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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은 생활필수품이 됐지만, 정작 스마트폰의 성장세는 정체 상태다. 성능의 획기적인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고, 같은 이유로 성장률 역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스마트폰의 자리를 대체할 제품은 VR HMD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폰의 국내 도입 시기는 2009년 11월. 물론 이전에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휴대폰이 있긴 했지만 얼리어답터들의 전유물이었다. 이제 누구나 스마트폰을 쓰고, 새로운 기기의 출시 소식은 점심시간의 반찬거리가 될 정도로 익숙하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스마트폰이 어떤 한계에 부딪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기기 전시회 MWC에서 삼성전자는 갤럭시 S7과 S7 엣지 등의 신제품을 공개했는데, 이 행사의 이름 ‘Beyond Barriers(한계를 넘어)’는 중의적이며 의미심장한 표현이었다. 본격적인 스마트폰 보급 초기에 제조사들은 경쟁사보다 숫자상 조금이라도 앞선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숫자를 기준으로 하는 ‘스마트폰 계급도’란 이미지까지 나왔을 정도. 성능을 나타내는 숫자는 어느새 두께를 지나 배터리 용량으로 넘어갔고, 결국 모든 제품이 비슷한 숫자를 지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사들은 스마트폰의 주변기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체중계가 스마트폰과 연결되고, 수많은 블루투스 스피커와 이어폰이 등장했다. 이윽고 가전제품 중 일부가 스마트폰과 연결되나 싶더니, 급기야 차와 집까지 연결되었고 이런 상황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외적 요소에 치중하던 기기는 어느새 사용자의 생활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스마트 워치를 내놨고 여러 회사에서 스마트 밴드를 출시했다. 하지만 어느새 훅 들어와버린 기계들이 불편했던 걸까? 발매 전부터 큰 관심을 모은 애플 워치조차 기대에 못 미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제조사들은 그동안 사용자의 생활을 스마트하게 바꿔준다고 했지만 사용자들은 이런 기기에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결국 그들에게 남은 것은 콘텐츠였다. 이미 스마트폰에서 콘텐츠는 자유롭게 소비되고 있지만, 사용자를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로 끌어들여 새로운 재미를 주겠다는 콘텐츠가 바로 가상현실, 즉 VR(Vritual Reality)이다.

오큘러스 리프트

최신의 VR은 HMD(Head Mount Display)를 기반으로 한다. SF 영화에나 등장하던 기기들을 머리에 쓰는 HMD는 의외로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무려 1968년에 처음 만들었고, 1994년 어마어마한 크기로 세상에 등장했지만 정작 관심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인 2011년쯤이다. 눈 가까이 화면이 위치하기에 디스플레이의 품질이 중요했지만 2011년 전에는 디스플레이 기술이 여기까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디스플레이 품질이 일정 수준 이상 향상된 이후에는 풀 HD 해상도를 지원하는 소니의 HMZ 시리즈를 비롯해 다양한 제품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제품은 가까이에서 큰 화면(상대적으로 눈에서 가까우니)을 즐기는 용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HMD를 통해 사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움직이는 화면을 보여주겠다는 제품이 바로 본격적인 VR HMD인 오큘러스 리프트다. 기존 HMD 제품에 비해 시야각이 크고 머리를 돌리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바뀌기 때문에 사용자는 마치 그 공간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VR HMD를 통해 그동안 2D 화면으로 즐기던 게임을 360도의 가상 공간에 펼쳐놓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간이 콘텐츠의 관찰자에서 콘텐츠의 새로운 중심이 되며, 콘텐츠 제작 문법은 일대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VR HMD의 가장 큰 특징은 넓은 시야각과 입체감으로 내가 실제 그곳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주는 것이다. 기존 빔 프로젝터와 달리 넓은 공간이 필요 없으며 어떤 자세로 봐도 똑같은 화면이 보이는 것 또한 장점이다. 다만 눈앞에 착용하는 형태기 때문에 혼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은 단점이다. 콘솔 게임기의 경우 2명이 함께 게임을 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VR HMD라면 아직은 고가의 기기가 하나 더 필요하다. 또한 예전보다 가벼워졌다지만, 실제로 착용해보면 2시간 정도의 3D 영화를 보는 것도 쉽지 않다(얼굴에 자국도 남는다).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높은 몰입감 때문에 화면 밖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갤럭시 S7, S7 엣지의 발표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모두 VR HMD에 몰두하는 바람에 바로 옆으로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의 CEO)가 걸어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진이 회자되기도 했다. 새 스마트폰 공개 행사를 VR HMD로 진행했다는 것 또한 세인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수동적인 스마트폰에서 능동적인 VR HMD로 넘어가고 있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삼성 기어 VR3

현재 VR은 여러 회사에서 개발 중이거나 만들고 있다. 작동 방식은 비슷하지만 사용 환경은 조금씩 다르다. ‘오큘러스 리프트’와 ‘HTC 바이브’는 PC를 사용해 콘텐츠를 재생한다. 반면 삼성전자의 ‘기어 VR’과 구글의 ‘카드보드’는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제품의 홈에 스마트폰을 끼워 넣어 스마트폰 화면을 디스플레이로 사용하기 때문에 구조는 간단하지만, 스마트폰 무게만큼 무거워진다는 게 단점이다. 최근 가격과 출시 시기를 확정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VR’은 게임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 4를 재생 기기로 이용할 예정이며, 앞으로 PC를 지원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는 중이다. 또한 360도 각도를 모두 촬영할 수 있는 VR 전용 촬영 기기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VR HMD의 대중적 보급에는 여전히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새로운 흐름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마케츠 앤 마케츠(Markets & Markets)’에 따르면 VR 시장은 2014년 16억 달러(약 2조 원)에서 2020년 100억 달러(약 12조 4000억 원) 규모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지난 4월 15일 도쿄의 다이버시티에는 VR 체험 존이 오픈했다. 총 6개의 데모 화면을 준비하고 홍보 영상도 공개했는데, 가상의 고층 건물 사이에 놓인 외나무다리에서 균형을 잡으며 강아지를 구출하는 게임이었다. 영상 속 사람들은 다들 신기하고 즐거워했다.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다. 현재는 영상과 게임 정도지만, 앞으로는 의료나 관광, 교육,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VR의 활용 가능성이 점쳐진다. CNN은 지난해 민주당의 대선 후보 토론회를 VR 영상으로 중계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의 전쟁 장면 역시 VR 영상으로 중계하는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단순히 VR이 뜨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원래 인간은 실감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기존 뉴스는 전해 듣는 것일 뿐이지만, VR은 높은 몰입감을 통한 현장성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제품들을 선보일 2016년은 VR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스마트폰이 그래온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기기의 완성도 역시 함께 높아질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디바이스 자체가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콘텐츠다. 처음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를 생각해보라.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열광하지 않았던가.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한다 해도 인간까지 빠르게 변하는 건 아니다.

에디터 이기원 (lkw@noblesse.com)
고진우(IT 전문가) 사진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