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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기억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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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여신’으로 불린 정인영은 지난겨울 몸담고 있던 방송사를 떠나 독립을 선언했다. 온실에서 탈출해 야생화로 다시 피어나려는 이 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원피스 Avouavou, 스틸레토 Namuhana, 링 Eshvi.

‘정인영 키 크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실제로 보니 예상보다 더 컸다. 짧은 옷이 아닌데도 정인영이 입으니 짧아 보였다. “한때는 왜 이렇게 짧은 옷만 입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죠. 하지만 키가 커서 옷이 짧아 보이는 것뿐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한동안 속상했죠.”
정인영의 키는 176cm다. 정인영은 힐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웃었다. 정인영에 대한 인지도는 극단적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신’으로 불리지만, 스포츠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그저 ‘장신’일 뿐이다. 정인영은 지난 2011년부터 한 스포츠 채널의 메인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야구로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축구와 배구, 심지어 당구 프로그램까지 진행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물론 스포츠 방송에 관여하는 여자 아나운서는 꽤 많다. 하지만 정인영이 유독 주목받은 건 늘씬한 몸과 얼굴만이 아니라 진심 때문이다.
지난 2012년 그녀는 셀타 데 비고에서 뛰고 있던 박주영을 취재하기 위해 스페인행 비행기를 탔다. 때마침 박주영은 그 시합에서 결승골을 터뜨렸고, 감격으로 울먹이는 정인영의 모습이 현지 카메라에 잡혔다. 계산한 행동은 아니었겠지만 시합에 몰입한 아나운서의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이후 스포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프로야구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며 정인영은 전국구 스타로 도약했다. 정인영은 예쁜 얼굴로 멀뚱멀뚱 앉아 있는 일부 아나운서와 달랐다. 해당 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지식도 풍부했다. 말하자면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지니고 있었다. 스포츠 팬이 유독 정인영을 지지한 이유다. “재미있었지만 그만큼 힘들었어요. 정말 밤낮없이 일했거든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면 그만큼 못할 것 같아요.” 스포츠 전문 여자 아나운서가 등장한 건 10년이 채 안 됐다. 남자에 비하면 전문성이 떨어진다거나, 얼굴마담 역할을 할 뿐이라는 등의 선입견은 여전하다. 정인영은 그 편견을 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스포츠 아나운서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죠. 실력보다 외모로 뽑혔다는 얘기도 지겹게 들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못한다는 소리 듣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내 직업에 대한 좋은 선례를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으로. 그땐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어느 정도의 역할은 해낸 것 같아요.”
지난 2015년 11월 정인영은 5년간의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회사를 떠났다. 물론 퇴사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정인영의 퇴사를 두고 정작 시끄러웠던 건 야구 팬들이다. 야구 커뮤니티에는 꽤나 논쟁적인 글도 올라왔고, 스포츠 아나운서의 처우에 대한 얘기가 약간이나마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스타 아나운서의 퇴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정인영은 느슨한 어투로 말했다. “다 지난 얘기지만, 사실 제 퇴사로 여러 곳에서 말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누구는 키워놨더니 나간다고 절 비난할 수도 있겠죠. 결과적으로 회사를 나오게 됐지만 전 스포츠 아나운서로 뼈를 묻을 생각이었어요. 서운한 맘도 있고 아쉬운 맘도 있지만 지금은 서로 잘됐으면 좋겠어요. 아직 <아이 러브 베이스볼>도 계속 챙겨 보고 있는걸요.”
올해도 어김없이 프로야구는 개막했지만 늘 야구 팬들과 함께하던 정인영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 인터뷰를 한 4월 중순까지 정인영은 야구장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이번 주말에 꼭 갈 생각이에요. 아나운서 시절에는 빨리 게임을 끝내주는 팀 팬이었죠. 하하.” 프리랜서가 된 지 6개월째. 그동안 정인영은 음반도 내고, 드라마 OST의 작사가로 데뷔했고,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김구라와 함께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은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 여자는 자신의 텃밭이던 스포츠를 놓고 싶지 않다. “올해부터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학을 수강해요. 스포츠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거든요. 당장 스포츠 중계를 할 수 없다고 해도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단련해놓고 싶어요. 조급하진 않아요.” 정인영은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포츠 토크쇼의 진행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얘기보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더 적성에 맞는다고, 다양한 종목의 선수와 감독을 모시고 스포츠에서 파생된 그들의 인생을 듣고 싶다고. 우리는 앞으로 ‘야구 여신’이 아니라 ‘스포츠 여신’을 보게 될 것 같다.

레이스 원피스 Fayewoo, 링 Swarovski.

에디터 이기원 (lkw@noblesse.com)
사진 노기오 헤어 김원숙 메이크업 조희(스타일플로어) 의상 스타일링 이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