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쓰인 서사의 궤적
퍼포먼스, 비디오, 드로잉, 설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끊임없는 실험을 이어온 조안 조나스. 그 긴 여정 속에서 늘 새로운 가능성에 이끌려온 그녀는 현대 예술의 선구자이자, 여전히 변화를 모색하는 예술가다. 제8회 백남준예술상 수상 작가전 〈조안 조나스: 인간 너머의 세계〉를 통해 인간과 자연 그리고 그 너머의 사유를 펼쳐 보인다.

조안 조나스
1936년 뉴욕 출생. 현대미술의 개척자로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드로잉,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개념 미술과 퍼포먼스 아트 등 장르의 지평을 넓혀왔다. 2024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을 비롯해 디아 비컨, 테이트 모던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카셀 도쿠멘타와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등 국제 무대에서 활발히 작품을 선보이며 교토상과 백남준예술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50여 년간 작품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작업을 지속하며 예술가로서 시각이나 접근 방식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우리가 사물을 지각하는 방식, 그리고 제가 그 인식을 어떻게 변형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기준점이 되는 몇 가지 기본 구조 안에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특정 소품이나 오브제가 점차 제 작업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죠. 저는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미로들(Labyrinths)〉에 실린 글에서 영감을 받아, 시야를 왜곡하고 전환시키는 장치로 거울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작업에 보르헤스를 참조하고 인용하며 ‘거리(distance)’라는 개념이 우리의 시지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실험했죠. 이 실험에서 공간은 평면처럼 보였고, 소리는 지연되어 도달했어요. 그러던 중, 1970년 일본 여행길에 소니의 휴대용 비디오카메라 ‘포타팩’을 손에 넣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어요. 이미지, 사운드, 움직임을 한 장면에 층층이 겹쳐낼 수 있게 됐죠. 이 무렵 활용하기 시작한 텍스트와 스토리텔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 작품에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싱글 채널 작품에서 다중 프로젝션과 설치 작품으로 확장된 것 역시 제 작업 여정에서 중요한 변곡점이에요.
미술사를 공부한 뒤 조각으로 시작해 퍼포먼스로 작업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비디오와 퍼포먼스는 작가님에게 어떤 가능성으로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3차원의 공간에서, 이를테면 사운드처럼 여러 요소를 함께 다루며 한층 복합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퍼포먼스에 매료되었어요. 먼저 1950년대에는 회화와 영화, 조각을 유심히 관찰하며 하나의 프레임에서 공간의 환영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확인했어요. 그 후 비디오는 제 작업의 구조와 의미를 변화시키는 도구가 되었죠. 그리고 퍼포먼스와 비디오를 함께 다루며 스토리텔링과 더불어 공간이 가질 수 있는 모호성과 환영의 구조를 탐구했어요. 첫 비디오 퍼포먼스 ‘Organic Honey’s Visual Telepathy’는 부분적으로 ‘여성성(the feminine)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업이기도 했고요. 이어 1960년대 뉴욕의 갤러리와 예술 공간에서는 ‘해프닝(happening)’이라는 즉흥적 액션 예술이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이는 시각예술, 연극, 음악, 시, 무용이 뒤섞여 전개되는 느슨한 형태였습니다. 저는 그중 루신다 차일즈, 로버트 라우션버그, 로버트 휘트먼 작가의 해프닝에서 큰 영감을 받았어요. 당시 무용가들은 시각예술가와 긴밀히 협업했는데, 그 영향이 저에게도 깊이 남았죠. 게다가 당시 조각과 회화가 남성 중심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많은 여성 예술가가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자 했어요.



퍼포먼스, 비디오, 드로잉부터 문학과 시, 신화, 영화, 사운드까지 폭넓은 예술 언어를 다뤄왔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매체와 개념을 함께 엮어낼 때, 어떤 방식으로 그 언어를 조율하나요?
예전에 시, 조각, 드로잉, 영화, 무용을 다룰 때 저는 그 본질적 차이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하나의 아이디어를 다각도로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다른 예술 언어의 요소를 작품 안에 함께 엮어낼 뿐이에요. 예를 들면 제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모더니즘 시가 그중 하나죠. 하지만 제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적인 것’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응축된 형식으로서 시의 구조 그 자체입니다. 서사적 산문의 형식을 가져오기도 하고, 드로잉을 통해 그 서사를 변주하기도 해요. 특히 드로잉 같은 경우 작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여러 방식으로 기능합니다. 모니터 작업을 위한 드로잉을 하기도 하고, 종이를 보지 않은 채 그리거나, 작품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드로잉을 하기도 하죠. 저는 항상 그 드로잉이 전체 이야기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탐구합니다. 1976년 작품 ‘Juniper Tree’에서는 물감으로 드로잉을 한 후, 그것을 무대 세트로 활용했어요.
거울, 가면, 동물, 그리고 반투명한 이미지와 반사, 왜곡이 중첩된 구조는 작가님의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는 작품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나요?
거울, 가면, 동물 등 언급하신 요소는 모두 제 작업 안에 있지만, 개별적 요소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저는 오랫동안 개와 함께 살았고 자연스럽게 그 존재를 작업에 포함시켰는데, 이것이 다른 동물로 확장되었고 이후에는 환경과 생명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중요한 주제로 확장됐어요. 최근작 ‘To Touch Sound’도 그중 하나죠. 이 3채널 비디오 작품은 해양생물학자 데이비드 그루버와 향유고래의 의사소통에 대한 그의 연구에 헌정한 것으로, 관람객은 그의 팀이 카리브해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향유고래의 출산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신체를 중심으로 작업이 전개되지만, 그 신체는 개인을 넘어 자연과 사물, 비인간적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확장됩니다. 신체를 하나의 매개로 삼는 이유와 그 힘에 대해 들려주세요.
저는 제 몸을 매개로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이 제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분명해요. 제 몸은 제가 가진 도구이자, 제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인 재료이기도 하죠. 움직임은 음악이나 드로잉, 무대 세트 등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데, 의식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몸이 반응하도록 내버려둘 때 비로소 그 움직임이 살아납니다. 제가 특히 흥미를 느끼는 것은 인물과 퍼포머,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이 공간 속 오브제와 맺는 관계예요. 초기 작업에선 대부분 제가 직접 퍼포머로 등장했어요. 카메라 앞 제가 만든 여러 상황 속에 나 자신을 놓았죠. 그리고 무대 세트의 개념을 탐구할 때, 저는 그 세트 안으로 직접 들어가 비디오카메라의 프레임 속에서 공간과 비디오, 몸의 관계를 실험했습니다. 이런 관계에 대한 탐구의 구체적 예로 ‘Mirror Piece’ 작품에서는 퍼포머들이 크고 무거운 거울을 들고 천천히 움직여요. 여기서 거울은 단순히 시점을 바꾸는 것뿐 아니라 퍼포머의 동작에도 영향을 미치는 오브제가 됩니다. 거울에 비치는 형상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느리고 절제된 움직임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죠. 관람객은 이 모든 관계 속 공간, 인물 그리고 자기 자신이 동시에 비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번에 백남준아트센터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의 작업 과정도 궁금합니다.
최근작 ‘Empty Rooms’를 통해 말씀드리면, 이 작품은 나이가 들면서 많은 친구를 떠나보내게 되는 현실에서 비롯했어요. 1년 전쯤, 누군가 제 곁을 떠날 때마다 그 사람이 남기고 간 ‘빈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감정이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죠. 그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그에 상응하는 형태를 만들어냈습니다. 가령 빈방을 표현하기 위해 저는 종이와 금속을 써서 천장에 매달린 추상적 형태를 구현했어요. 종이는 저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재료입니다. 이번 설치 작업에서는 얇은 일본 화지에 나무를 그린 후, 그 종이를 구겨 벽에 걸었죠. 종이의 질감과 무게가 지닌 조각적 특성을 오랫동안 탐구해왔기 때문에 다양한 두께의 종이를 활용해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안 조나스: 인간 너머의 세계〉는 지금 우리 시대가 마주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작가님에게 ‘인간 너머’란 어떤 감각이자 존재의 방식인가요?
저에게 ‘인간 너머’라는 개념은 우리 인간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인간은 우주와 자연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요. 자연은 제 이미지의 원천이자 삶의 일부입니다. 어릴 적부터 자연은 제 삶과 작업의 배경이 되어왔고, 환경문제와 이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이 매일 기적처럼 살아남는 모습은 저에게 점점 더 중요해지고 최근 작업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요. ‘Moving off the Land’나 ‘We All Come from the Sea’ 같은 최근 프로젝트에서 다루었듯이, 우리 인간은 사실 바다를 이루는 요소와 동일한 성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귀의 반고리관은 물고기의 그것과 비슷하죠. 우리는 이런 연결 고리를 무의식 속 DNA 어딘가에서 느끼고 있을 거예요. 인어의 신화를 작업에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어쩌면 제 몸속 아주 오래된 기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