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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를 낳는 콩쿠르

LIFESTYLE

한국 연주자들의 반가운 우승 소식에 클래식 음악 콩쿠르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요즘이다. 세계 메이저 콩쿠르와 역대 우승자들의 행보를 살펴보며 콩쿠르의 취지를 되새겨본다.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심사 중인 바이올린 부문 심사위원들

하루아침의 일이다.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오른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이름 옆엔 ‘신드롬’이란 단어가 따라다녔다. 지난 10월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직후 쉴 새 없는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치 아이돌 스타 같은 팬덤도 형성됐다. 2월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하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의 티켓은 예매 오픈 직후 매진됐고, 공연 기획사에서 발 빠르게 낮 공연을 추가로 준비했지만 그 역시 금세 전석의 티켓이 팔려나갔다.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발매한 콩쿠르 실황 음반도 5만 장이 일주일 만에 모두 팔려 부랴부랴 추가 물량을 찍어내는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콩쿠르 우승은 하루아침에 대중을 클래식 감상자로 끌어들이는 위력을 발휘했다.
조성진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 세계적 콩쿠르에서 한국 연주자의 수상 소식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부쩍 자주 들려오는 낭보에 콩쿠르의 문턱이 낮아졌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한국 연주자들의 기량이 높아져 세계 무대에서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먼저 쇼팽 콩쿠르부터 살펴보자. 지금 살아 있는 피아니스트 중 단연 세계 최고 거장으로 꼽히는 마우리치오 폴리니는 1960년 제6회 쇼팽 콩쿠르의 우승자다. 이 콩쿠르의 1965년 제7회 우승자 역시 현재 거장으로 인정받는 마르타 아르헤리치. 그 외에도 1975년 크리스티안 치머만, 1980년 당 타이 손처럼 우리가 ‘믿고 듣는’ 연주자들이 젊은 시절 쇼팽 콩쿠르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1927년 창설한 쇼팽 콩쿠르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한때 중단되기도 했는데 1955년부터 5년마다 개최하고 있다. 한국인 연주자로는 조성진 이전에 임동민·임동혁 형제가 2005년 공동 3위에 올랐다. 쇼팽의 고향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그의 기일인 10월 17일을 전후해 열리며 오직 쇼팽의 곡만 경연곡으로 삼고, 17세부터 28세까지라는 연령 제한이 있다.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5위를 차지한 강승민의 연주 장면

쇼팽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연주 중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1958년부터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4년마다 열리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남녀 성악 부문으로 나뉜다. 차이콥스키의 곡을 위주로 경연하며 이외에 쇼스타코비치 같은 러시아 작곡가의 곡도 선정된다. 작년은 마침 쇼팽 콩쿠르와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모두 열리는 해였는데, 조성진은 이미 2011년 제14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3위에 오른 바 있다. 개최 첫해에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이 우승했고 1962년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1966년 그레고리 소콜로프 등 피아노 부문만 봐도 설명이 필요 없는 연주자의 이름이 줄을 잇는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나 빅토리아 물로바 등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 1974년 정명훈이 피아노 부문에서 2위에 오른 것이 유명하고 1994년에는 백혜선이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인은 특히 성악 부문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데 2011년에는 베이스 박종민과 소프라노 서선영이 나란히 우승했고, 2015년에는 바리톤 유한승이 3위를 차지했다.
매년 개최하는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는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을 번갈아 경연해 악기별 주기는 3년에 한 번씩 돌아오며 2017년에는 첼로 부문을 신설해 4년 주기가 될 예정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하는 이 콩쿠르는 알베르 1세의 왕비이자 레오폴트 3세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왕비의 이름을 따왔다. 바이올린을 사랑한 그녀는 1937년 이자이 콩쿠르 창설을 후원했는데, 이것이 1951년부터 시작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전신이다. 지금은 지휘자로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는 1956년 여기서도 우승했는데 1955년 쇼팽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것까지 포함하면 소위 말하는 3대 메이저 콩쿠르를 모두 1, 2위로 휩쓴 인물이다. 최근에는 한국인이 연이어 우승하며 큰 화제가 됐다. 2014년 성악 부문에선 소프라노 황수미가 우승하고, 2015년 바이올린 부문에선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우승을 차지한 것. 올해는 피아노의 해로, 5월 23일부터 28일까지 개최한다.
음악 영재 교육이 활발해지면서 이런 메이저 대회의 출전 연령에 도달하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출전하는 주니어 콩쿠르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피아니스트 랑랑이 13세 때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린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17세 이하 연주자들이 출전하는 대회. 지난해 12월에는 이 콩쿠르에서 금호 영재 연주자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과 피아니스트 예수아가 나란히 우승 소식을 전해오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역시 1997년 이 무대에서 최연소 2위로 입상하는 등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어린 시절 거친 등용문 같은 대회다. 그 밖에도 주니어 부문을 두고 있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와 예후디 메뉴인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를 비롯해 에틀링겐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 등이 대표적 주니어 콩쿠르다.
그런데 콩쿠르에 대한 높은 관심 속에서 이런 질문도 던져볼 법하다. 콩쿠르의 결과가 절대적으로 음악성을 나타내는가 하는. 물론 그건 아니다. 예술을 정확히 점수화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차적으로 연주 기량을 증명하는 건 사실이다. 콩쿠르가 스타를 낳는다는 것 또한 확실하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음악도가 메이저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목표로 연습에 매진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피아니스트 윤디 리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심사 기준에 부합하는 연주자가 없을 경우 우승자를 내지 않는 쇼팽 콩쿠르는 1990년과 1995년에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했고, 2000년 우승한 윤디 리는 무려 15년 만에 탄생한 쇼팽 콩쿠르의 스타였다. 그런 그가 지난가을 한국 무대에서 위태로운 연주를 이어가다 급기야 연주를 중단하는 사고를 냈다. 공교롭게도 연주곡은 조성진이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연주한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이었다. 사실 윤디 리의 최근 연주를 돌이켜보면 이것이 그날의 컨디션을 탓할 만한 한 번의 실수는 아니다.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한 몇 년 전 그의 한국 무대 역시 미스 터치가 잦은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세계적 콩쿠르가 배출한 스타는 대부분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거장의 길로 접어들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스타가 아니라 음악가의 길을 고민해야 한다. 감상자 또한 지금처럼 스타 탄생을 축하하되 그들의 화려한 기록보다는 연주 자체를 아껴야 한다. 애초 콩쿠르의 취지는 위대한 음악가를 기리고 음악을 사랑한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