생각할 만한 작품을 소장하죠. 이런 과정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좋은 작가를 소개하는 갤러리와 그 작가와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면 어려운 일입니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인지요?
KL 9월에 영국의 셰필드에서 컬렉션 전시를 열고, 이후 중국 작가 저우톄하이(Zhou Tiehai)와 함께 상하이 웨스트 번드 아트 앤 디자인 페어 기간 동안 컬렉터를 모으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켈리 잉(Kelly Ying)이 상하이에서 기획한 부티크 페어 ‘ART 21’에 유럽과 중국의 컬렉터들이 만나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아, 그리고 곧 돌아올 DSL 컬렉션의 탄생 10주년을 위해 그간 제작한 디지털 도록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입니다. 더 발전된 기술을 이용해 미술관에서 실제로 작품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이 도록을 위해 미술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 훌륭한 글을 쓰는 헬렌 호(Helen Ho)가 우릴 돕고 있습니다.
일상을 주제로 작업하는 홍콩 출신 아티스트 리킷의 설치 작품 ‘No’

중국의 새로운 자본주의 현상을 표현한 메이드인의 ‘Spread B029’
MADEIN
중국 현대미술을 이끄는 젊은 기수 쉬전(Xu Zhen)을 중심으로 2009년 결성한 창작 그룹 메이드인. 이들은 개방 이후 중국 사회를 강타한 자본주의의 무차별 침투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현상은 주로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경제적 변혁 이후 ‘실재의 것’과 ‘실재의 것으로 알려진 것’ 사이에 발생하는 차이가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다.
쩡판즈의 ‘Untitled No.8’. 일그러진 듯한 젊은이의 초상이 인상적이다.
ZENG FANZHI
격동기를 살아가는 현대 중국인의 이중적 면모를 가면 쓴 모습(‘마스크’ 시리즈)으로 표현해 세계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킨 쩡판즈(1964년~). 그는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 사이의 모순과 결절을 그려왔다. ‘병원’, ‘고기’, ‘마스크’, ‘풍경’, ‘우리’ 시리즈 등 끊임없이 변화하는 작품에는 평탄치 않은 중국의 역사, 그 안에서 작가가 느낀 슬픔과 혼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꼼꼼하고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리웨이의 ‘Hero-Chorus’ 작품 중 얼굴 부분
LI WEI
리웨이(1981년~)는 베이징 출신의 젊은 여성 조각가다.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지금껏 주로 여성과 동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유리 섬유를 이용한 세밀한 인물 묘사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 그녀는 현재 중국 내에서 열리는 주요 조각 전시회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기 작가 중 한 명이다.
금속을 이용한 가오웨이강의 초대형 설치 작품 ‘No Way’

비현실적인 색으로 계곡을 묘사한 정궈구의 대형 회화 작품 ‘The age of Empire’
ZHENG GUOGU
다양한 매체와 재료로 실험 예술을 시도하는 정궈구(1970년~). 그는 사진, 회화, 조각, 퍼포먼스 같은 장르를 통해 생명과 삶 등을 다뤄왔다. 그의 작품은 아주 이질적이거나 애매한 형태가 대부분인데, 그건 인간의 삶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통속 문화의 어구를 석재로 조각한 대형 설치 작품 ‘심유소원(心遊素園)’, ‘돼지머리로 컴퓨터를 통제하다’ 시리즈가 잘 알려져 있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글 최선희(아트 컨설턴트) 사진 Aurelie Nat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