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가격의 비밀
1980년대 이후 세계 미술 경매시장에서 급성장한 사진 . 과연 어떤 작가의 작품이 그 왕좌의 게임에서 최종 승리를 거뒀을까.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사진과 사진가에 관한 뒷이야기가 펼쳐진다.
제프 월, Boxing, 라이트젯 프린트, 222.89×303.53×5.08cm, 2011
ⓒ Jeff Wall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세계 미술 경매시장에서 팔린 작품 중 사진이 차지한 비율은 4.1%로 회화, 조각, 드로잉에 이어 네 번째였다. 사진이 미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작지만, 미술 시장에 입성하고 30~40년 만에 보여준 성장세는 놀랍다. 이제 많은 사람이 사진이 회화만큼 투자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몇몇 유명 사진가는 화가의 최고가 작품과 견줄 정도로 수십억 원에 작품이 팔릴 정도다.
작가 미상, Billy the Kid, 1879~1880_2014년 기준 ‘가장 비싸게 팔린 사진 10위’에 랭크 됐다.

언드레 케르테스(Andre Kertesz), Mondrian’s Glasses and Pipe, 젤라틴 실버 프린트, 7.9×9.3cm, 1926
ⓒ 2014 Estate of Andre Kertesz
경매, 사진의 시장가치를 끌어올리다
19세기 중반에 사진이 보급되면서 미술이라는 예술에 변화가 왔다. 사진이 등장하자 그림을 통해 외부 세계를 그대로 그릴 의미가 없어졌다. 아예 똑같이 외부 세계를 재현하는 사진 앞에서 그럴듯하게 잘 그리는 일은 의미도, 재미도 없었다. 사진이 보급되고 등장한 인상파 화가를 떠올려보자.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일부 작가는 사진도 단순히 외부 세계를 기록하는 기능 외에 예술적 측면이 있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사진이 작가의 의도나 생각에 따라 외부 세계를 전혀 다르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21세기 들어 사진은 또다시 급격히 변했다. 스마트폰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고 편집하는 시대가 되면서 미술의 한 장르로서 사진 역시 현실을 찍어내는 시각적 역할보다 개념성을 추구하게 됐다. 회화보다 개념적이고 개성 있는 사진 작품이 점차 많아졌다. 사진의 개념성이 강해지면서,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컬렉터의 취향에 잘 맞게 됐다. 미술이 재미있는 이유는 우리가 평범하게 보던 주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데 있다. 사진은 회화보다 재미있고 더 큰 충격을 줄 때가 많다.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은 흔히 보던 풍경이지만, 작가의 독특한 시각으로 카메라에 포착한 모습을 보면 ‘이걸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이런 의미를 담을 수도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새로 얻는다.
예술적 가치를 점차 획득해가던 사진은 1980년대에 들어 마침내 경매 회사와 갤러리에서 시장가치를 인정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회화로 가로세로 2m 넘는 작품을 완성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사진은 그에 비해 대규모 작업이 수월하다. 회화는 웬만해선 따라가기 힘든 ‘큰 사이즈’로 현상하고 거기에 회화처럼 비싼 가격을 매기는 일은 동시대 미술계에서 사진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또한 사진을 회화나 조각과 함께 현대미술 영역에서 판매한 경매 회사의 세일즈 마케팅도 한몫했다. 경매 회사는 경매품을 여러 장르로 분류해 판매하지만, 인기 있는 고가 작품은 소속이 어디든 상관없이 ‘현대미술’ 경매에 올린다. 예를 들어 인기 있는 한국, 중국, 일본 작가의 대표작은 ‘아시아 작품’ 경매가 아니라 ‘현대미술’ 경매에 등장한다. 사실 요즘 작가는 회화, 사진, 영상, 조각, 퍼포먼스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기 때문에 굳이 특정 장르로 분류하는 것은 트렌드에도 맞지 않다. ‘사진가’나 ‘화가’, ‘조각가’ 이렇게 분류해 부르지 않고 모두 ‘아티스트’라 칭하는 시대 아닌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라인 강 II, C-프린트, 156.4×308.3cm, 1999

신디 셔먼, Untitled #96, 컬러 커플러 프린트, 96.61×121.9cm, 1981
사진 가격의 새 역사를 연 작가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사진가는 좋은 현대미술가다. 그럼 좋은 현대미술 작가는 어떤 작가일까? 자신이 사는 동시대 사회를 정확히 읽어내고 그 시대의 주제를 독특한 시각적 방법으로 표현하는 작가다. 인기 있는 사진가도 마찬가지. 독일 사진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 1955년~)는 사진이 회화처럼 초고가에 팔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지금까지 거래가격이 알려진 사진 중 가장 비싸게 팔린 리스트 상위 10위에 그의 작품이 2위, 5위, 6위, 9위를 차지하며 4점이나 올라 있다. 그의 대표작 중 대형 마트 내부를 찍은 ‘99센트 II 딥타이콘(99 Cents II Diptychon)’은 2007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334만 달러(약 36억 원)에 팔렸다.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이었다. 이 작품은 런던 소더비에서 ‘현대미술’경매로 판매됐다. 사진 한 장이 30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릴 수 있다는 사실에 세상은 경악했다. 그것도 99센트짜리 물건이 가득한 풍경으로 말이다. ‘99센트 II 딥타이콘’은 같은 가격의 물건을 줄줄이 예쁘게 진열한 대형 마트의 내부를 포착한 작품이다. 현란할 정도로 화려한 색깔이 관람객의 시선을 빼앗는다. 늘 보던 익숙한 풍경을 통해 현대인의 물질만능주의를 어딘가 소름 끼치게 드러내는 구르스키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이 작품이 팔리고 4년 뒤, 2011년 그의 다른 작품 ‘라인 강 II(Rhein II)’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4만 달러(약 47억 원)에 팔리며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다. 추정가 250만~350만 달러를 훌쩍 넘긴 가격이었다. ‘라인 강 II’는 구르스키가 독일 라인 강을 찍은 시리즈 중 하나로, 익숙한 자연풍경을 소재로 추상회화를 보는 듯 몽환적 분위기로 촬영했다. 그는 이렇게 세계 미술 시장에서 여러 차례 화제가 되면서 사진의 새 역사를 열었다.
미국 사진가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54년~)도 작품의 유명세만큼 비싼 가격에 작품을 판매했다. 그녀의 작품은 리스트 상위 10위에 2점이 포함됐다. 2011년 런던에서 389만 달러에 팔린 ‘무제 96번(Untitled #96)’이 가장 비싸다. 경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이었지만, 구르스키의 ‘라인 강 II’에 1위 자리를 내주고 현재는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신디 셔먼은 자기 자신을 재료이자 주제로 삼고 여러 모습으로 변장해 찍은 사진을 선보였다. 그녀의 작품은 미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의미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끊임없이 질문한다. 자신을 모델로 촬영한 다른 사진 ‘무제 153번(Untitled #153)’은 2010년 270만 달러에 팔려 현재 비싼 사진 8위를 차지했다.
에드워드 스타이컨, 달밤 연못, 플래티넘 프린트, 39.7×48.2cm,1933
에디션 개념으로 만든 ‘희소성’
사진이 고가에 팔릴 때마다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사진은 원본 필름으로 똑같은 작품을 여러 장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 컬렉터는 사진 한 점을 수십억 원에 살 만큼 사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그들에게 사진은 투자가치가 충분한 아이템이다. 욕심이 많은 누군가에게 오히려 사진의 ‘복제성’은 매력적 요소다. ‘유명 컬렉터나 미술관이 소장한 똑같은 작품을 나(개인 컬렉터)도 가질 수 있다’는 맥락에서 그렇다. 대표적 사례로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미국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컨의 작품 ‘달밤 연못(The Pond-Moonlight)’을 꼽을 수 있다. 이 사진은 2006년 2월 뉴욕에서 290만 달러(약 31억 원)에 팔렸다. 에디션 개념이 있기 전인 1904년에 제작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모든 에디션이 사라지고 전 세계에 딱 3점만 남게 됐다. 한 장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다른 한 장은 뉴욕 MoMA가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장이 2006년 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이 사진을 가지면 적어도 사진에서만큼은 자신의 컬렉션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나 뉴욕 MoMA 수준이 된다는 뉘앙스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 작품의 가격은 세계적 미술관과 같은 대열에 자신의 컬렉션을 올리는 대가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구르스키의 ‘99센트 II 딥타이콘’은 2007년 작품이 최고가를 기록하기 전해에 열린 경매와 개인 거래로 각각 225만 달러와 248만 달러에 팔린 적이 있다. 이미 한 번 비싸게 팔린 유명 작품은 다른 에디션이 나와도 높은 가격에 팔릴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그 작품을 ‘무한정’ 복제해 팔 수는 없다. 현대사진가는 (딜러와 협업해) 사진 에디션을 제한한다. 국내외에서 고가에 판매한 유명 사진가의 작품은 보통 5~10개로 에디션을 정한다. 물론 자신의 작품을 많은 컬렉터가 소장하길 원하는 작가는 100개나 그 이상의 에디션을 만들어 낮은 가격에 판매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에디션’ 개념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은 존재한다. 에디션만으로는 사진의 진정한 희소성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 미술 시장 시스템은 에디션을 철저히 지키며, 정식 에디션이 아닌 작품은 시장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에디션을 마구 늘릴 순 없어도, 만약 인기 있는 작품의 에디션이 다 팔린 후 작가 소장용인 ‘AP(Artist’s Proof)’ 에디션을 더 찍는다면 그것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본래 AP는 사진가나 판화가가 시장에 완성작을 내놓기 전에 작품을 점검하기 위해 준비하는 에디션을 뜻한다. AP도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편이라 딜러나 옥션에서 통제하긴 쉽지 않다. 실제로 시장에서 인기 있는 사진 작품은 AP 에디션이 여러 개인 경우가 더러 있다. 같은 사이즈로 에디션 수를 늘릴 순 없지만, 크기를 변형해 현상하면 ‘다른 작품’으로 인정하기에 가끔 이런 ‘편법’을 쓰는 작가도 있다.
사진 거래의 ‘변수’와 장밋빛 미래?
사진도 다른 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가격을 정하는 데 특정 ‘변수’가 큰 역할을 한다. 판매 가격이 알려진 사진 중 가장 비싼 작품은 호주 사진가 피터 릭(Peter Lik, 1959년~)의 ‘팬텀(Phantom)’이다. 2014년 12월 650만 달러(약 70억 원)에 팔렸다는 외신 보도가 나와 세계 미술 시장을 놀라게 했다. 그는 미국 서부 지역의 자연환경을 독특한 이미지로 포착한다. ‘팬텀’은 미국 애리조나 주에 있는 동굴에서 찍은 흑백 풍경 사진이지만 작가의 개성적 터치가 강해 마치 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두컴컴한 동굴의 천장에서 내려오는 한 줄기 가느다란 빛은 제목처럼 이 동굴에 ‘유령’이 있는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는 동굴 벽, 그 벽의 질감과 상반되는 모랫바닥은 자연이 만든 숭고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피터 릭의 작품은 아름답지만, 70억 원에 팔렸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는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신디 셔먼, 제프 월 등 수십억 원에 작품을 판매한 유명 생존 작가보다 훨씬 덜 알려진 호주 작가 아닌가. 그 배경에는 그의 작품에 매료된 특정 컬렉터가 있다. 작품을 구매한 컬렉터는 피터 릭의 다른 작품 ‘일루전(Illusion)’을 240만 달러(약 26억 원)에, ‘영원한 무드(Eternal Moods)’를 110만 달러(약 12억 원)에 샀다고 전한다. 익명을 요구한 컬렉터는 피터 릭을 매우 좋아해 그의 작품을 이미 다수 소장하고 있다고. 컬렉터 중에는 특정 작가에게 꽂히면 물불 가리지 않고 작품 구매에 달려드는 이들이 있는데 이 거래도 그런 경우로 볼 수 있다.
이러저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진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등 뉴욕과 런던의 주요 국제 경매시장은 사진을 단독 경매로 소개하는 이벤트를 늘려가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사진을 둘러싼 거래가 활발해지는 추세다. 사진과 돈의 관계가 사진을 둘러싼 세상의 관심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그 추이를 지켜보자.
토마스 루프(Thomas Ruff), Nudes yv16(NUD 038), C-프린트, 157×112cm, 2000

윤정미, The Pink Project-Tess and Her Pink Things, 라이트젯 프린트, 122×122cm, 2006

이득영, Superblock 115, 피그먼트 프린트, 60×90cm, 2011

타린 사이먼(Taryn Simon), A.6 Pussy Galore(Honor Blackman), 1964, 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26.5×39.8cm 2013
ⓒ 2013 Taryn Simon

유르겐 텔러(Jurgen Teller), Food No.15, Hotel Il Pellicano, 2010, 라이트젯 프린트, 182.9×274.3cm, 2010

엘라드 라스리(Elad Lassry), Untitled(Isopod), C-프린트, 36.8×29.2×3.8cm, 2013

기 부르댕(Guy Bourdin), Untitled, 2003
ⓒ Guy Bourdin

시라나 샤바지(Shirana Shahbazi), Komposition-40-2011, C-프린트, 149.9×119.9cm, 2011

김상길, Accession Number_ Jan/20/1987+May/23/2002+April/27/1967+May/08/2012, C-프린트, 180×225cm, 2012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Untitled(for Jeff), 1992_2011년 프랑크푸르트 MMK에서 열린 회고전을 위해 지하철 광고판에 설치한 모습.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 Soft Confetti, C-프린트, 191×130cm, 2013
Courtesy of Galerie Perrotin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글 이규현(이앤아트 대표,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