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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페라가모의 장인 정신

FASHION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구두를 만들기 시작한 지 120여 년이 흘렀다.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장인정신은 한 가문의 서사이자 이탈리아 패션사의 한 장을 이루는 역사로 자리한다.
오늘날 그 유산은 새로운 세대의 감각과 만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우아한 교감으로 이어진다.

1951년 패션쇼에서 페라가모가 디자인한 키모 샌들을 착용한 모델들.

Heritage of a Dream

1898년,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보니토(Bonito)에서 가난한 농가의 열한 번째 아이로 태어난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어린 시절부터 구두에 매료되었다. 여덟 살 무렵, 여동생들의 첫 영성체를 준비하며 밤새워 구두를 만들던 경험은 그의 평생 꿈을 확신하게 했다. 그에게 구두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인간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동시에 구현하는 예술의 한 형태였다. 젊은 시절 그는 제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나폴리로 향했고,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손에는 구두 제작 도구를, 마음에는 단 하나의 꿈을 품은 채였다. 그는 1914년경부터 보스턴과 캘리포니아에서 맞춤 제작 및 영화 산업용 신발 제작에 몰두하며 신체 구조와 균형을 연구했다. 이 시기, 그는 과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를 완성했으며, 이 과정에서 쌓인 기술은 오늘날 살바토레 페라가모 박물관(Museo Salvatore Ferragamo)에 보관된 수만 켤레 슈즈 모델의 기반이 되었다.

1920년대,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할리우드 스타 조앤 크로퍼드의 신발을 맞춰주는 모습.

A New Chapter in Florence

1927년,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회사를 설립했다. 팔라초 스피니 페로니(Palazzo Spini Feroni)에 자리한 이곳은 장인의 손길과 예술적 감각이 공존하는 꿈의 공방이었으며, 지금도 하우스의 상징적 공간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에게 늘 순탄한 길이 이어진 것만은 아니다. 1929년에 일어난 세계 대공황 이후 미국 시장의 주문이 급감했고, 1933년에는 파산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그는 위기를 오히려 새로운 혁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부족한 자원을 창의력으로 채우고, 새로운 소재를 끊임없이 탐구했다. 가죽이 아닌 라피아, 라피 등 비전통적 소재를 활용하는 등 전통 제작 방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물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공방 규모는 점차 확대되어 1930년대 중반에는 700여 명의 장인이 하루 350켤레의 구두를 제작할 정도로 성장했다. 전통적 장인정신과 대량생산의 균형을 모색한 그의 공방은 피렌체를 이탈리아 제화 공업의 핵심 거점으로 변모시켰다.

레인보 샌들.

Shoemaker of the Stars

1920년대, 영화 산업의 황금기를 맞은 할리우드에서 그는 ‘별들의 구두장이(Shoemaker of the Stars)’로 불렸다. 글로리아 스완슨, 메릴린 먼로, 주디 갈런드 등 많은 스타가 그의 부티크를 찾았다. 그의 신발은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닌, 인물의 개성과 시대정신을 담은 예술 작품이자 한 사람의 삶을 완성하는 조각이었다. 특히 1938년 배우 주디 갈런드를 위해 제작한 ‘레인보 샌들(Rainbow Sandal)’은 그의 경력에서 가장 상징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금속이 부족하던 시절, 그는 코르크를 대체 소재로 사용해 가볍고 유연한 웨지힐을 완성했다. 스웨이드로 마감한 코르크, 무지갯빛 컬러 배열, 그리고 대담한 높이의 조합은 기능과 예술, 시대정신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줬다. 1930년대 이후 그는 기술 특허를 다수 등록하며 약 2만 가지 슈즈 모델과 350여 개의 특허를 남겼다. 또 스틸 보강(Steel Shank) 같은 구조적 혁신으로 착화 안정성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단순한 디자이너를 넘어 신발 산업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1950년대, 살바토레 페라가모.

Invisible Elegance

전쟁과 위기의 시대에도 그의 실험은 멈추지 않았다. 1947년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투명한 나일론 실로 제작한 ‘인비저블 슈(Invisible Shoe)’를 공개했다. 발이 허공에 떠 있는 듯 착시 효과를 주는 이 구두는 현실의 제약 속에서도 꿈꿀 수 있는 희망을 상징하며, 공개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이디어는 아르노강을 흐르는 투명한 낚싯줄에서 비롯됐다. 물고기에게도 안 보일 만큼 투명한 낚싯줄이 바로 보이지 않는 구두의 시작이었다. 강력한 워터젯으로 가죽에 제어된 구멍을 뚫고, 나일론 실을 90회 이상 교차해 하나의 끊김 없는 갑피를 완성했다. 정교함은 완벽에 가까웠으며,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섬세한 기술의 결정체였다. 창조적 발명품은 국제 언론의 찬사를 받았고, 살바토레는 어퍼 디자인, 소재 활용, ‘F’자 형태 웨지힐 디자인 등 총 세 가지 특허를 획득했다. 또 패션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니먼 마커스 어워드를 수상하며 그의 디자인이 단순히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닌,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가치를 증명했음을 입증했다.

인비저블 슈.

Exquisite Expertise

1950년대,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구두의 굽과 밑창이 신발의 구조적 안정성과 미학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임을 깨달았다. 그는 미국 원주민의 오판카(Opanka) 모카신과 유기적 건축양식에서 영감받아 발을 감싸듯 둥글게 올라오는 ‘셸(Shell)’ 형태의 밑창을 고안했다. 신발 윗부분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착화감을 극대화해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기능과 미학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혁신으로 자리한 이 구조는 오드리 헵번을 위한 플랫 슈즈에 적용되었다. 그녀는 페라가모의 주요 고객이었고, 무대는 물론 일상에서도 플랫 슈즈를 즐겨 신은 패션 아이콘이었다. 1954년, 그는 오판카 솔(Opanka Sole) 기술을 플랫 슈즈에 적용하며 부드럽고 안감을 덧대지 않은 스웨이드 소재로 놀라운 유연성과 편안함을 제공했다. 세련된 V자형 컷과 키드 스킨(Kid Skin) 스트랩은 발레 슈즈의 우아함을 일상에 가져왔으며, 페라가모가 구두 장인을 넘어 스타와 시대의 요구를 함께 담아내는 디자이너임을 세상에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뉴 바라 슈즈.

Timeless Icon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가족은 예술적 유산을 이어받아 브랜드를 성장시켰다. 그의 철학은 곧 하우스의 영혼이 되었고, 세대를 잇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1978 F/W 컬렉션에서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완다 페라가모의 장녀 피암마 페라가모가 선보인 ‘바라(Vara)’ 슈즈는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하우스의 아이코닉 모델이다. 낮은 굽, 라운드 토, 그로그랭 리본과 로고 플레이트가 조화를 이루는 미학은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우아함을 보여주었다. 피암마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캐주얼하면서 우아한 스타일이 필요했어요. 낮은 굽과 라운드 토 실루엣으로도 편안하면서 세련된 슈즈를 구현하고 싶었거든요.” 프로토타입에는 작은 오벌 장식과 그로그랭 리본이 더해졌고, 이 모델은 페라가모의 상징적 디자인 코드로 자리 잡았다. 2007년에는 바라에서 영감받은 발레리나 플랫 ‘바리나(Varina)’를 공개했고, 바리나는 여성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바라의 디자인 코드는 구두뿐 아니라 버튼, 벨트, 주얼리, 백 등 다양한 액세서리로 확장되며 하우스를 대표하는 시그너처가 되었다. 페라가모 아카이브 속 1만5000여 개 샘플과 완제품 중에서도 바라 슈즈는 단연 가장 널리 알려진 아이콘이자 페라가모 헤리티지의 정수를 담은 상징적 작품이다.

2025 F/W 허그 백 캠페인.
2025 F/W 허그 백 캠페인.

Modern Craft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맥시밀리언 데이비스의 시대에 접어든 오늘날, 페라가모는 예술적 혁신의 언어로 브랜드의 본질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 ‘허그 백(Hug Bag)’은 말 그대로 포옹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2개의 곡선형 스트랩이 서로를 감싸 안는 따뜻한 실루엣이 특징이다. 액세서리를 넘어 감정의 교감을 상징하는 예술적 오브제다. 하나의 허그 백을 완성하기까지는 약 3주가 소요되며, 27개의 가죽 조각이 장인의 손끝에서 정교하게 이어진다. 핸드스티칭과 가죽 본딩, 세밀한 조립 과정 모두 세대를 이어온 장인정신과 정밀함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제작 과정은 한 세기에 걸친 페라가모의 유산과 혁신이 오늘의 디자인 언어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허그 백은 창의적 혁신, 절제된 우아함,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지속적 가치를 모두 담아낸 작품이다. 이렇게 쌓아온 기술과 미학, 철학의 총체가 오늘날 페라가모 헤리티지를 완성하며, 하우스 고유의 세계관과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계승·확장한다.

Interview

with Leonardo Ferragamo, Chairman of Ferragamo

페라가모는 가족이라는 유산과 기업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온 보기 드문 메종이다. 창립 이후 가족의 비전과 책임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페라가모는 단순히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핵심 가치인 정직, 장인정신, 그리고 사람에 대한 존중을 지켜왔다. 독립 브랜드로서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비전을 추구하며, 이러한 독립성이 세대를 넘어 신뢰받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페라가모를 형성하는 핵심 가치와 철학은 무엇인가?

페라가모의 중심에는 ‘이탈리아 스타일의 정수(The Soul of Italian Style)’라는 철학이 자리한다. 장인정신과 아름다움, 인간 중심의 창의성이 결합된 결과이자 브랜드의 존재 이유를 정의한다.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삶의 품격을 제안하는 것, 그것이 페라가모가 추구하는 삶의 우아함이다.

창립자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정신은 오늘날 하우스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있나?

살바토레는 예술가이자 발명가였다. 기술적 완벽함 속에서도 편안함을 결코 잊지 않았다. 오늘날 하우스는 그의 철학을 이어받아 전통적 기술과 미래지향적 혁신을 결합한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인사이트와 맞춤형 경험을 통해 고객을 이해하는 일 또한 같은 맥락이다. 핵심은 언제나 인간 중심의 창의성을 진보의 중심에 두는 것이다.

‘유산을 지키는 것’과 ‘시대를 선도하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가?

균형의 핵심은 변하지 않는 본질을 지키는 일이다. 형태와 표현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페라가모가 지켜온 진정성, 품질, 인간 중심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브랜드는 유산을 과거의 상징으로 남겨두지 않고 미래를 향한 살아 있는 영감의 원천으로 바라본다.

페라가모는 ‘오래가는 아름다움’을 브랜드 철학으로 삼아왔다. 장인정신과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결합되는가?

장인정신과 지속가능성은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닌, 같은 목표를 향한 두 축이다. 투명한 생산 체계와 자원에 대한 존중, 장인의 기술 보호와 세대 간 전승은 환경과 문화를 함께 지키는 길이다.

맥시밀리언 데이비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그는 젊지만 놀라울 만큼 장기적 비전을 지닌 디자이너다. 아카이브를 깊이 탐구하면서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하우스의 본질을 유지한 채 신선한 리듬을 불어넣는다. 그의 디자인은 기술적 정교함과 감각적 미니멀리즘을 결합해 전통과 미래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 안에서 ‘페라가모다움’, 즉 유산과 혁신의 조화가 다시 증명된다.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리뉴얼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가?

청담 플래그십은 한국 고객과 브랜드를 잇는 가장 중요한 접점이다. 지난 7월 리뉴얼을 마친 이 공간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이탈리아 스타일의 정수’, 즉 이탈리아적 정신과 현대적 감각의 조화를 상징한다. 장인정신이 깃든 디자인, 가죽 소재, 빛의 조화를 통해 페라가모의 철학을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완성했다.

공간 구현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조용한 품격(Quiet Refinement)’을 공간에 담는 것이 목표였다. 소재, 디테일, 빛의 균형을 통해 방문객이 이탈리아 감성과 장인정신을 오감으로 느끼도록 설계했다. 모든 요소는 장인의 손끝에서 완성되어 절제된 아름다움과 현대적 정제를 드러낸다.

한국 시장에 대한 견해와 앞으로의 방향성은 무엇인가?

한국 고객은 세련된 감각은 물론, 진정성에 대한 기준이 높다. 전통과 현대에 모두 열려 있으며, 이탈리아 문화의 감성적 가치를 깊이 이해한다. 페라가모는 한국에서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장기적 관계를 구축하며, 문화적 공감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자 한다.

향후 한국과의 협업이나 새로운 프로젝트 계획이 있다면?

한국은 패션과 문화가 교차하는 영감의 시장이다. 우리는 브랜드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한국 창작자와의 의미 있는 협업을 모색 중이다. 단기적 프로젝트가 아닌, 가치와 비전을 함께 나누는 장기적 관계를 지향한다.

오랜 시간 브랜드를 이끌어왔는데,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페라가모를 이끄는 일은 책임이자 특권이다. 세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의 삶에 영감을 주는 브랜드로 남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페라가모는 이탈리아적 감성과 삶의 우아함을 전하는 하나의 이야기다.

본인이 꿈꾸는 페라가모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페라가모의 미래는 전통과 혁신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균형 위에 있다. 핵심 카테고리인 슈즈와 가죽 제품을 강화하고, 지속가능성과 디지털 경험을 중심으로 미래 고객과의 관계를 확장할 것이다. 앞으로도 이탈리아의 품격과 현대적 창의성이 공존하는 브랜드로 기억되길 바란다.

1955년, 어린 레오나르도 페라가모와 아버지 살바토레 페라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