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반항적인 장 폴 고티에의 언어
장 폴 고티에가 50년간 지속한 도발의 미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익숙한 관습을 유연하게 해체한 디자이너의 패션적 시선에 대하여.
50년 동안 장 폴 고티에는 패션 역사에 혁명을 일으켰다. 패션계에서 유쾌한 악동으로 불린 그는 커리어를 유지한 반세기 동안 경계 밖 아름다움을 재정의하고, 미(美)의 정의를 묻는 대신 사회가 외면한 몸과 욕망을 무대 위로 소환했다. 마돈나의 콘 브라, 남성용 코르셋, 성별의 경계를 허문 실루엣 등 그의 디자인은 패션이 아닌 선언문에 가까웠다. 대중의 기호를 만족시키는 대신 시대정신을 담은 옷으로 사회에 질문을 던진 것이다. 오늘날 패션과 뷰티업계가 정의하는 젠더리스, 보디 포지티브 트렌드 역시 장 폴 고티에가 수십 년 전 이미 실천한 개념이다.
파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그의 탁월한 감각과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평범한 가정의 외동아들로 자란 그는 할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우며 패션에 눈을 떴다. 여섯 살 무렵, 장난감 곰에 분장을 시키거나 할머니의 트렁크에서 발견한 코르셋을 토대로 깃털 장식을 한 여성을 그리던 소년의 호기심은 훗날 혁신의 기폭제가 되었다. 1960년대 미니스커트와 같은 해방적 스타일의 확산 속에서 성장한 고티에는 성별과 계급, 나이, 신체의 규범을 해체하는 문화적 반란을 목도했다. 본격적인 패션 커리어는 1970년 피에르 가르뎅 의상실에 견습생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18세 무렵이다. 이후 자크 에스트렐과 장 파투, 다시 피에르 가르뎅을 거치며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1976년 프랑시스 메뉘주(Francis Menuge)와 함께 선보인 쇼가 첫 번째 컬렉션이다. 비록 첫 컬렉션은 실패의 고배를 마셨지만, 일본 기업의 재정 지원을 계기로 그는 패션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된 기존 패션 관념을 뒤집고 거리의 마네킹에 여성 코르셋을 입히며 혁명을 일으킨 디자이너의 반란이 서막을 연 시점이다.
1983년 남성 컬렉션에서 프랑스어로 ‘방식, 태도, 스타일’을 의미하는 단어이자 자신을 상징하는 개념인 ‘마니에르(Maniere)’를 선보였고, 2년 뒤 첫 남성용 치마를 발표하며 1980년대 패션의 혁신을 주도했다. 장 폴 고티에의 스트라이프 패턴도 초기 컬렉션부터 등장했다. 그의 쇼는 단순한 의상 발표가 아니라 퍼포먼스였다. 1990년, 마돈나의 월드 투어를 위해 제작한 콘 브라와 코르셋은 단순한 무대의상이 아닌, 여성의 몸을 억압의 상징에서 힘의 상징으로 전환시킨 아이코닉한 작품이었다. 이는 페미니즘 패션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고, 훗날 미우치아 프라다가 미우미우 2025 F/W 컬렉션에서 새로운 콘 브라 디자인을 선보이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5 F/W 컬렉션의 보디 프린트 슈트와 홀로그램 룩 등 1990년대 하이테크 감성을 구현한 시도 역시 파격의 연속이었다. 이어 2007 S/S 오트 쿠튀르 쇼에서는 모델들을 인형처럼 무대 위에 세웠고, 2020 S/S 고별 무대에서는 반세기에 걸친 자신의 코드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과거의 뮤즈와 아이콘을 총집결시켰다.
그의 이름을 단 브랜드는 아동복 ‘고티에’, 유니섹스 라인 ‘주니어 고티에’, 향수 컬렉션 등으로 확장되었고,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에르메스의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하며 패션 하우스로서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2011년 프랑스 경제지 <챌린지(Challenges)>가 발표한 프랑스 부유층 500인에 이름을 올린 사실만 보아도 그의 명성과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2014년, 기성복 라인을 종료하고 오트 쿠튀르에 전념하겠다는 결정을 내려 또 한 번 업계를 놀라게 한 그는 “패션의 속도가 창조의 속도를 앞질렀다”고 지적하며 산업 시스템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2020 S/S 오트 쿠튀르 쇼를 끝으로 50년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억압을 자유로, 금기를 아름다움으로 치환하는 그의 스토리텔링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후 2025 S/S 오트 쿠튀르 쇼까지는 쇼마다 게스트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유연한 운영 방식을 선보였다. 2025년, 하우스는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 듀란 랜팅크를 첫 정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규범의 해체를 조형적으로 해석하는 그는 장 폴 고티에가 던진 질문 ‘성별의 경계, 코르셋과 탈코르셋, 대중문화와 하이패션의 결합’에 새로운 해답을 써 내려가고 있다. 마돈나 같은 패션 아이콘을 통해 대중과 소통을 이어가던 친근한 접근 방식은 젠데이아, 제니 등 차세대 뮤즈로 이어진다. 장 폴 고티에의 커리어는 막을 내렸지만 그가 남긴 패션 언어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것은 차세대 디자이너들에 의해 유연하게 변주되며, 여전히 우리 시대의 규범에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패션은 지금도, 그가 남긴 도발적인 질문 안에서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에디터 최원희(wh@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