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Wave in the Art Market
2025년 미술 시장은 조용하지만 도도히 흐르고 있다. 거래 규모는 줄었지만, 작품을 대하는 눈빛은 한층 깊어졌다.
금리와 환율, 지정학적 긴장 등 외부 변수로 인한 불확실성과 변동성은 여전하지만, 미술 시장은 숫자가 아닌 새로운 가치로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컬렉터와 경매사, 작가들이 ‘속도’ 대신 선택한 것은 ‘긴 호흡’이다. 컬렉터들은 빠른 거래보다 작품의 가치와 의미를 오래 들여다보는 방식을 택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미술 시장 플레이어들의 질문은 한곳을 향한다.
‘다음 물결은 과연 어디서 오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2025년을 돌아보고자 한다.
1. 근현대 미술의 강세와 올드머니의 귀환
지난 몇 년간 전 세계 미술 시장은 현대 및 동시대 미술이 주도해왔다. 현대미술은 2021년 전 세계 미술 거래의 54%를 차지하며 정점을 찍었고, 2025년에도 여전히 동시대 작가들의 인기가 프라이머리 마켓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세컨더리 마켓에서는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울트라-컨템퍼러리로 분류되는 1975년 이후 출생 작가들의 거래 규모는 2024년 대비 감소한 반면, 1945년 전후 세대 미술, 일명 ‘포스트워’와 근현대 부문 ‘블루칩’ 작가들이 재평가를 받으며 시장의 중심으로 복귀하고 있다. ‘근대미술’에서는 파블로 피카소, 르네 마그리트, 알렉산더 콜더가 시장의 ‘안정 축’을 다시 견고히 세우고 있다. 특히 마그리트를 필두로 한 초현실주의 회화의 재조명과 함께 폴 델보 등 한동안 잊힌 이름들이 다시금 마켓에 등장했다. 포스트워 부문에서는 작년에 이어 앤디 워홀의 거래량이 여전히 압도적이며, 올해 파리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한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인물 형상 중심 표현주의 대가인 프랜시스 베이컨, 추상미술 부문의 대표 여성 작가 조앤 미첼이 각각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현대미술’에서는 가장 비싼 현대미술 작가 바스키아의 인기가 글로벌 경매사로 하여금 매번 세일마다 기록을 경신하게 했다. 뒤이어 요시토모 나라, 조지 콘도, 키스 해링 등 친숙한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도 꾸준히 거래되며 인기를 증명했다. 또 2024년 하반기부터 리처드 프린스와 에드 루샤가 다시 급부상하며 다수의 거래를 기록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자본이 움직이는 방향이 ‘속도’보다 지속 가능성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컬렉터들은 “가장 좋은 작품과 가장 적정한 가격”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이처럼 작품과 작가의 장기적 가치를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양상은 한국 미술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마켓 호황기에는 초저가부터 초고가까지 다양하게 판매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가격 면에서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동시에, 작품과 작가를 향한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날카롭다. 그 결과, 전체 거래 횟수는 감소했지만, 거래당 작품의 개별 가치와 집중도는 높아졌다.
2. 투기의 종말과 가치의 대두 그리고 정체성의 다층화
한때 단기 수익을 노리던 투기성 컬렉팅은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다. 대신 컬렉터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안정성과 가치가 검증된 작가에게 집중한다. 젊은 작가군의 경우 단순한 인기와 트렌드보다 작가의 정체성과 메시지가 컬렉팅의 핵심 기준이 된다. 한편 ‘소수성’이 아니라 ‘다양성의 진화’도 감지된다. 2024년 이후 미술 시장에서 여성 · 흑인 작가의 비중은 전년 대비 소폭 줄었지만, 이는 젠더 · 인종 · 다문화 · 이민 등 교차 정체성이 다층적으로 확장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콜롬비아 출신 작가 올가 데 아마랄(Olga de Amaral)이다. 그녀는 2025년 한 해 동안 모든 주요 경매 기록을 새로 썼으며, 특히 필립스 뉴욕 5월 경매에서 최고가(116만8400달러, 약 16억6000만 원)를 달성했다. 1960~1970년대에 섬유 예술로 명성을 얻은 그녀의 독창적 작품 세계와 그 가치가 새롭게 조명된 결과다. 섬유와 금속, 빛을 엮어내는 그녀의 작품은 오랜 시간 ‘조용한 신뢰’를 쌓아왔으며, 시장은 여전히 ‘시간이 만든 가치’를 인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 과잉의 시대, 서사의 힘과 변화의 몸짓
SNS는 여전히 작가를 발굴하고 홍보하는 가장 강력한 플랫폼 중 하나로 기능하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는 새로운 화랑이자 미디어이기도 하다. 다만 특정 목적을 필두로 큐레이팅한 정보에 대한 명확한 검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수적이다. 공신력과 정보의 차별화를 앞세우던 기존 미디어와 달리, 접근성이 용이하고 모두에게 열린 정보를 제공하는 SNS상 정보는 오히려 그만큼 더 많은 리서치가 선행되어야 허위 정보를 올바르게 필터링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만 넘치는 게 아니라 시장도 포화 상태다. 수많은 아트 페어, 갤러리 그리고 다양한 아트 마켓의 플레이어가 생겨나며 주목도는 낮아지고 피로도는 높아졌다. 이로 인해 오랜 시간 마켓에서 그 입지를 굳건히 지켜온 중견 이상 갤러리들도 문을 닫거나 비즈니스를 축소하고, 중소 아트 페어는 잠정적 휴업을 선언한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포커스-어디에 힘을 쏟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대형 갤러리들은 서사 중심의 큐레이션과 비즈니스 전략으로 태세를 전환하고 있다. 옥션하우스 역시 유기적 정화와 재정렬을 도모하고 있다. 경매의 콘셉트와 횟수의 변화를 통해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온 이들 플레이어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전략적 변화를 통해 다시 태어나고 있다.

4. 글로벌 스타와 부상하는 한국 작가
그렇다면 시장의 신뢰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글로벌 마켓에서 활발히 거래된 작가는 여전히 워홀과 리히터, 바스키아로 압도적 위상을 자랑한다. 울트라-컨템퍼러리 작가군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권에 든 아드리안 게니, 라시드 존슨, 니콜라스 파티가 존재감을 과시한다. 동시에 영국의 리넷 야돔-보아키예(Lynette Yiadom-Boakye), 미국의 마이클 아미티지(Michael Armitage), 일본의 니시무라 유(Yu Nishimura)는 프라이머리 마켓의 인기를 넘어 경매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우며 떠오르는 세대교체의 상징이 되고 있다. 뚜렷한 행보가 돋보이는 한국 작가도 놓칠 수 없다. 이우환, 이승택, 윤형근의 근대 작품(1970~1980년대 제작)이 해외의 굵직한 미술관 전시와 경매 등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을 계기로 김창열 작가의 작품 역시 다시금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이정의 사진 작품은 아시아 작가로서는 드물게 꾸준히 경매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는 일시적 관심이 아니라, 작가의 서사와 진정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뢰가 국경을 넘어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작가들이 글로벌 담론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지속 가능한 재발견’의 과정으로 진행 중이다.

5. 미술 시장의 다음 파도
미술 시장은 더 이상 숫자로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작가의 서사와 컬렉터의 신뢰, 그리고 시장의 호흡이 보다 유기적으로 얽힌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들은 프라이머리와 세컨더리 마켓을 예전처럼 구분하지 않고, 컬렉터들 역시 단기 수익보다는 서사와 맥락에 공감하는 ‘가장 좋은 작품’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경매사 또한 테마별 크로스-카테고리 세일, 또는 단일 작가, 단독 컬렉터의 특별 경매 등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며 시장의 재부흥을 도모하고 있다. 시장 플레이어들의 다양하고 새로운 모색은 2026년 미술 시장을 더욱 풍성하고 다채롭게 성장시킬 것이다. 그 성장의 에너지가 긴 호흡으로 안착하며, 건강하고 성숙한 활기로 가득한 예술 생태계를 탄생시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2025년이 긴 호흡을 준비하는 숨 고르기의 해였다면 2026년은 깊이를 더하며 시장이 다시 ‘예술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