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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erial Portraits

ARTNOW

재료의 초상은 어떤 모습일까? 작품의 표면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순간 물성이라는 새로운 문이 열린다. 단순한 물체가 창작자의 의도와 생각을 품고 독립된 존재로 우뚝 서는 순간, 우리는 예술의 시작이 되는 가장 근원적인 언어와 마주하게 된다.

Your Polyamorous Sphere, 2022. Photo by Jens Ziehe.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올라퍼 엘리아슨의 유리

정다각형으로 이루어진 다섯 가지 ‘플라톤의 입체’를 하나의 구조 안에 겹쳐 완성한 조각이다. 서로 다른 특성의 세 겹 색유리는 빛을 반사하거나 투과하며 보는 각도에 따라 색과 형태가 끊임없이 변한다. 중심에서 발하는 조명빛이 작품을 내부에서 밝히고 주변 공간에는 기하학적 그림자를 드리운다. 순간순간 피어나는 색의 프리즘은 공간으로 퍼져나가며 수학적 질서 속에서도 예측할 수 없는 감각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Stratagem XIX, 2025. Photo by Melissa Goodwin. Courtesy of Pace Gallery. © Tara Donovan.

타라 도노반의 CD

수천 개의 재활용 CD로 이루어진 도노반의 ‘Stratagem’ 시리즈는 빛을 받아들이고 반사하며 시간과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표면의 분위기를 끊임없이 바꾼다. CD 두 장을 반사면이 맞닿도록 포개어 층층이 쌓아 올린 구조는 나선형 흐름과 반복적 패턴을 이루고,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영롱한 광택과 색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과거에는 음악과 영상 등 다양한 데이터를 담던 매체가 이제는 빛과 구조 속에서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Object for Reflection, 2017. Photo by Adam Reich. Courtesy of the Artist and Derek Eller Gallery.

엘리슨 쇼츠의 알루미늄

다양한 재료를 통해 공간 인식, 경험의 한계, 중력과 긴장 같은 물리적 현상을 탐구해온 엘리슨 쇼츠. 이 대형 조각은 수천 개의 알루미늄 조각을 하나씩 접어 스테인리스스틸 링에 끼워 완성한 작품으로, 자연광에 따라 표면의 밀도와 투명도가 계속 달라진다. 빛이 닿는 순간 알루미늄 조각들은 화면의 픽셀처럼 미세하게 움직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견고한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반응하는 조각으로 금속에 대한 기존 인식을 새롭게 전환한다.

Post-Conjunction 10-2, 2010. Photo by Kim Sangtae.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하종현의 물감

‘Post-Conjunction’ 연작은 기존의 ‘접합’ 시리즈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회화의 확장이다. 화면에 물감을 올리는 대신 2개의 면 사이에 물감을 주입하고 압축해 그 사이 공간에서 발생하는 힘과 흔적을 화면으로 드러낸다. 물감이 틈새에서 밀려 나오는 압력과 저항의 결과가 곧 작품의 형상이 된다. 평면에 이미지를 그리는 전통적 회화 방식을 벗어나 재료의 물성과 힘의 관계, ‘사이’라는 공간에 주목하는 태도로 회화를 조각적이고 구조적인 매체로 확장하는 하종현의 새로운 조형 언어라 할 수 있다.

살-p2, 2023. Photo by Kim Jinsol.

최태훈의 우레탄폼

우레탄폼을 사용한 작품 시리즈에 최태훈은 ‘살’이란 이름을 붙인다. 여기서 살은 작가에게 단순히 신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의 표면, 부피를 아우르는 하나의 조형 언어다. 작가는 전시장을 하나의 조각 뼈대로 보고 그 위에 흙을 얹듯 우레탄폼을 분사해 새로운 공간 조각을 만들어낸다. 외부에서 억지로 형태를 다듬는 대신 재료 스스로 몸을 세우고 균형을 찾아가는 움직임 속에서 그는 살아 있는 존재의 생명력을 포착한다.

Where are We Going?, 2017/2025. Photo by Giorgio Perottino. Courtesy of MAO.

시오타 치하루의 실

시오타 치하루는 불확실성과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내면적 성찰을 설치 작업으로 펼쳐낸다. 유년 시절 죽음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한 트라우마를 실과 연결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공간 전체를 뒤덮는 실타래는 인간의 혈관이자 기억과 관계의 흔적에 대한 은유다. 설치 작품 ‘Where are We Going?’은 여러 척의 배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장면을 통해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존재의 방향성과 불안한 내면에 대해 질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