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탄다
자동차는 말하자면 감가상각이 큰 쇳덩어리다. 해마다 더 좋은 모델이 나오니 중고차값은 떨어지기 바쁘다. 하지만 발매된 지 수십 년이 지난 클래식 카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미술품처럼 세계적 경매를 통해 거래되며, 가격 역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미술품도 아니고 보석도 아닌 거대한 기계가 오랜 세월을 견뎌 그 가치를 경신해나가는 이유는 뭘까? 클래식 카에 대한 작은 조언을 준비했다.
콘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에 등장해 화제를 모은 랄프 로렌과 부가티 클래식 카
세계적 패션 사업가 랄프 로렌과 영화배우 스티브 매퀸,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 토크쇼의 황제 제이 레노의 공통점을 꼽자면? 물론 이들은 각 분야를 대표하는 세계적 셀레브러티지만 그 이전에 클래식 카 수집가로 유명하다. 예컨대 랄프 로렌의 부가티 57/SC 아틀란틱 쿠페는 2013년 RM 옥션을 통해 400억 원이 넘는 가치가 매겨졌다. 스티브 매퀸이 소유한 페라리 250LM이나 에릭 클랩턴의 페라리 250GT 루쏘 역시 마찬가지다. 제이 레노는 아예 자신이 수집한 차들을 모아놓은 작은 박물관을 열어 일반에게 공개할 정도다. 이들이 클래식 카에 집중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아름다운 디자인과 시대적 철학,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클래식 카는 어떻게 구분하는가, 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로 불리는 1964년형 페라리 250 GTO

엔초 페라리마저 감탄한 가장 아름다운 차, 1963년형 재규어 e 타입
자동차는 애초에 귀족의 사치품이었다
자동차는 인간의 욕망을 가장 잘 나타내는 기계다. 요즘 발매되는 차야 마케팅과 ‘화장발’로 점철된 공산품에 가깝지만 과거의 자동차는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아무나 소유할 수 없어 애초에 귀족을 위한 사치품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부가티나 페라리, 알파 로메오, 심지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민차 피아트 역시 초기에는 대중이 아닌 부호나 귀족을 위한 제품을 만들었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의 대량생산에 성공하면서 대중화되긴 했지만, 어느 시대건 자동차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사치품에 가까웠다. 이 글에서 다룰 클래식 카는 초창기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 가치를 높이 인정받는 차를 뜻한다. 아무 곳에나 ‘클래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 만큼 한 시대를 풍미한 자동차를 일컫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소량생산, 주문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선택 사양이 즐비한 195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꿈도 꾸지 못했다. 당시 자동차 시장이란 지금의 시스템으로 보면 너무나 비효율적이었다. 현재 세계적 자동차 회사를 장악한 ‘MBA 출신 숫자쟁이’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에서 차를 만든 것이다. 그렇게 만든 자동차는 대중적이지 않기에 부의 과시로 여기기도 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이런 추세는 ‘과거에 대한 경배’로 바뀌기 시작한다.
무엇이 클래식인가
보통 자동차 역사의 시작점을 1880년대로 보는데 이때부터 1913년까지 생산한 차를 베테랑 카, 1914년부터 1930년까지 생산한 차를 빈티지 카, 1931년부터 1957년까지 생산한 차를 빈티지 클래식 카, 1958년부터 1975년까지 생산한 차를 클래식 카, 1976년 이후 생산한 차를 통칭 올드 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클래식 카의 반열에 오르려면 최소 1975년 이전에 생산한 카뷰레터(carburetor) 엔진 모델이어야 한다는 게 국제적 추세다. 여기에 최근 국제 클래식 카 시장에서 인정받는 차종이 늘고 있는 일본 클래식 카(하코스카 GTR, 토요타 2000 GT, 닛산 페어레이디 Z, 마쓰다 코스모 스포츠 등)는 ‘재퍼니즈 빈티지’라고 부른다. 물론 오래전 발매됐다고 해서 모두 클래식 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 의미도 지녀야 하고 희소가치도 있어야 한다. 더불어 보존 상태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 때문에 클래식 카 시장은 상당히 폭이 넓다. 전문적 투자를 위해 거래하는 클래식 카도 있으며, 순수하게 오래된 차를 움직이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부류도 유럽과 일본, 미국에서 나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클래식 카의 시세를 보려면 유명한 클래식 카 축제인 ‘콘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Concorso d’Eleganza Villa d’Este)’에서 열리는 RM 옥션이나 역시 유명 축제인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 같은 클래식 카 전문 이벤트를 참고하면 된다. 앞서 언급한 랄프 로렌의 부가티, 스티브 매퀸의 페라리도 모두 이곳에서 그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가치를 인정받으면 그 차는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미술품 경매로 유명한 소더비도 RM소더비라는 이름으로 클래식 카 경매에 뛰어들어 기존의 클래식 카 전문 경매업체인 RM 옥션과 함께 비정기적으로 클래식 카 경매를 진행한다.
유럽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세계적 클래식 카 시장인 일본은 이미 1970년부터 클래식 카 시장이 자리 잡았다. 거품경제 붐을 타고 일본에 유입되기 시작한 유럽의 클래식 카들이 현재까지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에 유입된 클래식 카는 대부분 유럽 귀족이 몰락하면서 내놓은 것을 일본 부호가 사들인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 역시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시장이 위축되고 있지만 일본에서 발행되는 클래식 카 잡지만 30종이 넘을 정도로 일본의 클래식 카 시장은 부동산 재벌부터 일반 샐러리맨까지 폭이 넓다. 일본이나 유럽, 미국의 클래식 카 시장은 두 부류로 나뉜다. 순수하게 차를 즐기려는 목적으로 구입하는 층과 철저한 투자를 위해 구입하는 층인데, 이 둘이 혼합되는 경우도 많다. 실례로 마지막 공랭식 엔진 모델인 포르쉐 993의 경우 3년 전에 비해 중고차 가격이 1000만 원 이상 올라 지금은 1억 원을 호가하며, 닛산 GTR 1세대인 하코스카 역시 몇 년 전 콘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 출품 이후 거래 가격이 수천만 원이나 상승해 1억 원을 넘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 투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페라리나 마세라티처럼 소량생산한 고급 클래식 카는 ‘진짜 부호’가 소유하고 있으며 실제로 물건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신차 교체 주기가 한국보다 느린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는 비교적 대중적인 클래식 카도 아직 인기가 높다. 대표적 예가 1960~1970년대에 생산한 알파 로메오, 시트로엥, 로버 같은 브랜드에서 만든 차다. 이들처럼 대중적 클래식 카는 아직 부품도 많고 정비도 비교적 간단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한국은 왜
경제 규모와 자동차 시장의 흐름으로 보면 한국은 이미 클래식 카 시장이 활성화돼야 할 시기가 지나고도 남았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과 법률적 문제로 시장 자체가 쉽게 열리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 생산한 클래식 카를 가져오는 것도 여의치 않다. 한국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2005년 이후 제작한 OBD2(On Board Diagnostic2, 자동차 전자제어기)를 장착한 차만 수입이 가능하다. 일본이나 미국은 생산 연도에 따른 배출가스 기준으로 등록이 가능하지만 현행 한국 법령은 무조건 OBD2가 기본이다.
클래식 카 시장이 일찍 자리 잡은 일본은 등록 연식에 따른 자동차세 할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은 연식에 상관없이 배출가스 기준만 통과하면 운행이 가능하다. 반면, 현재 국내에 있는 클래식 카는 대부분 번호판이 없거나 이삿짐으로 반입된 것이다(참고로 현재 국내에 등록된 1975년 이전 차는 3000여 대, 미등록까지 합치면 최소 5000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해마다 클래식 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당신은 단순히 시세 차익을 남기기 위해 이를 구매할 수도 있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세계 각지의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우리가 클래식 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것이 후세에 넘겨줘야 할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국제적 경매를 통해 가치를 인정받고 그것을 온전히 후세에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고 말이다.
과거를 기록하고 보존해야 하는 건 현세대의 양심이자 사명이다. 그리고 자동차라는 물건에는 당대의 기술력과 문화, 가치가 고스란히 응축돼 있다. 투자의 목적보다 문화로 접근할 수 있다면 아마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엔초 페라리마저 감탄한 가장 아름다운 차, 1963년형 재규어 e 타입
에디터 이기원 (lkw@noblesse.com)
글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