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ll We Dance?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리듬을 타고 스텝을 밟는다. 명화 속 춤추는 사람들의 이야기.
Henri Matisse, Dance Ⅱ, 캔버스에 유채, 1909~1910, St. Petersburg, The State Hermitage Museum / ⓒ The State Hermitage Museum / Photo by Vladimir Terebenin
‘춤 Ⅱ’ – 앙리 마티스
인간의 근원적 몸짓언어, 춤
춤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습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제의나 치유를 목적으로, 때로는 유희나 구애를 위해 혹은 사상을 나타내기 위해 춤을 췄습니다. 인간의 몸이 표현 수단인 춤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예술 장르라 할 수 있죠. 벌거벗은 여인들이 원무(圓舞)를 추는 마티스의 ‘춤 Ⅱ’는 이런 춤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춤추는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화합의 춤, 원무는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 춤의 형태로 탄생과 죽음, 창조와 파괴, 계절의 끊임없는 순환 같은 자연의 원리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온전히 춤에 몰입한 작품 속 인물은 그들만의 합일을 넘어 우주와 하나 되는 조화의 세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감상 포인트
‘춤 Ⅱ’는 폭이 약 4m에 이르는 대형 작품입니다. 5명의 인물이 화폭을 가득 메우며 청색, 녹색, 적갈색을 사용했습니다. 청색은 하늘, 녹색은 대지, 적갈색은 인간을 상징하죠. 원시시대 또는 고대의 시간성과 연결되는 적갈색은 선사시대 동굴벽화의 붉은 황토색 말과 들소, 그리스 도자기에 보이는 붉은 갈색 인체를 연상시킵니다. 또 이 작품의 구도와 형태에서는 단순함의 미학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근법을 무시한 공간에 인체는 몇 개의 응축된 선으로 표현했습니다. 어깨와 팔, 허리와 엉덩이, 다시 다리와 발로 이어지는 선, 그리고 대지의 곡선은 작품에 리듬감을 더해주죠. 우리는 이 그림에서 한창 춤이 무르익은 순간을 느낍니다. 고개나 몸의 각도로 볼 때 인물들은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습니다. 빠르게 돌고 있는 탓인지 인물 대부분이 겨우 발끝만 땅에 닿아 있군요. 한 사람은 아예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옆 사람 손을 살짝 놓쳤습니다. 이러한 세부 묘사는 그림 전체에 변화와 긴장을 부여해 생동감을 더합니다. 이처럼 ‘춤 Ⅱ’는 색채와 형태의 합일, 통일감 속 변주를 훌륭하게 구현한 작품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마티스는 러시아의 텍스타일 수입업자이자 컬렉터인 세르게이 슈킨(Sergei Shchukin)의 주문을 받아 이 작품을 그렸는데, 슈킨은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집 거실을 춤과 음악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장식하길 원했습니다. 춤을 그려달라는 요청에 따라 마티스는 몽마르트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 본 파랑돌(farandole) 춤을 떠올렸습니다. 파랑돌은 고대 그리스에서 그 기원을 찾는 프로방스 지역의 민속무용입니다. 마티스는 그림을 그리는 내내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 들은 곡조를 콧노래로 흥얼거렸다고 합니다. 춤을 추듯 선을 긋는 화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나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기에 이 작품은 화가와 그림 속 인물, 감상자 모두 리듬 속에서 하나 되는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되나 봅니다. 1910년 ‘춤 Ⅱ’를 발표하자 대중은 그 대담하고 단순화한 표현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슈킨은 이 그림이야말로 “마티스의 최고 작품이자 20세기 최고 작품”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미안이 탁월한 컬렉터나 후원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하는 일화죠. 마티스는 춤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여러 차례 그렸습니다. 원무를 추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미 1905년 작 ‘삶의 기쁨’에 등장했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있는 ‘춤 Ⅰ’(1909년)은 ‘춤 Ⅱ’를 위한 습작으로, 전체적 구성은 비슷하나 조형적 완결성이나 색감에 분명한 차이가 있죠. 그런가 하면 비슷한 시기에 그린 ‘춤이 있는 정물’(1909년)은 ‘춤 Ⅱ’와 함께 예르미타시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후 1930년대에 마티스가 미국의 제약업자 앨버트 반스(Albert Barnes)의 주문으로 그린 삼면화에도 역시 춤추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춤을 반복해 그리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나는 춤을 정말 좋아합니다. 춤 속에서 움직임, 리듬, 음악을 보았거든요.” 마티스는 진정 춤에 깃든 생명감을 사랑한 화가였습니다.
글. 김보라(미술평론가)
Henri Matisse(1869~1954년)
20세기 최초의 회화 혁명인 야수주의의 선구자 앙리 마티스는 1869년 12월 31일 프랑스 북부 르카토캉브레지에서 태어났다. 파리의 쥘리앙 아카데미와 구스타브 모로의 화실, 에콜 데 보자르에서 그림을 배웠으며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세잔, 아프리카 조각, 이슬람 문양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조형적 본질을 추구하고 장식성과 조화를 특징으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조각, 무대 디자인, 의상 디자인, 삽화 작업도 했으며 말년에는 종이 오리기와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남겼다.
Georges Pierre Seurat, Le Chahut, 캔버스에 유채, 1889~1890, Kroller-Muller Museum / ⓒ Coll. Kroller-Muller Museum, Otterlo
‘샤위’ – 조르주 쇠라
무대 위, 춤추는 그들
반듯한 정장 차림에 콧수염이 멋스러운 댄디 보이, 그리고 챙 넓은 모자로 우아함을 한껏 뽐낸 콧대 높은 모던 걸. 쌍쌍의 남녀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춤을 춥니다. 하나 둘 오케스트라 반주에 발맞춰 새처럼, 나비처럼 날아오릅니다. 샤위 춤에 맞춰 남녀가 동시에 차올린 다리들이 승리의 브이(V)를 그리며 나아갑니다. 밤에도 지지 않는 인공 태양을 향해, 밤이 되면 더욱 빛나는 한 떨기 꽃을 향해 도발적인 하이킥이 우아한 발끝을 내밉니다.
샤위, 발칙한 파격의 춤
샤위(chahut)는 19세기 초 파리의 뮤직홀에서 시작된 사교춤입니다. 검은 스타킹을 신은 여성이 검은 정장 차림의 남성과 한 동작으로 관객을 향해 높이 다리를 치켜드는 발칙한 춤은 선술집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한껏 달구는 명물로 떠오릅니다. 자유와 사랑, 낭만이 넘치는 최신 유행의 도시 파리에서 한낮의 카페가 교양 있는 대화로 가득했다면, 밤의 뮤직홀과 카바레는 샤위의 요상스럽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많은 이들을 열광케 했습니다. 샤위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을 매혹시킨 춤 가운데서도 최고봉, 우리에게는 ‘캉캉’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춤입니다. 여성 무용수들이 화려하고 풍성한 치마폭을 펄럭이며 재빨리 다리를 돌리고 들어 올리는 모습은 오늘날에도 대단한 볼거리지만 화가 조르주 쇠라가 살던 시절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파리 물랭 루주를 중심으로 한 카바레에서 샤위는 새로운 시대의식을 대변하는 몸짓으로 젊은 예술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인상주의 화가들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역동적이고 과감한 몸짓을 통해 권위에 대한 도전의식과 함께 변화와 혁명을 향한 열정을 느꼈습니다. 쇠라 역시 그의 생애 말년에 대중오락의 밤무대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3점을 남깁니다. ‘서커스의 파라드’, 미완성의 ‘서커스’, 그리고 ‘샤위’입니다. 조르주 쇠라는 당시 재빠른 붓 터치와 강렬한 색채로 순간의 감흥과 동세를 스냅사진처럼 포착해 그린 인상주의 화가와 달리 치밀한 구도와 조형, 세밀하고 과학적인 색점의 조합으로 신인상주의라는 독자적 노선을 보여줍니다.
감상 포인트
조르주 쇠라의 ‘샤위’는 무대 위 가장 인상적이고 역동적인 순간을 특유의 점묘법으로 고운 황금 모래를 뿌려놓은 듯 은은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나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 등 자연광 아래 낮의 풍경을 다채로운 빛깔로 펼쳐낸 것과 비교하면 밤의 풍경은 오히려 절제된 색조의 명암 대비로 차분하게 그린 것이 흥미롭습니다. 샤위의 하이킥 동작, 고조된 흥분과 놀람, 환성의 순간, 무대 위와 아래, 남녀의 춤과 음악, 빛과 그림자, 그리고 다양한 각도의 인물들이 가스등 아래 따뜻하고 그윽한 분위기에서 낮의 풍경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대비와 조화를 이룹니다. 쇠라는 우리의 관심을 환한 무대에서 무대 아래 어둠 속 오케스트라로 자연스럽게 유도합니다. 무대를 응시하며 음악과 청중을 이끄는 지휘자의 손끝,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피리 부는 손, 나지막이 리듬을 지키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묵묵한 뒷모습과 어두운 손에 시선이 머뭅니다. 새로운 주인공들에게 무대를 내준 오케스트라를 따라가다 보면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는 여인과 시선이 마주칩니다. 여인은 우리에게 무대 위로 올라오라는 초대의 눈짓을 보냅니다. 쇠라의 ‘샤위’는 새로움을 향한 시선이 교차하는 역동과 질서 속에서 화합의 순간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글. 조성지(미술평론가)
Georges Pierre Seurat(1859~1891년)
쇠라는 32년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세잔과 더불어 20세기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연 프랑스 대표 화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고전 작품 연구와 소묘에 몰두했으며 슈브뢸의 색채학과 헬름홀츠의 광학 이론을 연구했다. 1881년에는 들라크루아 작품의 색채 대비와 보색 관계를 밝힌 글로 주목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최초의 점묘화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를 그렸다. 1886년 인상파 전람회에서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발표해 인상파의 색채 원리를 과학적으로 체계화한 신인상주의 이론과 점묘화법으로 독특한 개성을 인정받았다.
Pablo Piccaso, The Three Dancers, 캔버스에 유채, 1925, Tate Modern / Purchased with a special Grant-in-Aid and the Florence Fox Bequest with assistance from the Friends of the Tate Gallery and the Contemporary Art Society 1965 ⓒ Succession Pablo Picasso / DACS, London 2006
‘3명의 댄서’ – 파블로 피카소
죽음의 춤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영국 테이트 갤러리는 2012년 대규모 피카소 전시를 기획하고, 주요 작품으로 이 그림을 내걸었습니다. 세로가 2m가 넘는 이 대문짝만 한 그림은 위풍당당하게 전시됐죠. 연계 행사로 영국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무대에 올린 것도 ‘3명의 댄서’를 고려해서일 겁니다. 피카소가 이 작품을 그린 시기에 무용수에게 많은 영감을 받고 무대미술에도 참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댄서들의 춤은 직업 무용수가 안무와 연출을 통해 준비하는 ‘공연’보다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에 가깝습니다. ‘3명의 댄서’는 강박적으로 춤을 추면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멈추지 못하는 소위 ‘죽음의 춤’에서 표출되는 인간의 극단적 심리 상태를 그리고 있습니다.
감상 포인트
서양 미술에서 3명의 여신을 그린 도상은 아주 흔합니다. 3명의 여인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죠. 하지만 이 그림은 언뜻 보기에도 그런 유형의 그림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도저히 우아하다고 할 수 없는 자세로 몸을 뒤틀고 있으며, 특히 왼쪽 댄서의 얼굴은 해골처럼 비강 부분이 검게 비어 있고 붉은 입술 사이로 치아가 드러나 기괴해 보입니다. 이 작품을 미술사적 측면에서 보면 서로 다른 양식을 결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운데 인물의 얼굴을 보면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려, 인물을 여러 시점에서 분해하고 결합한 큐비즘의 속성을 찾아볼 수 있죠. 하지만 인물의 배치나 구성은 피카소가 신고전주의를 재해석한 시기의 작품과 관련이 있고, 강렬한 원색을 평면적으로 사용한 점은 마티스와 비슷하며, 초현실주의의 영향도 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지식으로도 수수께끼 같은 이 작품의 매력을 다 설명하진 못할 겁니다. 좀 더 직관적으로 다가가보죠. 3명의 인물은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기에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틀릴까 봐 망설이는 어른보다 해맑은 어린이가 잘하는 일이죠. 먼저 인물들의 성별을 추측해보면 왼쪽은 여자, 오른쪽은 남자라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문제는 가운데 인물인데, 볼록한 가슴이 달려 있어 여자일 것 같지만 다른 신체 부위는 남자처럼 보이기도 해서 참 모호합니다. 어떤 비평가는 그 형상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을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셋이라는 아찔한 관계
비록 작품 속 인물들은 거칠게 만든 종이 인형처럼 단순하게 묘사했지만 그들의 감정 상태가 격양되어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습니다. 1965년 인터뷰에서 피카소는 이 작품이 친구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언급했죠. 그래서 이 그림을 공공연하게 피카소의 친구 부부와 또 한 명의 남자 사이의 삼각관계를 드러낸 작품이라고 소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 청춘이던 1900년경 친하게 지낸 예술가죠. 그 일화에 바탕을 두고 그림을 해석해보면 좌우의 인물은 아내 헤르마이네(Germaine)와 남편 라몬(Ramon)이고, 가운데 인물이 카를로스 카사헤마스(Carlos Casagemas)에 해당합니다. 삼각관계에 괴로워한 카를로스는 스스로 총을 쏘아 자살했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피카소는 그의 자살에 큰 충격을 받았고, 25년이 지나 라몬의 죽음을 접한 후 이 그림을 그렸죠. 물론 이 작품을 굳이 피카소의 친구에게 일어난 비극적 사연에 한정해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림의 배경인 반쯤 열린 발코니 창문처럼, 작품 해석의 여지는 항상 열려 있는 게 아닐까요? 글. 신혜성(미술평론가)
Pablo Piccaso(1881~1973년)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피카소’라는 이름은 알고 있을 정도로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스페인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그림에 놀라운 재능을 보였으며, 젊은 시절 파리로 가서 당대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어울려 활동했다. 청색 시기, 장밋빛 시기를 거쳐 입체주의 미술로 새로운 시대의 최전선에 섰다. 평생에 걸쳐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으며, 수많은 양식과 매체를 변화무쌍하게 넘나들며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겨 천재성과 독창성을 과시했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