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르고 싶을 때
몸에 꼭 맞는 새 옷 한 벌 짓고 싶은 봄날이다. 내 취향을 그대로 담아 제작해주는 맞춤 서비스에 눈이 간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수 미주라 이벤트 현장
기성복이 맞지 않을 때, 다양한 스타일과 옷감의 디자인이 필요할 때, 맞춤복의 필요성을 느낀다. 주문 제작의 의미를 담아 MTO(Made to Order), MTM(Made to Measure)으로 부르는 서비스 말이다. 최근 몇 년 새 이를 찾는 수요가 증가했다. 그런 탓에 브랜드에서도 특화된 이벤트를 선보이는 중. 그중 올봄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두 이름이 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수 미주라와 에르메스의 커스텀메이드. 기존 패턴을 고객의 사이즈와 취향에 따라 적용하는 수 미주라(Su Misura, 반맞춤), 채촌부터 패턴 제작, 가봉, 완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테일러가 관여하는 비스포크(Bespoke, 풀맞춤) 등 브랜드별, 제품군별로 특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남자를 만족시키는 서비스, 그 진행 과정을 들여다봤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수 미주라 이벤트 현장

SU MISURA BY ERMENEGILDO ZEGNA
특별한 과정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1970년대 맞춤 슈트의 제작 방식 중 하나인 수 미주라 시스템을 처음 선보인 브랜드. 그 덕분에 체계적인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매년 봄과 가을이면 이탈리아 본사에 속한 장인이 전 세계를 돌며 고객을 만나 일대일로 상담을 진행하고 주문을 받는다. 수 미주라 서비스의 첫 단계는 고객과 이탈리아에서 온 에르메네질도 제냐 슈트 장인의 상담. 어떤 상황에 입을 것인지, 선호하는 컬러는 무엇인지, 평소 라이프스타일은 어떤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보는 전문가와 1시간 이상 대화하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이는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는 중요한 과정. 서비스 단계 중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상담을 통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한 장인은 스타일과 원단, 안감과 버튼, 버튼홀과 라펠, 커프스 등에 이르는 세부 디자인 선택을 돕고 고객의 성격과 라이프스타일에 가장 부합하는 디자인을 10개 내외로 구상해 제안한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점이 있다. 장인이 제안하는 소재와 컬러가 고객이 원하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슈트용 패브릭을 500개 이상, 셔츠용 패브릭을 250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이렇듯 방대한 선택 사항은 고객의 섬세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함이지만, 경우에 따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길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에디터 역시 그 방대한 원단 샘플을 보는 순간 결정 장애가 오는 것 같았다. 이때 체계적인 훈련 과정을 거친 장인이 그간의 경험, 노하우, 지식을 총동원해 정확한 길을 안내하니 믿음직스럽다. 이후에는 신체 치수를 측정한다. 완벽한 의상은 정확한 채촌이 바탕이 되어야 완성 가능하기 때문. 이 역시 특별한 훈련을 받은 장인이 직접 진행한다. 사실 사람들은 본인의 대략적인 신체 사이즈만 알 뿐, 체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 세심한 채촌을 통해 그간 모르던 양팔의 길이, 어깨와 골반의 높이 등 신체적 특징과 사이즈에 대해 알고 놀라는 이들도 많다. 전문가는 고객의 체형을 이해하고 의상 제작 시 이런 특징을 보완해야 하는 부분까지 정확하게 설명한 후 수집한 신체 정보를 에르메네질도 제냐 본사로 전송해 의상 제작에 반영한다. 4주 후 고객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슈트를 받아볼 수 있다. 내 몸을 잘 아는 진정한 내 옷을 말이다.
새로운 발전 올해부터 수 미주라 방식을 통해 선보이는 슈트에 새로운 컨셉이 추가됐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테파니 필라티가 에르메네질도 제냐 쿠튀르 컬렉션을 통해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브로큰 슈트 컨셉이 바로 그것. 언뜻 보면 같은 소재로 만든 상·하의 한 벌의 슈트 같지만 자세히 보면 패턴과 컬러에 미묘한 차이를 주어 포멀과 캐주얼한 이미지를 절묘하게 넘나드는 것이 매력이다. 캐시미어 니트와 아우터 같은 캐주얼웨어도 수 미주라 서비스가 가능한데, 올해부터는 데님 재킷과 셔츠를 추가해 선택의 폭을 더욱 넓혔다.
특화된 특별함 수 미주라 서비스만으로도 이미 특별하지만 이보다 한 단계 높은 서비스를 원하는 이들도 있다. 이를 위해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수 미주라 개인 제작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탁월한 원단 제작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객이 직접 패브릭을 디자인하는 것은 물론, 마감 방법까지 결정하는 거다. 특히 이렇게 완성한 원단은 가장자리 부분인 셀비지에 고객의 이름이나 메시지를 담아 직조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수 미주라 개인 제작 프로젝트는 시즌별로 100벌 이하로 수량을 한정하니 비범해도 정말 비범하다.
수 미주라 이벤트를 체험 중인 자비에 뒤포아 대표와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장인

Recommendation
국내에서는 지난 3월 10일 파크 하얏트에서 올해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첫 수 미주라 이벤트가 열렸다. 해외 브랜드 컨설팅 컴퍼니 Latitude-37의 자비에 뒤포아 대표가 <노블레스 맨> 독자를 대신해 이를 직접 체험한 후 후기를 전해왔다.
“어떤 상황에 입을 슈트를 제작할 것인지 논의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전 데일리 웨어로 입을 수 있으면서 중요한 행사에도 어울리는 슈트를 의뢰했죠. 옷장에만 넣어두는 귀한 슈트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이 필요했거든요. 사실 제 주문은 복잡했어요. 클래식한 동시에 스타일리시하고, 포멀하면서도 지나치게 포멀하지 않은 소재를 원했죠. 전문가는 울과 모헤어가 섞인 패브릭을 추천했는데, 적당한 광택이 고급스러워 보일 뿐 아니라 주름이 지지 않는(wrinkle free) 점이 마음에 쏙 들었죠. 출장 시 슈트케이스 안에서도 주름지지 않을 테니까요!
제 피부색과도 완벽하게 어울릴 뿐 아니라 재킷은 데님이나 다른 캐주얼 팬츠와 매치하기도 좋아 보였어요. 마스터 테일러가 제 요구 사항을 완벽히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소재와 스타일을 제안한 거죠. 그 덕분에 신뢰도가 높아졌습니다. 이후 이어진 채촌 과정 역시 정확하고 디테일했어요. 제 체형의 특성을 금세 알아차리고 보완해야 할 부분까지 친절하게 설명하니 벌써부터 한 달 뒤 완성될 슈트가 기대되네요.”
남성 맞춤복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르 매니페스트의 맞춤복 영상 이미지


에르메스의 맞춤 제작 셔츠와 제작 장면

에르메스 스카프로 셔츠를 제작하는 모습. 셔츠 한장을 만들기 위해 5장의 스카프가 필요하다.

에르메스의 맞춤 제작 셔츠와 제작 장면
CUSTOME MADE BY HERMÈS
다양한 테크닉 1994년 파리 포부르 매장에서 맞춤복 서비스를 처음 진행한 에르메스. 최근 웹사이트 르 매니페스트(Le MANifeste)를 런칭하며 남성 맞춤복의 가치를 더욱 널리 알리는 중이다. 커스텀메이드 서비스는 제품군에 따라 비스포크와 수 미주라 방식으로 나뉘는데, 슈트와 셔츠는 두 방법 모두 가능하며(국내에서는 마스터 테일러가 없어 수 미주라만 가능), 백과 액세서리 등 기타 제품은 수 미주라로 진행한다. 숙련된 장인의 노하우를 강조하는 브랜드답게 주문 제작 아이템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투입하는 가치가 어마하다. 슈트의 경우 선택할 수 있는 패브릭의 가짓수만 5000개, 채촌 신체 부위는 30곳, 이를 바탕으로 아틀리에에서 제작하는 시간은 70~80시간에 이른다. 셔츠 제작도 까다로운 공정을 거치는 것은 마찬가지. 소매, 칼라 등 주요 부분은 우아하면서 내구성이 좋도록 1cm당 5개 또는 7개의 스티치로 마무리해 견고함을 강조한다. 아틀리에에서는 의상 제작 후 10년간 똑같은 옷감을 보관해 그 기간 동안 매장에 가져가 새것처럼 수선할 수 있다. 커스텀메이드 아이템은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이라는 생각 덕분. 특히 메종의 시그너처 아이템인 스카프를 활용한 셔츠 제작도 가능하다는 점이 신선하다. 카디건, 풀오버, 스카프, 양말 등 니트 아이템의 경우 자신만의 색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개인의 취향에 맞는 색으로 실을 염색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도 다채로운 선택 사항이 기다린다. 캐시미어, 베이비 캐시미어, 캐시미어와 실크 혼방, 캐시미어와 코튼 혼방, 해도면(sea island cotton, 면의 왕으로 불리는 실로 카브리 해 연안에서만 생산한다), 극세 양모 등. 말 그대로 고르는 재미가 있다.
미묘한 차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쁨의 순간, 특별한 순간, 자신의 꿈과 욕망을 실현하는 순간”, 에르메스의 남성복 아티스트 디렉터 베로니크 니샤니앙은 커스텀메이드 서비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옷감 선택, 완벽한 재단,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마무리 작업을 통해 완성한 옷은 옷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특히 여유로움이 묻어난다는 것. 메종의 숙련된 재단사가 고객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조언하며 고객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완벽하게 완성될 옷을 떠올리는 일련의 과정은 소수의 남성만이 누릴 수 있는, 그리고 성공한 남성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봐야 할 특권같다.
에디터 서재희 (jay@noblesse.com)
사진 에르메네질도 제냐, 에르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