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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보는 것이 믿는 것인 어떤 세상

LIFESTYLE

인류의 시각 문화는 늘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동경해오면서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가상현실’이라는 신천지를 목전에 두고 있다. 까다로운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탄생한 퍼스널 가상현실 기기는 인류를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자유롭게 이동시킬 것이다. 과연 그곳에서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할 가상의 이미지는 인류의 시각 문화 발전에 어떻게 작용할까?

오큘러스의 리프트를 활용해 제작한 다니엘 스테그만 만그라네(Daniel Steegmann Mangrane´)의 ‘Phantom’. ‘관객을 에워싸다(Surround Audience)’라는 주제로 뉴욕 뉴 뮤지엄에서 열린 트리엔날레의 출품작이다. Photo by Benoit Pailley

2016년 1월, IT업계의 포문을 연 ‘사건’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기 개발 업체 오큘러스(Oculus)가 일반 대중을 위한 헤드셋 ‘리프트(Rift)’의 예약 주문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가격은 599달러(약 72만 원), 정식 발매일은 3월 28일이다. 비록 한국은 ‘정부 규제’를 이유로 1차 출시 국가 리스트에서 제외됐지만, 이 제품의 면면은 오큘러스 홈페이지(www.oculus.com)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회사는 리프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리프트는 당신이 경험해본 그 어떤 것과도 다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게임 속으로 들어가고, 가상현실 영화를 몰입해 볼 수 있죠. 세상의 반대편에 있는 목적지로 날아가거나, 그저 친구와 가상현실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어요. 당신은 정말로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낄 거예요.”
오큘러스의 이런 설명은 리프트라는 기기의 특징보다는,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 것처럼 읽힌다. 인공 기술로 만든 특수한 환경과 상황인 가상현실의 목적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의 손쉬운 이동 아닌가. 오큘러스를 창업한 스물세 살의 ‘천재’ 팔머 러키(Palmer Luckey)도 가상현실을 통해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여행’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와의 인터뷰에서 “가상현실이란 물리법칙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만들려는 노력이다. 사람들은 주차장에서 걸어 다니는 행위를 굳이 가상현실로 시뮬레이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리프트를 구매하면 3D 액션 게임 정도를 즐길 수 있다.
오큘러스의 리프트가 화제를 모은 이유는 가상현실을 둘러싼 장밋빛 성공 신화가 오큘러스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2014년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20억 달러(약 2조3300억 원)를 주고 인수하면서 가상현실의 상용화가 글로벌 경제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현재 오큘러스뿐 아니라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밸브, HTC, 엔디비아, 구글 등의 기업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가상현실 기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2015년에 오큘러스와 협업해 ‘삼성 기어 VR’을 발표했으며, 삼성 GIC(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의 데이비드 은 신임 사장은 미래 유망 사업 중 하나로 가상현실을 꼽기도 했다(다른 하나는 사물 인터넷이다). 2016년에는 오큘러스의 리프트 이외에 타 기업들이 공들여 개발한 가상현실 기기를 세상에 공개할 예정이라, 가상현실에 대한 여론의 높은 관심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법하다. 그 답변은 아주 간단하다. 기술 발달로 그 실현이 가능해졌다. 가상현실의 개념이 처음 등장한 19세기부터 가상현실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데 일조한 1980~1990년대의 수많은 SF 영화나 소설까지, 가상현실의 역사는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 볼만한 가상현실과 쓸 만한 기기를 만드는 과정은 인류가 개발한 모든 컴퓨터 기술을 써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스마트폰이나 PC와 결합한 장치와 관련 분야의 기술이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하면서, 2016년에야 리프트와 같은 퍼스널 가상현실 기기가 등장할 수 있었다. 앞으로 사람들은 더욱 싸고, 더욱 가볍고 편하며, 더욱 현실적인 이미지를 원할 것이고, 가속화된 기술 개발은 그것을 보완하고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점차 개선될 것이다. 결말을 아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가상현실의 기술 발전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 됐다. 그럼 이쯤에서 다시 팔머 러키의 말을 떠올려보자. ‘주차장을 걸어 다니는 행위’ 따위의 일상이 아닌, 우리가 가상현실을 통해 시뮬레이션하고 싶은 또 다른 현실은 어떤 것일까?

오큘러스에서 제작한 가상현실 헤드셋 ‘리프트’

삼성전자에서 오큘러스와 협업해 만든 가상현실 헤드셋 ‘삼성 기어 VR’

영화 <아바타>는 오락적 재미뿐 아니라, 가상현실의 현실화에 관한 많은 문제를 담고 있다.

가상현실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미군의 훈련 모습. 가상현실은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 이외에 교육, 의학, 군사 분야 등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IT 전문가들은 가상현실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로 콘텐츠의 부족을 꼽는다. 리프트처럼 완성도 높은 기기도 게임 위주로 콘텐츠가 구성돼 있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의 황대실 대표는 <노블레스 맨>과의 인터뷰에서 가상현실 관련 하드웨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했지만, “그 안에 넣을 좋은 콘텐츠가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기술 문제는 해결했지만, 결국 볼 수 있는 게 한정돼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향후 가상현실에서 보게 될 이미지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가상현실을 단순한 기술 개발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인류의 시각 문화사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가상현실 기기에서 구현하는 그래픽 이미지는 도깨비불처럼 어느 날 짠 하고 갑자기 등장하지 않았다.
오큘러스가 리프트를 수식할 때 사용한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란 문장은 동굴벽화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 20세기의 추상미술과 미디어 아트 등으로 이어져온 인류 시각 문화의 변천사를 관통하는 서구식 ‘시각중심주의(ocularcentrism)’의 핵심을 관통한다. 그것은 과거의 예술과 미래의 가상현실이 지닌 공통점이다. 우리가 예술이라 칭한 세상의 모든 이미지가 실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시각 인지 시스템이 지닌 한계를 절묘하게 이용해 탄생한 환영(illusions)의 일종이라는 점에서, 이미 가상현실은 ‘제10의 예술’이 될 조건을 충분히 갖춘 것은 아닐까?
향후 가상현실과 더욱 가까워질 우리는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과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지 모른다. 반신불수인 그는 아바타라는 가상의 생명체로 판도라의 원주민을 구출하는 영웅이 되고, 현실의 삶을 포기한 채 아바타로서 살아간다. 영화 산업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혁명적인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리얼하게 그려낸 가상현실 이미지가 아니라, 극도의 클로즈업으로 포착한 주인공의 ‘눈’이다. ‘I See You’라는 직접적인 동시에 은유적인 메시지! 그 안에는 눈으로 본다는 것, 그것을 느끼고 경험하는 행위의 원초성을 향한 믿음이 담겨 있다. 가상현실에도 그러한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