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ynamic Time
지난 1월 제네바의 국제 고급 시계 박람회(SIHH)에서 베일을 벗은 남성 시계 대표작을 꼽았다. 놀랍고도 황홀한 모습과 그 이면에 감춰둔 정교한 기술력에 경탄할 시간이다.

A. LANGE & SÖHNE
Grand Lange 1 Moonphase ‘Lumen’
랑에 운트 죄네는 최고급 무브먼트에 반해 심플한 다이얼로 정평이 나있다. 가독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투르비용조차 백케이스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그래도 가끔은 변화가 필요한 법. 2013년 처음 등장한 ‘루멘’은 반투명 사파이어 크리스털 다이얼을 적용해 무브먼트를 드러낸 것으로, 그마저 블랙 컬러로 코팅해 기계의 아름다움을 은은하게 뽐낸다. 인덱스와 시곗바늘 그리고 랑에 고유의 큰 날짜 창은 형광 물질로 코팅해 어두운 밤에도 제 기능을 발휘한다. 이 시계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문페이즈로 블랙 글라스 위에 커다란 달과 1164개의 별을 수놓아 그 정교하고 선명한 광채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JAEGER-LECOULTRE
Reverso Tribute Gyrotourbillon
예거 르쿨트르의 아이코닉 컬렉션 리베르소가 올해 탄생 85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발레드주에 자리한 하이엔드 매뉴팩처는 컬렉션을 리뉴얼하며 엄청난 물량의 새 시계를 준비했다. 지금 소개하는 리베르소 트리뷰트 자이로투르비용이 군단의 선봉장이다. 이름처럼 이 시계는 컬렉션을 기리는 동시에 이들의 자랑인 하나인 자이로투르비용을 탑재한 모델이다. 자이로투르비용은 구 형태의 헤어스프링을 사용하고, 2개의 축에서 케이지가 회전하는 덕에 중력을 상쇄하는 데 탁월할 뿐 아니라 시간을 더욱 정확하게 알린다. 회전하는 케이스답게 다이얼 앞에는 낮/밤 인디케이터를, 다이얼 뒤에는 세컨드 타임 존과 함께 홈 타임의 낮/밤 인디케이터를 추가로 장착했다. 더욱이 다이얼 뒷면으로 보이는 무브먼트의 수공 장식에선 장인의 혼을 느낄 수 있다. 유서 깊은 컬렉션 탄생 85주년을 자축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걸작이다.

CARTIER
Drive de Cartier
까르띠에의 진화는 멈출 줄 모른다. 올해 역시 SIHH를 통해 100여 개의 새로운 제품을 쏟아내며 파인 워치메이커로서 자신감을 무한대로 표출하는 중.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는 기존에 없던 새 컬렉션이 전무한 박람회장에 생기를 부여한 반가운 얼굴로, 까르띠에의 우아한 DNA는 고스란히 품은 채 쿠션형 디자인의 케이스를 더해 메종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남성용 시그너처 컬렉션이 될 전망이다. ‘컬렉션’이란 타이틀을 부여한 만큼 스몰 세컨드를 장착한 오토매틱(사진 속 모델)부터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와 GMT 기능을 더한 스몰 컴플리케이션, 투르비용을 장착한 하이 컴플리케이션까지 가짓수도 다양하며 케이스 소재 역시 스틸과 골드를 함께 선보여 선택의 폭을 넓혔다. 이러한 새 컬렉션 개발이 가능한 건 인하우스 매뉴팩처링을 통해 무브먼트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쉼 없는 투자와 연구 개발은 결과물로 보상받는다. 참고로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는 2016년 상반기 국내 런칭을 앞두고 있다.

VACHERON CONSTANTIN
Overseas Ultra-thin Perpetual Calendar
2016년 바쉐론 콘스탄틴의 선택을 받은 시계는 메종을 대표하는 스포티한 모델인 오버시즈 컬렉션. 1996년 런칭, 2004년 한 차례 업그레이드한 이후 실로 오랜만에 컬렉션 전체를 재조명한다. 트래디셔널이나 패트리모니 등 드레스 워치를 보유한 고객의 상당수가 메종의 하이엔드 매뉴팩처링을 응집한 데일리 워치를 원해 다시금 수면 위로 등장했다. 컬렉션 전체를 다듬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한 채 디자인을 개선하고, 새 칼리버를 장착하고,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기능을 새로이 추가해야 하기 때문. 물론 바쉐론 콘스탄틴은 이와 같은 난제를 거침없이 해결했고 그 결과물이 오버시즈 3세대인 셈.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울트라 신 퍼페추얼 캘린더, 울트라 신, 스몰 세컨드 등 총 5개의 새 칼리버를 개발했고(무브먼트에 대한 자신감은 제네바 홀마크가 인정한다), 진귀한 골드부터 실용적인 스틸 모델까지 다양하게 구성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무엇보다 이 컬렉션이 매력적인 이유는 하나의 시계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으로 별도의 도구 없이 스트랩을 자유자재로 교체할 수 있다. 사진 속 모델은 문페이즈를 장착한 울트라 신 퍼페추얼 캘린더 화이트 골드 브레이슬릿 버전으로 악어가죽, 러버 스트랩을 함께 제공한다.

MONTBLANC
TimeWalker ExoTourbillon Minute Chronograph
몽블랑 워치 중 모던하고 도시적인 감성을 품은 타임워커 컬렉션은 남자들의 기호를 만족시키며 승승장구 중이다. 남자의 시계답게 고성능 무브먼트 탑재, 다양한 하이테크 소재의 접목 등 그간 몽블랑이 워치메이커로서 도전한 수 많은 혁신 역시 타임워커를 통해 이뤄졌다. 지금 소개하는 엑소투르비용 미니트 크로노그래프도 그중 하나. 티타늄과 카본을 사용한 케이스 안으로 복잡한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다이얼이 자리했다. 시간과 날짜를 알리는 서브 다이얼 아래로 크로노 초와 분을 측정하는 한 쌍의 카운터가 나란히 위치했고 6시 방향에선 몽블랑 투르비용 메커니즘의 핵심인 엑소투르비용이 위용을 뽐낸다. 거대한 브리지로 고정한 이 투르비용의 케이지는 무브먼트의 심장인 밸런스 외부에 위치한 덕분에 보통의 투르비용보다 가볍고 에너지 소비를 30%나 절감한다. 블랙과 레드, 실버 컬러는 시계에 남성성을 더하는 요소. 매뉴팩처가 까다로운 500시간의 테스트를 거쳐 고객의 손에 전달하는 이 시계는 단 100개만 생산한다.

PANERAI
Lo Scienziato Luminor 1950 Tourbillon GMT Titanio
‘파네리스티’라 불리는 파네라이의 열혈 애호가를 위해 이탈리아 피렌체 태생의 이 멋진 매뉴팩처 브랜드는 매년 스페셜 에디션을 내놓는다. 사진 속 로 시엔치아토 루미노르 1950 투르비용 GMT 티타니오가 올해의 얼굴이다. 특별한 모델인 만큼 스켈레톤 무브먼트 P.2005/T를 고스란히 드러내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데, 티타늄(피부에 자극이 적고 부식되지 않으며 스틸 대비 40% 가볍다) 케이스에 걸맞게 무브먼트 브리지 역시 티타늄으로 제작해 경량화에 성공했다. 참고로 P.2005/T는 2007년 파네라이가 발표한 투르비용 무브먼트 P.2005의 베리에이션 버전으로 스켈레톤 버전인 P.2005/S에 이어 선보인 올해의 신작. 스몰 세컨드를 포함한 본연의 시간 표시 기능은 물론 GMT와 30초 투르비용, 6일간 동력을 확인할 수 있는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등 여러 기능을 탑재해 파네라이의 매뉴팩처링을 한껏 느끼기 좋은 칼리버다. 이를 탑재한 케이스 지름 47mm의 이 시계는 스페셜 에디션답게 150개만 한정 생산한다.

ROGER DUBUIS
Excalibur Automatic Skeleton Carbon
지난해에 처음 선보인 엑스칼리버 오토매틱 스켈레톤이 카본 케이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엑스칼리버 고유의 강인한 모습은 짙은 컬러의 탄소 소재 덕에 더욱 남성적인 위용을 갖추었다. 신소재를 사용한 만큼 이 시계는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데, 기존 골드 엑스칼리버와 비교하면 그 차이를 더욱 실감할 수 있을 듯. 참고로 일정한 패턴 없이 개성적인 무늬를 새긴 이 카본 케이스는 잘게 자른 탄소섬유를 고온의 열을 통해 압착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케이스 이상으로 매력적인 건 역시 스켈레톤 무브먼트. 별 모양으로 깎아낸 브리지 아래로 작고 정밀한 톱니바퀴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11시 방향에 위치한 로터까지 뼈대를 드러냈다. 완벽한 스켈레톤을 위해 로저드뷔가 성취한 특별한 업적이다. 동력을 공급하는 로터에 무게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RICHARD MILLE
RM 50-02 ACJ Tourbillon Split Seconds Chronograph
새로운 소재를 끊임없이 개발하지만 시계 제작만큼은 전통 방식을 따르는 리차드 밀. 이들의 행보는 21세기 시계 제조의 바로미터라 해도 좋을 듯하다. 올해는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Airbus)와 개인 전용기를 만드는 자회사 ACJ(Airbus Corporate Jet)와의 협업을 통해 ‘리차드 밀다운’ 또 하나의 시계를 수면 위로 올렸다. 더블 크로노그래프와 투르비용 기능을 담은 RM 50-02 모델이 바로 그것. 항공사와 협업한 만큼 시계의 외관은 비행기의 창문을 연상시키며 실제 항공기 날개에 사용하는 알루미늄·티타늄 합금으로 완성했고, 베젤 위에는 리차드 밀 고유의 별 모양 대신 헤드 슬롯 모양의 토크 세트 스크루가 케이스를 고정한다. 크라운에 새긴 물결 모양의 에어버스 로고도 특별함을 더한다. 스켈레톤 형태로 고안한 무브먼트는 다이얼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는데, 그 복잡하고 정교한 모습에 마치 창문 너머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PIAGET
Emperador Coussin XL 700P
밸런스 휠과 이스케이프먼트가 없는 기계식 시계! 놀라운 발상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엠퍼라도 쿠썽의 매혹적인 쿠션형 케이스에 담긴, 새로 개발한 칼리버 700P 덕분. 작동 원리는 대략 이렇다. 9시 방향에 놓인 마이크로 로터가 태엽에 에너지를 축적하면 1시 방향에 탑재한 제너레이터가 시간당 3만2768회 진동하며 시간의 흐름에 관여한다. 이 제너레이터가 밸런스 휠과 이스케이프먼트를 대신하는 셈. 밸런스 스프링이 없는 만큼 자기장과 중력에서 자유롭고, 충격에도 너끈하다. 하루에 오차는 단 1초, 기존의 기계식 시계보다 3배나 정확하다. 하지만 밸런스 휠이 없는 이 시계가 기계식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태엽에 축적된 에너지가 사라지면 이 시계는 멈춘다. 배터리가 없으니 쿼츠 방식도 아니라는 얘기. 그래서인지 피아제도 이 놀라운 심장을 하이브리드 무브먼트(selfwinding caliber with quartz generator)라고 설명한다. 참고로 피아제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 쿼츠 울트라 신 무브먼트 7P를 인하우스에서 제작한 역사가 있다. 새 무브먼트의 이름을 700P로 명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PARMIGIANI
Tonda Chronor Anniversaire
시계 복원가이자 워치메이커인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브랜드 파르미지아니가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자신 있게 내놓은 모델이 바로 사진 속 톤다 크로노 아니베세. 이 시계는 창업자가 워치메이커로서 품은 꿈을 표현한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소수의 브랜드만 제작 가능한 라트라팡트(더블 크로노그래프)를 모듈이 아닌 통합 형태로 만들어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베이스 칼리버 위에 크로노 모듈을 얹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랑푀 에나멜링으로 완성한 블루 혹은 화이트 다이얼에는 크로노그래프 측정을 위한 카운터가 균형 잡힌 모습으로 자리했고 2개의 크로노 초침이 라트라팡트임을 알린다. 더욱이 이 시계는 시간당 3만6000회 진동하며 정확하게 시간을 알린다.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답게 18K 골드로 만든 무브먼트를 장착했는데, 금은 연성이 큰 물질이라 무브먼트의 소재로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이를 상용화했다. 하이엔드 매뉴팩처링이란 이런 것이다.

BAUME & MERCIER
Capeland Shelby Cobra Limited Edition
쉘비 코브라는 1950년대에 카레이서로 명성을 떨친 캐럴 쉘비(Carol Shelby)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스포츠카 브랜드다. 그리고 CSX2128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코브라 중 하나로 쉘비가 1963년 세브링(Sebring) 12시간 레이스에 출전하기 위해 제작한 경주용 로드스터. 쉘비는 그의 소중한 코브라를 전도유망한 3인의 레이서, 댄 거니(Dan Gurney)와 루 스펜서(Lew Spencer) 그리고 데이브 맥도널드(Dave MacDonald)에게 맡겼다. 이듬해에는 켄 마일스(Ken Miles)와 앨런 그랜드(Allen Grand) 같은 차세대 레이서가 이 차량에 몸을 실었다. 예상했겠지만 CSX2128은 그들을 태운 채 여러 번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사진 속 시계가 바로 이 전설의 레이싱 머신과 레이서를 기리는 작품. 2015년 처음 쉘비 코브라와 손잡은 보메 메르시에가 SIHH를 통해 공개한 두 번째 한정판 에디션으로, 케이프랜드 컬렉션의 매끈하면서 남성적인 케이스를 가져왔고, 레이싱을 기리는 모델답게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탑재했다. 코브라의 상징인 계기판을 닮은 카운터, 코브라의 로고를 더한 크로노 초침, 두 줄의 스트라이프 패턴을 입힌 다이얼, 곳곳에 사용한 옐로 컬러는 전설의 차량을 복기한다. 전설의 또 다른 모습이다.

VAN CLEEF & ARPELS
Midnight Nuit Lumineuse
메종 반클리프 아펠이 선보이는 워치메이킹의 혁신과 참신함의 끝은 어디일까? 미드나잇 뉘 뤼미뉴즈는 반짝이는 밤하늘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모자라 그 반짝임을 기계적으로 구체화했다. 어벤추린을 사용해 밤하늘을 표현한 다이얼에는 미니어처 페인팅으로 그린 별자리와 함께 다이아몬드를 세팅했는데, 그중 유니콘 위에 놓인 6개의 다이아몬드가 실제로 빛을 발산하며 반짝거린다. 이를 위해 반클리프 아펠은 아주 특별한 기술을 시계에 담았다. 무브먼트에 탑재한 세라믹 조각이 무브먼트의 진동에 맞춰 자동으로 전기에너지를 축적하고, 일정 시간마다 발광다이오드(LED)가 다이아몬드 아래에서 백라이트 역할을 하는 원리다. 배터리 없이 빛을 내는 이 메커니즘은 특허를 받았다. 레트로그레이드 방식을 적용해 자정 또는 정오가 되는 순간 재빨리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시곗바늘도 신비함을 더하는 요소다. 하나의 바늘로 시와 분을 동시에 알리는 탓에 정확한 시간을 알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에디터 이현상 (ryan.le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