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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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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는 삼대삼미(三大三美)의 고장으로 불린다. 세 가지가 크고, 세 가지는 아름다운 땅이라는 의미다. 큰 것은 지리산과 섬진강,구례 들판이요, 아름다운 것은 경치와 곡식, 인심이다. 산과 강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풍요의 고장에 다녀왔다. 미니 클럽맨과 함께였다.

조선의 3대 명당으로 불렸던 구례 운조루의 바깥 모습. 풍수지리를 모르는 이가 봐도 좋은 입지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뿐이지.” 어느 영화의 대사였던가, 어떤 노래의 가사였던가. 뭐가 됐건 탁월한 표현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만큼 명징한 사실은 없다. 미니는 영국의 국민차였다. 일반적으로 ‘국민’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사물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뽑아낸 것이 대부분이다. BMW로 넘어오기 전의 미니가 그랬고, 폭스바겐의 비틀이 그랬다. 모두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공간과 성능을 뽑아낸 차다. 하지만 BMW가 인수한 뒤 미니는 디자인 정체성은 물려받되 국민차 대신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고급 브랜드로 변모했다. 이 이질적인 발전은 다행히 성공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어른이 된 소년들에게 미니만큼 기분 좋은 장난감은 없다. 하지만 미니는 이 고급 장난감의 이미지마저 조금씩 바꾸는 중이다. 아날로그적 불편함을 미덕으로 삼아 니치 마켓을 두드리던 이 차는 최근 패밀리 카로서 가능성을 모색 중이다. 지난 2014년 발매한 미니 5도어 모델은 폭스바겐 골프의 시장점유율에 도전했다. ‘미니=3도어 해치백’이라는 공식을 깨면서 공간과 실용성을 넓힌 5도어 모델은 성인 4명을 거뜬히 태울 수 있었고, 딱딱하고 정직하던 승차감은 말랑하게 바꿨다. 자동차 전문가나 마니아들은 “이건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미니가 아니야”라고 외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5도어 모델의 판매율은 늘어났다. 지난해 BMW 코리아의 실적에 따르면 5도어 모델의 판매량은 미니 총판매량의 70%를 넘어섰다. 사람들은 미니의 유니크한 디자인도 원하지만, 한편으로 편안하고 실용적인 해치백도 갖고 싶어 했다. 그 결과가 5도어 모델이었다. 예전의 미니가 흡수할 수 없던 고객들이 이제는 미니의 매장 앞에서 서성인다.
얼마 전 국내에 발매된 3세대 미니 클럽맨은 그런 미니의 변화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모델이다. 세련된 중년, 멋진 가장을 위한 차가 새로운 클럽맨의 모토였다. 미니의 전 모델 중 가장 큰 사이즈, 양쪽으로 여닫을 수 있는 스플릿 도어를 갖춘 클럽맨은 실용성과 스타일을 동시에 잡은 세련된 소형 왜건이다. 더 놀라운 건 승차감이다. 아마 블라인드 테스트였다면 누구도 이 차를 미니라고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늘 허리와 엉덩이의 뻐근함을 걱정해야 하던 미니는 없었다. 사근사근 감싸주는 듯한 부드러운 주행감, 성인 남자가 타도 넉넉한 뒷좌석, 운전자를 실제보다 멋있어 보이게 하는 디자인까지. 하지만 이게 정말 미니일까? 자신의 정체성을 너무 일찍 포기한 건 아닐까? 아니, 이건 너무 고지식한 생각이다. 왜 중·고등학생의 머리를 예전처럼 스포츠 머리로 통일시키지 않느냐고 투정 부리는 노인네와 다를 게 뭔가. 세상이 바뀌었고, 소비자의 생각도 바뀌었는데. 모두가 과거를 부여잡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연곡사로 오르기 위한 좁고 구불구불한 2차선 통행로에서는 이 차가 아무리 편해도 미니는 미니라는 걸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BMW답게 핸들링은 경쾌했고, 가솔린엔진은 부드러웠다. 편안함과 재미를 동시에 누린다는 건 확실히 기술적 우위다. 독일 3사 중에서도 ‘운전의 재미’를 강조하는 회사의 본령은 여전했다.

강남에서 구례까지는 4시간 정도 걸렸다. 경부고속도로와 논산천안고속도로를 지나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통하는 길이었다. 순천완주고속도로는 이름 그대로 순천과 완주를 이어주는 고속도로다. 2004년 착공해 지난 2011년 개통했다. 이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구례로 가기 위해 험한 길을 헤쳐나가듯 들어가야 했다. 그만큼 접근도도 낮았다. 수도권과 경상도 위주의 발전에서 호남은 오랫동안 소외돼 있었지만 이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구례뿐 아니라 전남의 여러 도시가 혜택을 입었다.
아침 9시경 출발했지만 지체하다 보니 구례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2시였다. 며칠 전 내린 폭설로 구례는 온통 눈밭이었다. 풍경이 눈으로 덮이니 오히려 구례의 지형이 더 잘 보였다. 뒤로는 지리산이 자리 잡았지만 정작 구례의 광활한 평지를 둘러싸고 있는 건 야트막한 산이다. 그 앞으로는 호남의 젖줄인 섬진강이 흐른다. 구례는 원래 산수유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산수유가 피는 봄이면 온 동네가 샛노랗게 물들고,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다. 아마 이 설경은 곧 화사한 노란색으로 뒤덮일 것이다. 뒤늦은 점심을 위해 찾은 곳은 구례군 산동면에 있는 중동구판장이다. 여행 작가인 노중훈 씨가 언젠가 추천한 곳이다. ‘놀라운 치킨’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방문한 중동구판장은 흔히 말하는 ‘점빵’이다. 동네 편의점 같은 이곳에선 간단한 생필품과 함께 음식을 판다. 점포 안에 놓인 테이블은 2개. 정상적인 식당의 형태가 아니고 그리 청결해 보이지도 않았다. 치킨을 시키자 한 사내가 트럭 가득 살아 있는 닭 중 하나를 우악스러운 손으로 끄집어냈다. 중동구판장의 위탁을 받아 기르는 닭이다. 직접 기르던 닭을 이곳에서 목을 치고 털을 뽑아 곧바로 튀긴다. 주인이 낀 장갑에는 피가 흥건했다. 사뭇 비정해 보이는 풍경에 멈칫했지만, 튀겨낸 치킨은 모든 걸 잊게 했다. 퍽퍽한 가슴살이 그렇게 말랑하게 느껴지기도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가격은 1만5000원. 자주 시켜 먹던 프랜차이즈 치킨의 퍼석한 육질이 떠올라 좀 우습기도 했다.

중동구판장에서 치킨을 주문하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농장에서 생닭이 배달돼오고 이 닭들을 곧바로 잡아서 튀긴다. 맛은 더 놀랍다.

하룻밤 묵을 숙소로 정한 곳은 운조루(雲鳥樓)라는 한옥이다. 1776년 세웠으니 240년이 넘은 고택이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이 마을을 두고 금환락지(金環落地, 금가락지가 떨어진 명당)라는 표현을 쓰며 상찬을 마지않았다고도 한다. 그래서일까. 독특한 구석이 있긴 했다. 인근의 다른 곳은 눈으로 덮여 엉망인데, 운조루가 위치한 오미마을만은 왜인지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것도 명당의 힘일까? 그럴리가. 마을 주민들이 부지런한 것일 테다. 이 고택을 지키고 있는 건 가문의 9대 종부인 이길순 할머니다. 명문가인지라 국보급 문화재도 많았지만 도둑이 들끓어 많은 것을 훔쳐갔다고 한다. 이 고택은 오래된 만큼 미담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부엌에는 나무로 만든 커다란 쌀독이 있다. 이 쌀독 아랫부분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다른 사람도 이 쌀독을 풀 수 있다는 뜻이다. 지역의 명문가였던 이 저택은 가을에 기근이 닥치면 이 쌀독을 농민들에게 개방해 같이 살았다. 말하자면 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타인을 위하는 착한 마음은 그때도 있었다. 타인을 착취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자들이 여전히 있는 것처럼. 수은주는 영하 10℃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두 세기 전에 지은 고택은 생각보다 잘 만했고 욕실이 현대식이라 온수 샤워도 가능했다. 다만 한옥의 구조상 바닥은 뜨겁고 공기는차서 한겨울에 자는 건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아침에는 찬 공기에 코가 다소 얼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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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연곡사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도(浮圖)들의 축제를 고이 간직하고 있어서 지리산 옛 절집의 마지막 보루라 할 만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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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길을 떠나 닿은 곳은 연곡사였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연곡사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도(浮圖)들의 축제를 고이 간직하고 있어서 지리산 옛 절집의 마지막 보루라 할만하다”고 했다. 부도는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넣어 쌓은 둥근 돌탑을 말한다. 사실 이 근방에서 가장 이름난 사찰은 화엄사다. 하지만 경험상 너무 크고 유명한 절은 실제 방문했을 때 감흥이 덜한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오래전부터 직접 보고 싶었던 문화재가 연곡사에 있었다. 9세기의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제53호 동승탑이다. 오래전 사진으로만 봤을 때도 균형미와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실제로 그 앞에 서니 우리에게 익숙한 다보탑이나 석가탑과는 또 다른 숙연한 느낌이 있었다. 어떻게 이리 오랜시간을 온전하게 견뎌왔을까. 1000년 전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 석탑을 매만졌을까. 멀리서 보는 대신 눈을 감고 석탑을 손으로 더듬었다. 시간의 무게를 손끝으로 느껴보는 건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연곡사를 나와 구례 읍내에 있는 목화식당에서 요기를 했다. 목화식당은 소 내장탕을 파는 곳이다. 27년간 한자리에 있었다. 메뉴도 내장탕 하나뿐이다. 특급 투수는 확실한 구질 하나로 타자를 휘어잡는다. 이곳의 단품 메뉴는 그런 종류의 자신감이다. 주인장이 직접 한우 도축장에 가서 내장을 구한다는데 내장탕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없고 담백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주인은 웃으며 팔이 끊어질 만큼 열심히 닦을 뿐이라고 했다. 하긴 원래 비법 같은 건 없다. 그저 누가 조금 더 열심히 하는가에 달려 있을 뿐. 가격은 7000원이다.

운조루 내의 풍경. 200년 전 고관대작이 살던 이 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연곡사 내에 위치한 국보 제53호 동승탑. 단아하고 단단하다.

구례 읍내에 있는 목화식당의 내장탕. 비리지 않고 담백하다.

운조루 내의 쌀독. 가난한 이들을 위해 언제든 쌀을 퍼갈 수 있도록 했다.

서울로 방향을 틀었다. 고속도로 입구에서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힐링도시 구례’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힐링이라는 단어는 결국 마케팅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짧은 1박2일 동안 구례에서 뭔지 모를 편안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건 강원도의 척박함이나 경북의 억셈과는 다른, 남쪽 땅이 주는 풍요인지도 모르겠다. 구례의 대표적 행사인 산수유 축제는 지난해 3월 21일부터 29일까지 열렸다. 올해도 비슷할 것이다. 그때 꼭 다시 한 번 구례에 들르리라 생각했다. 그때는 이 풍요의 땅이 본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에디터 이기원 (lkw@noblesse.com)
사진 김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