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위로받고 있나요?
대한민국의 기득권이라 불리는 30~50대 남성들의 일상은 사실 그다지 즐겁지 못하다. 아니, 심각할 만큼 염려스럽다.

강화도에 갔다. 볕이 좋고 하늘이 높아 무작정 떠난 길이다. 평일이었지만 항구는 붐볐다. 제철 맞은 싱싱한 꽃게와 삼치, 새우와 갯장어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에게 잘도 팔렸다. 하릴없이 시장을 돌다 얕은 산에 올랐다. 두 사람이 간신히 지날 좁은 오솔길이 정갈하게 이어졌다. 가까이서 본 나뭇잎은 희미하게 노란빛을 머금고 있었다. 숲이 끝나는 곳에 널찍한 터가 나왔다. 등산복을 입은 50대 남자 하나가 낮은 바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시선을 따라가니 젖은 휴지 같은 구름이 뭉텅이로 흐르고 있었다. 건조하고 주름진 피부가 빛에 반짝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 누군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난 하늘과 그를 몇 번 번갈아 보다 발을 돌려 항구로 내려왔다. 거울에서 본 듯한 표정, 어떤 근심과 공포를 압축해놓은 것 같은 얼굴.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버리러 떠난 길이었다. 되레 심란하던 마음이 한층 복잡해졌다. 집으로 오는 내내 하늘은 얄미울 정도로 맑았다. 이맘때면 마음에 여백이 생긴다. 높아진 하늘만큼, 떨어진 낙엽만큼 구멍이 숭숭 뚫린다. 벌거벗겨져 땡볕에 던져진 느낌이 든다고 할까. 날씨탓이겠거니 싶지만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숨 가쁘게 살다가 지금에야 한 번 숨을 고른다. 잊고 지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에 와 닿는다. 퍽퍽한 삶과 지루한 일상, 답 없는 미래 같은 것 말이다.
선배 소식을 들은 건 술자리에서였다. 이제 갓 쉰이 된 이전 직장 선배는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술을 참 좋아했잖아.” “그 양반 담배도 오래 태웠지.” “아마 아버님도 암으로 돌아가셨나 그랬어.” 그 자리에 있던 우리는 각자 이유를 찾기 바빴다. 그렇지 않으면 억울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약지 못해 출세길에선 진작 벗어났지만 사람 좋고 의리 있는 선배였다. 마감의 살얼음판 위에서도 욕지거리 한 번, 남 탓 한 번 안 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기러기 아빠였다. 형수와 2명의 아이를 뉴질랜드에 보낸 지 6년, 회사 근처 아파트에서 홀어머니와 생활하던 그의 일상은 몸서리칠 만큼 외로웠을 것이다. 선배는 자주 술을 마셨다. 구겨진 셔츠와 낡은 구두, 어금니가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던 표정이 스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배도 형수랑 아이들 이제 들어오라고해.” 자리에 있던 A 역시 기러기 아빠 신세였다. 열일곱 살 딸과 형수는 3년 전 플로리다로 떠났다. 이틀에 한 번꼴의 짧은 영상통화와 아이 방학과 회사 휴가를 틈타 오가는 것이 그가 가족을 느끼는 시간의 전부였다. “SAT 준비가 한창이라 쉽지 않아. 대학 가면 집사람부터 들어오라고 해야지.”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 선배도 암 걸려. 밥도 시원찮게 먹고 외롭잖아. 가족이면 부대끼며 살아야지.” 막내 B가 말했다. “야, 난 담배도 안 태우고…. 선배랑은 달라. 아씨, 재수 없게.” 그와 같아 보이지만 다르다고, 우리보단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갓 30대에 들어선 B, 올해로 사회생활 8년 차인 나, 가족을 플로리다로 보낸 40대 A, 사람 좋은 50대 선배로 이어지는 희미한 길이 보였다. 모두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별수 없이 우린 그 레일을 따라 걷고 있다. 한국 남자의 삶, 참 보잘것없이 초라하다.
얼마 전 우연찮게 한 여성단체에서 활동 중인 몇 명과 자리를 함께했다. 근래 사회적 논쟁도 많고 관심도 있던 터라 “오빤 이런 것 좀 알아야 해”라는 후배의 성화에 못 이긴 척 합석을 했다. 2시간 남짓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담론이 오갔다. 자리에 나온 그녀는 발제자처럼, 혹은 선생님처럼 열심히 이야기했다. “19세기의 불합리한 풍습이 개화기와 민주주의 혁명을 거치면서도 전혀 개선되지 못한 거죠. 아직도 한국 여성은 조선시대를 살아요. 사회적 약자인 여자들에겐 정글인 셈이죠. 우린 발톱 하나 없어요.” 대부분 동의할 수 있었다. 몇몇 말은 움찔하게 만들었으며 기억을 더듬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도 했다. 불쾌하거나 반박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결단코 이해력이 부족했던 것뿐이다) 내 표정이, 혹은 태도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동의하기 어려우신가 봐요?” 급작스러운 질문에, 날카로운 목소리에 섬 놀랐다가 차분히 답했다. “전부 공감해요. 반성하는 부분도 많아요. 반박하고 싶은 건 아니고… 그저 한국 남성들의 삶도 그다지 행복하지 못해서요.” 여자 대 남자 같은 걸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 자란 남자들은 대개 그것이 지질한 일이란 것쯤은 안다. ‘대신 당신들은 이걸 겪지 않잖아’라는 말 또한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별개로 우리네 삶도 그다지 즐겁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징징거리는 투정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게 필요하다. 지금 한국 남자들에겐 아프고 힘들다는 고백과 위안이 절실하다.
자살을 참으니 암이 온다
30대 초반인 동생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5년 전 동생은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했다. 서울 중위권 대학 출신, 짧은 어학연수와 교환학생 이력, 높지 않은 토익 점수엔 과분한 결과였다. “운이 좋았다”, “감사히 여겨라”, “열심히 해라” 등등 집안 어른들의(물론 여기엔 나도 포함된다) 기대는 입사 3년 만에 무너졌다. 동생은 급작스레 사표를 냈다. 이유는 ‘행복하지 않아서’. 부모님과 친척들은(물론 나도 여기에 해당된다) 혀를 차며 동생을 몰아세웠다. “제정신이냐”,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 “아직 애인 줄 아느냐”라는 격한 말에도 그는 미동도 안 했다. “네가 잘 타일러봐라”라는 말에 마련한 술자리에선 나도 그들처럼 한심하다는 듯 동생을 쏘아붙였다. “사는 게 그렇게 낭만적인 게 아냐.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 그걸 하면 행복해질 것 같아?” 묵묵부답이던 동생은 잠시 뒤 건조하게 말했다. “낭만은 고등학교 때부터 없었어. 대학 신입생 때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한 애들도 있어. 꿈 같은 거창한 걸 말하는 게 아냐. 내가 불행해서 그래. 새벽부터 출근해 해 지면 퇴근해. 한 달에 출장이 보름이 넘어. 그게 꼭 싫다는 게 아냐. 내 건너편의 대리, 그 뒤의 과장, 그리고 팀장, 부장까지 내 미래가 너무 빤히 보여서 그래. 연봉 몇천이나 대기업 박힌 명함보단 내 삶이 더 중요해.”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동생의 말보다 거기에 반박하는 내 언어가 너무 천박하고 사고가 촌스러워서 가슴에 콕콕 박혔다. 그(그들)도 그(그들)만의 미로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그토록 진부한 고민을 그렇게 절실히 하면서.
그것을 견디면 40대가 찾아온다. 이젠 다른 종류의 고민과 압박이 시작된다. “근시안이 된다고 할까. 멀리 보거나 전체를 훑지 못하겠어. 지금 당장 급급하거든. 일은 산더미에 애들은 커가지(우리 때와는 달라. 손도 많이 가고, 돈도 많이 들고 훨씬 예민해), 세상은 또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당장 내일 천지가 개벽한대도 이상할 일이 아냐. 하루하루 수습하면서 사는 거야.” 대기업에 근무 중인 40대 중반 선배의 말이다. 이건 꽤나 보편적인 사례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건 쪼들리건, 안정적 직장에 다니건 사업을 하건 비슷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절벽 앞에 서게 된다. 되돌아갈 수도, 전진할 수도 없는 막다른 길로 몰리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의 가장들은 IMF의 정리 해고와 도산, 외환 위기의 사오정(45세 정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나 패배자가 되고 가정이 해체되는 걸 목격한 충격의 여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독하리만치 열심히 일한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의 소통은 물론 자신의 몸조차 돌볼 시간이 없다. 통계청의 2016년 사망 원인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 30대 남성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인구 10만 명당 35.8명)이다. 40대 남성 사망 원인 1위는 악성신생물-암(인구 10만 명당 188.8명)이다. 거의 여성의 2배에 가까운 수치다. 자살을 참으니 암에 걸렸다는 의미로,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남성들의 가장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숫자다. 50대 이후의 삶도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대학 입시 때부터 DNA에 치열함을 이식한 한국 남자에게 은퇴 이후 남는 거라곤 한 줌도 안 된다. 아이들에겐 어려운 아빠, 아내에겐 무신경한 남편, 조직에선 꼰대로 살아온 남자 곁엔 애완견이나 비슷한 처지의 우리뿐이다. 옛 애인이나 친구가 그리워지는 것도 가장 찬란한 시절의 자신으로 회귀하고 싶은 욕망의 발현인 셈이다. 그래서 조금 더 자신을 위해 살 필요가 있다. 현재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소비하는 태도를 일컫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는 중년의, 혹은 중년을 준비 중인 남자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방식이다. 스스로 돌보지 않아 행복하지 않은 생을 사랑하고 지지해줄 사람은 세상에 없다. 지금 손에 쥔 것들을 내려놓고 거울을 보자. 그리고 지금을 즐기자. 인생은 가을만치 짧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일러스트 김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