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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아트 트립 리포트

LIFESTYLE

2026년 세계 미술 시장의 중심지로 부상한 중동 아트 신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존재감을 각인시킬 준비에 한창이다.
그 첫 주자는 내년 2월 ‘아트 바젤 카타르’ 개최를 앞둔 도하. 로컬과 글로벌, 과거와 현대, 예술과 건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카타르 아트 트립 리포트.

장 누벨이 설계한 카타르 국립박물관. Photo by Iwan Baan
MIA를 설계한 I. M. 페이의 사진. © Ted Dully/The Boston Globe via Getty Images

카타르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부유한 산유국, 2022 FIFA 월드컵, 서비스 좋기로 유명한 카타르항공, 세계적 건축가가 지은 거대한 미술관. 하지만 지금 카타르는 이런 단편적 이미지를 넘어 ‘문화의 나라’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카타르 국립박물관(NMoQ) 개관 50주년과 ‘카타르 뮤지엄스(Qatar Museums, QM)’ 창립 20주년이 겹치는 올해, 도하는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전시장이 된 듯하다. 박물관과 미술관, 공공 미술과 사막의 설치 작품이 한 호흡으로 연결되며 중동 아트 신의 현재를 역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밤늦게 도착한 도하의 첫인상은 예상 밖이었다. 각오했던 사막의 열기는 공항부터 호텔까지 유려한 동선에서 좀체 느낄 수 없었고, 차창 너머로 초고층 빌딩이 즐비했다.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는 스카이라인은 사막 위에 세운 미래 도시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낯설지만 세련된 공기, 그 미묘함 속에서 이 도시가 왜 지금 주목받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지난 20년간 카타르는 건축과 예술의 나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사막 한가운데 세운 웅장한 박물관은 그럴듯한 건축물 이상으로 과거 유산과 현재 예술을 연결하는 문화 허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글로벌 아트 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히는 카타르 뮤지엄스 의장 셰이카 알 마야사 빈트 하마드 빈 할리파 알 타니(Sheikha Al Mayassa bint Hamad bin Khalifa Al-Thani)는 카타르 국립박물관에서 진행된 20주년 기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여는 모든 뮤지엄과 보존하는 모든 아카이브, 그리고 세우는 모든 창의 허브는 사람들을 힘 있게 하고, 젊은 세대를 고무하며, 우리의 유산을 이어가는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카타르 문화의 에너지와 생명력은 기념비나 소장품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 삶을 영감하고, 연결하고,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그의 말처럼 도하는 지금 ‘Evolution Nation’이라는 이름으로 예술, 건축, 디자인, 패션, 스포츠, 공공 미술이 맞물린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카타르 국립박물관 개관 50주년인 10월 23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대규모 전시 시즌은 2027년 초까지 18개월간 이어진다.

이슬람 미술관. Courtesy of the Musuem of Islamic Art

건축과 예술의 미학

그 여정의 중심에는 카타르 국립박물관이 있다. 1975년 셰이크 압둘라 빈 자심 궁전에 처음 문을 연 이곳은 2019년 장 누벨의 설계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는 카타르 사막에서 발견되는 결정체 ‘사막의 장미’를 모티브로 수백 개 원반 구조를 겹겹이 교차해 건축과 풍경, 빛을 하나의 유기체로 엮어냈다. 실제로 마주한 카타르 국립박물관은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원반 구조가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는 시시각각 다른 표정을 만들어냈다. 여백과 건축이 어우러져 공간 전체가 하나의 조각 같았다. 외부의 유기적 형태에 맞춰 내부 전시 공간 역시 곡선과 직선, 개방과 밀폐가 교차하며 끊임없이 방향을 바꾼다. 개관 50주년 기념전 〈A Nation’s Legacy, A People’s Memory: Fifty Years Told〉는 카타르 국립박물관의 반세기 역사를 보여주는 자리로, 1972년 설립을 결정하면서부터 2019년 재개관하기까지 서사를 유물, 기록, 음악, 구술사 등으로 촘촘히 소개한다. ‘국가 정체성은 어떻게 이야기로 구축되는가’라는 질문 아래 공간 전체를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큐레이션한 감각이 인상 깊었다.

한편, 카타르의 또 다른 자랑인 이슬람 미술관(MIA)과 알 리왁(Al Riwaq)에서는 건축가 I. M. 페이의 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알 리왁에서 진행 중인 〈I. M. Pei: Life is Architecture〉는 홍콩 M+ 뮤지엄과 상하이 파워 스테이션 오브 아트를 거쳐 도하로 이어진 순회전으로, 루브르 피라미드,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도하 이슬람 미술관에 이르는 그의 대표작을 드로잉과 모형, 아카이브로 재구성했다. 동시에 이슬람 미술관에서는 〈I. M. Pei and the Making of the Museum of Islamic Art〉가 열려 건축가가 ‘이슬람적 미학’을 구조와 공간으로 어떻게 구현했는지 보여준다.

마타프 아랍 현대미술관.
M7에서 진행 중인 〈FTA: Threads of Impact〉 전시 전경.

경계 없는 현대미술

도하의 중심지 므셰립에 자리한 M7은 예술의 에너지를 다른 결로 확장한다. 내년 2월에 열리는 ‘아트 바젤 카타르’의 메인 장소로, 패션∙디자인∙테크놀로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창의 허브답게 다채로운 주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먼저 〈FTA: Threads of Impact〉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신진 패션 디자이너를 발굴·지원하는 비영리 조직 ‘패션 트러스트 아라비아(FTA)’ 7주년을 기념해 80여 명의 디자이너를 소개하고, 아랍 패션의 현재를 보여준다. 아랍 문화와 현대적 요소가 어우러진 의상과 패션 아이템을 살펴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이어 〈Houbara Haven: A Chaumet Tiara〉에서는 파리의 하이 주얼리 메종 쇼메와 카타르 아티스트 아이샤 알라티야(Aisha Alattiya)가 협업한 맞춤형 티아라를 공개해 협업의 미학과 장인정신의 가치를 선보인다. 또 다른 전시 〈Amazigh Hair Couture〉는 북아프리카 토착 민족인 아마지그(Amazigh) 여성의 머리 장식을 통해 정체성과 미의식을 탐구한다. 총 4개의 테마 구역을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이어진 미학적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카타르의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아랍 현대미술관 마타프(Mathaf)는 개관 15주년을 맞아 그룹전 〈we refuse_d〉를 기획했다. 팔레스타인 화가 사미아 할라비, 시리아 설치 작가 모나 하툼, 프랑스 작가 카데르 아티아 등이 개인적 경험과 정치적 현실을 예술로 표현한 작업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카타르의 예술을 향한 진심과 비전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분야는 공공 미술이다. 도시의 경계를 벗어나 서쪽 브루크 자연보호구로 향하면 사막과 수평선을 가르는 리처드 세라의 대작 ‘East-West/West-East’가 기다린다. 1km에 걸쳐 서 있는 4개의 강철판은 사막의 고요 속에서 수평과 수직, 인간과 자연, 예술과 지형의 관계를 압도적 규모로 드러낸다. 도하 도심에는 ‘Evolution Nation’ 시즌을 맞아 새로운 공공 미술 작품 두 점이 추가됐다. 이슬람 미술관 파크에 설치된 페터 피슐리 & 다비트 바이스의 ‘Rock on Top of Another Rock’은 균형과 불안정의 은유를 보여주며, 야외 공유 주방 형태의 ‘Untitled 2025(no bread no ashes)’를 제작한 리크릿 티라바니야는 화덕에서 구운 빵을 관람객과 나누는 퍼포먼스를 통해 환대의 감각을 제시했다.

왼쪽〈Amazigh Hair Couture〉 전시 전경.
오른쪽 페터 피슐리 & 다비트 바이스의 ‘Rock on Top of Another Rock’. © Adriane de Souza

실험과 도전, 첨단 기술의 만남

실험과 도전, 첨단 기술의 만남
‘Evolution Nation’ 캠페인에서 흥미로운 또 하나의 축은 ‘미래’다. 실험과 도전, 첨단 기술이 어우러진 전시 현장에서 카타르 아트 신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대표적 예가 카타르 준비 학교(QPS)다. 과거 학교였던,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이 공간은 향후 카타르 최초의 창의 산업 전문학교로 변모할 예정이다. 현재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와 사미르 반탈이 이끄는 OMA의 리서치 스튜디오 AMO가 큐레이션한 〈Countryside: A Place to Live, Not to Leave〉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2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의 확장판인 이 전시는 아프리카에서 중동, 중앙아시아, 중국 동부로 이어지는 ‘The Arc’를 따라 도시 밖 삶의 가능성과 농촌의 잠재력을 탐구한다.

한편 파이어 스테이션(Fire Station)은 도하 아트 신의 실험 정신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2015년 옛 소방서를 레노베이션한 이곳은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창작자의 실험을 지원하고 있다. 〈Portals in Flux〉는 15인의 카타르 기반 작가가 9개월간 리서치를 거쳐 완성한 신작을 선보이는 전시로, 사운드·향·질감 등이 교차하는 감각적 공간이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3-2-1 카타르 올림픽 & 스포츠 박물관. 2022년 월드컵 경기장을 레노베이션한 대규모 전시관으로, 스케일에 걸맞은 압도적 규모의 전시를 진행 중이다. 〈Esports | A Game Changer〉는 파리 2024 올림픽 전시를 도하 버전으로 확장해 e-스포츠의 성장과 사회적 의미를 탐구하며, 〈Sneakers Unboxed: Studio to Street〉는 런던 디자인 뮤지엄 전시를 가져와 운동화 디자인과 스트리트 문화의 진화를 시각화했다.

도하의 미술관과 뮤지엄은 서로 다른 언어로 전시를 펼치면서도 하나의 유기적 서사로 이어진다. ‘기념’의 순간을 발판으로 카타르는 또 한 단계 도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은 이미 예고되어 있다. 내년 2월, 세계 최대 아트 페어 ‘아트 바젤 카타르’가 도하에서 첫선을 보인다. 스위스 바젤에서 출발해 마이애미와 홍콩, 파리로 확장해온 글로벌 아트 플랫폼이 새로운 축으로 도하를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도하는 지금 ‘기억의 도시’를 넘어 ‘예술의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파이어 스테이션.
마타프에서 진행 중인 〈we refuse_d〉 전시 전경.
〈Countryside: A Place to Live, Not to Leave〉 전시가 열리고 있는 QPS. © AMO/OMA
  •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 사진 카타르 뮤지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