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욱은 오늘을 산다
지창욱은 한류를 이끌고 있는 배우다. 그가 주연으로 나선 드라마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된 흔치 않은 경우다. 하지만 정작 그는 ‘한류 스타’ 같은 화려한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사는 남자였다.
기자 일을 하다 보면 여러 유명인을 만난다. 물론 그중에는 화면과 실제가 같은 사람도 있고, 실제가 못한 사람도 있으며, 드물지만 실제가 더 나은 경우도 있다. 지창욱은 후자였다.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인간적이고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지창욱을 만난 건 중국 의류 브랜드의 광고 촬영이 끝난 직후였다. 6시간이 넘는 길고 힘든 촬영이었고, 전날 밤 한국에 귀국한 그는 쉬지도 못하고 이 현장에 나왔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의 그와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눴다
겹쳐 입은 화이트 셔츠, 아이보리 셔츠, 과장된 턱 장식의 팬츠 모두 Vanhart di Albazar, 브라운 슈즈 Kumkang, 네이비 슬립온 슈즈 Bottega Veneta, 보라색 스티치 라인이 돋보이는 토트백 0914.

화려한 패턴이 특징인 슈트, 셔츠 모두 Etro.
피곤해 보인다. 피곤하다. 어젯밤 늦게 한국에 도착했는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이 촬영 때문에 곧바로 나왔다.
이 촬영이 끝나면 좀 쉬나? 아니. 바로 연습실로 떠난다. 밴드와 함께 일본 팬 미팅을 위한 합주 연습을 해야 한다. 끝나면 곧바로 상하이로 떠나 또 드라마를 촬영한다. 생각해보니 정말 살인적인 스케줄이네.(웃음)
사람들은 유명인의 삶을 동경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엄청난 노동량이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해서 다행이다. 주변을 보면 아직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지 못한 친구들이 많다. 안타깝기도 하고, 이해도 되지만. 스케줄에 치여 살긴 하지만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왜 배우가 되고 싶었을까? 보통 학생들은 목표 없이 막연하게 공부하지 않나. 왜 공부를 하는지도 모른 채. 나도 그런 학생이었다. 공부해야 한다니까 열심히 했는데, 어느 순간 공부가 너무 재미없었다. 대학에 가면 또 이렇게 재미없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답답하더라. 그때 갑자기 배우라는 걸 떠올렸다. 마냥 재미있을 것 같고, 화려하고, 돈도 많이 벌 것 같고. 그리고 그때는 연기가 쉬워 보였다.(웃음) 대사 좀 외우고 자연스럽게 말하면 되는 것 같더라. 나도 배우하면 잘할 수 있겠다 싶었지. 고3이 돼서 갑자기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 진로를 바꾼 거다.
부모님은 반대하셨을 텐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엄마는 당연히 결사반대였다. 그냥 열심히 공부해서 4년제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셨다. ‘왜 고3이 돼서야 갑자기 바람이 들었을까’ 의아해하신 것 같다. 반대는 심했지만, 한번 꽂히니까 어쩔 수 없더라.
홀어머니의 말을 거역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대부분의 아들이 큰 책임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어릴 때는 늘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빨리 어른이 돼서 엄마를 지켜주고 싶다고. 돈도 벌고 힘도 세지면 나쁜 사람들에게서 엄마를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남들처럼 성장기에 엇나가지도 못했겠다. 난 사춘기가 없었다. 집안 형편도 어려웠고, 엄마를 실망시켜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으니까.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면서 ‘내가 살길은 공부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구나’ 싶었다. 학창 시절의 난 모범생이라기보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학교 다니는 학생이었다.
대학 가서야제대로 연기를 공부한 거니 쉽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보통 연영과 학생들은 일찍부터 진로를 결정하지 않나? 대학 진학한 후에야 정말 힘들다는 게 뭔지 알게 됐다. 학교에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선후배 사이의 군기도 셌고, 고교 시절보다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공부하기 싫어 연영과에 갔는데 공부할 게 더 많더라. 게다가 워낙 타고난 끼와 열정이 충만한 동기들이 많아서 열등감도 있었고. 난 연기를 하겠다는 엄청난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중간에 그만둬야 하나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있다.
학교 자주 빠졌겠다. 그랬다.(웃음) 물론 독하게 마음먹으면 다닐 수 있었지만 마음이 떠서.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1년을 보냈다. 그러면서 정신이 좀 들었다. 엄마와 그렇게 대립하면서 들어간 학교인데 그 꼴이었으니. 창피했다. 그러다 우연히 선배들이 찍는 단편영화 현장에 따라다녔는데, 그 모습을 본 독립 영화 감독님이 나를 캐스팅했다. 첫 데뷔였다. <슬리핑 뷰티>라는 영화였는데 한 달 내내 촬영해서 50만 원 받았다.(웃음)
독립 영화 주연은 개런티가 정해져 있나 보다. 요즘도 50만 원이라고 들었는데.(웃음) 그런가? 그래도 정말 즐거운 시절이었다. 연기하는 기쁨을 처음 느꼈다. 촬영이 없을 때도 늘 현장에 나가 구경하곤 했다. 엄마나 친구들에게도 “나 영화 찍어”라고 할 수 있었고.
그래도 나름 살길을 찾아서 열심히 산 셈이다. 말했지만 그때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등록금 내기도 버거웠다. 게다가 학교 가면 등록금만 내나. 교통비에, 식비에, 술도 한잔해야지. 돈이 굉장히 두려운 시절이었다. 원치 않아도 휴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생존을 위해 돈을 빨리 벌어야 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도 찍고, 작은 뮤지컬도 하고. 데뷔가 상대적으로 빨랐다.
뮤지컬은 영화와 또 다른 세계 아닌가? 두 달 정도 연습해서 일주일 막을 올리는 공연이었는데, 그때 많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정말 연기의 기본이 없다는 걸 알게 됐고, 평생 먹을 욕을 다 들었다. 학교 다니면서 쓸데없다고 생각한 선배들의 조언이 몸에 와 닿은 순간이었다. 난 연기가 쉽다고 생각했는데, 그 쉬운 게 하나도 안 되더라. 이리저리 깨지면서 연기를 배웠다.
사람들은 지창욱이 쉽게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웃어라 동해야>의 주연으로 당신을 처음 본 사람이 많을 테니까. 쉽게 온 건 아니지만 운이 좋았다는 생각은 한다. 누구처럼 20년 동안 무명 배우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니까. 오디션이야 셀 수 없이 떨어졌지만, 내 또래 대부분이 그랬다.
다크 블루 니트, 레이어링한 그레이 티셔츠, 체크 팬츠 모두 Vanhart di Albazar, 더비 슈즈 Misope.

기하학 패턴 스웨트셔츠, 화이트 셔츠, 데님 팬츠 모두 Neil Barret, 스니커즈 Admiral.

베이지 컬러 발마칸 코트, 와이드 피트 블랙 팬츠 모두 Nohant, 숄칼라 셔츠 Etro, 그러데이션 염색이 멋스러운 토트백 0914.
당신은 일일극 출신이다. 배우들에게는 일일극과 미니시리즈 사이에 상당한 벽이 있다고 하던데, 잘 넘어온 셈인가? 사실이다. 드라마 <힐러>가 첫 미니시리즈였다. 내 또래가 일일극을 하면 미니시리즈로 넘어가는 게 쉽지 않다. 그땐 미니시리즈로 데뷔한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왠지 괜히 폼 나게 보이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일일극을 한 게 큰 도움이 됐다. 연기의 폭이 넓어졌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만큼 당신이 잘했기 때문일 거다. 악착같이 하긴 했다. 예전에는 촬영 이틀 전부터 집에만 있었다. 외출하는 순간 뭔가를 놓칠 것 같아서. 연기도 못하면서 괜한 자격지심에 시달렸다.(웃음)
그런 당신이 이제는 한류 스타가 됐다. 웨이보 팔로워만 400만 명이다. 일본의 팬덤도 굉장하고. 그건 당신을 바라보는 눈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다른 연예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언행에 부담은 분명히 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조심스럽다.
해외에서 오랜 시간 촬영하다 보면 공허할 때도 많을 텐데, 뭐가 당신을 위로해주나? 긍정적인 마인드 컨트롤은 기본이다. 스스로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시야가 달라지니까. 그리고 주로 만화책을 읽는다. 언젠가 나만의 만화방을 만드는 게 꿈일 정도다.(웃음) 인생의 만화는 <나루토>다. 이 작품을 보면서 우정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특히 ‘리’라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주인공들을 따라갈 수 없지만,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고 희생할 줄 아는 캐릭터다. 물론 <슬램덩크>도 있다. 좋아하는 캐릭터? 무조건 강백호와 정대만이다.(웃음) 남자라면 당연하지 않나?
실제로도 남자다운 면이 있는 것 같다. 아까 한 스태프는 당신을 두고 뜨기 전이나 뜨고 난 후나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배우라고 하더라. 글쎄,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날 보는 사람들은 다를 거다. 얼마 전에 갑자기 데면데면한 동창 친구가 전화해서는 이렇게 말하더라. “너 연락도 안 하고 많이 변했다.” 그래서 내가 되물었다. “우리가 언제는 연락했냐?” 난 그대로인 것 같은데 주변 환경이 변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변했다’는 말만큼 상대적인 건 없지 않을까.
유명인이 내야 하는 세금 같은 거다. 내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너무 많이 내면 그건 좀 속 쓰리지 않겠나. 무엇보다 아직 스스로 엄청난 스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중에 더 유명해지면 꼭 오만해질 거다.(웃음)
배우 아닌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는 배우들이 있다. 하지만 당신은 배우가 아닌 다른 삶을 살았어도 잘했을 것 같다. 건강한 느낌이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일반 회사에 다녔어도 잘하지 않았을까. 힘들게 커서 그런지 어딜 가도 적응은 잘하는 편이다. 아마 배우가 안 됐으면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평범하게 잘 살고 있지 않을까. ‘배우가 아닌 삶은 상상할 수 없어!’ 이런 건 아니다.
뮤지컬 <그날들>에서 당신이 ‘서른 즈음에’를 부른 게 엊그제 같은데, 실제로 서른 즈음이 됐다. 나이를 의식하나?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나이는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아무도 몇 살이냐고 물어보지 않으니까.(웃음) 오히려 나이에는 둔감하다.
그래도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꿈꾼 모습과 어느 정도 비슷할 것 같긴 하다. 단역 시절에는 주연하는 선배들이 부러웠다. 저런 위치가 되면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았고. 하지만 막상 내가 주연을 하는 입장이 되니 고민이 더 많아지더라. 연기에도 늘 부담을 느끼고, 다른 걱정도 더 많이 생긴다.
마흔 즈음이 되면 고민이 더 많아질 거다.(웃음) 그럴 것 같다.(웃음)
아직 군대 문제가 남아 있다. 초조하진 않나? 솔직히 별생각 없다. 갈 때 되면 가야 한다는 마음이다. 내년에 입대 예정인데 초조함보다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정말 특이한 사람을 많이 만났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
이제 연예 병사 제도도 사라져서 다른 이들과 똑같이 훈련받아야 할 텐데. 입대하면 동기들보다 많게는 열 살이 많을 텐데, 그런 친구들과 생활하면 오히려 더 젊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은 있다.(웃음) 난 정말 재미있게 보내고 올 것 같다.
2년이라는 공백이 배우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이제까지 쌓아온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나 위기가 없는 직업은 없을 거다. 이 정도 스트레스는 일반 직장인들도 다 받을 테고. 나만 특별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늘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었으면 한다. 지금 하는 이 인터뷰도, 앞으로 하게 될 군 생활도 다 내가 성숙해지는 과정일 거라는 믿음은 있다. 충실히 오늘을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바로 연습실로 가나? 그렇다. 합주 연습하고 곧바로 중국으로 떠난다.
너무 짧은 일정이다. 한국에서 못하고 가서 아쉬운 게 있다면? 해외 일정 때문에 모터사이클을 계속 묵혀두고 있다. 시동이라도 한번 걸어보고 가야 할 텐데, 안 될 것 같다. 그게 제일 아쉽다.
에디터 이기원 (lkw@noblesse.com)
사진 김도원 헤어 나건웅(알루) 메이크업 이수지(알루) 스타일링 지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