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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최초 셔츠 명가, 샤르베

FASHION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증명한 샤르베의 시간.

파리 방돔 광장에 위치한 샤르베 매장 전경. ⓒ Charvet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그 대화의 시간을 정교하게 직조해온 브랜드 샤르베(Charvet)는 1838년 파리에 문을 연 최초의 셔츠 전문점이다. 그 시작은 한 재단사의 혁신적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나폴레옹 1세 의상 관리자의 아들 조제프 크리스토프 샤르베(Joseph-Christophe Charvet)가 설립한 메종은 고객이 천을 가져오면 재단해주던 기존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매장에서 신체를 측정하고 원단을 선택해 완성하는 맞춤 제작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새로운 방식은 당시 급변하던 남성 복식의 흐름과 맞물려 빠르게 성장했다. 조끼와 셔츠의 칼라가 중요한 디자인 요소로 부상하면서 셔츠는 더 이상 속옷이 아닌 패션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샤르베는 ‘셔츠 메이커’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접이식 및 탈착식 칼라를 고안해 오늘날 셔츠의 기본 구조를 완성했다. 1839년, 나폴레옹 조제프 네(Napoleon Joseph Ney) 왕자가 이끄는 세련된 사교 모임 조키 클럽의 공식 셔츠 메이커로 선정되며 샤르베는 상류사회의 상징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샤르베의 이름은 곧 품격과 완벽함의 대명사였다. 에드워드 7세 국왕, 시인 샤를 보들레르, 화가 에두아르 마네,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와 귀족들이 샤르베의 셔츠를 즐겨 입었다. 이후 메종은 이브 생 로랑, 칼 라거펠트, 크리스챤 디올 등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와 저명한 인사들에게 사랑받으며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1910년대 파리 전역의 고객들에게 직접 배달한 샤르베. ⓒ Charvet

샤르베의 윙칼라 셔츠와 블랙 실크 넥타이를 착용한 프랑스 시인이자 문예비평가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 @ Charvet_official

시간이 흘러도 샤르베의 명성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패션과 산업의 흐름이 달라지던 20세기 중반, 브랜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965년 샤르베 가문이 회사를 매각하고자 했고, 미국 바이어가 인수 후보로 떠올랐다. 프랑스 정부는 샤르베가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해 이를 제지했다. 얼마 후 오랜 기간 고급 셔츠용 원단을 공급해온 드니 콜방(Denis Colban)이 회사를 인수하며 샤르베는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전통적 장인정신을 지키면서도 색상과 패턴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맞춤 셔츠를 넘어 기성 제품군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특히 제작 공정을 세분화해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수작업의 정밀함을 그대로 살린 그의 체계는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 벌의 셔츠는 숙련된 손길을 거쳐 완성되며 매 단계 세심한 검수를 거친다. 이 과정이야말로 샤르베의 본질이자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정체성이다. 현재 샤르베 매장이 자리한 파리 방돔 광장은 메종의 정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공간이다. 매장 안에는 6000여 종의 원단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중 104가지 톤과 총 400여 종의 흰색 원단으로만 구성된 ‘흰색 벽’은 완벽주의적 장인정신이 응축된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객은 이곳에서 원단의 질감, 칼라의 각도, 커프스 형태, 심지어 칼라 안감 두께까지 세밀하게 선택할 수 있다. 샤르베의 목표는 단 하나, 고객이 어떤 제품이든 자신의 방식으로 완성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 철학은 지금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샤르베 방돔 매장 3층에는 다양한 색상과 소재의 원단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 Charvet

다채로운 색상과 패턴의 보타이와 스카프가 진열된 매장 내부. ⓒ Charvet

샤넬과 샤르베의 협업 드레스 셔츠가 눈에 띈다.

샤르베와의 협업을 예고한 샤넬 2026 S/S 컬렉션 티저 이미지.

2025년 9월, 샤르베는 샤넬 2026 S/S 컬렉션을 통해 다시 한번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는 가브리엘 샤넬의 연인이자 샤르베 셔츠를 즐겨 입었던 보이 카펠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유산과 현재를 잇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샤르베의 정교한 장인정신과 샤넬의 모던한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크롭트 셔츠, 턱시도 셔츠, 드레스 셔츠는 실용적이면서도 로맨틱한 미학을 드러낸다. 이번 협업은 두 하우스의 철학이 맞닿은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1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샤르베는 같은 방식으로 셔츠를 만들며, 이 시대의 진정한 품격과 본질을 새롭게 정의한다. 패션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가치가 있다. 전통을 지키되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브랜드, 샤르베. 그 이름은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여전히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간다.

왼쪽 다양한 칼라 스타일이 전시된 샤르베 방돔 매장. ⓒ Charvet
오른쪽 정교한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된 화이트 셔츠.

  • 에디터 김소정(sjkim@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