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

ARTNOW

독일 사진작가 토마스 데만트의 작품을 볼 때면 우리는 17세기 사실주의 회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의 눈에 각인된 어디서 본 듯한 특정 공간이 이미지로 박혀 있다. 그러나 그곳은 실재하지 않는, 그가 손으로 정교하게 구축한 가상의 세계다. 작가는 실제 크기로 제작한 종이 모형을 사진으로 찍고 다시 없앤다. 이런 수고스러운 창조와 파괴의 충돌 속에서 그가 밝히고 싶은 사진의 비밀은 무엇일까?

rchive, C-프린트/디아섹, 183.5×233cm, 1995
ⓒ Thomas Demand, VG Bild-Kunst, Bonn / SACK, Seoul

Atelier, C-프린트/디아섹, 240×341cm, 2014
ⓒ Thomas Demand, VG Bild-Kunst, Bonn / SACK, Seoul

Copyright by Station2station
ⓒ Thomas Demand, VG Bild-Kunst, Bonn / SACK, Seoul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습니다. 스스로 ‘조형 작가’라 칭하기도 했는데, 혹시 최종 작품의 결과물을 ‘사진’으로 제시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딱히 어느 한순간이 있었다기보다 생각이 점진적으로 변화했습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 접한 스위스 출신 듀오 피슐리 & 바이스의 작품이 결정적 계기가 되기는 했어요. 만든 조형 작품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 기록을 급진적 방법으로 알려야겠다는 제 생각에 확신을 주었죠.
정치적・사회적・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 현장을 실제와 똑같은 크기의 종이 모형으로 섬세하게 제작하고 이를 촬영하는 독특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건축적이면서 동시에 사진의 수공예적 전통이 떠올라요. 또한 작품 속 재료와 모형이 모두 ‘종이’라는 점에서 사진의 최종 결과물이 ‘종이’라는 점을 이중으로 지시하는 것 같습니다. 종이와 카드보드라는 재료를 사용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저는 반복 순환 논리를 매우 좋아해요. 돌고 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실이 있고 마치 소용돌이 같죠. 결과물이 종이인 사진을 얻기 위해 ‘종이’를 사용한다는 점이 우선 마음을 사로잡고요. 또 종이라는 재료가 생활 속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종이는 누구에게나 친숙하죠. 내 작품을 보는 모든 사람의 손에 그날도 종이가 닿았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그것이 책이라면 책으로, 미술관에서는 입장권으로, 은행에서는 지폐로, 전시 기사가 실린 신문으로, 신문 읽을 때 사용한 종이컵 등으로 말이에요. 종이가 지닌 보편성 덕에 제가 관람객과 공유한 일련의 잠재의식과 같은 지식에 의지할 수 있게 되죠. 표면에서 오는 친숙함이 있고, 수요가 끊이지 않으니 세계 어디를 가도 구할 수 있죠. 하지만 이 모든 건 수년에 걸친 관찰이고, 처음에는 실질적 이유가 컸어요. 싸고, 변형이 쉽고, 없애도 그리 아깝지 않다는.
당신의 작품은 ‘생산’과 ‘파괴’에 대한 알레고리처럼 읽힙니다. 마치 조금 전에 엄청난 사고를 당한 것 같은 작품 속 장소도 그렇지만, 한 작품당 보통 2~3개월 이상 걸려 만든 모형을 사진 촬영을 마치면 파기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전시물의 형태로 제시하고 싶진 않나요?
망가지기 쉬운 재료의 특수성 때문에 조형물을 직접 보여주는 건 어렵지만, 작업에서 재료의 연약함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에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특정 장소를 이미지화한다는 점에서 당신의 작품은 건축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사진-건축’과 ‘건축-사진’의 경계에 있는것 같아요. 한 인터뷰에서 “건축은 언제나 내 관심의 중심이었다. 그것은 유토피아와 더 나은 미래의 생각을 다루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에 게티 리서치 인스티튜트에서 본 미국 건축가 존 로트너의 축소 모형 건축물을 촬영하기도 했는데, 실제 건축물을 찍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니 아니라고 말할 순 없겠네요. 하지만 여태껏 실제 건축물을 촬영하고 싶은 적은 없었어요. 존 로트너의 축소 모형 건축물을 비롯해 도쿄 SANAA 스튜디오에서 선보일 시리즈가 흥미로운 건 무엇인 것과 아무것도 아닌, 혹은 계속해서 무엇인가가 되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 때문이죠. 누군가 앙리 마티스의 스튜디오를 본다면, 여기저기 잘려나간 부분이나 버려져 처분을 기다리는 것으로 가득할 거예요. 하지만 그런 것 모두 다음 작품을 위한 힌트를 담고 있죠. 그런 것이 한데 어우러져 스튜디오를 흥미롭고 영감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줘요. 그런데 만약 제 스튜디오를 촬영한다면, 온통 저 자신에 관한 것뿐인 데다 조금 가식적일 거예요.
실재하지 않는 공간을 수고스럽게 만들어 사진을 찍을 때, 당신에겐 그 공간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한가요, 아니면 실재하지 않는 건축 공간을 실재하는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이 중요한가요?
관념 속 세계로서 가상 공간은 흥미로워요. 하지만 컴퓨터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저를 졸리게 할 뿐이죠. 적어도 지금까지 봐온 것은 하나같이 제게 영감을 주지 못했어요. 미안하지만요.
작품에 등장하는 건축 공간이나 특정 사건에 관한 이미지 레퍼런스를 따로 아카이빙하고 있나요?
네. 어느 날 제 아카이브를 공개할 겁니다. 전시 제목은 ‘맞춤 아카이브’라고 하면 되겠네요.(그의 이름 ‘Demand’의 영문 뜻을 활용한 농담.)
당신의 작품에서 제작 과정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단순히 ‘연출’ 개념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진을 찍기 전 당신이 관찰한 사물과 상황이나 어떤 풍경에 관한 기억, 대상과 카메라와 당신의 관계, 촬영 당시의 상황과 컨디션, 최종 완성한 장면이 지닌 사회적・문화적 맥락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죠.
아주 잘 묘사했습니다. 복잡한 작업이죠. 저는 1년에 5점 넘게 제작하지 않는데다 대부분 직접 만들죠. 기업식 생산은 하지 않아요. 때로 여러 명이 함께 작업하기도 하지만 사진의 모든 세부 사항은 제가 직접 결정하고 통제하죠. 사진작가라기보다는 화가에 가까워요. 정교함을 요구하는 작업입니다.
그럼 공간을 만들기 전에 사진의 프레임이나 앵글을 미리 정하는 편인가요?
네. 나중에 프레임이나 앵글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공간을 바로 눈앞에 두고 만들기 때문에 나중에 시점을 바꿀 이유가 없죠.
제작 과정에서 당신의 역할은 화가와 같다고 말한 것처럼, 관람객의 반응은 사실주의적 회화를 보는 것과 유사합니다. 먼저 얼핏 작품을 보고 그곳을 실재하는 장소로 착각하는 겁니다. 그다음 그것이 종이로 만든 가짜라는(엄밀히 말해 실재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가짜는 아닌) 점을 깨닫고는 그 수공예적 완성도와 실제 같음에 놀랍니다. 대부분의 관람객은 후자에 압도당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거대한 작품 앞에서 서성거리며 혹은 가까이 다가가며 실제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하죠. 관람객의 이런 반응을 어느 정도 계산하고 통제하나요?
관람객의 반응에 신경 쓰죠. 지금 말씀하신 관람객의 반응이 상당히 정확한 지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 작품의 정교함을 그림의 사실적 묘사에 비견한다면, 그리 놀랄 정도는 아니죠. 17세기 화가의 사실주의 표현에 감탄하는 것을 두고 실수라는 사람은 없죠. 그 그림은 사실 모두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잖아요. 그림 속 신이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 모두 그림을 보면서 이해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죠. 그런 면에서 저는 사람들이 작품을 시간을 들여 보는게 좋아요. 하지만 감상자가 보게 될 내용이나 그게 실제로 무엇인지 알고 실망할지 매료될지는 감상자의 몫이고, 저는 추측할 뿐이죠.
당신이 생각하는 동시대 사진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산업이 제시하는 이미지 제작의 용이성과 관계가 있다고 봐요. 우리의 취향은 휴대폰 화면의 역광 때문에 많이 무너진 것 같아요. 모든 게 멋지게 보이는 대신 섬세한 디테일이나 전문 인쇄술이 주는 즐거움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제 작품을 제 스튜디오를 들여다보는 창으로 생각한다면 좀 다른 입장에 서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갈수록 정교해지는 극도의 사실주의 표현과 경쟁하자는게 아니니까요. 사진은 접근하기도 쉽고 이해하기 쉬운 매체가 됐어요. 그렇지만 사진에서 예술이 차지하는 부분은 계속 있었으면 합니다. 종전의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저널리즘 사진 대신 다분히 주관적인 사진이 대두하고 있죠. 지난 10년간 포토저널리스트가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과도한 주관은 매체를 약화하고, 결국 모든 것을 백색 소음처럼 균등하게 만들 겁니다. 그 자체론 괜찮겠지만, 예술적 사진에는 도전의 시간이죠. 그 어려움을 타개할 해결책이 ‘추상’이 되진 않을 겁니다.
당신에게 사진은 여전히 어떤 미지의 ‘가능성’을 지닌 영역인가요? 아니면 이미 너무 잘 아는, 익숙하고 편안한 영역인가요?
‘가능성’은 잘 모르겠어요. 저는 특히 사진 이미지를 볼 때면, 어떤 숭고한 경험을 갈망해요. 요사이 담론은 윤활유를 바른 기계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모두 무의식적으로 이해하고, 합의하고, 고개를 끄덕거리죠. 이런 것과 거리 두기가 정말 어려운데, 최상의 사진은 그걸 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럼 사진을 통해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옛 거장의 회화에 버금가는 이미지요.

Bloom, C-프린트/플렉시글라스, 200×398cm, 2014
ⓒ Thomas Demand, VG Bild-Kunst, Bonn / SACK, Seoul

Parquetry, C-프린트/플렉시글라스, 99×137cm, 2014
ⓒ Thomas Demand, VG Bild-Kunst, Bonn / SACK, Seoul

Junior Suite, C-프린트/디아섹, 140×115cm, 2012
ⓒ Thomas Demand, VG Bild-Kunst, Bonn / SACK, Seoul

Sidegate, C-프린트/디아섹, 180×255cm, 2014
ⓒ Thomas Demand, VG Bild-Kunst, Bonn / SACK, Seoul

Control Room, C-프린트/디아섹, 200×300cm, 2011
ⓒ Thomas Demand, VG Bild-Kunst, Bonn / SACK, Seoul

Vault, C-프린트/디아섹, 220×277cm, 2012
ⓒ Thomas Demand, VG Bild-Kunst, Bonn / SACK, Seoul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제공 토마스 데만트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